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4구간[여원재 -복성이재]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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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구간[여원재 -복성이재]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백두대간 [완료] 2008. 1. 11. 09:58

     

    제 4 구간 [여원재 - 고남산- 사치재 - 복성이재]


       2003 . 9 14

                 04 :20 여원재 도착

                 06 : 20 고남산

                 08 : 45 유치재

                 09 : 10 매요리마을

                 10 : 10 사치재

                 11 : 30   싸리봉[점심식사]

                 12 : 10   싸리봉출발  

                 14 : 00   아막성터

       

     

             14 : 20   복성이재도착

     

    여원재의 전설

     

    새벽 4시 여원재에 도착하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우왕 때 황산싸움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 죽였다 한다.

    이 당시 태조 이성계가 이 여원재를 넘을 때 백발의 여인이 나타나 승리를 점쳐 주었다고 해서 여원재라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1380년 9월 이성계가 왜구가 득실거리는 양광, 전라, 경상순찰사로 임명되어 방위를 책임지게 되었다.

    이 당시 적장 아지발도와 싸우게 되었는데 전사한 왜군의 피로 강이 물들어 7일간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 정도 많았으나 겨우 70여명 정도만 살아서 지리산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1577년 선조 10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황산대첩비가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에 있다고 한다.

    인월면의 황산대첩비가 계백장군의 황산벌 싸움인줄 알았더니 이성계의 황산대첩일 줄이야

    그러고 보면 이성계가 많이 돌아 다녔던 것 같다.

    남해 금산도 이성계가 은혜를 입어 보답코자 하였으나 방법이 없자 아예 산을 금을 하사 할 수 없자 대신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면 후세에

    계속 은혜를 갚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이름을 지었다 하지 않는가.

     

     

     

    태풍 매미로 인하여 나뭇가지는 다 부러지고

     

    이제 또 다시 4구간이 시작 되는 구나.

    오늘은 8시간 거리 밖에 되지 않으니 시작부터 몸이 가볍다.

    추석 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인지 마음은 아직 들떠 있고 추석에 찾아 온 불청객 매미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기만 하다.

    북한에서 지어 올렸다는 태풍 이름 “매미”

    50년대 사하라 태풍에 맞먹었다고 난리다.

    이 매미 때문에 귀성객들은 벌써 자기 집으로 돌아 간 것 같다.

    3구간 종착점,  오늘은 여기가 시발점이 되리니‘’‘’‘’

    지난번 마지막 종착점에 서 있던 옥보고의 돌상이 어두운 곳에서 보니 무섭게 느껴진다.

    “장교마을”

    이 동네 이름을 알리는 입간판이 길가에 아주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이 동네는 장교만 배출하나. 왜 장교마을일까.

    별이 몇 개나 되는지 사뭇 궁금하다.

    지도에는 장동마을로 되어 있다.

    먼젓번에 여기 왔을 때는 저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 전부 씻느라고 난리였는데도 집주인 할아버지는 아무 불평도 없었다.

    항상 그래 왔던것처럼 산꾼들에게 많은 혜택을 베푸는 할아버지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시작부터 밭두렁에서 헤매다

     

    여원재 해발 470m 입간판에서 남원 쪽으로 50m 정도 가다 보면 소나무 숲이 있는데 이 사이로 들어가면 오늘의 시작점이 된다.

    입구도 좁고 리본이 없으면  입구 찾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 같은데 다행이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밤에도 어슴프레 보인다.

    소나무 숲을 지나고 나면 논밭이 있고 이 사이 길로 대간 길을 찾아야 하는데 안내자 없이는 대충 옆으로 지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산 바로 밑 마을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송전탑이 보이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시작부터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밤에 대간 길을 찾는다는 것은 헛걸음을 여러 번 해야 한다.

    산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이 부근에서 헤매기 꼭 알맞으니 안내자에게 철저히 안내 받으시라

    서대장 혼자 길을 찾느라 고생을 한다. 

    소쩍새는 잠도 자지 않고 구슬프게 울고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달이 유유히 지나간다.

    꼭 고향 떠나 하늘 쳐다보며 고향 생각하는 느낌이다.

    지도에는 합민읍성터가 있는데 깜깜한 밤에 통과하느라 그냥 지나쳤다.

     

     

     

    고남산 정상에 중계탑이

     

     

     

     

     

     

     

     

     

     

     

     

     

     

    고남산 정상부근에 암릉에 밧줄을 매어 놓았는데 줄을 잡고 옆으로 가야 하는 곳이 있는데 아주 위험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지금이 여름이 아니고 겨울이라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다.

    캄캄한 밤이라면 위험할 것 같은데 다행이도 금새 날이 밝아 사고 없이 넘을 수 있었다.

    고남산 정상까지 가는 중간 중간에 묘지가 너무 많아 밤에 지나가려면 간이 조금 커야 할 듯 싶다.

    간이 약한 사람이 혼자 지나가려면 무리가 따를 것이다.

    고남산 정상에 섰으나 안개 때문에 10m 앞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을 내려서는가 싶으면 조그만 중계탑이 나온다.

    울타리도 있고 무인카메라도 설치되어 있는데 돌아가는 카메라가 아니라 고정된 카메라여서 한쪽에서 장난쳐도 모를 것이다.

    카메라도 고장이 났는지 녹까지 났다.

    산불 감시초소가 나오고 중계탑까지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 선을 보며 내려서면 통신대가 나오고 지나기 전에 헬기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아침을 먹다.

    새벽안개가 10m 앞도 보이지 않게 가득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햇빛을 보려나 보다.

    어제 아침까지 줄기차게 퍼 붓던 비와 바람은 이제 완전히 밀려 간 모양이다.

    얼마나 강풍이 불었으면 나무의 잔가지가 전부 부러져 통행을 방해하여 몇 배나 힘이 든다.

    통신대는 요새 같다. 가시 철망으로 담을 쳐 놓았는데 그 안에 벽돌담이 또 있는 것 같다.

    통신대 안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데 작은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니다.

    통신대 옆을 지나쳐 내려오면 통신대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포장길의 경사가 소백산 통신대에서 죽령재로 내려오는 포장길처럼 경사가 급히다.

    통신대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급해야 하나보다.

    경사가 급한 곳에 세워야 뻥 뚫려서 멀리까지 중계를 할 수 있을테니까.

     

     

    소나무는 우거지고

     

    통안재에서 유치재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펑탄한 길이다.  

    별로 재미없는 길이다.

    이 구간은 어디에도 여기가 통안재고 유치재고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지도보고 여기가 어디려니 하고 짐작해야 한다.

    길 양쪽으로 쭉쭉 빵빵 소나무가 엄청나게 잘 가꾸어져 있다.

    이 정도면 송이가 많아서 입산금지 시킬만도 하건만 그런 표시가 없는 것을 보면 송이가 없는 모양이다.

    바닥도 마사토이고 소나무도 30년 이상 된 것 같기도 하고 송이가 자라기에는 조건이 딱 맞는데도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스틱으로 눌러 보니 밑에 부식토가 없다.

     

     

     

    매요리는 평지인데 백두대간길인가.

     

    매요리에 도착하니 경운기나 트럭보다 승용차가 더 많다,

    산차가 아직 있는 것을 보면 저 집은 매미하고는 관련이 없는 모양이다.

    매미가 울산은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던데‘’‘’‘

    미포조선의 배가 다 망가질 정도라는데 여기서 태평하게 고향에서 놀고 있으니 부럽다.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다 보면 마을회관이 나오고 회관 지붕에는 확성기 4개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도록 달려 있고  회관 마당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런데 회관 넓은 마당에는 차가 한대도 보이지 않고 시골 골목에 차를 세워 놓은 것을 보면 조금이라도 걷는 것이 귀찮아서일까, 아

    니면 객지 나가서 돈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궁금하다.

    하긴 차 자랑하고 싶으면 회관 마당에 세워야 모든 동네 사람들이 전부 구경하지 않을까.  

    매요마을 회관을 지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는 입구 벽에 큰 간판을 고정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남의 담 밑에 세워 놓았는데 이렇게 씌여

    있다.

     

     “ 매요 휴게실 ” 밑에는 “백두대간 ”

     

    매요마을

     

     

    아마 백두대간 지나가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그 사람들 상대로만 장사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안쪽을 삐끔 들여다보니 별로 먹을 것은 

    없어 보인다.

    이 곳을 지나면 학교 건물이 있는데 폐교인 것 같은데 골마루에는 동네에서 사용하는 것인지 박스 묶음이 잔뜩 먼지가 쌓여 있다.

    시멘트 길을 지나면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아스팔트길을 밟기 전에 왼쪽 옆 산으로 올라갔다가 100m 정도 산길을 걷고 다시 밭고랑을 사

    이를 지나는데  내외인 듯한 40대 농부가 무우밭을 가꾸고 있다.

    무우가 상당히 크다.

    장수군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잘못된 표지판

     

    여기서 50m 정도 가면 복성이재 9.8km 여원재 10.6km 라는 푯말이 나온다.

    벌써 반은 더 왔다는 이야기인가. 오늘은 일찍 끝나는 것 같다.  

    계속 1시간 정도 걷다보면 사치재가 나타나는데 거의 바닥에 다 내려가야 고속도로가 보인다.

    차 다니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도 복성이재 4.8km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잡고 밑을 고개를 쭈욱 내밀고 봐야 고속도로가 보인다.

    이 자리에 오니까 복성이재 4.8km라고 씌어 있다.

    유치재에서 2km 정도 밖에 오지 않았는 것 같은데 벌써 5km 나 왔단 말인가.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을 잘못 되었다.

    사치재 고속도로를 내려서니 100m를 남원 쪽으로 가야 지하도가 있단다.

     

    사치재 88 고속도로

     

     88 고속도로와 휴게소

     

     

    고속도로에서 남원쪽으로 가다 보면 남원시라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반대편은 어딘가 하고 확인하려 했더니 아무 것도 씌여진 것이

    없고 비어 있다.

    반대편 차선을 보니 장수군이라 씌어 있다.

    남원쪽으로 진행하여 고속도로에 세워진 사치재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다시 뒤돌아서 지하도로 내려서니 물 흐르는 소

    리가 요란스럽다.

    지하도로 내려가는 길이 아주 미끄럽다.

    지하도 바닥 전체가 다 물바다다

    지하도라도 물 흘러가는 길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다.

    지하도를 빠져 넘어 왔던 고개 길 건너편 길은 잔디가 아주 잘 깔려 있다.

    누가 심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깨끗하게 자라고 있고, 얼마나 길게 잔디가 자랐는지 20cm는 넘어 보인다.

    누가 관리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망가진 철조망

     

    사람들이 무단횡단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철조망을 망가뜨려 놓았는데 이것은 분명히 백두대간 하는 사람들의 짓거리가 분명하다.

    건너편에서 이리로 넘어오든가. 여기서 저리로 넘어가든가 하기 위해서 편하자고 어떤 놈이 망가뜨려 놓은 것이 분명하다.

    백두대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이 길을 갈 이유도 없다.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무지한 사람들‘’‘’

    그 몇 미터 걷기가 싫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다 판단 잘못으로 다치면 어쩌려구 그런 짓을 했는가.

    그것도 철망까지 망가뜨려 가면서 말이다.

    여기서도 복성이재 4.8km라고 푯말이 되어 있다.

     이제 놀면서 가도 2시간이면 도착하겠다 싶다.

    여기서 임도를 따라가면 안되고 물이 흐르는 오른쪽 보이지 않는 길로 가야 한다.

    조그만 도랑물에 물이 엄청 흐른다.

    아마 장마 때문일게다.

    소리도 요란스럽고 여기서 물을 보충했다. 패트 병에 담고 보니 물이 부옇다.

    아마 비가 와서 그렇겠지. 도랑물도 힘이 있는지 1m 정도 되는 낭떨어지기인데도 움푹 파였다.

    바위가 아니라 찰흙인데도 이 정도 밖에 파지지 않은 게 이상하다. 찰흙이 접착력이 강하기는 강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물은 먹지 말지어다. 이 물을 먹고 일주일 내내 설사를 했다.

    몇 발자국을 올라가니 무덤이 나오고 왼쪽 편을 보니 공장인지, 농장인지, 창고인지 보이고 개짖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시리봉에서 바라 본 동네는 너무 조용하고

     

    사치재에서 시리봉 올라가는 길이 힘이 들지도 않고 주변 경치가 아주  멋있다.

    사치재의 산불이 났던 지역은 10년이 가까이 되었다는 데도 나무는 없고 돌아물과 고사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림이 한번 훼손 되면 복구가 되는 시간이 50년이 걸린다더니 맞는 모양이다. 

    시리봉에서 바라 본  지리산 휴게소가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차도 별로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한쪽 편에 보이는 정자도 아름다워 보이고 특히 휴게소 건너편에 조그만 야산이 하나 있는데 1000평도 채 되지 않을 정도 인데 너무 아름

    다워 보인다. 

    그 안에 묘지가 몇기 보인다. 

    아마 누군가의 가족 공동묘지인가보다.

    저 정도면 저 안에 집을 짓고 정원을 잘 꾸며 놓으면 기가 막힐 것 같다.

    우리가 시작했던 여원재 쪽 송신탑이 보이고 고남산의 통신대도 보인다.

    뒤로 저 멀리 덕유산이 보인다.

    저 산도 엄청 크다.

    웅석봉을 지날 때 지리산을 쳐다보며 어떻게 가나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이제 덕유산을 넘어서야 할 걱정을 한다.

    앞으로 20일 뒤면 넘어 가겠지

    모든 주변의 경치가 평화로워 보인다.

    시리봉 올라가는 도중에 불이 났었는지 허허 벌판이고 잡목만 우거져 앞길을 가로 막는다.

    움푹 빠진 새맥이재는 말 그대로 길이 없다.

    100m 정도는 대충 가야 한다.

     

     

    시리봉을 넘어  숲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

     

    점심 식사 후 좌측으로 직각으로 꺽어 내려서면 안부가 나오고 깨끗한 묘지 비석 상판이 길을 가로 막는다.

    올라서면 묘지가 나오고 길이 없어져서 묘지를 한바퀴 돌아도 길이 없다.

    이 묘지 3기가 있는데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2기와 1기가 보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

    올라서면 묘지 쪽으로 가지 말고 우측으로 직각으로 꺾어라.

    점심 식사하면서 바라보면 천문대가 바로 앞에 보이는 것 같은데 저기까지 가면 금방 갈 것 같았는데 묘지를 지나가는 방향은 앞의

    산을 오르는 것을 보니 천문대 쪽 방향은 아닌 모양이다.

    산을 몇 개를 넘는지 소나무 우거진 숲을 계속 지나다 보면 781봉을 지났는데도 아직 1시간을 더 가야 한단다.

    사치재에서 본 4.8km는 분명히 표지판이 잘못되었다.

    이 거리라면 2시간이면 충분할텐데도 아직 1시간 거리가 남아 있다니 아마 7.8km를 잘못 적은게 아닌가 싶다.

    저 멀리 길이 보인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가보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진달래하고 싸리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걷는다는 자체가 힘이 들 정도다.

    진달래 사이에 우뚝 선 칼 같은 바위가 하나 길 옆에 서 있는데 갈라진 바위 틈사이로 진달래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디가도 진달래, 철쭉이 엄청나게 많다.

     

     

    성같지 않은 성 아막성

     

    아막성터에 도착했다. 돌무더기를 잔뜩 쌓아 놓았다.

    이것이 성인 모양이다.

    아주 작다.

    우리 조상들은 성을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망을 가다가 가다가 �겨서 마지막에 조그맣게 만들어 놓고 저항하는 그런 모양이다.

    사방에서 포위하여 좁혀 오면 영락없이 식량 떨어져 질게 뻔한데도 말이다.

    포위만 하고 있어도 굶어 죽을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만리장성처럼 북쪽 오랑캐를 전부 막아 보겠다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그저 마지막 저항이라도 해 볼려고 여기다 만든 그런 형편없는

    성이다.

    성터 밑에 뽕나무가 몇그루 보인다. 아마 여기 예전에 집이 있었는가보다. 평평한 자리가 그래도 조금은 넓은 것을 보니 집이 몇 채는 되었

    던 것 같다. 뽕나무에 상황이 붙어 있나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기만 했으면 땡 잡는 데 말이다.

     

     

     

     

    아막성터

     

     

    복성이재에서 만난 대전 팀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여기서도 사치재까지 4.8km 라고 씌어 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는데 누구도 정리할 사람이 없단 말인가.

     

    오늘은 여기까지다. 오늘의 목표는 완수했다.

     

    오늘 코스 중에 특이한 것은 꽃이 별로 없다. 

    지나가는 길에 가녀린 꽃이 한들한들 춤이라도 출 것 같은데 그럼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육십령에서 왔다는 대전팀들이 불평 불만이 많다.

    가시덤불에, 억새풀에, 잡목에 무지하게 힘이 든단다. 다음에 올 때 필히 긴 옷 입고 헌옷을 입으라고 신신 당부를 한다

    다음 코스가 15시간거리인데 17시간은 걸릴거라고 본다.

    체력단련도 조금 해야겠다.

     

     

     

     

     

     

    남원의 문화재

     

    . 버스로 아영면을 지나는데 흥부마을이 나온다.

    부도 남원 사람이었다는 게 신기하다.

    인월면 성산리가 흥부와 놀부가 태어난 곳이고 야영면 성리가 흥부가 살던 곳이라 한다. 흥

    부 내외가 박을 타는 모습을 길가에 만들어 놓았는데 박 속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던진 쓰레기인지, 아니면 시에서 쇠를 담아 놓았는지

    가득 들어 있다.

    쇠 같다.

    야영면의 흥부, 인월면의 황산벌 이성계장군, 성춘향이도 , 변강쇠타령도 남원이고, 동편제의 고향도 남원인 것을  보면 유명한 사람이

    남원에는 꽤나 많은 것 같은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광지가 될 것 같다.

    산내면 대정리에 가면 변강쇠타령의 발상지가 있다. 지리산에 흘러든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이야기는 지리산 백장남 계곡에 있다.

    동편제의 창시자 송흥록의 이름을 기억하시라.

    거문고의 옥보고도 기억하시고.

    남원은 생각보다 많은 문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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