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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바보들에게. 첫번째 이야기 [김수환 , 장혜민 엮음] 산호와 진주글/생활 속의 신앙 2011. 11. 29. 12:47
*.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
땅의 겸손함을 배워라.
땅은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을 만큼 모든 것 아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을 딛고 살지만 땅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뿐더러 땅에다 모든 더러운 것, 썩은 것을 다 버립니다.
땅의 이 겸손을 배우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겪은 모든 것. 병고, 고독, 절망까지 받아 들이세요.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 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강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 자기를 이기는 사람입니다.
부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 자기 운명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습니다.
곡식도 담고, 오물도 담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그릇이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여러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이 될 수 있을까요 ?
오물조차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
세상엔 옹기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쁘게 잘 사는 것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주어진 현실과 병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의 삶이 겸손하고 가난해야 합니다.
겸손과 인내는 다른 말로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 오래 사는 것 " 보다
" 기쁘게 사는 것" 이
더 소중한 생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는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나이를 먹고 늙으면서
머지않아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지경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이 참된 가치인지
그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원숙에 이르게 해 줍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고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만이 구원이요. 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젊었을 때보다 더 철이 드는 것입니다.
* 말
말을 많이 하면 필요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번 생각하고 열라
* 책
수입의 1 % 를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은 헤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 노점상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깍지마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 웃음
웃는 연습을 생활화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하고 젊은이를 어린애로 만든다.
*. 바보상자
텔레비젼과 많은 시간을 동거하지마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젼에 취하면 모든 것이 마비된 바보가 된다.
*. 성냄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 기도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하며 만생을 요약하게하는 묘약이다.
*. 이웃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 보아야한다.
*. 사랑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 오는데 칠십년이 걸렸다 "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기쁨이고
그 다음에 싫어하는 것은 " 좋은 유머 " 라 합니다.
유머도 사람을 기쁘게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 농담" 인데 이는 반반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농담은 사람이 기쁠수도 있지만
사람을 해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경솔한 언행으로
남을 비꼬고 야유함으로써 사람을 웃길 수 있으나
언제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이렇게 기쁨은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이 제일 좋하아는 것이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런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하고
즐거움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입니다.
참된 사랑은 사랑하겠다는 결심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가치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부유했습니다.
그것은 참 사랑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나눔의 삶입니다.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하여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
남에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입니다.
외적 인물이 잘나서 또 장점이나 돈, 지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 그 사람" 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쁨을 나눌 뿐 아니라
서러움, 번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것
잘못이나 단점까지 다 받아 들일 줄 아는 것
그의 마음의 어두움까지 받아 들이고
끝내는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래서 참 사랑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을만큼
함께 괴로워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무력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을만큼 무력합니다.
어떠한 고통도 죽음까지도 받아 들입니다.
이처럼 가장 무력하면서도 가장 강인한 것이기에
사랑은 온 세상을 분쟁과 갈등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구원의 첩경입니다.
겸손은 결코 외적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 앞에 공손된 자세를 취하거나
자기를 무조건 비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것입니다.
때문에 겸손은 땅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머리로만 따지려 들지 않고 삶 자체가 변화합니다.
그리스도처럼 겸손해지고 가난해져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낮은자가 되고
모든 욕심에서 죽고
자기 중심의 이익을 따지는 계산을 버리며
십자가의 고통이 드러나는 세상의 구석과
응답을 찾아 봉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 그리스도처럼 사람이 변했다 "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져 변화시킵니다.
외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내적으로는 더 심화되고
" 마음의 문" 이 열려서 인생을 더 깊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 만약 시련의 때이라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보다 더 성장시킬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자기 단점을 남이 이해애 주기를 기대하면서도
남의 단점을 이해보다 지적하고 비판하려 합니다.
받아 주고 용서 할 줄 모릅니다.
그릇을 깨도 자기가 깼을 때는 변명할 이유가 있는데
남이 깼을 때는 무조건 잘못한 것으로
마음의 판정부터 내립니다.
우리 안의 원죄의 뿌리입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닌 결심입니다.
용서하기보다는 용서 받아야 할 사람들
우리가 남을 참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근본 이유는
먼저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는데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의 은자 중에 " 눈물의 은사" 가 있는데
곧 내가 죄인임을 깊이 뉘우칠 줄 아는
통회의 정에서 우러나는 눈물이요.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죄의 용서를
진홍같이 붉은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데서 오는
감사의 눈물
하느님이 나같이 비천한 존재도 사랑한다는 바다와 같은
사랑과 자비를 깊이 체험한테서 오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 은사 " 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 눈물의 은사 " 를 체험한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나는 이렇게 깊이 운 사람의 마음은 정말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 마음으로 가난한 삶은 행복하다 ,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 '
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는 물론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회개입니다.
마음으로 울고 깊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맺힌 것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자만이
참으로 남을 용서해 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 온유한 이,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 안에 꼭 갇혀 있지 않고 자신들의 초라함을 하느님께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헐벗음, 궁핍과 예속, 허약성
그리고 질그릇처럼 부서지기 쉬운 생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은 착한 일을 하고
법보다는 자비심을 더 높이 평가하고
남에 대하여 아무런 적개심을 품지 않으며
오히려 남의 고통을 덜어 주고 마음의 상처를 어루 만져 주는 자들이므로
참된 행복의 소유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행위는 부드러운 마음씨와 인정에만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하느님의 자비심에 의존하여 있으며
그 자비심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아 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을 죄인으로 판단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판단 받지도 않으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므로
오직 선으로만 갚음을 받게 됩니다.
형제를 단죄하지 않으므로 단죄 받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용서를 거듭 체험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줍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깨어 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기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사랑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나므이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절대 조건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고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도 " 나" 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
또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때
그런 " 나" 를 참을 수 있겠습니까 ?
사랑은 모든 존재와 삶과 평화와 행복의
절대 조건입니다.
내일을 산다는 것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순짐함, 부드러움은 가장 생동하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 사람이 태어날때는 부드럽고 약하고
죽을때는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풀과 나무 모든 것이 싹틀때는 여리고 부드러우나 죽으면 메마르고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성질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가장 신선한 생명입니다
겸손에 대하여
겸손은 결코 외적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 앞에 공손한 자세를 취하거나
자기를 무조건 바하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참으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것입니다.
나희와 모든 이들을 위하여
1, 외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내적으로 더 심화되고 " 마음의 문" 이 열려서 인생을 더 깊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 만약 시련의 때라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보다 성장시킬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세요.
2. 세상은 시간적으로 새 날이 오고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 진실된 인간, 정의로운 인간. 사랑하는 인간 " 으로 달라질 때 비로서 새로워집니다.
3, 진실로 사랑해서 때리는 매는 누구를 내쫓는 매가 아니라 더 따뜻하게 끌어안는 매이어야 합니다.
때리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맞는 사람의 그것보다 더 큰 것일 때 사랑의 매가 될 수 있습니다.
때리는 것은 미움이 아니라 보다 더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의 역설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4, 언제나 나에게 큰 주제는 인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사회 전체가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5, 우리가 남을 참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먼저 우리가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하는 필요를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남을 용서할 줄 압니다.
6. 희망이란 내일을 향해서 바라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씨앗을 뿌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희망입니다.
7,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가치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부유했습니다.
그것은 참 사랑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나눔의 삶입니다.
8. 인간은 영육일체의 존재입니다.
육체와 영혼의 어느 한쪽이 깨끗하다고해서 순결하다고 볼수 없습니다.
영혼을 건드리지 않고 육신만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육체를 범했다면 그 영혼까지 침범한 것입니다.
반대로 육체가 깨끗하다고 해도 그 마음이 돌과 같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으면 순결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참된 순결은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9, 사랑이 없는 고통은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자기 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10. 고난 받은 사람은 선택된 사람입니다. 특별히 사명이 지워진 사람들 즉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동양에서는 " 천명 ' 이라 했고 그리스에서는 " 운명 ' 이라 했습니다. 공자는 나이 오십을 지천명이라 했으며
" 진인사 대천명 " 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천명을 거스릴 수 없는 절대자의 섭리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부르심, 즉 천명에 의한 선택은 현실에서는 고난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역사 창조나 발전의 원동력이
됩니다.
11. 용서는 피해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용서할 때 구원 되고 한도 용서함으로써 풀립니다.
구원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통회와
피해자의 용서를 통한 화해로써만 이룩됩니다.
통회와 용서만이 불안과 미움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해방 시킬 수 있습니다.
12. 화해란 누구든지 맺힌 것이 있으면 풀고
용서 받을 것이 있으면 겸손히 용서를 청하고
용서하여 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 주고
모든 사람과의 화목과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13, 고독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 주어진 고독의 밑바닥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부정적으로 받아 들이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삶을 돌이켜 보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깊이 보게 되는 기회로 본다면
고독의 시작은 참으로 소중한 것일 수 있습니다.
14, 영혼을 풍족케하고 만족케 하는 것은
풍부한 지식이 아니라 사물의 내용을 깊이 깨닫고 맛보는 것입니다.
15, 인생의 의미는 배운다기 보다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삶은 내가 임의로 선책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16, 자신을 불 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17 기도를 이해하려면 기도로써 무엇을 얻어내려는 마음을 버릴 때입니다.
한 시간이고 몇분이고 진정 나를 하느님 뜻에
그 손에 완전히 맡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로써 무엇을 얻어 내자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성취한 것 같은 자만심도 없어야 합니다.
더구나 누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아 주기를 바라는 생각도 없애 버려야 합니다.
18, 해방이란 인간을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하느님이 태초에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한 모습입니다.
19. 법은 자유의 남용으로 선을 외면하고
악을 행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금 악을 떠나 선으로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20, 참된 말, 진리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밝혀 줍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사랑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따뜻하게 해줍니다.
반대로 거짓말은 사람을 크게 그르치게 할 수 있고
미움과 질투의 말은 분쟁과 다툼을 일으키고
때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21. 양심은 인간의 가장 깊이에 있는 그야말로 하느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 지성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양심선언은 한 사람의 전인격의 결단이자 신념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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