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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구간[백복령 -석병산 - 닭목재]우리의 아름다운 강산/백두대간 [완료] 2008. 1. 11. 11:24
제27 구간 종주기[백복령- 삽당령-닭목재]
2004 07 11
2 ; 50 백복령 출발
4 : 40 생계령
7 : 10 고뱅이재
8 : 00 석병산
9 : 00 두리봉
10 : 30 삽당령
16 : 10 화란봉
17 : 20 닭목재
새벽 2시 30분
버스 안의 불이 밝혀지고 짐을 챙겨 내려서니 지난번 종주 끝나고 아주 인심이 고약했던 오두막집 앞에 내려섰다.
“기사 아저씨 뒤로 살짝 한번 밀어 주죠 . 표시 안 나게 아주 살짝만 밀어주면 이 집 아주 내려 앉을 텐데 말입니다.
누군가 지난번에 한이 맺혔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집까지 망가뜨려서야 되겠는가.
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를 내려 준 기사는 이 새벽 3시 어디를 갈 곳이 있는지 쏜살같이 되돌아간다.
우리가 떠난 후에 가도 늦지 않을 텐데 내려주자 마자 가버리니 아속하게만 느껴진다.
항상 그렇다. 내려주고는 모두 다 떠난다.
이것으로 자기의 할일을 다 했다는 모습이다.
아주 오랫만에 보는 그믐달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방금 전까지도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질펀하고 숲은 비에 흠뻑 젖어 있다.
백복령 휴게소
철탑을 통과하며
시작부터 길이 미끄럽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산길이 도랑물이 되어 흘러갔는지 스틱이라도 없으면 네 발로 기어가야 할 정도로 미끄럽다.
비를 잔뜩 물고 있는 숲은 지나는 곳곳마다 빗물을 지나가는 산 꾼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다.
비가 온 뒤에 철탑 밑에 서 있으려니 감전되어 있는 느낌이다.
자병산 석회석 채석 광산은 밤에도 쉬지 않고 자동차 굉음소리와 작업장 소리에 시끄럽기 짝이 없다.
채석장의 폭발음과 고압선의 바람에 울리는 소리에 위압감을 느낀다.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은 채석장 주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 올 수 있다는 경고판을 붙여 놓았다.
자병산 파괴 현장
누군가 몰래 잠입해서 그 안에서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파 질 테니 막아 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경고판을 바라보고 내리막을 타는데 백두대간 팀도 다니지 않는지 엄청나게 우거진 숲이 앞을 가로 막는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비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버스가 한대 서 있다.
그 옆을 가로막고 있는 경비망을 뚫고 산길로 접어들면 누가 가꾸어 놓았는지 약초 재배장이 있는데 누군가 씨를 받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
석회석 지역에 나타나는 돌리네, 우발레 와 같은 볼 수 있으려나 했더니 야간이라서 구경도 못하고 지나침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
생계령 사거리
생계령은 거의 흔적만 남아 있다. 누군가 외친다.
“생계령은 생계가 막막해서 생계령이다” 라고
이름 그대로 끼니를 끓이지 못해서 이제 완전히 사람이 다니지 않는 죽은 길로 바뀌지 않았나로 생각해 본다.
이번 구간 중 가장 저지대다.
사거리의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고개를 넘나들던 인적이 있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생계령에서 829봉을 오르는 첫 입구가 푹 파여져 나가서 오르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옆에 잡을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봄비가 올라가고 난 뒤에 최춘길 대원 “그럼 나는 어떻하라구 ”
이 소리를 들은 봄비 획 뒤로 돌아서더니 스틱을 양쪽으로 박는다. “ 잡고 올라 오세요”
이 모습에 김춘길 어르신 허허허 웃는다.
만약 잡고 오르려다 다시 미끄러지면 영락없이 봄비는 꺼꾸로 쳐 박힐 것이고. 또 잡고서 너무 힘주어 튀어 오르면 봄비 턱이 날아 갈텐데
이렇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너무 억측인가.
엄청난 양의 노송지대
백복령에서 닭목재 구간은 엄청난 양의 노송지대다.
수 백 년 정도 되었음직한 노송이 어마어마하다.
삽당령에서 화란봉 사이에는 어떤 곳은 벌목까지 해 놓고 아주 큰 노송이 위용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기가 막힌 정도의 경치다.
또 노송과 쭉쭉 뻗은 도토리나무가 같이 어우러지고 거기에 안개가 자욱이 깔린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 와 있는 느낌이다.
경복궁 재건 작업에 쓸 나무를 구하러 목수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 찾아 다녔는데도 못 구했다고 한다.
아마 이 구간에 큰 노송을 주변으로 전부 벌목을 해 놓은 것이 그 당시 대들보를 찾느라고 이 난리를 친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벌목하여 놓은 주변에 잣나무가 엄청나게 많지만 잣은 벌써 벌어져 있다.
이 지역은 백두대간 종주대원이 아니면 지나기 힘든 지역일 것 같은데 잣나무 꼭대기가 전부 잘라져 있다.
누군가 잣을 따기 위해서 나무 위에 올라가 끝을 전부 잘라낸 게 틀림없다.
잣나무는 위 꼭대기 부분을 잘라내면 나무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고 하던데 말이다.
그러니 우리 대원들 어디 가서 잣나무에 올라가서 끝에 많이 달려 있다고 끝을 잘라내지 맙시다.
잣은 벌써 여물어 벌어져 있다.
벌어지기 전에 따서 술을 담그면 향은 좋으나 송진같은 것이 나와서 진득진득 달라 붙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잣이 여물 무렵 새벽에 잣나무 밑에 가면 잣이 아주 많이 떨어져 있다.
청살모가 밤이 새도록 따서 자기 집에 가지고 가려고 밑으로 던져 놓은 것이다.
그러면 아주 쉽게 잣을 주을 수 있으니 그 방법을 택하라.
고병이재에 적힌 백두대간 설명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도 왜, 어떻게해서 백두대간이란 이름이 생겨 났는지 , 김정호 선생이 어떤 이유로 백두대간이라 이름 하였는지
대체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하였다.
우리가 지나 온 많은 구간 중에서 주변에 내가 밟고 있는 이 산보다 주위에 얼마나 더 높은 산이 많았던가. 저 옆에 높은 산을 거쳐서
가야 옳지 그 보다 낮은 산으로 기어 가면서 무슨 대간을 자나가고 있는가라고
김대장이 입만 열면 "대간은 물을 건너지 않는다"
이 말이 물을 안 건너고 그냥 능선으로 가기만하면 대간으로 통하는 줄 알았다.
그 장엄한 백두대간이란 것이 왜 생겼는지 머리도 나쁘고 산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내가 어찌 이해 할 수 있으리오.
그런데 이 고병이재에 적힌 백두대간의 유래를 보고 그 뜻을 알았다.
진심으로 이 유래를 적어 놓은 분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제 아무리 어리하고, 모자라도 군대는 잔밥 순이라고 하더니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그냥그냥 따라다니다 보면 듣고 보는 것이 있어 금방 온 똑똑한 신참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백두대간은 가다가 물이 있으면 연결되지 않고 물로 인하여 끊어지지 않고 계속 달려나가 연결되는 주선이 백두대간이라는 설명에
"아하! 저 말이었구나" 둔한 놈이 깨닫는데는 너무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번 구간 재 이름은 약간 특이하다.
생계령, 고뱅이재, 삽당령. 닭목재 등등
누구 말마따나 생계가 막막하여 생계령
무릎 고뱅이가 시원찮아지는 고뱅이재
삽살개와 비슷한 삽당령.
닭모가지와 비슷한 닭목재
산죽에 걸린 거미줄의 아름다움
산죽과 산죽 사이에 거미줄이 엄청나다.
산죽에 거미줄을 친 것인지 거미줄에 산죽이 삐죽이 얼굴을 내 민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산죽 사이에 있는 거미줄이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거미줄이 산죽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거미 한 마리가 각자 자기의 집을 저렇게 지었을까 아니면 몇 식구인지 모르나 가족 전체가 전부 모여 저런 집을 지었을까 궁금해진다.
각자가 누구의 집이 아름답고 더 크고 웅장한지를 자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모습은 햇빛이 나고 이슬이 마르면 볼 수가 없다.
중간중간에 산죽이 많아 그 사이에 어디 또 거미줄이 장관을 이루고 있나 살피려 했으나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중간에 날씨가 흐려지고 습해지면서 그 모습이 다시 눈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슬을 몸에 품어야 만이 보이는 거미줄의 신비에 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느껴 본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면 날씨가 좋다고 하던데. 저 거미줄은 무엇인지
석병산의 정취에 취하여
백두대간 선상에서 조금 벗어나면 모든 것이 발아래로 보이는 석병산 정상에 올라 설 수 있다.
멋지고 환상적이다.
돌이 병풍을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석병산이라 이름 한다는 데 밑에서 경치 구경은 못하고 곧 바로 정상으로 올라 왔으니 병풍 구경은
못했지만 정상에서 보이는 주변 경치는 안개 속이지만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고병산 입구에 보면 일월문 안내가 있는데 안내 표지에서 5발만 떼면 갈 수 있으니 거기도 구경거리다.
일월문 바위 구멍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게 되어 있어 해와 달을 볼 수 없으련만 일월문이라 명명한 것은 해와 달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이었으리라.
두리봉에서 석병산을 바라보면 병풍 같은 석병산을 볼 수 있겠거니 했더니 짙은 안개로 인하여 전혀 볼 수 없음을 아쉽게 느낀다.
두리봉 정상에서 쉼터인양 많은 대원들이 쉬었다가 간 흔적이 있다.
10평 남짓 풀이 남아 있지 않고, 누군가 고맙게스리 나무판에 두리봉이라고 써서 나무에 걸쳐 놓아서 두리봉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삽당령의 못 된 아주머니
삽당령에도 백복령처럼 판자로 지어 놓은 주막집이 하나 있는데 허가내고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무허가로 장사를 하는 것 같다.
백복령에 있는 판잣집 주인도 못 되어 먹었더니 삽당령 주인도 못 되어 먹었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얼마나 되나 하고 그 앞에서 쳐다보았더니 식수인데 근방에도 가지 말라고 소리소리 지른다.
물 흐르는 소리가 하도 요란하여 먹을 수 있나 없나 살피고 또 시원찮으면 발이라도 씻을까 했더니 구경하는 것조차 난리를 치니 발
씻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리
뒤돌아서서 나오는데 언제 왔는지 이번에는 삽당령 돌 표지석 앞에서 사진 찍는다고 난리를 친다.
못 들어가게 해 놓은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사진을 찍었더니 고발 한다고 소리소리 지른다.
그렇다고 안 찍을 나도 아니고 언제 다시 이 자리를 와 보랴
권수가 막걸리 마시러 간다고 간다.
갔다 오더니 괘씸한 아줌마라고 욕을 퍼붓는다.
신발 벗고 의자에 앉았다고 술 안판다고 난리를 치더라나.
별난 아주머니도 다 있다.
시골 인심 좋은 게 아니라 야박하기만 하다.
석두봉은 어디에
수많은 봉우리를 지났건만 석두봉은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가 석두봉인가 하고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면 아니고 이러기를 몇 번 결국 석두봉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헬기장이 나타나더니 그 곳에 석두봉 푯말이 서 있다.
이 푯말 세운 작자가 메고 가다가 힘이,드니까 그냥 여기다 박아 놓은 모양이다.
진짜 석두봉을 지나서 처음 나타나는 헬기장에 가짜 석두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방금 지나 온 높은 봉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헬기장을 지나면서 아주 부드럽고 포근한 숲을 지나는데 노송도 엄청나고 도토리나무도 쭉쭉 뻗은 것이 관광지로 꾸며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벌써 1년이 지나고
1년 전에 산 속을 헤맬 때 조그만 나리꽃이 많이 피어 있어서 참 예쁘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지난 구간에서도 보이지 않던 그 각시
원추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달 여 동안 계속 피어 있던 저 각시원추리를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준다.
1년이란 시간 동안 지리산 산청에서 여기까지 왔고 시작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똑같은 꽃을맞이한다는 기쁨도 좋다.
화란봉은 왜 그리 높을까
건너편에 높은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시간상으로는 15 : 10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저 산 밑에만 가면 될거야 하는 위로감을 가진다.
산 밑에는 흰 구름이 흰 솜뭉치처럼 엄청나게 크게 뭉쳐 있다.
아주 푹 빠지는 계곡이니까 저 밑이 오늘의 끝일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건만 가면서 또 가면서 보니까 산 밑의 끝이 아니라 계속
하여 급한 경사를 치고 올라간다.
아니 이럴 수가.
이 산을 넘어가야 되나.
그렇다면 아직도 1시간 반을 더 가야 되는데 .
앞에 가는 명호가 한 쪽 다리를 끈다.
이 계곡이 끝이니까 빨리 가자고 해서 힘내서 왔건만 또 다시 급한 오르막을 오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화란봉 정상에 서니 16시 10분
젊은 2쌍이 엄청나게 큰 배낭을 끌어안고 쉬고 있다.
등산 온 것이 아니라 놀러 온 것 같은 모습이다.
화란봉 정상에서 내리막은 급하고 바위투성이라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14시간 20분의 대장정을 끝마치다.
화란봉에서 닭목재까지 1시간 10분 동안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며 가고 있는 명호가 안쓰럽다.
닭목재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들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에서 공차는 폼이다.
공 차다가 저 자식들 어디서 뭐하다 이제 오나 하는 외계인 쳐다보는 모습이다.
완주 했다는 기쁨의 표시로 두 손을 치켜든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꽐꽐 쏟아진다.
아무런 사고 없이 끝 마쳤다는 안도감에 기쁨은 두 배가 된다.
명호가 계속하여 미안해한다.
제 아픈 것만 잊어버리고 미안한 생각만이 앞서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 구간은 당일 산행으로는 무척 힘든 구간이었다.
오늘의 종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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