15 이득없는 거짓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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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득없는 거짓
    글/글쓰기 2011. 8. 11. 11:54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믿음이 없는 세상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얼마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하였기에 서로 믿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하긴 방금 은행에서 저금을 찾아 나오는 아낙에게 달려 들어 지갑을 채 가는 세상

    어두운 밤에 길 가는 사람을 신나게 때려 주고는 주머니를 톡톡 털어 가버리는 녀석들

    잘 아는 친한 사이인척 하면서 사기를 쳐서 남을 못 살게 구는 사람

    이러한 많은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렇다고 이 세상이 못 믿을 세상일까.

    그렇다고 치자

    이 세상이 못 믿을 세상이라고 누구나가 다 수긍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서로 속고 속이는 사기극이 없어져야 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필요하던, 필요하지 않던 수많은 거짓말을 해 왔을 것이다.

    이제 갓 태어나 말을 할 줄 모르는 갓난아기라도 좋다.

    엄마가 야단이라도 칠것 같으면 자신이 잘못을 했으면서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이것이 어릴적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거부반응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타고난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서는 혹자에 따라서 순수하게 발전 될 수도 있는 것이며 또 이를 악용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기도 할 것이다.

    그 주위 환경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누가 이야기 했는지 확실히 기억은 못하지만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라고

    이 말을 어린이의 순수성에 빗대어 한 말일 것이다.

    슈바이쩌는 이런 말을 했다.

    " 내가 14 세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 "

    슈바이쩌는 14 세 소년이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속담이 있다.

    " 세살 버릇 여듦까지 간다" 고

    " 세살 적  도둑이 커서 소도둑 된다 " 고

    이는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 거짓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라도 지켰으면 한다.

    뭐냐하면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말 일 것이다.

    매일같이 사기극이나 벌여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해가 없고, 이득도 없는데도 거짓말을 일삼고 다닌다.

    그것이 즐거워서도 아니고 또 그 자체에서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거짓말을 하고 난 후 괜히 했다 하고 속으로는 후회를 하면서도 막상 어떤 일이 닥치고 나면 또 열심히 거짓말을 한다.

    물론 본의 아니게 타인에 의해 거짓말이 남겨지는 수도 있다.

    내가 국민학교 2 학년 때 일이다.

    학교 가기가 무척 싫었다. 학교 교실이 부족하여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는데 나는 오후반이었다.

    그 당시 나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매일같이 나머지 공부를 하고  또 수시로 담임 선생님한테 얻어 맞기도 하였다.

    얻어 맞는 것이 무서워서 학교 에 안 다닌다고 난리를 쳤다.

    이에 놀란 어머니가 동네 애들이 지나가니까

    " 얘 학교 왜 안갈라 그러냐 " 고 물었다.

    그런데 상선이란 녀석이 툭 한다는 말이

    ' 세민이가 때려서 안 가나 "  하였다.

    이 소리를 듣자 마자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나의 팔을 끌고 세민이네 집으로 달려 갔다.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때리다니 누가 나를 때려서 안 간단 말인가.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이지.

    그런데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앞 뒤 분간을 못하는 어머니한테 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없이 학교 안 간다하면 또 내가 얻어 터질것이고 ...

    어머니는 세민이 어머니를 붙잡고 난리를 쳤다.

    그 난리를 쳐도 세민이 어머니는 뭐라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식이 남의 애를 때렸다는데... 그렇다고 때리는 것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것도 자식이 때려서 학교까지 가기 싫게 만들어 놓았다는데 뭐라고 항변할 말이 있을까.

    세민이 어머니는 세민이만 나무랄 뿐이었다.

    30여 분 정도 세민이네 집을 홀딱 뒤집어 놓고 ..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서슬이 퍼래서 나를 붙잡고 학교로 쫓아 갔다.

    학교로 가고 있는 도중에 아세아 극장 앞에 세민이가 오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나와 어머니가 가고 있는 것을 보자 마자 서서 주춤거리는 것 같았다.

    학교에 간 어머니는 선생님한테 세민이가 때려서 얘가 학교에 안 다닐라고 한다고 우리 애 좀 잘 보아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부탁을 하고 돌아 가셨다.

    그리고 애들 연습지라도 사서 시험문제라도 잘 내 달라고 돈 300원을 선생님한테 쥐어 주었다.

    그때만해도 3 백원이면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세민이는 어디에서 주춤거리다 왔는지 한 시간이 끝나고 학교에 도착했고 학교가 끝이 날때까지 나도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더러 세민이는 양동이를 들고 앞에 나가 칠판 밑에서 벌을 섰다.

    집으로 오면서 도저히 불한해서 견딜 수 없었다.

    세민이가 억울하게 혼나고 벌을 섰다고 대들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였다.

    그때 나는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서 그야말로 애들이 눈만 부릅 떠도 꼼짝을 못했다.

    그 이후 나는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세민이와 단 한번도 같은 반을 한적이 없었다.

    남학생 3 반, 여학생 3 반으로 한 학년이 짜여져 있을 그때였지만 2 학년 때 일로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들의 배려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 와 내 아들과 세민이는 같은 반에 있으면 안된다고 간곡히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런 정성 덕분에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세민이와는 단 한마디도 나눌 기회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세민이는 새해가 되면 나의 할아버지한테 꼭 새배를 드리고 나의 부모님께도 꼭 새배를 드리러 왔다.

    매년같이 그것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어찌 된 판인지 무슨 죄책감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단 한마디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때 참 미안했다. 

    내가 지어 낸 이야기도 아니고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다 라고 이런 말 한마디를 삼십년을 살아 오면서도 건네지 못했다.

    그 당시 동네 꼬마 친구의 거짓말 때문에 나는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고 그것을 아니라고 어머니에게 부정을 하지 못했 기에 나는 귀중한 어릴 적 친구를 잃어 버렸으며 아직도 그 생각이 한쪽 구석에 응어리 지어 남아 언제나 내가 잘못했다고,

    그 당시는 내가 모르고, 어려서 그랬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우리 선인들은 생각이 무척 깊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때린 놈은 구부리고 자고 맞은 놈은 허리 펴고 다리 쭉 펴고 잔다 고 말이다.

    나야말로 내가 한 거짓말이 아니라 남이 한 거짓말 때문에 수십년을 허리도 못 펴고 살고 있는 것이다.

     

     

                                1983 년 12 월 2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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