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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는 거짓말가족이야기/어머니와 아버지 2008. 3. 25. 11:41
사람들은 지금의 세상은 믿음이 없는 세상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얼마나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하였기에 서로 못 믿고 사는 것일까.
하긴 방금 은행에서 저금을 찾아 나오는 아낙을 달려들어 지갑을 채어 가는 세상
어두운 밤에 길을 가는 사람을 때려 주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는 가버리는 녀석들
오래전부터 잘 아는 듯 다가 와서는 사기를 치는 놈들. 이 세상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다고 해서 이 세상이 못 믿을 세상일까.
그렇다고 치자
이 세상이 못 믿을 세상이라고 누구나가 다 인정한다면 이 세상 살아나가는 것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서로 속고 속이는 사기극이 없어져야 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거짓말이든 거짓말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을 태어나면서부터 거짓말을 수 없이 하여 왔다.
이제 갓 말을 시작한 아기가 아니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라도 좋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표정이 좋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제 탓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이것이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일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타고난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서는 혹자에 따라서 순수하게 발전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이를 계속 악용하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아마 커 가면서 주위 환경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누가 이야기 하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고.....
이는 어린이의 순수성에 빗대어 한 말일 것이다.
슈바이쩌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14세 소년의 마음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
슈바이쩌는 14세 소년의 마음을 거짓이 없는 진실만이 존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 세 살적 바늘 도둑이 커서는 소도둑 된다” 고
이는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거짓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단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
“ 자신에게 득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 한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막기 위한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은 거짓말의 연속이 되고 그 사람 뒤에 따라 붙는 말은 거짓말 쟁이다”
이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 범인들에게만 통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에게는 이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없고, 아무런 득도 없는데도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이 즐거워서가 아니고 또 그 자체에서 어떤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닐 진데 말이다.
그저 거짓말을 하고 난 후 괜히 했다 하고 속으로는 후회를 하면서도 막상 어떤 일이 닥치고 나면 또 열심히 거짓말을 한다.
물론 본의 아니게 타인에 의해 거짓말이 이루어지는 수도 있다.
내가 국민 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 당시 구구단을 외워야 했는데 나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서 매일 같이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또 담임선생님은 또 때리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학교 가기가 무척 싫었다.
그러다보니 머리도 아팠다.
무조건 학교가 가기 싫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무조건 버텼다.
어머니는 나를 동네 어귀까지 따라 오셔서 학교를 보내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그때 학교에 가기 위해서 길을 나섰던 친구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얘가 왜 학교 안 가려고 그러는지 너 아니” 하고 물었는데 그 자식이 한다는 말이 엉뚱한 애를 하나 끌어 들이는 것이 아닌가.
“세민이가 때려서 안 가나” 하는 것이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내 이야기는 들어 보지도 않고 세민이네 집으로 득달같이 쫒아 가는 것이었다. 어
머니는 세민이네 집에 가서 난리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워낙 무섭게 난리를 쳐서 뭐라고 대꾸를 할 겨를이 없었다.
아들이 남의 아들을 때려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데 그 어머니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단지 세민이 어머니는 세민이만 나무랄 뿐이었고 아무 영문도 모르는 세민이는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30여 분 정도 세민이네 집을 홀딱 뒤집어 놓은 어머니는 나를 휙 나꿔채더니 학교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학교를 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세민이가 따라 오고 있었다.
우리가 앞에 가는 것을 본 세민이는 그날 학교에 한 시간이 끝난 뒤 왔으며 학교가 끝 날 때까지 양동이를 들고 칠판 아래 무릎을 꿇고 벌을 서야만 했다. 학교가 끝이 나고 집으로 오면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자식이 당한 억울함에 분풀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조아리며 이후 계속 지내야만 하였다.
그때 나는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
다행인지는 모르나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 3반, 여학생 3 반으로 구성 되어 있었지만 학년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 와 내 아들과 세민이는 같은 반에 있으면 안 된다고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의 그런 극성스러움 때문에 세민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단 한마디의 이야기도 나눌 기회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세민이는 새해가 되면 나의 할아버지에게 꼭 새배를 드리러 왔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새배를 드리러 왔건만 나는 무슨 죄책감인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지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나는 세민이와 이후 나는 세민에게 어릴 적 일에 대해서 해명을 할 기회를 찾았지만 아직까지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평생을 죄 지은 기분으로 살아가야 했다.
학교에 간 어머니는 선생님한테 세민이가 우리 애를 때려서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니 우리 애 좀 잘 보살펴 주라고 선생님에게 단단히 부탁하고는 연습지라도 사서 애들한테 시험문제라도 자주 내 달라도 삼백 원을 선생님한테 쥐어 주셨다.
그때만 해도 삼백 원은 무척 큰 돈이었으니까.
지금까지도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다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고 왜 용서를 빌지 못했을까.
그 당시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의 거짓말 때문에 나는 얼마나 큰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고 그 말은 거짓이라고 부정을 하지 못하였기에 나는 귀중한 어릴 적 친구를 잃어 버렸으며 아직도 그 생각이 응어리지게 남아 언젠가 내가 잘못했다고, 그 당시는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고, 그럴 틈도 없었노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우리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때린 놈은 구부리고 자고 맞은 놈은 허리 펴고 다리 쭉 뻗고 잔다구. ”
나야말로 친구 녀석의 엉터리 거짓말로 인해 수십 년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하였다.
마치 많은 죄를 지은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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