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4구간[눌재- 대야산- 버리미기재]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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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구간[눌재- 대야산- 버리미기재]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백두대간 [완료] 2008. 1. 11. 10:41

     

     

    제 14 구간 {늘재 - 청화산- 조항산 - 대야산 - 버리미기재]

     

     

    2004 1. 25

              00 : 30 집에서 출발

     

            04 : 00 늘재도착

            04 : 25 늘재출발

            06 : 00 청화산

            07 : 45 일출      

            09 : 00 아침 식사

            10 : 30 조항산

            11 : 10 고모령

            13 : 00 밀재

            14 : 40 대야산   

            17 : 20 버리미기재

            22 : 20 집에 도착

     

     

     

    자다가 깜짝 놀라 눈을 떴더니 시계는 00시 05분을 지나고 있다.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짐이라 해 보아야 자기 전에 전부 챙겨 놓았고 먹을 것을 챙기고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서면 되는 것이건만 오늘은 왠지 시작하기 전

    부터 몸이 움츠러든다.

    지난 몇 일간 추위 때문일까.

    아주 강추위였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17년만의 강추위와 구정한파 또 눈도 많고 강풍이 불어 힘든 산행이 예상 된다.

    이번 겨울에 제발 눈도 오지 말고 춥지도 말고 이 몸 하나 온전하게 보존하게 해 달라고 계속하여 간구했었다.

    그런데 지난번 속리산 구간을 끝내고 나니 그래도 겨울인데 하얀 설원 속을 한번 걸어 보아야 무엇이든지 남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에 조금만 눈을 내려 주세요. 했더니 찬스는 이때다 싶었는지 그냥 퍼붓고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모든 것이 얼어 붙

    었다.

    “이번에 빠지면 안돼. 이 추운데 왜 가야 되냐니까. 자다말고 어설프게 왜 이 짓거리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니까. 오늘은 그냥

    쉬어, 나중에 봄이 되면 내가 따라가 줄테니까”

    불을 켜자 눈을 버쩍 뜬 집사람이 중얼거린다.

    깨워 주어야하는데 깜박 잠이 들어 미안한 생각을 엉뚱한 곳으로 돌린다.

    “남하고 똑같이 생활해서는 이루어 놓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부자가 그냥 부자인줄 알아.

    그 사람들 남 잘 때 잠 안자고 일했고. 남 먹을 때 안 먹고 저축했기 때문이야. 알았어“

    챙겨 주는 도시락을 받아든다.

    이것은 아침이고 이것은 점심인데 국이고 밥이고 일일이 가르쳐주지만 건성으로 대답한다.

    평소에는 이 시간까지 게임에 빠져 있을 아들 녀석도 안 보이고, 채팅하느라 바쁜 딸년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명절에 계속 놀아서 이젠 놀기에도 지쳤는 모양이다.

    “조심해서 다녀와요. 이따가 봅시다” 하며 핸드폰을 건네준다.

    간단하게 오늘 하루의 이별의식을 아내와 하고 집을 나선다.

    평상시에는 핸드폰을 내가 지녀 본 적은 없다,

    오로지 산에 갈 때 만 내 손에 쥐어 준다.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핸드폰이 세 개가 되건만 모두 각자가 가지고 가 버린다. 

    핸드폰이 내 손에 쥐어 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걸고 받는 것만 배워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애들은 무슨 할일이 그렇게 많은지 전화요금이 대달 10만원 내외가 되는 것을 보면 그냥 전화기를 확 부셔 버리고 싶은 심정이

    건만 세태가 그런 걸하고 위로하고 만다. 

    나중에 모든 것이 자동화 되었을 때 애들 없으면 꼼짝 못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놔두고 만다.

    층계를 1층까지 내려 왔을 때 후배 녀석이 올라 온다.

    “ 너 이 시간 잠 안 자고 어디가냐 ”

    “ 피시방에 할일이 있어서요 ”

    글쎄다.

    지금 이 시간에 게임하러나 가지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을까.

    빌어먹을 자슥. 장가나 갔으면 지금 이 시간까지 돌아다니지 않을게다.

    택시를 탔더니 그 기사 양반 이 시간에 배낭 매고 나서는 별 희얀한 미친놈 다 보았다는 표정이다.

    활법원 앞에는 콜밴이 벌써 와 있고 짐을 실으라는 듯 뒷문은 열어 놓고 있다.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시간이 조금 늦는 것 같다.

    시간이 어중간해서인가 보다.

    “형님, 이번에는 기도가 조금 부족했던것 같습니다. 기도를 조금 더 하시죠. 그랬으면 눈도 적게 오고 춥지도 않을텐데 말입니다” 

    권수가 조금 아쉽다는 듯한 표정이다.

    “ 조금만 오라고 기도 했어, 항상 네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나는 이 말을 신봉하고 있으니까

    비록 교회는 안다니지만 내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얼마나 좋은 말인가.

    확실한 신념을 갖는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엄청나게 중요하니끼!

    기온이 아직도 차다. 상당히 많이 내려가 있다.

    오늘 시산제 지낼 물품을 실었다.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더니 돼지머리를 권수한테 건내 준다.

    엄청 무거울 것 같다.

    하지만 너 오늘 수지 맞았다. 그것 업고 가면 일년신수가 훤해질게다. 

    나에게 건네진 것은 정종 한 병. 되게 무겁다.

    배낭에 넣으니 배낭을 들지도 못하겠다.

     

     

     

    새벽 2시

    버스가 미끄러지듯 시내를 빠져 나간다.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국도로 가는지 좌회전을 하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지도 않아서 잠이 들었다.

    이제는 버스에서 자는 것도 이력이 나서 불편한데도 자는 것을 보면 습관이란 무서운가보다.

     

     

    04 : 00 늘재

     

    버스 안에 불이 켜진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잠도 자지 않았는가보다.

    버스 길안내 하랴.

    운전기사 조는 것 감시하랴 잘 틈이 있겠는가.

    눈이 많이 와서 스패치를 차야 하는데 차는 방법을 모르겠다.

    눈이 오는 산 속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운전면허 시험치를 때 T자 코스, S자 코스 뭐 이러한 길이 있길래 이렇게 구부러진 길이면 차 세워 놓고 걸어가면 되지 이런 길까지

    악착같이 끌고 간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고 그런 길에서 차가 빠지면 시험에 떨어지는 그 시험의 불합리성을 강조하곤

    했었다.

    그래서 눈이 오고 추울 때 왜 굳이 산에 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춥고 눈이 오는 날에는 산에 간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

    다가 이번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야 하는 팔자가 되었다.

    스패치만 하고 아이젠은 도중에 사정을 보아서 하겠다는 서대장의 말에 스패치만 착용하는데 빌어먹을 내 종아리에는 작다.

    큰 것으로 샀는데도 작은 것을 보니 옷은 L 사이즈가 맞지만 이것은 아닌 모양이다.

    할 수 없이 그냥 종아리에 두르고 출발하다.

    자크를 채우지 않아도 찍찍이가 워낙 성능이 좋아서 풀러지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강과 낙동강의 분기점 표지점이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눈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 

    바람이 한번 휘몰아쳐 뺨을 후리니 정신이 버쩍 든다.

     

     

     

    06 : 00 장갑을 벗었다 다시 끼면 손이 너무 시려

     

    지난번에 문장대 구간에서 보았을 때는 청화산 오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더니 그리 가파르지는 않은데 하늘의 별 쳐다 볼 여유가

    없는 것을 보니 고개를 숙이고 걷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총총하다.

    들조차 추워 보인다.

    이후 한번 고개를 들어 별을 쳐다 본적은 없다.

    묵묵히 오늘의 목표를 향해 진군을 할 뿐이다.

    지리산을 지나고 나서 속리산에 이르기까지는 처음 시작할 때 하늘의 별부터 구경하고 시작했는데 속리산을 들어서고 나서는 별을

    쳐다 보기가 쉽지 않다.

     

    124부대가 아닌 684부대원 같다.

     

    정상 가까이 왔는지 암릉이 많이 나타난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불빛이 많아 세어보니 5군데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

    5곳의 마을이 있는가 했더니 조금더 올라가서 세어보니 7군데의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시골마을까지 가로등 불빛이 밤이 새도록 불 밝혀져 있는 것을 보니 보기가 참 아름답다.

    낮에 여기서 조망을 했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밀재 가기 전에 지나 온 길을 바라보니 속리산 바로 앞에 있는 청화산이 가장 높아 보였으니까 여기서 앞으로 갈길 바라보고, 지나 온

    길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손이 시리다.

    그런데 장갑의 끼면서 느낀 것인데 어느 장갑이든지 처음에는 손이 떨어질 듯이 시리다는 사실이다.

    속에 목장갑을 끼어도 30분 정도가 지나야 손에 열이 후끈후끈 나기 때문에 미리 장갑을 끼고 있지 않은 이상 처음에는 손이 시릴

    각오를 해야 한다.

    아니면 한번 낀 장갑은 계속 벗지 말던가..

     

    청화산 정상에 올랐으나 몰아치는 광풍과 눈보라가 앞을 가로 막고 또 앞을 가로막는 엄청난 양의 눈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이 부근에 내린 모든 눈을 우리가 가는 길에 퍼다 놓은 것 같다.

    갓바위재에 이르기까지 눈은 허리에 차 오르고 미끄럽기는 얼마나 미끄러운지 앞에 가는 김영길 어르신 미끄럼 타느라고 정신이 없다

    내가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미끄럼을 타는데 완전히 쓰리쿠션 먹었다. 

    내가 한방 미끄럼을 타 보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엉덩이가 안 아픈 게 다행이다.

     

    언제 솟아올랐는지 청화산의 붉은 해가 떴다.

    그야말로 붉은 해다.

     

     

     

    해가 저렇게 붉은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나 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날쌘돌이 두 녀석이 나타나더니 뒤에서 길 비키라고 난리다.

    눈이 잔뜩 쌓여 있는데 어디로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는지 영 싸가지가 하나도 없는 놈이다.

    길을 비켜 주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휘익 가버린다. 

    뒤에 또 오는 놈이 있어 물어보니 앞에 갔던 놈과 일행이고 여주에서 왔단다.

     

     

    08 : 30 쌓인 눈은 허리에 차 오르고

     

    갓바위재를 지나니 공터가 나타나고 여기서 시산제를 지내다.

    정종 한 되 병을 들어내니 배낭이 무척 가볍다.

    권수가 돼지머리를 꺼내자 저걸 누가 가지고 왔냐고 모두들 궁금해 한다.

    관운장을 제주로 모시고 제를 올리다.

    모두 정성껏 제를 올리다.

    올 한해도 무사히 완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원했다.

    특히 나는 간절히 빌었다.

    올 한해를 무사하게 남은 이 조국강산을 완주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시산제 지내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도저히 추워서 못하겠다.

     

     

     

     

     

     

     

     

     

     

     

     

     

     

     

     

     

     

     

     

     

     

     

     

     

     

     

     

     

    손이 수전증 걸린 것처럼 떨리고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 차갑고 얼음 같은데 먹을 기분이 나겠는가.

    가져온 음식보다도 시산제에 놓였던 과자가 훨씬 따뜻한 걸

    30cm 정도 쌓인 눈을 전부 치우고 아침 식탁자리를 마련 했지만 도저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다음부터는 보다 더 따뜻한 먹거리를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주변 정리를 하는데 아침에 지고 왔던 빈 술병이 돌아 다닌다.

    무거운 것 여기까지 들고 왔으면 됐지. 이 병까지 또 매고 가야하나 싶다.

    큰 병을 넣으니 배낭이 폼이 나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배낭 꾸리는 게 귀찮아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다니는데 큰 병까지 넣으니 더 폼이 나지 않는다.

     

     

     

     

     

     

     

     

     

    10 : 30 조항산의 눈꽃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아침 식사를 하고 조항산을 향하는데 지도상 거리는 15분으로 되어 있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조항산을 향하는 중간에 암릉이 있는데 좁은 길에서 전부 아이젠을 차느라고 난리다.

    전부 길을 비켜 주지도 않는다. 

    옆으로 비켜 앞질러 보니 5m 정도 되는 바위에 줄이 있는데 1/3정도 밖에 길이가 없고 나머지 내리막은 바위 가까이 뻗어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내려가야 하는데 엄청나게 위험하다.

    길은 반들거리지, 줄은 없지, 미끄러짐과 동시에 가까이 있는 나무를 잡아야 하지 이 순간만은 원숭이가 되어야 한다.

    밑에서 누가 발이라도 받쳐 주면 좋으련만 전부 자기 내려 갔다고 뒤는 쳐다보지 않고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이 곳을 지나면서 암릉을 타고 조항산을 오르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은 신이 빚어 놓은 모습이다.

     

     

     

     

     

     

     

    눈꽃 축제, 눈꽃 축제 하더니 이런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나무위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 아래에도 눈이 쌓여 있다는 게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눈이 어떻게 나뭇가지 전체를 싸고 있는지 이 자연의 섭리에 감탄사를 외친다.

    이 눈이 약간 녹아서 수정 얼음처럼 되면 그 아름다움은 환상의 극치라 하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조항산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대야산이 보인다.

     

     

     

    오늘은 저기까지인가.  아니다.

    지도를 보니 대야산에서도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조항산에서 사진을 찍으나 안개 때문에 시커멓게 나올 것 같다.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구인지도 모를 그런 사진이 나올게 뻔한데도 사진을 찍겠다고 폼을 잡으니 이 얼마나 우숩나.

    조항산을 내려서는 길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무릎에 하도 힘을 주어서 앞 쪽 무릎이 아프다.

    건너편으로는 누가 광산을 하다 말았는지 양쪽으로 산을 어마어마하게 파헤쳐 놓았다.

    바위 산이라 그런지 나무하나 자람 없이 휑하니 빈 공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느 자슥이 저렇게까지 산을 망가뜨려 놓았는지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죄를 지을게다.

     

     

     

    11 : 00 고모령의 샘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미끄러운 길을 힘들게, 아주 힘들게 도착 한 곳은 고모령

     

    바로 밑을 보니 샘이 있다.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샘이다.

    앞으로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샘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구간 중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힘들게 왔다.

    뒤에 따라 오다 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갔다가는 낙오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되겠다 싶다.

    앞으로 나서야 오늘 구간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서 앞으로 나선다.

    눈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눈이 부시고 눈에서는 눈물이 난다.

    고글을 찾아서 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춥고 배 고프다.

    먹는 것을 꺼내 먹고 싶지도 않다. 귀찮다. 그냥 걷는다.

    속도를 높이면 기운이 날까 싶어 속도를 더 높여 본다.

    앞에 가는 팀들이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오르막 주변에 잡고 올라 갈 나무조차 별로 없다.

    한 무더기의 팀 속 뒤에는 재호가 뒤를 따라 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재호를 따라 붙었을 때는 같이 가던 팀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재호 뒤를 따라 가려니 재호가 앞으로 가라고 재촉한다.

    “뒤에 또 오는 사람 있죠” 재호가 묻는다.

    “서너 팀이 아직 있어” 대답하니

    “그럼 신경쓰지 말고 가세요” 

    앞으로 달려 간다.

    배가 고프다.

    앞에는 관운장께서 가시고 횡성 아가씨가 다리가 아픈지 무릎에 지지대를 감고 있는 게 불편한 모양이다.

    항상 아무 말 없이 남보다 앞장서 가더니 오늘은 어쩐 일일까.

    그런데도 나보다 빠르다.

    신기하지 않은가.

    시계는 12시 50분을 지나고 있다.”시계를 보다가 내리막을 보지 못해 그냥 미끄럼을 탔다.

    엄청난 내리막이다.

     

    오늘 두 번째다.

    처음에는 쓰리쿠션 먹었고, 지금은 그저 막무가내다.

    엉덩이가 돌부리에 부딪혔는지 엉덩이가 아프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으련만 모두 다 또 오르기 시작한다. 따라 붙는다.

    거의 다 올라가서는 바위 밑에서 바람을 피하여 식사할 자리를 찾는다.

    산 정상에 가서 먹지 여기서 식사를 하느냐고 이야기 하지만 전부 식사 할 자리를 찾느라고 바쁘다.

    보온병에 들어 있는 국은 미지근 한 온기는 있으나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밥은 완전히 얼어서 돌덩이가 되어 버렸다. 

    수저로 뜨려 해도 밥은 이미 돌이 되어 버렸고 억지로 국에 말았으나 국만 더 얼어서 먹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국만으로 점심으로 때우다.

     

    식사 후 돌아서니 길이 햇갈리게 되어 있다.

    밑으로 내려가는 길에 대간 리본이 붙어 있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 분명히 오르는 길이 맞는데 리본이 내려가는 길에 달려 있으니 귀신 곡할일이 아닌가.

    지도를 본다.

    옆으로 또 길이 있다.

    눈이 없으면 질러서 왔을 길을 눈 때문에 곧이 곧대로 돌아서 왔다. 

     용추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앞에 먼저 가서 길을 확인하던  대원이 올라 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오르면서 희한한 바위가 하나 있다.

    누가 올려 놓았는지 집채만한 바위가 있다.

     큰 바위 하나가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는데 쓰러지지도 않고 요상스럽게 앉아 있다. 얼씨구 뒤에는 행란칸이 또 있네.

    뒤로 돌아가서 보니 앞마당이 있고 큰 마당도 또 따로 있고, 또 마당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놀고 있다. 

    이름하여 이것이 집채바위인 모양이다.

     

    14 : 40 대야산의 공포

     

    여기서  대야산을 이르는 구간은 어떻게 갔는지조차 모르겠다.

    암릉 투성이이고. 밧줄 투성이이고 장갑은 두껍고 밧줄도 미끄럽고. 바위도 미끄럽다.

    왜 이렇게 위험 구간은 많은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미끄럽다. 

    공포와 긴장의 연속이다. 

    주의하고 주의하면서 대야산 정상에 도착하니 문경산악연맹에서 세워 놓은 대야산 표지석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왜 세워 놓지 못하는지 ‘’‘’‘’‘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고 손도 시리고 해서 장갑을 바꾸어 끼였다.

    대야산에서 내려서는 길이 한마디로 엄청스럽다.

    앞에 가는 봄비가 아무 거리낌 없이 원숭이가 나무 타듯이 쏜살같이 내려간다.

    가볍게 내려 갈 줄 알았다.

    여자도 한숨에 내려가는데 별 것 아니구나 싶어 줄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리는 허공에 뜨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손아귀의 힘과 줄에 있는 매듭 뿐이었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뼘의 공간도 차지하기가 힘들다.

    손아귀의 힘이 빠지면 매듭에 다시 손이 걸리는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공포가 밀려 온다.  

    위에서는 스틱 던질테니 받으라고 소리친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내가 두 손으로도 버티기가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던지는 스틱을 받으라니. 누구 죽는 꼴 볼려고 그러나.”

    “스틱 못 받아.  던지지 마”

    저런 못난 놈 그거도 못하냐는 눈치다.

    내 손에 쥐고 있는 스틱도 어찌 할 줄 모르겠는데 저 위에서 던지는 것까지 받으라니 누구를 죽이려고 작정했구먼. 

    손에 쥐고 있는 스틱이 어딘가에 걸려 움직일 수가 없다. 힘껏 당겼다.  

    나중에 보니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끝이 약간 휘었다.

    허나 할 수 없다.

    지독한 공포가 엄습해 온다.

    울고만 싶어진다.

    대야산을 오르면서 줄 잡느라고 이미 진을 다 뺀 상태라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 뿐이다.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공포와 삶에 대한 애착을  동시에 느낀다.

    평생에 가장 심하게 느낀 공포의 순간이다.

    무릎을 바위에 붙이려 하지만 몸은 자꾸 줄에서 멀어진다.

    그냥 허공에 매달려 있다.

    차라리 곰이라면 재주나 부리지

    2/3의 정도 내려 와서는 줄도 없다.

    알아서 옆으로 기어야 한다.

    다 내려 오니 맥이 빠지고 앞에 간 팀을 찾으니 벌써 어디로 달아 났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완전히 지옥을 탈출한 기분이다.

    뒤에서는 악을 쓰는 여자의 괴성이 산을 찢어 놓는다.

    뒤로 다시 돌아가서 도와 줄까 했지만

    아직도 가슴이 떨려 온다.

    어떻게든 내려 와서 따라 오겠지

    천천히 간다.

    그러나 뒤에서는 따라 올 생각을 않아서 속도를 다시 높이지만 앞에서는 어디까지 갔는지 모르겠고 떨리는 가슴은 아직도 두근

    거리고 혼자 가려니 산돼지가 뒤에서 달려드는 것 같고 도저히 불안해서 걸을 수가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여주팀 중 여성대원이 낙하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15 : 50 촛대봉

     

    속도를 높이자니 기운이 없다.

    새벽부터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에 토스트 조그만 한 것 몇 개가 전부다.

    힘이 든다.

    아무리 기운 차리려 해도 기운은 점점 더 빠지고 배낭 속에 들어 있는 먹을 것조차 꺼내기가 싫다.

     무엇보다도 춥다. 한마디로 춥고 배고프다.

    촛대재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본다.

    월영대, 대야산, 버리미기재 표시가 보인다.

    누군가 버리미기재까지 가는 시간을 지워 놓았다. 

    촛대봉을 오르는 길이 또 다시 밧줄 투성이다.

    점점 맥 빠지게 만든다.

    제발 밧줄 좀 나오지 마라.

    어찌어찌하여 촛대봉에 오르니 앞에 갔던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고맙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이제 앞에 보이는 곰넘이봉만 넘으면 된다.

    여기서 곰넘이봉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16 : 50 곰넘이봉에서 본 대야산은 알프스에 와 있는 착각

     

    곰넘이봉 바로 앞에 밧줄이 나타나는데 정말 울고 싶다.

    왼쪽 팔과 무릎을 바위에 누르면서 아주 힘들게 오른다.

    지겹다.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대야산이 보이길래 대야산의 공포는 잊은 채 대야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본다.

    스위스의 어느 알프스 산을 바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카메라를 꺼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으니 필름도 끝난다고 신호를 보낸다.

    필름 되감기는 소리가 드르륵....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고개를 들어 옆을 보는 순간 무슨 바위에 젖꼭지가 두개 예쁘게 달려 있다.

    젖꼭지도 아주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짝짝이다.

    하나는 남자 젖꼭지 같고 하나는 여자 젖꼭지 같은데 젖꼭지 크기는 남자 것이 훨씬 더 크다.

    왜냐하면 여자 젖꼭지는 유방의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긴 것이 오히려 젖꼭지가 더 작으니까.

    혹시 처녀 유방이고 젖꼭지인가

    남자 젖꼭지는 대들어서 깨물고 싶다. 깨물면 떨어질 것 같다.

    어찌 보면 구형 전화기 같기도 하다..

    곰넌이봉을 넘어서니 맨 앞에 가는 대원은 벌써 헬기장을 넘어 뛰어 가고 있다.

     

     

     

    17 : 20 버리미기재

     

    곰넘이봉에서 주위를 살피니 조망이 좋다.

    저 아래 버리미기재로 넘어 오는 길이 보이는데 길이 엄청 작게 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 갈길이 먼 모양이다.

    이제 저기만 내려가면 되는 구나.

    헬기장의 하얀 눈을 넘어 서는 순간 버스가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한 낙엽송 숲을 내려서면 구간 청소를 잘 했으니 더 이상 지저분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종이가 나무에 걸려

    있다.

    우와 이제 살았다.

    버스에 오르니 버스의 시계는 17시 20분을 가르키고 엄청난 갈증이 몰려 온다.

    배낭 속에 들어 있던 물은 버쩍 얼어 있다.

    죽으라고 흔든다.

    얼음물을 버적거리며 씹어 먹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옷을 갈아 입고 맨발을 맛사지 하니 이제  살았는가 싶다.

    이후 한 시간을 넘게 뒤 팀들이 도착한다.

    김영길 어르신이 너무 진이 빠졌는지 저녁 드시러 내려오지도 못한다.

    버스에서 그냥 주무시겠단다. 

     끝날때까지 건강하세요

     

    얼음골가든에서 먹는 식사는 좀 잘못된 것 같다.

    먼젓번에도 느낀 것인데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금방 배가 부르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아주 조심했는데 금방 배가 불러 많이 먹지도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막걸리 탓인가, 죽 때문인가. 이유를 모르겠다. 막걸리 탓인지 머리가 휭 해진다.

    오늘은 너무 힘이 들었다.

    이번 구간처럼 난 코스라면 에베레스트를 못 갈까

    겨울 등산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겨울 등반을 할 때면 생각을 하고 또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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