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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변태[ 1978년 4 월 1 일]글/글쓰기 2011. 7. 11. 16:48
따사로운 봄볕에 돋아나는 새싹들이 귀엽고 먼지를 털고 아장거리며 걸어가는 조그만 아기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파문이 일때, 해수욕장에서 포근한 바닷바람에 파도가 넘실거릴 때, 언제부터인지 나도 거기에 한 몫 끼이고 만다.
덜덜거리는 시외버스, 그것도 완행버스의 여행은 즐겁기만하다.
밤이 새도록 울던 옆집 아기의 울음소리도 그쳐 버린 지금은 너무 적막하다.
도시의 밤은 소음으로 그득 차 있다.
이제는 잃어버린 연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머리 속에 그려 볼려 하지만 되지 않을 때 서럽기만 하고, 양놈들에게 사기 당한 양복 한벌이 아깝기만하다.
계집애 등쳐 먹고 서울로 나르는 배부른 놈의 모습이 얄밉다.
아스피린 한알에 100원씩 받는 의사가 죽이고 싶도록 저주스럽다.
벌써 봄이련가.
봄의 권태로움이 마음 속에 물결치고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이불 속에 들어가야 잠이 온다는 친구녀석의 사랑스런 모습이, 인간 본연의 자태가 그립다.
봄의 권태가 사랑이란 말과 통할 수 있을까.
계집애는 뾰로통한 모습을 하고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모습은 시시껄렁한데 번쩍거리는 금반지, 목걸이, 양장점에 돌아가는 마네킹이 걸친 옷들을 바라보고 어떡하면 한 놈을 떼어 내 버리는가 하고 , 한 녀석을 죽여볼까 하고 넥타이를 바라보고 있다.
겨울 내내 콧물로 훌쩍거리던 애기가 이제는 말끔히 때를 벗고 때때옷 입고 흙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고향이 뭔지도 모르고, 타향이 뭔지도 모르는 가냘픈 계집애는 연인의 품 속에서 배반을 당하고 조그만 옷 보따리 하나만 달랑 들고 기차를 올라타고 있다.
어떤 누구도 배웅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서러운 양 눈물만이라도 남기고 싶은지 시종일관 눈물이 흐른다.
마치 멀리 떠나 보낸 딸을 전송하러 나온 엄마의 눈물같이 딸년은 멀리 시집 보내면 안된다고 소리치는 뚱보 아줌마의 툭 튀어 나온 배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차창 밖을 내다 본다.
40 대 중년 여인이 비집고 들어 와 앉자 몸이 오그라든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40 대 중년 여인의 엉덩이는 내 숨통을 막아 놓는다.
여보시오 ! 지금 나 죽소 ! 그 엉덩이 좀 줄이시오,
나는 안다.
내가 알고 있던 계집애들은 한결같이 나보다는 못 살거라고. 의사도, 간호원도, 선생님도 , 은행원도 어느 가정 주부가 될지 모르지만 행복하지는 못할 거라고... 아니다.
나보다는 못산다 하더라도 잘 살도록 기원해 주는거다.
주여 ! 이 어린양의 숨통을 풀어주소서
신나게 나불대던 계집애의 말이 그쳤을 때 시종 할일없이 웃어야 하고 떠들고 싶지 않으면서 입을 나불거려야 한다.
나에게는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는 그런 행각을 치루어야 한다.
" 선생님예 ! 올창이가 뭡니껴 ?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올챙이를 보지 못한 바보같은 녀석이 바보같은 질문을 한다.
" 그런게 아니고예. 올창이가 그렇게 징그러운데 우예 개구락지가 되는지 이말입니더 "
변태, 변태 그렇다. 나는 변태적인 존재다.
개구리가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서 개구리가 된다.
" 아가씨 ! 돈을 얼마나 만져 봤읍니까 ? "
" 은행에 있으면 돈이 깍지로 끌어도 다 못 모을텐데 말이지요 "
" 전자계산기가 주산보다 훨씬 느려요. 지금은 돈을 세어야 할 시간이예요, 저기 방게차가 오고 있어요. '
산골짜기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 보았다.
식사 중인 밥을 한 술 던졌다.
바위 아래 숨어 있던 가재라 놈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요놈 좀 봐라 !
조그만 돌을 그 녀석에게 던진다.
그러나 그 녀석은 오히려 딱 벌어진 양 손을 치켜들고 달려든다.
무척 배가 고팠나보다.
제 놈 죽는 것보다 배 고픈 것이 먼저인 모양이다.
으시시 몸이 떨린다.
가재는 소리쳤다.
" 나는 요놈이 아니라 이놈" 이라고 깔보지 말라고 억센 두 팔을 허공에 휘둘렀다.
아우성치던 가재는 결국 불 위에 올려졌고 가재는 온 전신이 빨갛게 변했다.
아 ! 여기서도 변태구나
서머셋트 모움의 달과 6 펜스는 또 무엇인가.
마누라 버리고 도망간 쓸데없는 녀석, 장가는 안 갈것처럼 떠들던 녀석이 남보다 먼저 장가를 가는데 배가 아프다.
그 자식도 변태적인 녀석이다.
당신은 지금 원음에 가까운 새로운 방송을 원하고 있지 않읍니까.
내가 어디 당신이라 말이요. 내가 지금 당신한테 당신 소리를 듣게 되어 있오
나는 마누라한테도 선생님 소리를 들을 작정이오.
선생님, 선생님 이번 휴가 때 바닷가에 놀러 가요.
이런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마누라의 애교스런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란 말이요.
이것도 변태란 말이요.
계집애는 배부른 배때기를 꾹꾹 찔러 놓고는 도망 갔단 말이요.
모두 다 실종 되었다. 모두 다 실종
친구녀석들도 어디로 갔다.
계집애들도 어디로 갔다.
35 살 머저리 같은 녀석은 모든 것을 놓쳐 버렸다.
이젠 혼자 뿐이다.
1978년 4 월 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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