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태극기 휘날리며 :: 제천 감초당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태극기 휘날리며
    가족이야기/어머니와 아버지 2007. 12. 27. 15:33
     


    아버지!

    아버지는 참으로 위대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이 영화를 보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80년대 초 이산가족찾기 방송할 때도 남의 일이니까 관심 밖이었고 온 나라가 눈물바다였을 때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내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흘리기 시작한 눈물은 끝이 나고도 집에서 잠이 들 때까지도 게속 되어야 했습니다.

    아버지 !

    전쟁이 시작되던 그 해 9월 군에 입대 하셨다죠.

    제주도에 가서 1주일 동안 총을 쏘는 것만 배워서 바로 전투에 투입 되셨고,  처음에 시작한 300명 중 전쟁이 끝이 난 후 살아남은 사람은 24명 뿐이었다고 말씀 하셨죠.

    어디 한 군데도 다친 곳 없이 제대하셨죠.

    “총알이 사람을 피해 가야지 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피하냐”

    “ 하도 잠이 와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시체가 몸 위에 잔뜩 쌓여 있고 헤치고 나와 보니 중공군들 천지이고 도망쳐, 도망쳐. 아무 부대나 찾아 들어 갔더니 먼저 도망 나온 중대장이 어떻게 살아 나왔느냐고 중대장이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중공군이 밀려오자 중대장조차 참호 속에 있는 부하들조차 팽개친 채 혼자 도망 갔다면서요.

    그 중대장이 죄책감에 울었을까요.

    아버지가 군에 갔으니까 그렇지 영화에서처럼 삼촌이 잡혀 갔다면 우리집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겠죠.

    아버지와 삼촌이 동시에 군에 가는 그런 일이 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군부대도 먹을 것이 없어 휴일에는 강제로 외출을 시켰다죠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야 하는 군생활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결혼을 하고 첫 아들을 보고 얼마지 않아 전쟁터에 가 있었으니 얼마나 처자식이 보고 싶었겠습니까

    영화에서처럼 사진 한 장이라도 가지고 계셨었나요.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사진이라도 보았나요.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가 샘터에서 빨래를 하고 계실 때 어떤 군인이 오더랍니다.

    총을 매고, 칼을 꽂은 채 빨래하는 곳으로 다다와 멈추어 서고 어머니는 무서워 고개도 못들고 있는데 아버지의 말 한마디

    “잘 있었어?

    점심 한끼 식사만 하고 바로 귀대 하셨다죠

    그 먼 거리를 2시간 정도 보자고 달려 왔겠습니까.

    그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저는 전쟁시가 아니고 평시인데도 결혼도 아닌 연애하다 군에 갔는데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었는데 말입니다.

    어머니는 지정학적인 요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콩 볶는 듯한 총소리와 지축을 흔드는 대포소리만 들었지 군인들이나 인민군들은 1.4 후퇴 때 퇴각하는 군인들만 몇일 본게 전부랍니다.

    그 이후 군인이라고는 보지도 못했답니다.

    아마 지정학적으로 군인들이 들어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단양군 적성면 금수산 밑. 지도를 보면 한강이 삥 둘러 쳐진 곳. 빠져 나갈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들어 올 수가 없었겠죠

    오늘 산에 가 보니까 그런 장소가 있더군요.

    괴산군 연풍면. 들어 왔다가는 입구만 막으면 독안에 든 쥐가 되는 장소.

    그러나 이 자리는 문경을 넘어 가는 길목과 가깝기 때문에 위험하겠죠

    아버지가 군에 가시고 남아 있는 삼촌이 어머니에게 눈물겹도록 잘 해 주었다죠.

    세상에 저런 남자면 좋다고 무조건 뒷집 딸을 삼촌한테 시집 보냈다죠. 

    동네 앞뒤집 처녀가 한집으로 시집가는 게 되었구요.

    그런데 어머니 친정은 두솔봉 밑에 예천 넘어가는 곳에 있었는데 산 속에는 언제나 인민군과 군인들이 항상 복짝거렸다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지금 전쟁나면 갈 장소도 없고 가면 뭐 하냐 하지만 그래도 피난처는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는 “ 왜 당신은 발가락이라도 하나 다쳐서 나오지 어떻게 멀쩡하게 나와서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냐“

    “누구는 발가락 하나 다쳐서 돈도 나오고, 취직도 시켜주고 당신은 멀쩡해 가지고  그런 복도 없냐구 ”

    내가 볼 때는 악따귀였습니다.

    살기가 힘이 들었으니까 나온 이야기이겠지요.

    그 전쟁 중에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항상 신의 가호 깃들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저는 평시에도 졸병 말 안듣는다고 패다가 손을 분질러서 지금도 새끼 손가락 쪽이 튀어 나왔는데 말입니다.

    패는 것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니까요.

    벌써 두세대가 흘러 갔습니다.

    손자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무심하죠. 

    영화에서처럼 왜 50년이나 지난 지금 여지껏 뭐하고 있었냐는 외침을 누구에겐가 하고 싶겠죠.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같이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우리 집안의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들이 들려 준 전쟁이야기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너무 틀려 화가 나기도 했었는데 .“태백산맥”을 읽고 그 상황을 이해 하였듯이 내가 어릴때 아버지 어머니가 들려 주신 이야기가 이 영화 속에 있었습니다.

    밥상 머리에 앉으면 제가 아들 녀석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영웅만을 기억할 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너는 성공할 수 있다”

    무슨일이든 기록을 해라. 역사에 남는 것은 기록 뿐이다.

    이순신이 원균보다 나은 것은 난중일기라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

    제가 살아가고 자식에게 남기고 싶은 좌우명입니다.

    아버지가 “군대는 장교로 가라” 수없이 말씀 하셨음에도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군에 가서야 그 말씀을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 되는 것이 군대 장교로 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가족이야기 > 어머니와 아버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개진 눈  (0) 2007.12.27
    아버지의 죽음  (0) 2007.12.27
    어머니 오늘은 어떠신지  (0) 2007.12.07
    어머니  (0) 2007.12.07
    어머니  (0) 2007.12.07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