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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구간 [슬치 -만덕산- 모래재휴게소]우리의 아름다운 강산/호남정맥 [완료] 2008. 7. 21. 15:18
2008. 7. 20
00 : 00 제천 출발
04 ; 03 산행 시작
들머리 찾느라고 10여분 소비. 휴게소 화장실 뒤로 올랐으나 길은 잡풀로 우거지고, 슬치주유소와 모텔 사이로 진입하여야 함
임도가 나오고 계속 따라가면 시멘트 길이 나옴
04 ; 40 시멘트 길, 삼거리 갈림길[우측으로]
이후 시멘트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교대로 나옴
05 : 05 삼거리 갈림길 [좌측 숲으로 들어가 밤나무 밭 사이로 -- 그런데 이 길도 정상적인 길은 아닌 것 같음]
우측 임도로 따라 가다가 넓은 공터 가기 전 좌측 내리막으로 가는 것이 수월 할 것 같음
이후 엄청난 잡목지대
05 : 38 목장
컨테이너 박스 앞에는 강아지 세 마리가 깊은 산을 지키고
06 ; 00 사거리 안부 [커다란 서어나무가 있음]
아침 식사 25분
06 : 35 삼거리 갈림길 [직진]
06 : 56 능선 삼거리 [우측으로]
07 : 06 416봉 삼각점 [임실 401, 1995 복구]
07 : 12 넓은 밭
우측 아래 축사가 많고 도로가 있는 상월리 마을이 보임
07 : 25 북치
07 : 31 이정표 [맞지도 않는 이정표 같음]
만덕산 4,0km, 죽림온천 9.0km, 임실
07 ; 54 삼거리 갈림길 [우측으로]
08 : 11 능선 삼거리 [ 우측으로]
08 : 31 550
08 : 41 530
이 부근은 벌목지대라 딸기나무 같은 잡목이 무척 많아 진행이 아주 나쁨
고통 속의 산행 길임
09 : 28 능선 삼거리[좌측으로]
09 : 32 이정표[스테인레스] 해발 620m
정수사 2,1km, 정상 1.6km, 동부교회 수련원 4,3km
09 : 43 제 5 쉼터 의자
정상 1,5km
09 : 50 암릉
전주 시가지와 모악산이 조망 됨
이후 위험한 암릉이 연결되어 있음
암릉에서 10분 휴식
10 ; 17 만덕산 갈림길[만덕산은 300m 좌측으로. 정맥길은 우측 내리막으로]
전북산사랑회 전일상호신용금고 스테인레스 표지판과 통신시설
슬치 13,2km, 곰치재 2,5km,
점심 식사 20분
10 : 45 삼거리 갈림길[ 우측 능선으로]
10 ; 48 삼거리 갈림길 [우측으로]
여기서 백두대간 종주를 같이 한 이형규를 만남. 낙동정맥 때도 운주산 아래서 만났는데 산군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산에 가면 언제
든 만날 수 있으리
10 ; 51 삼거리 갈림길[길주의]
직각 좌측 내리막으로
10 : 55 너덜. 산죽지대
10 : 58 제 2쉼터
11: 04 오두재
이정표 정상 1,7km, 원불교훈련원 0,7km, 헬기장 1,6km
11 : 13 능선마루 삼거리[길주의]
좌측 내리막으로
계속 내려가면 고개마루에 넓은 밭이 나오고 밭 좌측으로 오르면
11 ; 24 능선 삼거리 [우측으로]
11 ; 40 560봉
11 ; 54 웅치
웅치 전적비 안내판 옆 시멘트 길을 따라
11 : 59 웅치 전적비
12 : 03 천안전씨 묘
12 : 15 곰치재봉
좌측으로
12 : 31 임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철망울타리를 따라
12 : 37 곰재 옛길
돌무더기와 곰재의 설명판이 있음
12 : 50 563봉
좌측 급경사 내리막으로[길주의]
급한 내리막을 내려갔을 때 폭우가 쏟아짐 - 이 폭우는 모래재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
임도[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급경사를 오름
이후는 엄청난 폭우로 기록을 제대로 못함
13 : 20 540봉 [길주의]
정상에는 묘지가 있어 묘지 아래로 내려가기 쉬우나 내려가지 말고 묘지 뒤 능선으로 바로 붙을 것
여기서 직진하여 내려 갔다가 15분 알바
13 : 35 다시 원위치
14 : 13 모래재 갈림길
14 : 21 모래재 휴게소
마지막 종주를 앞두고 비는 억수로 퍼부어
여기저기서 많은 전화가 걸려 온다.
TV에서 태풍 갈매기가 올라오면서 우리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것이니 외출을 하지 말라고 연 이틀을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모두들 산
행을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대만을 강타하여 10여명이 죽고 지금은 중국 본토를 들어가 상하이를 강타하고 일요일 밤에 우리나라의 중부 지방을 지난다고 한다.
그 이전에 태풍의 여파로 엄청난 양의 비가 오겠다고 계속 시끄럽다.
태풍이 오기 이전에 토요일 중부 지방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청주에 하루에 220mm 의 폭우가 쏟아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제천에도 하루 종일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그러나 이 비는 태풍과는 관계가 없는 비다.
제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린다 해도 종주하는 사람은 물을 건너지 않고 단지 능선을 타기 때문에 버스가 못 간다면 몰라도 사람이 못가는
법은 없다.
비가 온다고, 눈이 온다고 못 가는 법은 없는데 왜들 조바심을 가지는 모르겠다.
종주 산행을 수없이 해 본 사람들이 괜스레 사람을 못살게 군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그 속을 걸으면 참으로 지겨울 것이라 생각도 해 본다.
나중에 이야기 하는 것 들어보니까 대부분 아내들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산에는 왜 가냐. 미쳤냐” 고 난리를 친 모양이다.
“우리는 대장이 가라면 가.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대장 말은 들어야 돼 ” 했단다.
밤 12시 버스가 출발하고 2시경쯤 음성휴게소에 잠시 쉬는 사이 올려다 본 하늘은 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다.
어제 그토록 하늘이 뚫린 것처럼 퍼붓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다.
달 앞에는 달무리가 어디로 가는지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
모두들 기상청을 비웃는다.
기상청에서 일기예보를 하지 말고 차라리 중계를 하는 편이 낫다고
익산분기점을 지나면서 바깥 야간 풍경을 구경한다.
4차선의 넓은 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슬치휴게소는 불이 꺼져 있고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이 있는지 경기도에서 온 버스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 달 만에 보건만 변한 것은 없어 보이고 건너편의 산에는 무엇이 있는지 불빛이 조그만 태양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환하다.
산행이 너무 힘들어
슬치 휴게소 화장실 뒤편으로 올랐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화장실 바로 뒤 나무에 표지기는 많이 달려 있는데 그 뒤로 가보면 잡목이 뒤덮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야간산행의 맹점이 초입에 길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내려 와 휴게소 앞을 지나 모텔도 지나고 농가 옆 시멘트 길로 200m 정도 오르다 좌측 숲으로 들어선다.
조금 진행하면서 보니까 모텔과 주유소 사이에 올라오는 길이 있다.
아침 해도 아직 떠오르지 않았건만 벌써 무척 덥다.
오르막길도 아니고 천천히 걸었는데도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숨이 막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태풍이 오면 바람을 몰고 와야 하는데 바람은 몰고 오지 않고 습기만 몰고 온 모양이다..
처음 능선 길은 시멘트 포장길과 비포장 길을 번갈아 가면서 약 1 시간 가까이 진행한다.
길은 능선 마루금을 지나지만 양쪽 아래는 고추밭, 참깨 밭, 인삼밭이 가득하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가까이 오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는 숲을 지나고 우측으로는 임도로 내려간다.
좌측은 숲을 지나 밤나무 밭을 지나 엄청나게 우거진 잡풀을 헤치며 갈 수 있지만 이 길이 정상적인 길은 아닌 것 같다.
우측은 임도로 내려가다가 공터가 있는 곳에 오면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가야 한다.
차라리 이 길이 더 맞지 않을까. 이후 재를 지나 능선마루에 올라서면 편안한 길을 갈 수 있다.
이번 구간에 벌목 지역이 두 곳 정도가 나오는데 이곳은 아직 큰 나무가 자라기 전인 탓인지 조그만 잡목이 무척 많아서 산행하기에 너무
불편하다.
잡목 숲을 지날 때는 온몸을 가시에 찔리는 공포 속에 지나야 한다.
그래도 긴팔이이라도 입었으니 다행이지 일부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산행을 나섰으니 팔과 다리에 긁힌 영광의 상처가 아주 심하게 남
아 있다.
만덕산[762m]
워낙 땀을 많이 흘려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들어갔다가 금방 나온 것처럼 옷이 흠뻑 젖도록 힘든 산행을 하면서 진행하는데 만덕산
4,0km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 표지판은 엉터리 같아 믿을 것이 못된다.
이후 나타나는 표지판의 거리는 전부 엉터리로 세워져 있다.
왼쪽 편으로 바위산이 보인다.
“저 산이 만덕산이야. 이제 다 왔네. 오늘 만덕산만 지나면 끝이야 ” 한다.
나중에 산행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오늘 산행의 중심에 서 있는 산은 만덕산이다.
산 자체도 아주 멋있고 바위와 육산이 어우어진 그런 멋진 산이었다.
비록 높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 부근에서는 우뚝 서 있는 그런 산이다.
경치도 좋고 주위의 아름다운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산이다.
전주의 모악산과 그 앞뜰도 보이고 마이산을 비롯한 그 넘어 덕유산 능선까지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산이며 정확하게 장소를 찍지
못해서 그렇지 호남정맥의 시발점인 영취산까지도 보이는 그런 산이다.
만덕산 정상은 호남정맥 길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어 정상을 가려면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만덕산 갈림길에서 점심을 먹는 사이에 오늘도 부지런한 창공이 갔다가 되돌아온다.
우리가 식사를 하기 위해서 자리를 펴기도 전에 되돌아 왔으니 거리가 짧은 것인지 발걸음이 빠른 것인지 모르겠다.
제 5 쉼터를 지나 로프를 잡고 암릉으로 오를 수도 있고 또 우회 할 수도 있는데 우회하면 암릉에 올라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다.
만덕산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성수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일명 부처산이라도 불린다. “만가지가 넘는 덕을 가진 자는 부처뿐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호남정맥에서 가장 먼저 솟아 있는 산이며 암봉과 육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특
히 동남쪽 일대의 미륵사의 경관은 일품이며 높이 50m 의 만덕폭포와 그 주변의 풍광은 일품이다.
만덕산의 명칭은 망덕사에서 유래한다고 하며 고구려 때 보덕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는 웅치에서 싸움이 일어났으며 6,25 전쟁 때는 빨치산과 싸움이 심했던 곰티재가 있는 산이다.
웅치전적비
웅치에 도달하면 웅치전적비가 있고 웅치 전적비의 내력이 적힌 안내판이 있다.
여기서 40여분 정도 더 가면 웅치 옛길이 있는데 여기에도 웅치 전적비 내력이 적힌 안내판이 또 있다.
그 안의 내용을 읽어보면 비슷한 내용이다.
웅치 옛길이 원래의 고개인데 후대에 길이 새로 생기면서 40분 이상 거리에 웅치전적비를 세운 모양이다.
옛 웅치에는 서낭당이 있어서 돌무더기가 있는지 아니면 예전의 격전지여서 돌무더기가 있는지는 모르나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웅치전적비의 내용을 옮겨보면
임진왜란 때 우리 조상들이 왜적에 맞서 전투를 벌인 현장이다.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려 하였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자 육로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왜적은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 군대를 집경시키고 선조 25년 [1592년] 7월 8, 9일에 웅치로 쳐들어 왔으나 김제군수 정담, 나주 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 등이 왜적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한다.
왜군은 우리 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우리 병사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고 푯말을 세웠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의 혼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이형규
만덕산을 내려가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경상도 사람 목소리인데 반갑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다.
내려가서 보니 우리와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를 하였던 부산의 이형규가 떠들고 있다.
앞에 내려간 사람들이 원주에서 왔다니까 아마 꼬치꼬치 물어 본 모양이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서서 기다리다 먼저 내려간 이관우 대장이 나타나니까 반가워서 소리를 지른 모양이다.
여기서 같이 산행을 하였던 나를 비롯하여 표순철, 권명호도 있으니 한꺼번에 네 사람이 만났으니 반갑지 않을까.
낙동정맥 종주할 때 만난 적이 있다.
운주산을 지날 때 우리는 부산에서 올라오고 이형규는 태백에서 내려오면서 운주산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때 산행 할 생각은 안하고 가지고 온 양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별을 한 적이 있다.
산군은 산에 가면 어디를 가든 만나기는 만나는 모양이다.
옷에 적힌 이름이 구정맥산악회다.
아마 부산서 구정맥 종주를 하는 팀인 모양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이 호남정맥만 남아 있고 곧 영춘지맥을 종주하기 위해서 제천을 지나
갈 때 한번 들르겠다고 한다.
나하고 산행을 같이 시작하였는데도 우리는 아직 갈 정맥이 많이 있는데 벌써 다 끝냈다고 한다.
또 기맥까지 다 종주를 하겠다는 욕심인 모양인데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편으로는 큰 병 걸렸구먼 하는 생각도 들고 ...
나는 1대간 9정맥 만 끝나면 종주 산행은 그만 두려고 한다.
이것으로 만족한다.
대신 지금까지 종주하면서 아름답고 또 다시 가고 싶었던 구간을 한번 더 가고 싶을 뿐이다.
물론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간다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김정호 선생이 그렸던 대동여지도를 어떻게 그렸을까
하고 많은 고민도 하고 또 많이 살펴도 보았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도 없이 무작정 걷는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
그리고 산에는 수많은 표지기가 달려 있다.
그것 때문에 산행하기가 훨씬 수월 했을 것이고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표지기 없이 지도 한 장만 들고 산행을 한다면 지금 산행하는 시간보다 서너배는 더 힘들고 그만큼 시간도 많이 소비될 것이다.
너무 지루한 산길
이번 종주 구간은 지루한 산행이었다.
그다지 볼 것도 없는 산행이며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은 그런 코스였다.
슬치에서 모래재까지 중간에 내려설 수 있는 길도 없다.
모래재도 그냥 내려서지 않는다면 오룡재까지 바로 더 가야한다.
무척 긴 산행 길이다. 게다가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겨울이라면 그래도 대충 조망이라도 있겠지만 여름이라 숲이 우거져 조망은 볼 수도 없다.
차라리 처음 시작할 때 능선을 따라 있는 밭을 구경하면서 가는 것이 훨씬 더 볼거리가 많다.
어둠 속에서도 농작물을 보면서 걸을 수 있었으니까. 이후 숲 속 길은 그냥 재미없이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그것도 푹푹 찌는 무더위와 함께 .... 만
덕산 구간은 산행하는 맛이 나는데 웅치를 지나면서 모래재까지는 또 다시 지루한 산행 길이다.
그래서인지 모래재 가까이 갔을 때 폭우가 쏟아진다.
비가 퍼붓는 것이 5분 정도 지났을 때 신에는 물이 한가득 질퍼덕질퍼덕 한다.
무슨 신이 물이 잔뜩 들어 왔어도 물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않는다.
비가 올 때면 신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말라고 군화 같은 등산화를 신고 다녀서 많은 덕을 보았는데 이번처럼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등산
화 안으로 물이 들어오면 나갈 줄을 모르니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군화같은 등산화도 필요 없는 모양이다.
물속에 발이 떠 있는 것처럼 신 안에서 발이 따로 놀고 있어 걷는 것이 힘들다.
2년간의 호남정맥 종주가 끝났다.
2006년 8월 20일 광양 외망마을에서 시작한 호남정맥 종주가 꼭 2년 만에 끝이 났다.
명절이 있어 한번 쉰 것을 제외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달에 한번 쉬지 않고 달려 온 길이다.
호남정맥은 산행하는 시간보다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이것이 더 힘들었다.
이제 남은 금남호남 구간은 3시간 30분 거리니까 산행하는 시간보다 짧아졌으니 한층 여유가 있을 것이다.
호남정맥은 낙동이나 낙남에 비해서 그래도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정맥은 금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지만 이 호남의 산줄기도 무척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는 처음 시작한 산군들이 지금까지 거의 같이 동행하여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만약 시간이 있어 한 달에 두 번 하였으면 벌써 끝났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
2006년 8월 20일 그때도 오늘처럼 후덥지근하고 비가 줄줄 내렸다.
오늘과 아주 똑같은 날씨였다.
오늘 날씨 때문에 고생을 하고 보니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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