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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간[ 강정골재 - 마이산- 성수산- 신광치]우리의 아름다운 강산/금남호남정맥[완료] 2008. 9. 26. 13:04
2008. 09. 21 금남호남 2 구간. 맑음
03 : 00 제천 출발
06 ; 45 강정골재 출발
전봇대에 표지기가 달려 있어,,,, 전봇대에는 꽃 바구니가 있고 그 아래 달린 표지기는 늘어진 꽃에 파묻혀
07 : 02 묘
아침 식사
07 : 20 식후 출발
리기다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아마 가꾸고 있는 듯. 나무 아래에는 잡목 제거를 전부 하여 놓았으며 이 소나무는 산행하면
서 자주 보임. 이 지역의 특산물인가...
07 ; 22 임도를 가로질러
07 : 33 묘지 9 기
대장은 위에, 그 아래 8기의 묘지가 나란히...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07 : 42 임도 [왼쪽 산길로]
올라서면 잡목지대
08 : 01 암봉[ 535 ] [올랐으면 되돌아 나와야 함]
앞에 보이는 마이산이 구름 속에 들락거리고, 부귀산 방향의 암봉은 구름 속에 희미하고, 멀리 있는 부귀산은 보이지도
않네
08 : 15 이정표 [은수사. 탑사 1,2km, 고금당전망대 1,9km]
벌거벗은 묘 [최씨 집안묘인가]
이후 오르는 길은 폐타이어로 만들었는데 걷기가 불편함
08 ; 21 제 2 쉼터[540m] 나무의자 3개. 앞에는 저수지가 보이고
08 ; 45 삼거리 갈림길
암마이산은 입산금지 지역이라 탑사로 향함. 암마이산 오르는 길은 등산로가 폐쇄 되어 있음.
08 : 58 탑사
은수사를 보면서 오른쪽 길로 오르면 커다란 배나무가 있고, 그 뒤에 장독대가 있으며 그 앞에 “섬진강 발원지” 라고 적
힌 일반 비석 크기의 비석을 만나는데 그 방향으로 보면 출입금지 푯말이 달린 로프가 있는데 이것을 넘어가면 된다.
09 : 10 사거리 갈림길
왼쪽으로 오르면 묘지 가는 길이고 직진해야 됨
09 : 18 암바위봉 갈림길[묘지 1기]
좌측 능선에서 오는 길은 암마이산을 거쳐 내려오는 길인데 여기서 만남
09 : 36 삼거리 갈림길 - 왼쪽으로
09 ; 41 신필균묘[2기]
09 : 43 반월재.[2차선 아스팔트] 30번 도로 우측으로 30m 정도 이동하면 오름길
10 ; 19 삼거리 갈림길 [ 왼쪽으로]
10 : 25 가름내재[1차선 아스팔트]
방호벽에는 누가 쓴 것인지 “호남정맥” 글씨가 삐뚤빼뚤
이후 벌목지대를 힘들게 지나
10 : 45 425봉 [길 주의]
여기서 직각 왼쪽으로 꺾어 내려 갈 것..
10 ; 54 사거리 안부
11 : 06 말고개재 [비포장 경운기 길]
11 : 12 강씨묘
마이산 조망은 이곳이 마지막
11 : 25 점심식사
710봉 헬기장 오르기 전 평탄한 곳에서 점심식사 30분
12 : 04 710봉 헬기장. 삼각점[ 임실 420, 2002 재설]
12 ; 11 770봉
12 : 20 775봉
12 : 45 910봉
12 : 58 산죽지대
13 ; 00 1008봉
13 : 19 사거리 안부
13 ; 37 헬기장
13 ; 45 성수산 [전북 산사랑회 정상 표지판]
이후 잡목지대. 키보다 더 큰 잡풀과 싸리나무가 산행을 힘들게 함
잡목지대에는 누가 더덕을 심어 놓았는지 곳곳에 많은 더덕이 보이는데 너무 많은 탓인지 향은 없고
14 ; 08 헬기장
잡목지대를 지나
14 : 50 910봉
15 : 03 신광치
왼쪽으로 내려가면 중리 마을
15 : 35 중리마을
다리 아래에서 시원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정말 개운하다.
신광치에서 내려올 때 30분 조금 더 걸렸지만 다음에 오를 때 40분 정도 소요되지 않을까.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버스가 강정골재에 도착하였을 때는 주변이 안개로 뒤덮여 있다.
강정골재는 활인동치라고도 불리는 모양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제 비가 무척 많이 왔는데 이곳은 비가 온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안개 덕분에 마이산 지날 때까지 주변 경치 구경하기는 힘들 것 같았는데 정말 마이산을 지날 때까지 주변은 전혀 보이
지 않았고 또 오늘 하루 무척 덥겠구나 생각 했는데 진짜 산행이 힘들 정도로 무지 더웠다.
강정골재의 방호벽 위 전봇대에는 나팔꽃 비슷한 모양의 꽃이 잔뜩 피어 있는 꽃 바구니가 있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표지기가
달려 있다.
방호벽이 별로 높지는 않은 것 같은데 방호벽을 오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그 힘에 부치는 것도 잠시... 수많은 잡목과 잡풀이 앞을 가로 막는다.
그 많은 잡풀이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다가 지나는 산객들에게 사정없이 뿌려 댄다.
시작도 하지 않아서 옷은 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흠뻑 젖는다.
그래서 모두들 옷이 젖을까 걱정이 되어 뒤로 빠지고 앞으로 나서지를 않고 서로 눈치 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언제 가더라도 가야 하는 길, 그 아침 이슬 좀 맞으면 어떠리.
이번 구간은 중간 중간 벌목 해 놓은 곳이 무척 많은데 그 지역에 잡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 있어서 산행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
다.
처음 시작부터 끝이 날 때까지 계속된다.
아침 식사를 오늘은 산에서 하기로 했기에 산행 시작하면서 첫 번째 만나는 묘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추석 명절이 지난 탓인지 묘지에 잔디는 없지만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여 놓아 쉬어 가기에는 좋아 보이는데 이 산소의 후손들이
술꾼들인지 주변에는 술병들이 아주 어지럽게 널려 있고 어떤 것은 조상 먹으라는 뜻인지 산소 앞에 술병을 거꾸로 박아 놓았
다.
535봉의 암봉에 올랐을 때 안개 속에서 마이산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하는데 그 순간이 몇 초 사이로 진
행이 되기 때문에 사진 찍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힘들다.
봄에는 두 봉우리가 쌍돛대 같다고 하여 돛대봉이라 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모습이 그와 똑같다.
마이산
이번 구간은 마이산과 성수산 구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이 맑았으면 처음부터 마이산을 바라보며 진행을 하였겠지만 암바위봉 오르는 길 바로 앞에 올 때까지 주변은 잘 보이지 않
았다.
탑사를 내려가서야 멀리는 몰라도 가까이나마 볼 수 있게 됨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마이산을 지난 후 뒤돌아 볼 때마다 마이산의 신기한 보습을 보여 주는데 그때마다 신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은수사, 탑사 방향이 있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부터 마이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이정표 뒤에는 벌거벗은 묘지가 하나 있는데 어찌 풀 한포기 없는지 궁금하다.
묘 앞에 후손들이 심었겠지만 잔디 몇 개가 자라고 있지만 번식할 것 같지는 않다.
제 2 쉼터를 지나 내려가면 암마이봉 가는 길과 은수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암마이산은 입산 금지로 되어 있어 포기하고 탑사
방향으로 간다.
누군가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입산금지라고 해서 안 가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포기한다면서 웃는다.
그러나 이곳은 암마이봉을 넘어 간다 해도 넘어가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위치로 내려가는데 양심이 있으면 못 넘어 가
리라.
예전에는 화장실 앞에 매표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매표소는 보이지 않는다.
진안읍내 어느 방면에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은 이름이 철에 따라서 네 가지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 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
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다.
마이산은 1979. 10, 16 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으며 공원 면적은 17,221 km2 로 큰 편은 아니며 구역으로는 진안읍 5 개리,마령면 4개리에 걸쳐 있다.
마이산은 산 자체가 국가 지정 명승 12호로 지정되었고 673m 의 암마이봉과 667m 의 숫 마이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하였고, 조선시대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 년 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홍수시 모래, 자갈 등이 밀려 호수를 메우고 물의 압력에 의해 생긴
수성암이며 약 6~ 7천 만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 되어 마이산을 이루었다.
마이산 도립공원에는 국가지정 명승 1점[마이산 12 호], 천연기념물 2점[청실배나무 -386호, 줄사철나무 군락 380호], 보물
1 점 [금당사 괘불탱화 -1266호]. 지방 기념물[마이산 석탑 -35호], 지방유형문화재 2점[ 금당사 목불좌상 -18호, 강저이 5층
석탑 -73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 산을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 중턱 급사면에 군데군데 폭격을 맞았거나, 파 먹은 것처럼 움푹 패인 많은 작은 굴을 볼 수 있
는데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지만 타포니 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
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잘 발달 된 곳이기도 하다.
이 산의 타포니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형성 된 것이 아니고 신생대 제 4기의 빙하기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
마이산의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 되니 밤에 떠납시다" 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 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 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등
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으로 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 자리에선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앉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 쪽 북에 보면 아닌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은수사 앞에 청실배나무가 있으며 그 뒤로 항아리가 잔뜩 있는 장독대 앞에 섬진강 발원지 비석이 있는데 그 우측으로 오르면
된다.
우측으로 올라 고개를 넘어가면 마이산은 벗어나게 되지만 이 마이산은 말고개재를 지나 강씨묘 앞에 이를 때까지 마이산은
커다란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성수산 가는 길은 너무 지루하고 힘든 길
말고개에서 신광치까지는 너무 지루하고 힘든 산행길이다.
말고개[옥산동고개]를 지나면 산도 높아지지만 오르내림은 심한 것 같지는 않은데 710봉, 770봉, 775봉, 820봉, 910봉, 10
08봉, 성수산, 910봉 등이 있는데 최소한 8번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번에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성수산이겠지 하면 아니고, 아니고 하는 것은 수없이 하여 맥이 빠지고 성수산을 올랐으면 이제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부지런히 엄청난 양의 잡풀 속을 뚫고 갔지만 또 다시 앞에 커다랗게 막고 있는 910봉이 기운을
빠지게 한다.
한참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데 무엇이 뒤에서 당기는 기분이 들어간다.
벨트에 있어야 할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쿠! 이것 큰일났구나 싶어 되돌아가면서 카메라를 찾기 시작한다.
5m 정도 갔을 때 카메라 끈이 잡풀을 한 주먹 쥐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엄청난 잡풀 때문에 카메라 잃어버릴 뻔 했다.
낙남 할 때도 한번 카메라 찾느라고 고생한 적이 있는 이번에 또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 남은 길도 얼마 남지 않아
성수산을 내려 갈 때 엄청난 잡풀에 진이 빠진다.
성수산과 910봉 사이에 헬기장이 하나 있는데 이것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보도 블록을 제외하고 틈새마다 잡풀이 자
라 있다.
그래도 힘들게 잡풀 사이를 진행한 것에 비하면 이곳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잠시 쉬면서 왼쪽 방향을 보니 백운산
이 보인다.
백운산 위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저 산위 구름을 넘어가면 이제 호남정맥 종주가 끝이 난다.
지난 2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한 달에 한번 쉬지 않고 달려 왔던 그 머나먼 길이 아니었던가.
이제 종점이 앞에 보이니 가슴이 설렌다.
기운만 있으면 쉬지 않고 달려가 오늘이라도 그냥 마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백두대간 선상의 백운산에서 영취산으로 갈 때 일이다.
그 당시 나는 산에 대해서는 아주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길을 잃을까 앞에 가는 사람 꽁무니만 죽으라고 따라 가던 그 시절이었는데 그 때 산행 안내를 맡았던 빨치산이 저 앞에 보이
는 영취산에서 왼쪽 저 높은 산으로 가는 산맥이 호남정맥입니다. 라고 그 산을 안내 해 주던 일이 생각난다.
그 당시는 이왕 시작한 것 백두대간만 끝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밖에 없었으니까.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많은 산을 돌아 다녔고 이제 그 아름답고 기나긴 호남정맥의 막바지
에 와 있다.
신광치
그러나 910봉을 넘어 신광치를 내려갔을 때 만족감도 잠시 중리까지 내려가는 비포장길이 또 다시 지치게 만든다.
다음번에 트럭이라도 빌려 올라가면 안되겠느냐 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데 포장이 되어 있는 길이라면 몰라도 이와 같은
비포장길에서 차가 만약 덜컹하여 밑으로 사람이 떨어져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려가는 길가에 오미자 재배단지가 있는데 처음 오미자 재배하는 모습을 본다.
중리 마을 옆의 계곡물에서 훌렁 벗고 씻는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민망스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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