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버지의 죽음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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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죽음
    가족이야기/어머니와 아버지 2007. 12. 27. 15:38
     

    2004. 11. 22

    01 : 10 분

    숨이 막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응급조치로 심장을 압박하지만 회복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인 것 같은데 후다닥거리며 의사 몇이서 달려온다. 

    심장 맛사지를 한다.

    그러나 이미 멎어 버린 심장의 움직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모양이다.

    맛사지를 할 적마다 심장이 움직였다 멈췄다를 반복한다.  그러기를 몇 번

    01 : 35 분 의사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심폐소생술을 30분 이상 하지 않는데 하는 데까지 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겠단다.

    그러라고 했지만 쥐어박고만 싶어진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회복 될 수 있다고 떠벌이던 자식이 지금 와서 포기 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리고 있다.

    01 : 50

    이제 모든 상황이 끝이 났음을 알려 준다.

    20분 [12시 50분]전까지만 해도 나보고 아주 기쁘게 웃어 주었는데. 이 순간까지도 죽음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도 얼마 정도는,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허무하다.

    모든 상황이 끝이 났다.

    전부 가 버렸다.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다 가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는다.

    할 일 없다.

    덮어 놓은 아버지 얼굴을 한번 더 보기 위해 천을 벗겨 본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이다.

    이렇게 갑자기 숨이 끊어지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시 덮는다.

    주변 병실 청소를 한다.

    요구르트와 음료수가 냉장고에 몇 병 있고 사용하던 기저귀와 휴지를 쓸어 담는다.

    물러 터진 감은 쓰레기통에 넣는다.

    보호자용 베드에 앉아 얼굴을 파묻는다.

    전화기를 들고 동생들한테 전화를 해 보지만 깊은 잠에 빠졌는지 연락이 되지를 않는다.

    밀리는 도로에서 몇 시간 씩 있었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날이 밝으면 연락할까 하지만 바로 연락 안 했다고 더 난리를 칠테니 계속 전화를 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2시가 넘어서 막내한테 가까스로 연락이 닿는다.

    집사람이 온다.

    2시 10분 영안실에서 아버지를 모시러 왔다.

    뒤를 따라 간다.

    간단하게 시신 수습을 하고 장례 절차를 논의 한다.

    3시에 분향실을 배정 받는다.      


    11월 7일

    여름부터 가고 싶었다.

    점을 치러..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나 한 가닥 위안은 되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항상 불안하다는 예감이 든다.

    셋째 내외가 왔길래 가자니까 간단다.

    금방은 안 돌아 가신단다.

    따뜻한 봄날에 돌아가신단다.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편안하게 돌아가신단다. 

    언제냐고 재차 물으니 3월, 9월 하고는 얼버무린다.

    더 이상 재촉해 보아야 그 사람도 신이 아닌 이상 무엇을 알 수 있으리

    애들 문제야 나중 일이고. 앞으로 세상이야 지금 세상보다는 훨씬 더 풍족하고 즐거운 생활이 될 것 아닌가.

    애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차에 더 좋은 집에 살 것이 당연한 일인데 애들 때문에 걱정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닌가.

    집 가까이 운동장 부근에 왔을 때 전화 벨이 울리고 집사람이 아파트로 빨리 오라고 난리다.

    아파트에 갔더니 어머니의 병세가 담석증이 또 도진 모양이다.

    장에 가스가 차면서 담즙이 내려오는 것을 자꾸 막아 돌로 변하고 그 돌이 내려오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일어나서 병원으로 간다.

    힘은 들지만 혼자서도 걸을 수 있을 정도다.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하더니 GOT 2100, GPT 1700 이란다.

    빨리 원주로 가란다.

    응급실에 잠깐 있는 동안에 통증이 조금 가시는 듯하다.

    3월 달 경험상 지금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3월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응급으로 기독병원에 들어갔더니 이 빌어먹을 자슥들이

    “뭐 이런 것 가지고 응급으로 왔냐는 둥, 누가 보냈냐는 둥 하면서 피식거리는데 한마디로 웃기더라구. 

    그러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검사도 안 하더라구.

    그 당시 응급실에서 2일을 꼬박 있어 보니까 그럴 만 도 하더라구.

    전부 죽어가는 놈들만 오는데 멀쩡하게 걸어 들어 온 사람 쳐다 볼 리가 없지.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담당의사가 와서 화요일까지 검사하더니 일반 병실로 옮기더라구.

    그 당시 경험 때문에 가도 내일 아침에 가고 책임을 져도 내가 질 테니 하루만이라도 입원실로 옮기겠다고 했더니 내과 과장이 그러라고 하는 바람에 겨우 입원실로 옮겼다.

    오후 4시 병원에 와서 6시가 넘어 병실로 옮기고 7시가 넘어 아버지가 내일 아침에 원주로 가기 위한 짐을 챙겨 가지고 셋째 내외가 같이 온다. 

    셋째는 서울로 가고 아버지가 병실에 남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11월 8일

    새벽 6시 어머니의 모습은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9시까지 기다렸지만 오지를 않는다.

    내과 2과장이라는 놈이 오더니 원주로 왜 빨리 가지 않았냐고 성질을 낸다.

    지금 상황으로는 수요일까지 기다려 보고 만약 안 좋아지면 목요일 아침에 바로 가겠다고 했더니

    누가 책임지느냐고 난리다.

    내가 책임지겠다 고 했더니 과장과 상의해 보겠단다.

    2인용 병실에서 특실로 옮겼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불편할 것 같아서이다.

    저녁 늦게 가 보았더니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다.


    11월 11일

    어머니가 거의 나은 것 같다.

    아마 담석이 담도로 빠진 모양이다.

    봄에 원주에 입원해서 간에서 담도로 빠져 나오는 길목에 관을 박아 놓은 덕에 저절로 빠진 모양이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또 재발을 할지 걱정이 된다.

    아버지가 밥맛이 전혀 없고, 식욕이 전혀 없단다. 항상 그랬으니까 뭐라도 조금 드세요

    자꾸 숨이 차고 기운이 빠진다고 이야기 하니까 의사가 한번 검사 해 보자고 한 모양이다.

    검사를 했더니 결핵이라고 한단다.

    의사 왈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안 좋다고 이야기 한다.

    폐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X-ray 한번 안 찍어 보았느냐고 나무란다.

    항상 숨이 차다고 이야기 해도 심장비대로 인하여 숨이 찬 줄 알았지 폐가 나빠져서 숨이 더 찬 줄 누가 알았으리.

    아마 폐는 요 근래 갑작스럽게 나빠진 것 같다. 

    아버지는 강주 아버지가 폐병으로 죽었는데 내가 거기 놀러 갔다가 옮겼다고 말씀하신다.

    글쎄 그 집 식구들 들으면 오해받기 꼭 알맞다.

    활동성이라 격리 입원시켜야 한다기에 “어차피 집에 가도 두 분만 계시고 여기 입원해도 두 분이 계셔야 하니까 집으로 퇴원해야 되겠다고 하여 의사와 합의를 했다.


    11월 13일

    어머니가 퇴원을 했다.

    집사람이 오전에 아파트 청소를 했다.

    일주일 만에 오는 집이 그래도 좋은 모양이다.

    아버지가 오자마자 소파에 눕는다.

    예전부터 소파에 누워 TV보고 잠도 자고 하셨다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결핵은 별 것 아니니 식사 잘 하시고 약 열심히 드시면 감기 정도 밖에 안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린다.

    약이 나빠서 병을 못 고치는 것이 아니라 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못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식사 잘 하시고 살이 조금 찌면 나아요


    11월 16일

    아버지가 그냥 소파에 누워 계신다.

    “뭘 조금 드셨어요” 했더니 “모든 게 먹기가 싫어” 하신다.

    그러더니 바지를 훌렁 걷어 부친다.

    “봐라 내 다리가 이렇게 가늘어졌다.”

      "운동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계시니까 그렇죠. 좀 일어나 다니시고 움직여야 밥맛도 돌아오죠‘ 했으나 밥맛 없다는 것만 강조하신다.

    어머니가 “아버지 배내똥 쌌다. 죽으려나 봐” 한다.

    기운이 없는데 조금 뭘 먹으면 설사 하는 것이겠지 설마하니 죽기야 할라구

    요구르트를 드렸더니 일어나 앉으시더니 드시고 TV를 보신다.

    다시 눕더니 눈이 멀뚱멀뚱하시다.

    정신도 저렇게 멀쩡한데 왜 돌아가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11월 17일

    김장을 끝낸 집사람이 와서는 “아버님 입원시켜 달래” 한다. 그전부터 입원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입원하라 소리를 안 해서 입원을 못한다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집사람보고 뫼시고 가서 입원시켜드리라고 하고 그 후 저녁 5시에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다.

    저녁때 문 닫고 병원에 가 보니 여전히 밥맛이 없다는 말을 하시고 가끔 배가 뒤틀리도록 아프다는 말을 하신다.

    포도당 주사라도 공급하면 기운이라도 차리겠지 하고 위안을 한다.

    어머니가 병원에 주무신다.


    11월 18일

    아침 7시 병원에 갔더니 어제 저녁과 별 차이는 없다.

    이러다가 차차 나아지겠지 하는 느낌이 든다.

    저녁 때 본 아버지의 모습은 배에 통증이 있어 괴로워하는 것 이외에는 별 차이는 보지 못했다.        

    내일 계룡산 등산을 가기로 했는데 사람 입원해 있는데 가도 될지 궁금해진다.

    동생들이 전부 내일 온단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길래 전부 오는지 모르겠다.

    동생들이 전부 와 있으면 내가 낮에 비워도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빠지기가 곤란한 것이 나하고 같이 가기로 한 사람들이 내가 없으면 불편할거라는 생각에서다.


    11월 19일

    아침 일어나 산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는 장송곡이 흐르고 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저씨 아침부터 왜 장송곡을 트세요” 했더니 “ 장송곡이 아니라 방송국의 우리말 우리가락인데요” 한다.

    등산을 마치고 대전을 지날 즈음 고운이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할머니가 빨리 오래”

    그러나 차는 밀리고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고 간단하게 씻고 병원에 도착하니 상황이   영 아니었다.

    한마디로 일주일을 못 버틸 것 같은 상황이다.

    이럴 수가. 하루 사이에 이렇게 나빠질 수 있는 것인가.

    의사를 만난다.

    “내 생각에는 일주일을 못 넘길 것 같은데 중환자실로 옮기던가 해서 한번 최선을 다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 지금 같은 상태에서 큰 병원으로 옮겨도 별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고“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도 그렇고 자식들도 그렇고 비관적으로 안 된다고만 하면 우리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 버려요 . 그러니 믿고 기다리세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보기에는 상황이 아니네요. 중환실로 옮겨서 한번 잘 봐 주세요”

    “내일 과장님 나오면 말씀드려 보죠”

    어머니가 작은 아버지를 불러야 한다면서 전화를 한다.

    10분도 채 안 되어서 작은아버지와 숙모가 도착한다.

    아버지가 이제는 말을 할 기력이 없는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가제에 물을 묻혀 입을 축여 드린다.

    그러나 한마디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바라 보기만 할 뿐...

    작은 아버지 왈 “ 그래도 형은 나보다 오래 살 줄 알았는데....”   하고 울먹인다.

    10경 쯤 작은아버지와 숙모가 되돌아 갈 때 어머니도 가시겠단다.

    이틀동안 잠을 한 숨도 못잤더니 죽겠다면서 가시겠단다.

    자식들도 저녁 때 전부 가라고 보냈단다.

    어젯밤에는 아버지 스스로 일어나서 화장실 전체를 변으로 철갑을 해서 밤새 그 것 치우느라 죽을 뻔 했단다.

    아버지가 스스로 힘들게 일어나서 화장실에 갈 정도면 조용하지는 않았을텐데 그것도 모르고 주무시고서는 밤새 잠 한 숨 못자서 피곤하여 집으로 가시겠다는 어머니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전부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아버지가 불을 끄란다.

    불을 껐더니 신음소리가 너무 심하여 불을 다시 켠다.

    간호원에게 가 진통제를 부탁하니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와서는 주사를 놓는다. 이때가 밤 11시.

    20분 후 또 다시 통증을 호소한다. 또 다시 부탁하여 주사를 또 놓는다.

    생각 같아서는 아편이라도 어디 있으면 내가 주사를 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깝다.

    주사 기운이 도는지 통증이 사라졌는지 조용하다.

    오른손을 주므르란다.

    낮에는 경미가 다리를 계속 주물렀다고 하더니 다리는 이제 감각조차 없는지 다리는 별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단지 손 만 움직일 뿐 ....

    왼손은 주사바늘이 있어서인지 주므르라고 하지 않고 오른손만 자꾸 주므르란다.

    오른손을 30분 정도 주므르니 내 팔이 힘이 든다.

    멈추었더니 멀뚱히 쳐다보신다.

    다시 계속 주므른다.

    눈은 계속 뜨고 계시고 잠시라도 쉬면 자꾸 주무르라고 성화다.

    갈증이 나서 음료수 마시느라고 잠시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더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 보신다.

    다시 주므른다.

    조금 괜찮아지는지 불을 끄란다.

    그러나 다시 1분도 지나지 않아 신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다시 불을  켜고 팔을 주므른다.

    맥을 잡아 본다. 맥은 잡히지도 않는다. 덜컹 가슴이 내려 앉는다. 

    이 순간까지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비록 다리는 싸늘하고 맥은 약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이때가 12시

    이상하게도 내가 잠이 와서 눈이 감길 시간인데도 잠은 멀리 달아난 것 같다.

    통증은 호소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식어가는 느낌이다.

    다리를  펴고 이불을 다리 밑으로 받쳐 준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움직이더니 이제는 다리는 가만히 있고 오로지 오른팔만 주물러 달란다.

    12시 50분 간호원들이 와서 혈압을 재러 왔다.

    맥도 안 잡히고 혈압도 잡히지 않는다. 한참을 씨름한다.

    베드를 앞으로 빼고 오른팔로 혈압을 제대로 재 보겠다고 몇 번이나 해 보지만 실패다.

    이리 저리 움직일 때 아 행복한 미소를 나에게 보낸다.

    평상시에도 항상 가식이 없는 웃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이지만 이 미소는 정말 행복한 미소다. 

    아버지를 약간만 옆으로 들어 달란다.

    내 앞으로 어깨부터 허리까지 살며시 드는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숨을 멈추신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다.

    철컹 내려 앉은 가슴

    간호원 기집애들이 놀라서는 밖으로 도망친다. 

    내가 심장 마사지를 심하게 해 본다.

    얼마나 했을까 .

    남자, 여자 의사들이 후다닥 거리며 뛰어 온다.

    이제야 심폐소생기를 들고 온다.

    이때는 벌써 숨을 멈춘지 10분이 지나 있었다.

    기계를 대고 열심히 노력한다.

    주사도 엄청 놓는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는 심장, 돌지 않는 혈액에 그 주사약이 얼마나 효험이 있을까   

    엄청난 양의 주사가 제대로 흡수 되지도 않은 채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 가셨다.

    숨이 차서 걷기 힘들다고 하실 때 왜 나는 심비대 때문에 또 나이 탓이려니 이것만 생각했을까 .

    폐가 나빠졌으리라고 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심비대와 위하수 때문에 약골로만 살았던 아버지.

    죽는 순간까지도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했던 아버지가 아니였던가. 

    폐가 나빠졌던 것은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아버지

    오래 사신 것이다. 

    15년 전에 원주 기독병원에서 앞으로 1년 밖에 못 사신다고 했을 때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또 노심초사 했는가.

    덕분에 오래 사셨고. 또 대부분의 부모들 중에도 자식들 전부 출가시키고 대부분이 없는 형편이지만 전부 결혼 생활 잘 하고 있으니 행복하게 저 승으로 갔으리라 믿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꿈에 나타났을 때 아주 험상궂은 얼굴로 나타나 지금까지도 당혹스러웠는데 돌아가시는 순간의 행복한 미소처럼 저 승에서도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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