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생의 집착 :: 제천 감초당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생의 집착
    글/글쓰기 2011. 6. 17. 15:04



    고요한 밤입니다.

    가게 문들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이 팔렸을까요.  아마 문을 닫고 나서 가게 주인은 장부를 정리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남은 일이 하나 있읍니다.

    당신과 나에게도 당신과 내가 오늘 얻은 것을 정리하고 계산해 보아야 할 인생의 숙제들이 있읍니다.

    언제나 별반 다름없는 하루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아닐 것입니다.

    뭔가 눈으로 똑똑히 확인 할 수 없어도 느낀것도 있고 생각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정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햇볕이 화창한 낮이었읍니다.

    김치독을 파내다가 담 모퉁이에 녹두알처럼 솟은 조그만 싹 하나를 보았읍니다.

    싹이 트기에는 아직 이르려니 생각했던 자신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읍니다.

    아직은 무슨 꽃인지, 아니면 무슨 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읍니다.

    담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기에 우선 무대가 아주 초라합니다.

    같은 값이면 화려한 정원에라도 태어날 것이지..

    측은하기도 했지만 또한 여간 대견스럽지 않았읍니다.

    이름도 없고 귀여움도 받지 못하는 풀이 될것이지만  제 생명을 키우기 위해 너무 열심입니다.

    그 녹두알만한 점 하나를 보고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만 살아 있는 생명이 틀림없다 생각하니 여간 대견스러운게 아닙니다.

    이제 머잖아 여기 저기서 싹들이 돋아나겠지요.

    화려한 시크라멘, 개나리, 진달래가 얼굴을 내밀때 쯤이면 시궁창에도, 수챗가에도, 논두렁에도 잡초가 돋아 납니다.

    모든 주어진 힘을 다해 하느님이 주신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패배감이나 열등의식 같은 것이 돋아나는 싹에게 있을리 있겠읍니까.

    오직 있는 것은 최선의 힘을 다해서 살기 위해 애쓰는 것 뿐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 만이 최선의 생이라 할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시골서 올라 온 노인부부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릅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이 보였읍니다.

    바깥 노인이 안노인에게 말합니다.

    ' 여보 저기를 좀 보오. 돈 몇 푼 내면 이렇게 차를 타고 산에 오르는 걸 왜 저렇게 땀을 흘리며 오른단 말이요 쯧쯧쯧 '

    " 글쎄말이요...   저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인색한 사람들이네 그려 "

    이 노인 부부에게 등산의 묘미를 알아달라면 극서은 무리겠지만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괴롭게 살아가는 인생이 하나의 웃음거리로 밖에 안 보이겠지요

    하지만 땀 흘려 산을 오르는 등산의 묘미는 올라 보지 않고서는 모르겠지요.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 쾌감을 느껴 보지 않고서는 모르겠지요.

    빠르게 오르고 평탄하고 쉽게 오르는 길이 분명히 있는 것을 믿으며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길을 찾아 산을 오르 듯 오늘 하루도 너무 조심스럽게 하루의 일과를 마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지름길과 평탄한 길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밤은 점점 깊어갑니다.

    괴롭고 슬픈 마음이 있으면 이 고요로운 밤에 씻어 버리십시요.

    그리고 내일은 하얗게 표백된 마음에서 오로지 우리만을 위한 새로운 시간을 내어 새로운 시작을 합시다.

     

     1977년 이른 봄

    '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최고 사명은 사랑  (0) 2011.06.17
    모래시계  (0) 2011.06.17
    두표에게  (0) 2011.06.03
    모정  (0) 2011.06.01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하기  (0) 2010.09.28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