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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바티칸 공회의]한겨레, 2014 , 4, 8 29면에서]글/생활 속의 신앙 2014. 4. 8. 16:24
제 2 차 바티칸 공회의는 요한 23 세 교황 때의 일이다.
요한 23 세 는 교황에 선출 되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후보였다.
개성이 강했던 전임 교황이 만들어 낸 유력한 두 교황 후보의 각축전이 계속되자 카톨릭 지도부는 일종의 징검다리 교황으로 요한 23 세를 선출했다.
나이가 워낙 많아서 (1958년 교황에 즉위 했을 때 78세였다) 어차피 교황을 오래 맡기도 어려웠고 특별한 개성을 지닌 인물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황이 카톨릭 역사를 바로 뒤집어 놓는다.
요한 23 세는 1959 년 1 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다.
4 년의 준비를 거쳐 1962 년 개최된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4 개의 헌장과 9개의 교령, 3 개의 선언이라는 방대한 성과를 남겼다.
그 중 한가지는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라틴어로 봉헌되던 미사가 각 나로 언어로 봉헌 되기 시작했다.
개신교에 대한 " 열교 " 라는 멸시적 표현을 " 분리된 교회 " 로 고쳤고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도 적시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불의에 하느님 말씀으로 저항하는 예언자적 책임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변화가 남미의 해방신학 운동을 비롯, 간나하고 약한 인민과 함께하는 교회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물론 이다.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교리면에서 혁신은 " 교회 밖의 구원" 인정한 것이다.
기독교가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면 다른 종교를 믿거나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
이런 논리가 얼마나 많은 야만과 제국주의 수탈의 빌미가 되었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 익명의 그리스도 " 라는 표현으로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교회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해도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교회라는 감옥에서 풀려 난 것이다.
요한 23 세는 공의회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1963 년 6 월 선종한다.
보수 세력은 후임 바오로 6 세가 그 " 경악할 만한 상황" 을 종식시켜 주길 기대했지만 바오로 6 세는 공의회를 지속하여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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