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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구간[어림마을-안양산- 무등산 - 북산- 유둔재]우리의 아름다운 강산/호남정맥 [완료] 2008. 1. 12. 17:42
2007, 09. 16 00 : 00 제천출발
05 : 00 산행시작[어림마을]
임도로 100m 정도 진행후 왼쪽 밭을 가로질러 산행길로
이후 송전탑까지는 잡목과 숲으로 길을 찾기 어려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 같음
05 : 23 송전탑
이 부근에서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10여분 고생. 송전탑을 지나면 왼쪽 능선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음
05; 37 임도
05 ; 41 해주최영진묘
05 : 58 623봉
삼각점 [1996 재설, 독산 450]
이후 엄청난 산죽길
06 : 16 전망바위
06 : 26 임도
이정표 출렁다리 15분. 전망대
06 : 30 원두막.
전망대라 하였으나 앞에 보이는 것은 없고 거의 예전의 원두막 수준
이 곳에서 아침 식사[20분]
06 : 54 출렁다리
비가 온 뒤라 바닥이 비끄러워 꽈당. .... 아래 도로로 안 떨어지기 천만 다행
06 : 58 안양산 오르는 임도 시작
07 : 08 임도 끝
왼쪽 급경사로 ..... 엄청난 급경사는 안양산까지 이어지고 비는 오고 바닥은 미끄럽고 수없이 뒤로 후퇴하고..
07 : 46 안양산 [853m]
올라온 길 제외하고 앞에는 세갈래 길이 있으며 정맥 길은 직각으로 왼쪽 수간리 방향으로 갈 것.
직진하였다가 약 15분 알바
08 ; 12 능선 삼거리
이정표 장불재 2,3km, 수간 2 구
08 : 32 936봉
08 : 45 헬기장
09 : 00 바위봉
09 : 14 장불재
KT, KBS 기지국이 있음
이정표, 입석대 0,4km, 서석대 0,9km, 규봉암 1,8km,
오른쪽 큰 길. 화장실이 있는 방향으로 갈것
09 : 50 규봉암 입구
규봉암 20m, 장불재 1,8km, 꼬막재 3,1km, 관리사무소 6,5km
10 ; 30 광일목장
이정표 공원관리소 4,4km, 장불재 3,9km
이정표에 목장길이니 등산객은 들어오지 마라는 이정표가 같이 매달려 있는데 정맥길은 가지말라는 임도를 따라 갈것
만약 돌아가면 고생함... 우리처럼
10: 34 삼거리 갈림길
직각 우측으로.... 길이 엉망임
우측으로 꺾어 똑바로 진행하면 광일목장 이정표에서 가는 임도를 만날 수 있는데 길이 보이지 않아 길 찾기가
쉽지 않음
10 : 50 목장 안
소도 많이 보이지만 목장 바닥은 쇠똥으로 그득... 목장 주변의 철망에는 전기가 통하니 만지지 말 것
11 : 10 신선대
바위 꼭재기에도 무덤이 있고 , 아래에도 무덤이 있으니 ...
점심 식사 25분
11 : 35 식후 출발
11 : 39 북산
삼각점 [독산 451, 1986 재설]
삼각점에서 20m 정도 뒤돌아 오른쪽 아래로
백남정재 가기 전 급경사 내리막 있음
12 : 43 백남정재
이후 급경사 오르막
12 : 50 430봉
12 : 53 임도
12 : 55 송전탑
삼거리 갈림길
13 : 08 447봉
삼각점 [독산 449. 1985 복구]
13 : 18 사거리 안부
이후 급경사 오르막
13 : 30 442봉
13 : 45 유둔재
어림마을에서 둔병재
버스가 어림마을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도 어둠은 계속되고 게다가 비까지 을씨년스럽게 내리고 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다.
출발 선상에 서면 항상 그렇지만 “왜 이런 쓸데없는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 중얼거린다.
빗속에 헤드랜턴은 얼마나 위력을 발할지 모르나 랜턴 빛 사이로 빗줄기가 세차게 내린다.
새벽 5 시 .. 아직 날이 훤하게 밝으려면 1 시간 이상을 더 있어야 한다.
오늘은 비 때문에 주위가 어두워서 6 시 15 분 정도 되어서야 랜턴을 벗을 수 있었다.
임도를 조금 지나 밭을 가로질러 산행 길로 접어든다.
내일 아침에 이 밭주인은 어떤 놈이 남의 밭을 전부 빠대 놓았다고 악다구니를 퍼 부을 것이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비가 오면 아버지는 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밭에 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산행 길로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어이쿠 ‘ 하고 괴성을 지른다.
비가 오고 있는 중이라 길이 무척 미끄러워 넘어진 모양이다..
조금 지나자 산죽 지대가 나타나고 머리를 땅에 박고 식식거리며 오르는 중에 땅바닥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있다. 알밤이다.
보이는 대로 주머니에 주워 담는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있는 밤이 얼마나 허벅지를 찔러대는지 이내 그 밤은 배낭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울창한 숲 덕분에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는데 뒤에 따라 오는 대원들이 소리를 지른다.
아마 길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놈들...
고개만 조금 들면 앞에 가는 사람 불이 보일텐데 왜 쓸데없이 동네 사람 잠도 못 자게 소리를 질러대는가 모르겠다.
가면 갈수록 길은 점점 오리무중이다. 왜 이렇게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동안 호남정맥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떻게 갔을까.
어림마을에서 둔병재까지는 대부분의 산꾼들이 생략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송전탑 있는 곳에서는 아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야간산행이 이런 이유로 더 힘든 모양이다.
송전탑 아래에는 사람의 발자국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송전탑을 지나야 길이 있는데 말이다.
송전탑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서면서 그래도 보이는 길이 나선다.
600봉 부근에서 뒤따라오던 석면이 형님이 발을 잘못 디뎌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난리를 친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아래로 추락하는 도중 아래에 있는 나뭇가지를 재빨리 잡아서 더 이상의 추락사고가 없었다고 ,,, 죽을 뻔하
다가 살아났다고... 저 아래로 굴렀으면 살지 못했을 거라고 하루 종일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 형님 두 달 만에 보는데 살이 아주 많이 빠졌다.
“ 형님 살이 많이 빠졌네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 물었더니 누군가 옆에서
“ 요새 사이클 타잖아, 아주 옷까지 갖추어 입고 제법 폼이 나요 ” 한다.
“ 진작부터 사이클을 탔으면 딸 5 낳고 아들 하나 건지는 것이 아니라 벌써 아들 몇 건졌을 텐데 늦게 배워서 뒤늦은 아들 하나 밖에
못건졌잖아” 한다
“ 지금 아들 하나 만들어 볼까. 손자 보다 어려 얻어터지지나 않을까 ” 하고 석면이 형님이 너스레를 떤다.
우리가 산에서 진이 빠지도록 다니는 것은 살이 빠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휴양림에서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도착한다.
계곡에 만들어 놓아 전망대라 할 수도 없다.
뭐가 보여야 전망대지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전망대는 무슨 빌어먹을 전망대인가.
시골 밭가에 있는 원두막에 불과하다.
이곳을 내려가면 도로를 건너가는 출렁다리가 있는데 비가 온 뒤라 다리 바닥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생각 없이 들어섰다가 그냥 꽈당....
다리가 쑥 빠져 아래로 추락하지 않기 다행이다.
이 출렁다리 덕분에 아래로 내려가 길을 건너지 않고 바로 길을 넘어 갈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길을 건너면 안양산 휴양림의 마당이 나오는데 아마 휴양림에 오는 사람들 놀이터인 모양이다.
안양산.
휴양림 마당에서 안양산 오르는 길은 넓은 임도로 올라간다.
약 10분 정도 오르다가 왼쪽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두발 옮기고 한발 미끄러진다.
비가 오지 않았어도 너무 급경사여서 미끄러질 정도로 경사가 급한데 비까지 왔으니 얼마나 미끄러울까.
수많은 사람들이 다져 놓은 길 위에 빗물까지 흐르니 길은 얼음 빙판에 가깝다.
급경사를 오르면 다음부터는 완만한 경사가 나오는데 이때부터는 많은 잡목이 앞을 가린다.
무등산 앞산이어서 정리가 잘 되어 있을 줄 알았더니 어찌 이렇게 황당한 일이... 아직 화순 땅이어서 그런가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잔뜩 흐린 날씨는 주변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든다.
오늘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기상대 예보는 완전히 꽝이다.
태풍 나리가 월요일 새벽 제주도 앞바다를 지난다고 했는데 나리는 오늘 새벽 제주도를 지나 아침 6시에 고흥반도를 때리고 있단다.
나리는 제주도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 이후 한반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은 나리가 한라산을 정면으로 때렸기 때문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안양산 정상에 섰다. 주위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도를 보면 바로 아래 화순읍이 보여야 하건만 보이는 것은 바로 앞의 구름 뿐 ..
정상에서 정상표지석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관운장 대장께서 앞서 간다.
모두들 100m 정도 갔을까.
이 길이 아니라며 대장은 앞에 그냥 가도록 놓아두고 전부 원위치하여 서로 어느 길이 맞는지 옥신각신한다.
아무래도 이상하였던지 대장도 다시 되돌아와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모두들 뒤따라간다.
대부분 대원들이 산에 많이 다닌 탓인지 산길에 대한 예감은 다들 좋다.
올라온 길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수만리로 향하는 길로 가야한다.
내려가서 한참을 진행하다가 보면 수만리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수만리로 가지 말고 장불재 방향으로 가면 된다. .
새로 산 모자
이번 산행을 하면서 모자를 하나 새로 샀다.
보면 볼품은 없다. 구겨서 주머니에 넣으면 그냥 들어가는 헐렁한 모자다.
지난번에 가지고 있던 모자는 도봉산 갔다 오면서 버스 안에 두고 그냥 내리는 바람에 잃어버렸다.
너무 오래 쓰고 다녔고 모자도 별로인 것 같아서 찾지 않았다.
가격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자는 12,000 원짜리 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산 모자는 36,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
이번에 비가 오는 속에서도 이 모자를 쓰고 갔더니 내가 모자를 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편했다.
얼굴로 떨어지는 빗물도, 땀도 없으니 얼마나 편하던지...
역시 모든 것은 제 값을 주고 사야 하나보다.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애장품이 될 것 같다.
무등산은 광주의 산일까
무등산
우리에게는 너무 많이 들었던 산이다.
광주하면 무등산, 무등산 하면 광주를 떠올릴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한 산이건만 이번에 가보니 올라가지도 못하는 산이다,
그런데도 왜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에 열광할까.
그 정도로 열광한다면 산 정상의 구조물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해야 맞지 않을까.
무등산은 유명한 산임에도 등산로도 별로 없고 또 다가갈 수 있는 등산로도 정비가 되어 있지는 않다.
무등산 정상은 통제 되어 있어 올라가지 못함은 물론 안양산에서 장불재 이르는 길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장불재 가까이까지 차가 올라 올 수 있는 도로가 있어 걷기 싫어하는 사람은 수월하게 올 수 있는 길은 있어 입석대와 서석대를 쉽게
오를 수는 있다.
장불재에서 꼬막재까지는 길이 좋기는 한데 계속하여 너덜지대를 지나야 한다.
길 자체가 너덜지대이고 지금은 비가 오고 있는 중이라 바위 자체도 무척 미끄러워서 산행 시 조심해야 한다.
또 무등산의 산 길은 장불재에서 꼬막재에 이르는 길을 제외하면 길은 전부 잡목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산은 아닌 것 같다.
오직 광주 시민들에게 말로만 사랑 받는 산이 아닐까 한다.
무등산은 호남정맥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며 높이가 거의 1,200m 에 가까우며 부근에 높은 산이 없어 혼자 덩그러니
솟아 있는 산이다.
지난 구간에 오산에서 보았던 무등산은 그저 둥그런 산일뿐이었다.
무등산 주변에는 높은 산이 없어 멀리서 보면 혼자서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예전에는 많은 무당들이 이 산을 신성시 한 탓인지 무당산으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하며 또 멀리서 보면 둥그런 무덤처럼 생겼다하여
무덤산으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한다.
또 무등산에는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의 3대 석경이 있어 무등산의 많은 사진 속에는 이 석경의 사진들이 소개되고 있다.
비가 너무 퍼부어 전부 입석대를 올라갈 생각을 안 한다.
올라간다 해도 바로 앞도 안 보이는데 올라가서 뭐하겠냐고 한마디씩 한다.
지난 구간 오산에서 한참을 바라보았을 때는 산세가 완만하고 전체적으로 흙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 와 보니 산길에는 너
덜지대가 너무 많다.
북산과 그리고 목장
장불재에서 무등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길을 반 바퀴 돌아 나가다 보면 광일목장 후면부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이 이정표를 무등산 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하였는지 아니면 광일목장에서 설치하였는지 자세히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정표 중에 하나가 “ 이 길은 목장지대니 들어오면 안 됨” 이라는 표지판이 같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이 얼마나 많이 들락거렸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과, 등산객들이 목장 내로 들어와 아마 소를 많이 놀라게 했는가
보다도 생각을 하였고, 아니면 관리사무소에서 등산객들이 잘못 들어가 길을 잃고 너무 많이 헤매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 세운 모양
이다 라고도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결론은 그 길은 정맥 종주길이였다.
대부분의 정맥 종주군들이 그 길로 갔다.
이곳을 지나 200m 정도 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90도 직각 우측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간신히 통과하면 조금 전에 가지 말
라는 길과 만난다.
대부분의 종주군은 목장 내 길로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삼거리 갈림길까지 가서 가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숲길을 헤치고 가야 한다.
철사 줄[전기가 흐름]을 넘어 목장 내로 들어가면 잡풀이 없어 걷기는 편해지지만 주변 천지가 쇠똥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으니 걷기
도 불편하고 지나는 불청객을 커다란 뿔이 달린 소들이 뭐하는 인간들이 남의 집에 쳐들어왔나하고 바라보며 여차하면 들이받을 자세
로 바라보고 있다..
신선대 바위 위에는 무덤이
북산 정상을 오르기 바로 전에 신선대가 있다.
커다란 바위 몇 개[사람 키 두 배 정도 됨]가 길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어느 누군가 돌을 주어다가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래에도 묘가 하나 있고 돌 위에도 묘가 하나 있다.
묘에는 잔디가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돌 위에 흙을 퍼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 또 돌 위에 흙을 올려놓았다고 해도 흙이 유실되지 않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바위 위에 왜 묘를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후손들에게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차디찬 바위 위에 그것도 공기도 통하지 않을 바위 위에 묘를 조성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다.
이것이야말로 조상을 위해서 산소를 쓴 것이 아니라 완전히 후손들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후손들이 잘 살고 여유가 있으면 조상 묘가 잘 정돈되어 있지만 후손들이 살기가 힘들고 바쁘면 조상 묘
가 엉망인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고
버스가 산행 시작점에 도착하기 전부터 전부 우중산행을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비닐로 등산화 위를 감싸고 그 위에 다시 스패치로 덮는다.
앞에 가는 관운장 대장은 항상 스패치를 하고 산행을 한다.
가장 앞장서서 가기 때문에 이슬에 옷이 흠뻑 젖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런 준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젖으면 젖는대로, 세상 순리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그 자연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비가 많이 온다.
산행이 끝나갈 즈음에는 신발 속에 물이 흥건히 들어 있는 느낌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는 항상 가죽 등산화를 신고 다녔기에 이
번에도 가죽 등산화를 신고 왔더니 물이 빠지지 않아 발이 물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산길을 걸으면서 비가 폭우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 비가 무척 많이 오는 구나 싶었는데 그 소리는 바로 앞에 계곡의 물이 흐르는 소
리다.
계곡물이 아니라 산 전체가 계곡이 되어 흐른다.
지나는 길에는 흥건히 고여 있는 물이 주변에 디딜 곳이 없어 물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 너무 많다.
다행인 것은 능선을 타느라고 많은 곳에서 물이 빨리 빠져 나갔고 또 너덜지대가 많아 바위 위를 밟고 지나는 곳이 많아 다행이었다.
북산을 지나 유둔재까지는 쉽지 않은 길.
북산을 지나 유둔재까지는 오르내림이 아주 심한 구간이다.
실제는 심하지 않지만 오늘 비가 와서 길이 워낙 미끄러워 심하게 보였는지는 모르나 땀깨나 쏟아야 하는 구간이다.
북산에서 헬기장[지금은 사라지고 잡풀만 무성하지만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음]까지 아주 급경사를 타고 내려 가다가 헬기장에서 잠깐
오르는가 싶으면 또 다시 백남정재까지 급한 경사를 쑤셔 박힌다.
뒤에서 느긋하던 표돌이가 앞으로 잽싸게 치고 나간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앞에 가는 사람이 길을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아서 갈 수가 있어야지” 한다.
이런 머리는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사람이다.
백남정재에서 430봉까지 급경사를 오르고 약간 내려섰다가 447봉까지 또 다시 급경사를 오른다.
447봉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창공이 “이제 봉우리는 마지막이다” 하고 외치자 산도깨비가 “또 있으면 어떡할래” 한다.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마지막 봉우리인 코가 땅에 닿도록 올라야 하는 420봉이 나타난다.. 진
짜 마지막에 진을 다 뺀다.
이 봉우리를 마지막으로 유둔재에 도착한다.
리본이 없는 구간
이번 구간의 특징은 매달려 있는 리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래재에서 시작한 팀이건 아니면 외망포구에서 시작한 팀이건 이 정도 위치에 오면 준비한 리본이 전부 품절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리본이 너무 보이지 않는다.
무등산 도립공원에서 전부 제거 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따를 것 같다.
왜냐하면 어림마을에서 둔병재까지도 리본이 없는데 이곳은 전부 임도를 따라 갔을까.
또 무등산 우회로를 지나 꼬막재 부근에도 리본은 없고 신선대에서 몇 개 보일 뿐이다.
오래간만에 신선대에서 비실이부부 리본이 보인다.
리본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구간이다.
화순을 지나
그 지겹던 화순군을 오늘로서 끝을 낸다.
꼬막재를 끝으로 담양군으로 들어선다.
지도상으로 보면 화순군 북면은 옆으로 계속 조금 더 따라 올라가지만 구역상으로는 벗어나게 된다.
화순군은 산행로 정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정말로 힘든 구간이었다.
화순군수는 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호남정맥 전 구간 중 1/5 을 화순군에서 차지하고 있는데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화순군수는 반성해 보아야 할지어다.
누가 중얼거린다. “에이 화순군 벗어나면 길이 좋을 줄 알았더니 똑같네” 한다.
앞으로 담양을 들어가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여 본다.
정비되지 않은 산행로 덕분에 화순군에서 너무 고생하였기에...
자창리 마을
유둔재에 도착하였건만 차가 없다.
비는 폭우로 퍼붓고 있는데 이 빌어먹을 차는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앞에 가는 대원들이 자창리 마을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내려오자마자 차를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까지 세워 놓았을까.
기사 이야기로는 마을 앞에 세워 산행 후 씻으라고 그 위치에 세웠단다.
버스가 정류소 바로 앞에 서 있다.
남자들은 버스로 가려진 정류소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갈아입는다.
그런데 여자들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어떤 벙어리 노인이 오더니 뭐라고 자꾸 떠든다.
산 밑을 가리키며 따라오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
산 아래 있는 밤나무의 밤을 주워 가라는지, 사가라는지 전부 멍한 표정이다.
나중에 어떤 아주머니가 오더니 “ 여기 여자들 어디로 내뺐냐‘ 고 소리를 지른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니 아마 여자들이 씻고 물 값을 주기로 한 모양인데 그 돈을 안 주고 그냥 도망갔다고 아주머니가 악다구니를
쓴다.
이 벙어리 노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동네에 여자들이 홀랑 벗고 씻고 있으니 그것 구경하러 가자고 자꾸 손을 당기는 것을 왜 못 알
아 들었을꼬...
나이도 많은 분이 주책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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