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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이름 값을 하려면글/글쓰기 2011. 7. 25. 16:16
오랫동안 여성의 미와 언어, 여성의 해방감 등을 생각하며 보낸 적이 있다.
이것은 생각하게 된 것은 원고를 부탁 받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생각을 해 본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얻은 나 자신의 결론은 아무 이야기도 입 밖에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야기한다는 자체부터가 여러면에서 우스운 일이 아닌가.
오늘 부산여대 카니발에 갔다가 예쁜 여학생 옆에 앉혀 놓고 강연을 듣는 가운데 정리 할 것이 있어서 몇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 한국사회 뿐 아니라 세계 어느 사회를 가건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나 요즈음 많이 변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어느 교수는 말한다.
여성은 예뻐야 하고 그리고 순종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고 ... 순종의 미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시부모를 잘 모셔야 하고, 아들에게 따라야 하고
즉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우리의 유교사상에 젛어 있는 우리 국민은 이 3 종의 미덕을 잘 알고 있다.
또 더 넓게 여성은 겸손해야 하고 여성은 부지런해야 하고,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 논리를 우리 조상들은 전개시켜 왔다.
이 사회에서 받아 들이는 여성은 하여야 할 일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수천년을 통해 변모한 우리나라나 각 종족의 언어 속에는 그 집단사회의 역사와 감수성과 풍습의 자취가 가장 미묘하게 깃들어 있을수록 외국인에게는 그 언어를 습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옛날처럼 여유가 많고 공간이 넓고 인구가 많지 않은 시대라야 남녀칠세부동석이 통했지 요즈음 만원버스를 타 보면 그런 것을 따지는 그런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것이 현실이다.
신문을 읽다보면 놀라운 것은 주로 사회면에 등장하는 인물의 호칭이다.
대부분 " 씨 " 자를 이름 석자 밑에 달고 예우를 받고 있는 반면 오직 어리다던가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존칭을 간단히 생략 받거나 간혹 ' 군 ' 으로 직하 되는 예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이없는 예는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협의자가 " 씨 " 자를 서슴없이 생략 받는 일이다.
그보다도 더욱 미묘한 것은 *** 여인이다.
이런 기사를 쓰고 실은 기자는 자신의 어머니 이름 뒤에 " 여인 " 을 달아 놓고 한번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즈음 땅 위에 서 있는 자랑스러움 보다도 땅 위에 사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식인들은 자신의 통일되고 정돈 된 사상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이념 부재를 살펴 본다면 얼마 전 신문에 " 여대생 결혼관 앙케이트 조사 ' 를 읽은 적이 있다.
여기서 배우자의 선택의 기준을 보면 사업가, 교수 , 정치가, 공무원 순이었다.
그 여성들은 기준 설정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대체 그들은 사업가, 교수, 정치가의 아내가 되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 여성들의 의도는 스스로 무엇을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얻었냐는 고전적인 인습에 젛어 있다.
더우기 그들이 대학 교육 4 년제의 학생들이라니... 지성의 요람에서 배웠다는 것은 아직껏 신데렐라의 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우리나라 여권 신장 운동의 주역들이며 지성인이라 지칭 될때 터져 나오는 것은 가벼운 조소 뿐이다.
그 여성들 스스로 인생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남자를 찾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현시적인 착각은 주관적 환상을 낳고, 불확실한 환상은 객관적인 오류를 범할 것이다.
여성의 예쁘다는 면만을 남자가 강조하다 보면 여성은 상품화 되어 비인격화 되고 만다.
길거리에 나돌아 다니는 주간지 모델로서 온 육신을 드러내 놓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는 그러한 인간 그리고 유행하는 영화가의 호스테스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 남자는 이를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하고 돈만 있으면 모조리 살 수 있다는 그러한 현상을 초래 할 것이다.
여성은 예쁘기 이전에 아름다워야 한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하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한다.
요즈음 여성들의 해방을 부르짖고 있지만 옛날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부부 사이에도 내외를 하고 있던 시대에 살던 우리의 할머니들이 요즈음과 같이 한번 만나 아니면 여러 번 만났을 경우도 있겠지만 단지 좋다는 것 , 사랑한다는 것 하나 만 가지고 큰 강당에 모여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하는 것을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그만큼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복잡해 짐에 따라 여성들의 해방은 점차 회복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들은 이름도 가지지 못했다.
남자는 할아버지가 아주 거룩한 척 하며 옥편을 꺼내 놓고 이것 저것 다 맞추어 가며 이름을 지었지만 딸은 어머니가 지었다.
그러다보니 이름도 없이 누구누구의 딸, 나중에는 *** 댁 , *** 댁으로 불리어 졌고 늙어서는 누구누구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이와같이 여자들이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가정에 묻혀 순종만을 강요 받을 때 여자들은 상품화 되고 비인격화 된다.
비인격화 된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지낸다는 것과 통할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자기의 이름 주머니 속을 가득 채우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여자들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평생토록 가지고 다닌다.
이름이라는 것은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되어 어느 누구에게 알려 질 때 그 이름은 빛나는 것이 되고 그렇지 못할 때 형편없이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일제세대 때 창씨개명 이란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민족의 수난시대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이름을 그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움으로서 그 이름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쓰고 싶은 말은 많으나 정리가 제대로 안된다.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정리하자.
1979년 6 월 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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