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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한겨레, 2013년 3 월 30일]글/생활 속의 신앙 2013. 3. 31. 11:55
예수가 말했다
"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하라도 본을 보여 준 것이다 [ 요한복음 13 장 11 ~ 12 ]
예수는 열두 제자의 발을 직접 닦은 뒤 최후의 만찬을 나눈 후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의 죄를 대속했다.
성경에 따라 교황들은 예수를 그대로 따랐다.
해 마다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 성목요일" 마다 카톨릭을 따르른 12 명을 골라 발을 씻어 주었다.
즉위 이후 첫 " 성목요일 " 을 맞은 교황 프란치스코도 세족식을 행했다.
이 날 교황은 이탈리아 근교의 청소년 교정시설인 카살델마르모 소년원을 찾아 갔다.
이 곳에 수용된 50여명 대부분은 북아프리카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건너 온 이민자의 자녀들이다.
그들 가운데 12 명의 발 아래 교황이 허리를 굽혔다.
소년원생들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려고 교황은 언론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교황청이 쵤영한 동영상을 보면 교황은 검은 발, 하얀 발, 문신을 새긴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물을 부어 씻고 닦고 입을 맞추었다.
아이의 발을 씻고 난 뒤에는 일일이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대부분의 소년·소녀들이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고 교황청 대변인은 전했다.
12명 가운데는 여자 소년원생 2명과 무슬림 2명도 포함돼 있었다.
로마의 동·서 분열 이후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한 그리스 정교회 신도 1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이 여성이나 무슬림에게 세족식을 한 것은 처음이다.
범죄를 저질러 수용된 소년원생들의 발을 교황이 씻어준 것도 물론 처음이다.
과거 265명의 교황들은 주로 도심 대성당에서 남성의 발만 씻었고, 그 대부분은 사제였다.
예수의 열두 제자가 남자라는 이유였다.
세족식 뒤 열린 미사에서 제266대 교황이자,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주님은 가장 높은 분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나는 당신들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주님이 나를 가르쳤습니다.”
약자·빈자를 직접 찾아가는 세족식이 그에겐 낯설지 않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 그는 교도소, 병원, 양로원 등을 찾아 수감자, 병자, 노인의 발을 씻어주었다.
세족식 직전,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성목요일 미사를 집전했다.
사제와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분발을 촉구했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행사나 의식이 아니라 종교적 열정입니다. 사제들은 고통받고 피흘리며 빛을 찾아 헤매는 자들이 있는, 악마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있는 바깥으로, 변방으로 나가야 합니다.”
교황의 이름을 받기 전,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부터 그는 가톨릭 교회 및 사제들이 출세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이날 미사에서 교황은 즉위 이후 처음으로 ‘복자’ (‘성인’ 품위 전단계) 품위도 시복했다.
품위를 받은 63명은 나치·파시스트·공산주의 독재 정권 등에 희생당한 이들이었다.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행보는 지난 13일 즉위 때부터 시작됐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교황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과거 교황 대부분이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본땄지만, 그는 수도자의 이름을 가져왔다.
평생을 가난한 자, 병든 자들과 함께 하고 무소유를 실천하며 묵묵히 수도한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겠다는 뜻이었다.
즉위 강론에선 “‘수호자’의 소명은 어린이,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이 깃든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론 뒤엔 앞뒤와 지붕의 방탄유리를 걷어낸 전용차에서 사람들의 손을 직접 잡았고, 장애인을 만나서는 차에서 내려 입을 맞췄다.
모든 행사가 끝나자 전용차를 마다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추기경 시절에도 그는 버스 등을 이용해 출퇴근했다.
이후 교황은 바티칸의 카사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최대 105명의 사제가 공동 생활을 하는 기숙사다. 그가
묵는 201호엔 나무로 짠 침대와 작은 책상, 소형 냉장고 등을 갖춘 방 2개가 있다.
교황은 공동식당에서 사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게스트하우스의 성당에서 미사를 올린다.
‘사도들의 궁전’으로 불리는 장엄하고 호화스런 관저를 마다했지만, 관저 2층의 서재는 즐겨 찾고 있다.
교황 관저에 대해 그는 “300명이 살아도 문제 없겠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추기경 시절에도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스스로 식사를 준비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했는데 오늘이 부활절이다.
성직자도 그렇고 신자들도 그렇고, 진보와 보수로 갈려 있는 요즈음 한국 카톨릭 교회 사회에서 한번 쯤 새겨 보아야 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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