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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인물과사상사, 류상태 저]글/책을 읽고 난 후 2010. 4. 1. 14:13
기독교는 세계 3 대 종교이지만 독선적 교리와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때문에 인류 역사에 수많은 갈등과 상처를 남겼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콘그탄티누스가 종교를 얼마나 많이 이용하고, 또 그 위에 군림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카톨릭에서 볼 수 있는 성호, "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 하는 것도 콘스탄티누스에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정치하는 사람이 종교의 내용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 세상속의 교회, 김두식 저" 를 읽다보면 콘스탄티누스가 교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할 줄 몰라요. 오직 자신들의 신념만 옳다고 주장하죠. 이렇게 되면 사회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기
독교 조직이 커 갈 수록 로마는 일치와 화합을 이루지 못한 채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와 어머니와 대화 중에서 98p]
예수의 제자가 열둘이라는 것도 실제로 예수의 제자가 열둘이라 그렇게 기록했다기보다는 교회가 예수의 제자를 열두명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일쎄. 신의 뜻이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 완성되기를 바라는거지. 그런 그들이 희망이 반영된 결과가 바로 복음서라는 문서에 열두명의 제자로 나타나게 될 것일거야 [콘스탄티누스와 절친한 친구인 크라수스와 의 대화 중. 146p ]
서기 294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50여년이 넘게 계속되었던 군사 구테타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고 드넓은 제국을 안정되게 통치하기 위해 사두 정치 체제를 제안하였다.
두 명의 황제가 로마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맡고, 그 아래 부황제를 두어 황제를 보필하며 다음 황제 자리를 승계하는 우선권을 갖게 한 것이다.
하지만 케이사르는 단순히 제위 계승자만이 아니라 실제로 제국의 한 부분을 통치 했다는 점에서 황태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까 로마 제국은 4 개의 자치권으로 나누어진 연방국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물론 제국의 수석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맡았다.
사두정치 체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당대에 빛을 발했다.
동방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서방의 황제 막시미아누스, 동방의 케이사르 갈레리우스와, 서방의 카이사르인 콘스탄티누스는 서로에 대해 깊이 신뢰를 하고 드넓은 제국을 효울적으로 분담 통치하여제국에 안정을 가져 왔다.
네명의 황제가 버티고 있는 제국에서 감히 구테타를 모의 할 군인 세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명의 황제를 제거한다해도 나머지 세명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기 305년에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은퇴하고 306년 서방의 황제 자리를 승계했던 콘스탄티누스 클로누스가 갑자기 죽으면서 사두정치체제는 무너지게 되었다.
클로누스 휘하의 장병들은 통치권의 공백으로 인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황제로 옹립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은 막시미아누스 의 아들 막센티우스는 제국의 중심이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수도 로마와 이탈리아 주민들의 호응을 등에 업고 황제를 자칭했다.
이런 와중에 갈등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선임황제 막시미아누스까지 다시 황제로 나서면서 제국은 동시에 여섯명의 황제가 난립하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제국의 황제들은 시베루스를 필두로 막시미아누스, 막센티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차례로 사라짐으로써 동서를 양분한 두 황제만 남게 되었다.
서방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병으로 사망한 갈레리우스의 자리를 승계한 동방의 황제 리키니우스였다.
두 사람은 한 때 연대를 약속하면 정략결혼까지 했지만 서기 315년 초가을 결국 최종 패권을 가리는 전투를 벌인다.
도나우강과 가까운 판노니아 지방의 카발라에서 2만 병력을 이끌고 선제 공격한 콘스탄티누스는 3만 5천의ㅡ 리키니우스군과 격전을 벌인다.
수에서는 열세이지만 백전노장으로 전장에서 자라 전장에서 모든 거을 이룬 콘스타티누스의 군사적 재능은 리키니우스를 압도했다.
리키니우스군은 병력의 거의 절반을 잃고 트라키아까지 후퇴했다.
그곳에서 다시 격전을 벌였지만 리키니우스는 이번에도 콘스탄티누스의 전술과 그의 정예 병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퇴하고 말았다.
[250 ~252 p 그 당시 역사적인 기록]
콘스탄티누스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서기 310년에 장인인 선임 황제 막시미아누스를 죽였고, 312 년에 아내의 오빠인 마겐티우스를 죽였다.
그리고 325년 이복누이의 남편인 리키니우스마저 사형에 처했다. [281p ]
경전과 전통, 교리, 그런것들이지, 기독교인들을 자신들의 경전에 신의 계시가 오류없이 담겨 있다고 믿고 있네.
그래서 경전에 기록된 내용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거나 비판하는 일은 엄두도 못낸다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중죄로 간주되거든 .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손으로 접할 수 있는 경전이란 것들은 대부분 교회의 입맛에 맞게 걸러진 것들일쎄.
:경전이 수정되었단 말인가"
상당부분 수정되기도 하였지만 처음부터 교회의 입김이 작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걸쎄.
기독교와 관련된 책들중에서 교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책들은 위서로 간주되어 계속 폐기되어 왔네.
경전으로 인정받는 책에서도 교회 조직에 이롭지 않는 내용들은 끊임없이 수정되거나 교회의 이득이 되는 내용이 첨가 되었지.
그어니까 우리가 복음서라는 책에는 예수가 한 말이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교회가 예수의 입을 빌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집어 넣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고 보아야할걸세
그가 십자가를 기꺼이 지지 않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타협했다고 하면 예수의 위대한 가르침과 삶은 역사 속에 파묻히고 말앗을 걸세.
그러나 그는 타협 대신 죽음을 택했네.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주어야 하는지를 삶 전체로 보여주고 죽은거지 [273p]
에수의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중심이요, 완성이다.
교리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라면 말이야.
그는 사람이 이루어야할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말과 삶 전체로 십자가에서 뚜렷이 보여 주었으니까.
그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완성된 하나의 모범으로서 말일세. [274p ]
내가 말하는 십자가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그의 타협하지 않는 위대한 정신이 후세에 교훈이 되어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예수와 같은 삶을 살도록 표본이 된다는 점에 있네.
그런데 그 정통이라는 자들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말하고 있지.
예수를 이상한 마술사로 만들고 있어.
그러면 예수가 사흘만에 살아났다는 것도 거짓말, 아니 사실이라고 말하기 힘들겠군.
거짓말일수도 진실일수도 있지.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276p]
[269p, 크라수스와 콘스탄티누스와 의 대화 중에서]
에수를 믿는 사람들건, 부처를 믿는 사람들이건, 정치를 하는 사람이건 한번은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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