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국을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하루는 아직 약국 문을 열기도 전에 할아버지 한분이 오셔서 소리를 버럭 버럭 질렀다.
이 약국에서 약을 먹고 우리 할망구가 죽었으니 어떻게 해 내라고 약을 집어 던지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죽었다는 말에 노인이 그렇게 난리를 쳐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한참을 그러도록 놓아 두었더니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그 노인은 제 풀에 지쳐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자초지종을 물어 보았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이틀전 약국 문을 거의 닫았는데 샷다 문을 누가 두드렸다.
다시 올리고 나가보니 할머니 한분이 코를 훌쩍거리며 " 콧물이 나서 잠을 못 자겠으니 콧물약을 달라고 해서 준 그 할머니의
할아버지인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 약 자체가 잘못되지 않는 이상 그 약을 먹고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인네라 알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재수 없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혹시 이 약 때문에 죽을 수 있는가 확인해 보려고 전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 노인은 바깥으로 나갔다.
갔다가 오겠지 했는데 노인이 돌아 오지 않아 궁금해 했었는데 서너 시간이 지나서 경찰서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뭔가 잘못 됐구나 싶어 즉시 경찰서로 달려 갔다.
노인은 경찰을 붙들고 " 이 약에 죽는 약이 들었는지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 알아 봐 달라" 고 통 사정을 하고 있었다.
팔십이 넘은 노인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어떻게 알았는지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경찰이 이 약에 " 죽는 약이 있느냐 ' 고 물었다.
나는 단호히 ' 누가 죽는 약을 넣었겠느냐 " 고 반문 했다.
한참동안 조사를 하던 경찰이 바깥으로 잠깐 나간 사이 노인을 붙들고
'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튼 집에나 가 봅시다. 모든 것은 내가 변상해 드릴테니까요 ' 했더니 노인은 즉시 그러라고 했다.
경찰에 양해를 구하고 노인의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노인은 이틀동안 한약방에 다니느라 돈도 많이 들고 전국에 있는 자식들이 전부 왔다가 가고 무척 고생했다고 투덜거렸다.
가만히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 보니 죽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집앞에 도착하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대들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정말 죽었으면 어쩌나 하면서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 섰더니 누워 있던 안 노인이 부시시 일어나면서
" 글쎄 빨리 나으라고 세 봉을 한꺼번에 먹었더니 이렇게 기운이 없네요 " 하는 것이 아닌가.
바깥 노인은 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 보면서
" 약을 그렇게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 하면서 안 노인을 나무랐다.
방 어느 곳을 둘러 보아도 한약 봉지는 찾을 수 없었고 자식들이 왔다가 갔다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바깥 노인네 보고 " 내가 이렇게 찾아 올 줄을 계산에 넣지 않았나 보지요. 또 내가 오더라도 죽은 척하고 누워 어야 된다고 서로 약속을 안 했나 보지요 " 하고 이제는 내가 큰소리를 쳤다.
전세는 완전히 역전 된 것이다.
장시간 나무람 속에서도 두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것이 측은하게 보여 영양제 2 통을 각가 하나씩 드시라고 가져다 드렸다.
" 이것도 한꺼번에 다 드시죠 . 머리카락 홀랑 다 빠질테니까. "
두 노인은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글 > 약국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국내의 핀꽃들 (0) 2012.03.24 추천서 [ 충북 여약사회장님 귀하] (0) 2011.08.31 당뇨 환자는 요구르트를 많이 먹으면 안될 것 같아. (0) 2010.07.16 의약품의 슈퍼판매 (0) 2009.11.13 도시 사람들이 시골 와서 가장 많이 묻는 말 (0) 200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