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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거리는 온갖 휘황찬란한 불빛에 환하게 밝아질것이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길 가운데 등장할 것이고. 징글벨 소리가 한층 높아가는 것과 같이 광화문 지하도에서 구세군의 종소리가 높아 갈 것이다.
이럴 시간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2 학년 겨울이라 생각한다.
그 날은 평상시와 달리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려는 듯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렸다.
새벽 일찍 나와서 신문을 돌리고 있었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이라 신문 한 부를 배달하기 위해서 200m 이상을 뛰어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신문을 돌리는 우리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시간이 된다.
시골집들은 대지는 넓고 가옥은 담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어 신문이 비에 젛지 않게 가옥 안에까지 던져 넣어야 하는데 비가 온다던가. 눈이 오면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날도 신문을 접을 수 있는데까지 최대한 접어서 처마 밑 봉당까지 가도록 던져 넣었다.
날은 어슴프레하게 밝아 올 시간이었다.
그 집은 신문대금도 아주 철저하게 잘 주는 집이라 신문을 넣는데 최대한 성의를 다 하는 집이었다.
신문을 넣고 다른 집으로 뛰어 가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지금까지 신문을 돌리고 있을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는 대부분 전날 신문이 제대로 들어 오지 않았다거나, 신문이 젛었다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기 때문에 겁이 난 표정으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가슴을 조아리며 부르는 소리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 아유! 학생 참 수고 많아요, 우리도 학생만한 아이가 있는데 매일같이 늦잠만 자고 깨워야 일어나고 나는 학생이 꼭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해요. 학생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어요. 아주 춥지요"
하면서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종이에 싼 주머니를 건네 주셨다.
그것이 무엇일까 사뭇 궁금했다.
대문을 나오자마자 그것을 뜯었다.
양말 한 켤레
크리스마스 날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했던 선물을 처음 받은 것이다.
부모님에게서도, 친척 중에서도, 친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선물,
난생 처음 받아 본 선물이 무척 기뻤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나는 신문 배달하는 소년을 생각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신문배달 소년에게 양말 한 켤레라도 선물해야지 하고 생각을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당시 신문 대금이 280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신문대의 1/10 수준이다.
내가 2 년동안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낮이면 수금을 하면서 보낸 기간동안 있었던 일이다.
잔돈 20원을 거슬러 주기 위해 잔돈이 주머니에 항상 있었다.
어느해인지 모르나 신문 돌리는 그 당시 신문대금 300원을 받아 쥐고 영수증과 거스름돈 20원을 드렸더니 " 거스름 돈 필요없다.
너 노트나 사 써라 " 하면서 다시 건네 주던 그 아저씨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신문대금을 받으러 오면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너 노트나 사 써라 하려고 생각했지만 어찌 된 판인지 신문배달 소년은 내가 있는 동안에는 신문 대금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있으리라 믿는다.
그때는 그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리라.
고생이 많다고 ..
1984 년 12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