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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3 일차 [만달레이 돌아보기]이 세상 구석구석/미얀마 2013. 11. 12. 16:25
해가 뜨기 전 만달레이에 도착하여 짐 내리고 내일 바간으로 갈 버스표 끊고 왔다 갔다하다보니 7 시가 넘어섰다.
지프니를 타고 먼지와 매연을 마시며 숙소에 도착하니 8 시다.
29인용 야간 고속버스를 타도 편하게 온 탓인지 다행이 피곤하지는 않다.
오늘은 한국에서 불교 성지순례를 온 팀과 합류하기로 했다.
스님 한분과 여성 신도 3명 총 4명이 성지순례를 온 모양이다.
미얀마는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는 무척 낯선 곳이다.
전두환 정권 때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많은 장관들이 죽은 사건과 이후 북한과 연계된 많은 사건들 때문에 아직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불교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8 일동안 있으면서 관광객으로 온 한국 사람은 보지를 못했고, 또 이 지역을 돌아 다니는 사람들 99 % 가 서양 사람들이고. 동양
사람은 가끔 중국 사람이 보일 정도다.
한국 드라마가 TV 에서 계속 방송되는 탓인지 미얀마 젊은이들이 " 안녕하세요 ", " 감사합니다 " 라는 말을 알고 있다.
상점에 물건을 사러 가서 한국말로 아내와 내가 이야기하고 있으면 아가씨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면 한류의 영향이 크
기는 큰 모양이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9 시 30분에 모였다.
12 인승 봉고차 한 대를 하루 8만 짯에 빌렸다.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다 보니 자연 그네들 일정에 맞추어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만달레이 언덕과 만달레이 궁전은 일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내일 아침 출발하는 버스만 아니라면 한 나절 더 있으면 모두 다 보고 갈 수 있을텐데 아침 일찍 떠나는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마하간다용 짜웅 수도원
1914년에 설립된 수도원으로 현재 약 1500명 정도의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곳이며 많을 때는 3000 명 정도의 수행 스님이 수행을 하는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이라 한다.
오전 10 시 15 분에 시작되는 점심 공양 탁발이 아주 장관이어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시간에 모여든다.
이 모습 이외에는 볼 것은 없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이겠지만 동양 사람들에게는 평상시 생각 할 수 있는 그럼 모습들이다.
들고 있는 큰 그릇에 받아가는 식사량이 무척 많다.
이유는 아침 식사를 하고 지금 받아 가는 것이 점심이고 이후는 먹지 않기 때문에 점심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마냥 신기한 듯.....
경전을 돌판에 새겨 넣은 모양인데..
행렬을 시작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행렬이 시작되면 뒤에 계속 스님들이 모여들어 행렬은 장시간 이어진다.
정식 스님이 되기전에는 흰 옷과 분홍색 옷을 입는다고 한다.
까웅무도사원
이 곳은 파고다의 양식이 특이하다.
생김새가 꼭 여자의 젖가슴처럼 생겼다.
그래서인지 이 파고다는 공주의 가슴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사원은 바고의 마하제디 사원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 사리를 옮기기 위한 이유와 왕도를 잉와로 옮긴 기념으 로 1636년에 건립을 시작해 1649년에 완성된 사원이다.
높이가 46m , 둘레가 274m 나 되는 거대한 탑이다.
탑 둘레에는 돌아가면서 1,5 m 정도의 대리석 기둥 이 812 개가 있는데 축제나 행사 때 불을 밝히기 위해서라 한다.
이 곳을 사람들이 얼굴에 바르는 다나까를 만드는 모습
아름답고 화려한 사원이다.
기도하는 장소에 쥐는 왜 있을까.
사가잉 언덕
산 자체가 사원과 파고다로 넘친다.
오르내리면서 보니까 10m 마다 사원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망가진 것 부터 새로 짓는 것 부터
그야말로 이 언덕은 사원과 파고다의 집합체인 것 같다.
주로 흰파고다가 많은데 주민 한 가정당 파고다 하나씩 갖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언덕 정상에 올라가도 주변은 나무에 가려 전체적인 조망은 별로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
입구에는 사탕수수 즙을 짜서 팔고 있는데....
누가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짜서 판매한다.
사가잉 언덕을 오르는 길
사가잉 언덕을 오르는 길에 만난 울던 아기.
호박엿 하나에 울음은 뚝 그치고...
뒤에 보이는 배추는 우리네 배추와 똑 같은데 이 애 엄마도 김치를 담그나보다.
사가잉 언덕을 내려 와 잠시 들른 사원. 입구에서 카메라 500 짯을 받는데 ,,,,
정상 부근에 있는 사원인데 정말 아름답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부처가 일렬로 앉아 있는데 이것도 장관이다.
사가잉 언덕에서 본 풍경
사가잉 언덕은 사실 별 볼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하루 일정으로 만달레이를 둘러 본다면 만달레이힐을 보고사가잉은 빼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가잉 언덕에서 일몰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고 ...
잉와로 강을 건너기 전 점심 식사
식당 한켠에 있는 화장대와 화장품,
거울은 보지도 않는지 한번도 닦지 않은 것 같고, 화장품은 우리의 50 ~ 60 년대 화장품 같고,
미얀마 맥주, 이 곳은 맥주나 음료수 값이 밥값보다 훨씬 더 비싸다.
이 곳에 주는 컵은 위생상 너무 지저분해 보여 한국에서 종이컵을 몇 개 들고 가서 그때마다 사용하였다.
일반게스트 하우스나 작은 호텔에서는 양치하기 위한 컵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이 종이컵을 가져 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킨 볶음 국수에는 숙주나물이 반찬으로 따라 나오는데 볶음 국수는 먹을만하다.
잉와
타도민비야 왕에 의해 이라와디 강과 미트녜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인공섬에 세워졌고 1364년부터 1841년까지 미얀마의 수도였다.
이전에는 사가잉이 수도였으나 사가잉이 샨족에게 점령된 후, 왕실은 강을 건너 아바로 이동했다.
아바의 왕은 버간 왕조의 붕괴 후 쇠약해진 버마족의 왕권을 회복하였다.
아바 왕국이 1364년에 아바 시에 세워졌다.
바간 문화는 부활하였고 버마 문학은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왕국은 1527년에 샨족의 침략을 받았다.
1555년에 아바는 남부의 버마족 왕국인 따웅우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599년에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752년에 몬족이 버마족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아바를 약탈하였다.
2년 후에 꼰바웅 왕조의 건국자 얼라웅퍼야가 몬족을 진압하고 슈웨보를 수도로 삼았으며 아바를 재건하였다.
제2차 영국-미얀마 전쟁(1852~53)으로 저지 미얀마가 영국에게 정복된 후에 고지 미얀마는 일반적으로 아바 왕국 또는 아바 왕조로 불렸다.
보도퍼야 왕(1781~1819) 때 수도는 주변의 아마라푸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바지도 왕(1819~1837)은 1823년에 아바로 환도하였다.
1841년의 대규모 지진으로 아바는 버려졌다.
오늘날 고대의 수도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39년의 지진으로 아바의 궁전의 대부분은 파괴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잉와로 가기 위해 배를 타면 한 사람은 키를 잡고 한 사람은 열심히 펌프질을 한다. 펌프질은 왜 하는지...
배를 타기 전에 1 달러 모자를 사라고 하도 조르기에 밀집 모자하나 사고 대신 아가씨 얼굴 찰칵
조금 전 식당에서 내가 앉았던 의자에 먼지가 많이 있었나보다.
그러다보니 바지 엉덩이 쪽에 그 먼지가 전부 묻어 아주 우스운 모양이 되었는지 서양 젊은이 둘이서 내 영덩이를 가르키며 킥킥 거리며 웃는다.
그냥 털면 되는 것을..... 그게 뭐가 그리 우스울까.
배에서 내리면 마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양인은 덩치가 작아서 3 명이 타고 될 것 같은데 굳이 2명만 타야 한단다.
나야 어차피 아내와 둘이 타니까 전혀 관계가 없지만 3명이 팀을 이룬 사람들은 애꿎게 마차 한대 더 빌려야 할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한 사람이 거의 100kg 에 육박하니 둘이 타도 사실 무겁지...
아내와 내가 둘이 타고 가는데도 마부는 연신 앞으로 당겨 앉으라고 한다.
한사람은 아예 앞으로 앉으라고 한다.
뒤로 앉으면 말이 힘들다고....
나와 아내 둘이 몸무게 합쳐도 110kg 밖에 안되는데도....
이곳에 작은 앙코르와트가 있다니.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작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김새도 똑같고 돌 재질도 같고 시커멓게 이끼가 낀 것까지 똑같다.
이 건물도 사원일까.
입구에서는 만달레이 도시 입장료 1 인당 10 불 씩 받고 있다.
이 건물에 들어 오지 않고 그냥 지나갔으면 10 불 그냥 버는건데 괜히 들어 왔다가 20불만 내버렸네.
그냥 지나치면 도시 입장료는 안 내도 될것을....
대부분 관광객이 이 곳은 들어 오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우리도 마부가 들어갔다 오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마 마부가 도시 입장료 내라고 일부러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들어 와 보기를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의 거의 천편일률적인 사원만 보다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 비슷한 사원을 보다니 그 당시 서로 내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얀마와 캄보디아는 서로 인접해 있으니까.
나의 옆지기
이 곳은 젊은이들이 기타치고 소풍이라도 온듯....
아무리 보아도 작은 앙코르와트다.
잉와시계탑
잉와 시계탑
일명 Water Tower 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27m 이며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그저 앞에서만, 주변에서만 구경해야 한다.
이 곳이 " 잉와 왕궁터" 라고 한다.
지금은 지진으로 대부분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울어진 시계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800년대 지진 당시 기울어진 것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가로수길
가로수길이 너무 아름답다.
만약 우리나라에 있으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가로수 길의 나무 높이가 50 ~ 70 m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바가야 사원
바가야 사원은 목조건물인데 나무로 조각해 놓은 조각품이 일품이다.
나무에 새긴 꽃 문양과 기둥이 기계로 판 듯하다.
바가야 사원 외부 모습
천사가 날아가는 듯한 모양
나무 기둥 속의 부처
완전히 일본풍의 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차대전 때 일본 놈들이 침략하고 자기네 입맛에 맞게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사원을 언제 지었는지 모르나 바닥은 못이 많이 박혀 있어 맨발로 다니다가는 다치기 꼭 알맞다.
목조건물이라 그런지 소화기도 보이고 벽에 문양도 어디에서건 화려하기는 마찬가지..
이 유적지가 누구에겐가는 자전거 보관 창고도 될 수 있는 모양
유적 관람을 마치고 강을 건너니
강을 건너기 전에 자고 있던 개들이 지금까지도 늘어지게 자고 있네 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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