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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구간[갈령 - 속리산 -눌재]우리의 아름다운 강산/백두대간 [완료] 2008. 1. 11. 10:32
제 13 구간 [갈령 - 피앗재 - 천황봉 - 문장대 - 늘재]
2004 1 11
05 : 10 갈령출발
05 : 45 갈령삼거리
06 : 10 형제봉
06 : 45 피앗재
09 : 30 천왕봉
10 : 10 천왕문
10 : 30 입석대
11 : 10 신선대휴게소
11 : 40 문장대
12 : 20 개구멍바위
14 : 40 밤티재
15 : 50 늘재
오늘 나는 종주를 시작하면서 많은 기도와 다짐을 해야 했다.
“오늘은 해가 아주 멋있게 뜨겠네. 우리 모두 다같이 각자가 가진 소원을 태양신께 빌어 보세요.
그럼 오늘 한해가 만수무강할 것입니다. 라는 김대장의 외침을 듣지 않아도
“ 오늘 하루를 무사히” 기도했다.
천왕봉을 오르면서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우와 저 태양이 나를 지켜 주겠지” 빌었다.
오늘 종주기를 쓰기에 앞서 내가 가지고 있는 종주기가 다섯 권이 있는데 이번 구간을 통과하면서 가슴 아픈 종주기가 있기에 먼저 소개
하고자 한다.
부산사람 조방래씨가 쓴 종주기인데 한번 다같이 읽어 보고 우리 모두가 이것을 거울삼아 고칠 것은 고쳐야겠기에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2001. 1월 6- 7일이니 날자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이것을 읽어보면 우리가 이 구간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 얼마나 신의 가호가 깃들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중간에부터 일부만 싣겠습니다.
이제야 사람들은 앞뒤 숫자 확인에 여유를 가진다.
눈만 빠꿈이 내놓은 채 진군을 한다.
6.25 전쟁 시 압록강을 넘어 밀고 내려 온 중공군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동태 같기도 하고 ‘’‘’‘’‘’
잠시 전열을 재정비하고 눈으로 덮힌 암릉 사이로 내려 갔다가 다시 오르기 위해 위를 쳐다 본다.
끝이 안보이는 직각 암벽에 주렁주렁한 밧줄이 얼음눈과 함께 군데군데 늘어져 있다.
한사람이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이 얼음눈판에서 통과하느냐 못하느냐 아니면 죽느냐 사느냐
가 관건이다.
이게 바로 개구멍인 것 같다.
첫 시도에 들어간다.
작은 바위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서 두 번째 바위를 타려고 한다.
무릎이든 팔꿈치든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해야 한다.
뿌직하고 무릎이 위험신호를 보낸다.
“미안하다 우선 올라 가 놓고 보자 ” 혼자 말로 위로한다.
이어 세 번째 바위가 기다린다.
두 손으로는 밧줄을 두발은 바위에 버티고 오르기를 시도하지만 이미 얼음덩어리로 변한 바위라 한없이 미끄럽기
만 하다. 실패다.
이번에는 온몸으로 바위를 껴안다시피하여 팔만으로 시도하지만 다리가 받쳐주지 않아 미끄러진다.
이때 먼저 올라간 도사장이 왼팔을 잡아 준다.
그래서 오른팔로 자일을 잡고 두 무릎으로 바위 표면을 찍듯이 확보해 간신히 성공한다.
너무 고마운 도사장도 몹시 지친 표정이다.
뒤 사람을 위해 교대하기로 한다.
처음 온 부부를 나는 당기고 밑에서는 밀고 하지만 여러번 미끄러진다.
요령부득인지 도 사장에게 다시 인계하고 먼저 출발한다.
이 곳이 바로 개구멍지대인지 확인한다.
먼저 몇 명이 개구멍을 통과 했는지 알 수 가 없다.
일단 따라 붙기 위해 급히 발자국 흔적을 찾았으나 서너 발자국만 희미한 흔적을 남기곤 아예 눈에 파묻혀 방향
이 묘연하다.
나름대로 감을 잡고 추적하다가 깊은 낭떨어지기를 만난다.
“아이구 이게 무슨 날벼락이구” 비명이 터진다.
다시 돌아오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발자국마저도 눈보라에 묻혀 흔적을 감춘다. 간신히 돌아와서 개구멍을 통과하고 있는 일행을 기다려 합류하기로
한다.
해는 뜬 것이 분명하지만 눈보라와 강풍은 성날대로 성이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드디어 합류한 일행과 다시 길을 찾지만 몇 번이나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링반데룽( 등반 도중 눈보라 등으로 길을 잃어 계속 한 곳을 중심으로 돌게 되는 현상)에 걸려든 것이다.
영영 나타날 것 같지 않은 길은 뒤늦게 합류한 회장이 선두를 서고 나서야 겨우 뚫리기 시작한다.
그새 적설량도 불어나 깊은 곳은 허리까지 빠진다.
이쯤이면 암릉은 끝난 지역이라 짐작하는데 갑자기 앞을 가로 막는 틈새진 바위가 나타난다.
배낭 한개 지날 수 있는 크기의 통로다.
그대로 반드시 눕다시피 빠져 나가면 발 밑은 사람 키보다 긴 내리막과 바로 연결된다.
이것으로 바위는 더 이상 출몰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하여 능선상을 강타하는 눈보라와 강풍은 여러 차례 눈밭에 나동그라 질 만큼 강력하다.
어느 한순간에 눈앞에 헬기장이 펼처지더니 바로 그 위에 문장대가 버티고 있다.
우리는 문장대를 지나서 오전 9시 그 너머 휴게소에 도착 했다.
먼저 도착한 팀의 너댓명이 국밥을 먹고 있다.
난롯불이 활활 타고 있어 실내는 따뜻하다.
젖은 지도를 꺼내 확인하니 5분의 1도 오지 못한 지점이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앞으로 5시간 30분을 더 걸어야 한다.
적어도 속리산 정상에라도 오르려면 문수봉-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천왕봉 정상도 밟을 수 있다.
“오늘 산행은 이만 접는다”는 회장의 한마디로 전부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이때부터 식사를 한다. 옷을 말린다. 몸을 녹인다 ‘’‘ 해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된다.
산행대장이 인원을 점검하려는 참이다.
누군가가 “마지막 2명위 뒤에 처졌다” 한다.
소방서라고 별명이 붙은 정회원과 오늘 처음 등반한 산우 중 한명이 보이지 않는다.
“미착 확인” 과 동시에 두레산악회 회장과 다른 대원 한사람이 잽싸게 무장을 하고 “왔던 길을 되 살펴 보아야
겠다” 고 출발을 한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안에 있던 아주머니가 “전화 왔어요 ” 하고 소리친다.
“무신 전화고 ” 의아해 하면서 일행 중 누군가 받는다.
119 구조 본부에서 걸려 왔다.
“긴급구조요청이 접수 돼 출동했는데 현재 2명 중 한명이 위독한 상태라 한다.
다른 한명이 핸드폰으로 타전하면서 우리 쪽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어 속리산 국립공원으로부터도 연락이 닿는다.
“지금의 기후 상황으로는 구조대의 접근이 불가능하니 자체적으로 구조를 시도 하라는 부탁이다.
사태의 긴박성으로 상황이 급변한다.
구조본부와 관리소를 잇는 통신만으로 상황을 타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긴급구조대를 편성한다.
1대 5명이 먼저 출발한다.
잇따라 3대 4대가 구조에 나선다.
강풍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길 흔적을 더듬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다투는 삶과 죽음의 계곡에 빠졌음을 통감하고 구조 의지를 다진다.
제 2대가 출발 한 후 5분이 지나 출발한 3대에 나는 편성되었다.
우리가 눈을 뚫고 도착한 지점은 개구멍을 통과한 암릉 사이의 안부지역이다.
한눈에 보아도 완전히 탈진한 낙오자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강풍과 얼음 경사면으로 한 사람이 서 있기도 어려운 그 위치에서 구조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죽음 일보 직전에 있는 낙오자로부터 젖은 장갑을 빼내고 새 장갑으로 갈아주고 옷을 입혀 준다.
그리고 손발을 주물러 준다.
가지고 간 설탕물은 얼었고 우황청심원마저 굳어 있다.
꽉 닫아 버린 입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다.
위기감에 빠진 상황이다.
몹시 당황한 우리는 일단 주위의 나무를 베어내고 끈을 구하여 들 것을 급조한다.
나는 한사람도 옮겨가기 힘든 경사면에 들 것이 움직일만한 폭의 길을 내기 위해 러셀 작업을 서두른다.
8명이 들것을 이동하려고 하지만 움직이지를 않는다.
누구나 지금의 위치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어쨌든 앞의 봉우리를 하나 넘어야 한다.
거의 70도 각도의 눈 덮인 경사면을 우회하기 위해 앞에서 두 사람이 들어 올린다.
경사면 쪽에서 세 사람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눈 속에서 받쳐주고 뒤쪽에서 세 사람이 함께 합세하여 가까스로
우회하고 보니 이젠 오르막 경사를 넘어야 한다.
한 걸음 전진하면 다시 두 걸음 미끄러져 내린다.
이러다보니 들것에 묶인 낙오자 따로, 들 것 따로다.
다시 묶기가 바쁘다.
그런 와중에서 낙오자의 용태는 악화일로다.
울부짖고 싶을 뿐이다.
진도 없는 작업에 우리도 점점 지친다.
지칠대로 지치고 전신이 언 상태인 일부 구조대원이 교대하기 위해 휴게소로 철수한다.
거기서 다시 119구조대와 상의한다.
헬기도 뜰 수 없는 최악의 기상조건에다 구조장비마저 없는 우리는 한계를 느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조전문대가 도착하여야 하는데 ”“”‘’‘’ 답답하다.
우리로서는 현상유지를 위한 행위밖에 방법이 없다.
허나 “구조대는 벌써 몇 시간 전 올라갔으나 워낙 많은 적설량과 강풍으로 접근로를 찾을 수 없다” 는 속 타는
말만 핸드폰으로 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이동은 낙오자에게 결정적인 위험을 부를 수 있으니 구조대가 올 때까지 일단 바람이 덜한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불을 지펴 몸을 녹여 주기로 결론을 내린다.
모두가 나무를 구해다 불을 지핀다.
우리는 “명이 다한 목숨이라면 이렇게 쉽게 발견되지 못하였으리라. 분명 구출 되어 살게 되어 있다” 며 최선을
다한다.
나는 “틀림없이 구조 될 것” 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가진다.
순조롭게 타오르는 불 옆에 눕혀진 낙오자의 상태는 아까보다 훨씬 좋아지고 있다.
이때쯤이면 따뜻한 물이나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면 허기도 면하면서 어느 정도 거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그렇게만 되면 업든지 부축하든지 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급히 휴게소로 와서 시래기 국이 들어 있는 보온밥통을 먼저 보낸 뒤 급히 젖은 옷을 갈아 입고 장갑도 새
것으로 낀다.
다시 나서려는 순간 김 사장이 불쑥 들어오면서 “돌아가셨습니다 ” 청천벽력 같은 비보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2001년 1월 7일 12시 40분 숨 막히는 정적의 시간이 끝날 것 같지 않다.
휴게소 아주머니의 악쓰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사람의 목숨도 못구한다냐!”
휴게소 아저씨도 원망스럽다며 투덜거린다.
순간 울화가 치밀어 패주고 싶은 심정이다.
119구조본부에 연락을 하고 우리는 사체의 운구를 위해 다시 조난 장소로 돌아간다.
“ 이놈의 눈은 언제 멈출라나 ”“”‘’ 우리는 악천후를 원망하며 맥 빠진 걸음으로 그곳에 도착한다.
이미 모두가 전부 마음과 몸이 탈진한 상태이다.
게다가 앞에는 배낭이 빠져 나갈만한 통로 뿐인 바위 장벽이 가로 막고 있다.
일단 현 상태에서 모두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현재의 모든 상황을 119구조본부와 속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사망자의 직장, 가족 등에게 통보하기로 한다.
모두가 여러 가지 회오로 죽음처럼 깊은 상념에 빠진다.
산 자에게 시간은 흐르는 것 .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봐서 구조대가 도착한 것 같다.
관리소장 등 4명이 얼굴을 내민다.
상황은 이미 통화로 끝이 난 상태여서 몇마디로 논의를 끝낸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4시에 운구를 위해 출발한다.
관리소장은 운구팀에 우리쪽 몇사람의 지원을 요청한다.
모두가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끝까지 보살피는 게 우리의 도리지만 지칠대로 지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슬슬 꽁무니를 빼자 회장이 불호령을 내린다.
“모두 같이 가기로 해”
그러나 명령은 불발로 그친다.
상황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죽음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생존의 본능을 자극했으리라. 회장의 화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 하산 길로 발
길을 돌린다.
엉거주춤 망설이다가 꽁무니에 따라 붙지만 자꾸만 뒤가 캥긴다.
내내 찜찜한 마음으로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 지금은 이미 늦어서 ”“”“‘” 가고 없을 걸“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무사히 하산한 후 인원을 점검한다.
총원 22명에서 사망 1 운구팀 4 하산팀 17명으로 확인한다.
회장을 포함한 네사람에게 정말 경의를 표한다.
한편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봉사정신은 희생정신이 체질화 되었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물론 나름대로 자신만의 절실한 사정 이 있다.
나의 경우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지친데다 양쪽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더는 쓸 수 없을 만큼 통증을 느끼는
중이다.
운구 팀에 가더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시체에 대한 두려움 또한 솔직한 심정이다.
하여간 하산을 끝낼 때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아 괴롭다.
모두가 납덩이같은 침묵으로 눈길을 헤치며 묵묵히 내려간다.
“그래도 참여할 것을‘’‘’ ” 후회한다.
그 무섭던 눈보라도 중간지점 쯤 와서는 한풀 꺽여 이제 소롯이 내리는 작은 눈송이로 바뀐다.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일행은 그 “악몽의 조난”을 잊은 듯 설화와 설경에 도취된다.
이제야 생각도 못했던 후원회 리본도 챙긴다.
준비해 간 캠코더로 잠깐이나마 설경도 담아 본다.
산을 거의 벗어났을때 어둠도 함께 찾아온다.
다시 추위가 찾아온다.
한없이 뻗어 있는 차도에 눈만 수북이 쌓여 있다.
군데군데 버리고 간 차만이 보일 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적막강산이다.
“마을까지 가몬 무신수가 있겠재” 독백을 하면 언 발을 재촉한다.
한참을 가니 이제야 119 구조대가 눈길을 헤치며 올라오고 있다.
좀더 내려가니 앰블런스가 운구를 기다리고 있다.
겨우 도착한 화북면사무소 시계는 6시 30분을 가리킨다.
면사무소 직원들의 친절한 보살핌으로 따뜻한 커피와 사발면으로 요기를 하면서 봉사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일부는 사고 신고하러 파출소로 향하고 나머지는 면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차량으로 제설된 구간까지만 가기로
한다.
그런데 오후 7시경 마을에 도착한 운구팀 4명과 신고팀, 면사무소팀 모두가 길이 막혀 오지 못해 약 10km 전방에
있는 우리 버스에 합류하기로 한다.
시체는 상주에 있는 병원 영안실로 옮겨지고 이미 출발한 유족들과는 그곳에서 만나 인수인계하며 우리는 그곳까지
함께 가서 유족들을 위로하기로 한다.
어둠 속에 오로지 눈빛에만 의지해 눈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눈은 그친지 오래다.
날씨가 풀리는 기미가 역력하다.
눈길이 군데군데 녹는다.
하루 종일 걷고도 모자라 이제 걷는 것도 자동화 되었다.
고개를 들면서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 게 수차례다.
겨우 버스에 도착한다.
미리 도착한 팀이 해 놓은 식사를 허겁지겁 먹어댄다.
그리고 나서 11시 15분 상주로 향한다.
기상소리에 눈을 뜬다.
2001년 1월 8일 오전 2시 병원 앞이다.
오전 5시쯤 유족들이 도착한다.
부인은 실신하여 못 오고 남동생과 장남이 나타난다.
아들은 대학생 같은데 한없이 착해 보인다.
회장이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사죄를 한다.
나도 뭐가 표현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려 할말을 잊는다.
슬픈 마음을 가눌길이 없다.
어찌할바를 몰라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본다.
그 많던 별과 달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냥 땅만 보고 차안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산자는 죽은자를 남겨 놓고 말없이 부산으로 향한다.
“그대 사랑하는 산우여 산이 좋아 오른 산에 영원히 안식하소서”
산이 무서운 줄 처음 알게 된다.
입문한지 15년 만에 .
참으로 다양한 모습과 더불어 셀 수 없는 혜택과 무한한 소화력과 신비한 매력 등을 껴안고 있는 것이 산이라는
걸 마음 깊이 간직한다. 산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온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산을 접하고 나는 끝없는 두려움에 스스로를 무한히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폭설을 뚫지 못하고 조난돼 그렇게 사랑하던 백두대간에서 영면하는 고 이환철씨는 백두대간종주회원 중 항상
선두그룹을 지켰고 이미 대간 종주 경험을 한번 쌓은 베테랑이다.
회원들의 길라잡이나 자문역을 할 만큼 경력이나 체력이 뛰어난 분이다.
조난당한 두 사람 속에 이 분이 포함되어 비명에 이 승을 하직할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여 빈사상태의 이분을 확인하고서야 그 까닭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동반자 한 분이 건네주는 이 분의 배낭 속에는 초코렛 한알, 여분의 옷 한 벌 없는 빈 배낭이었다.
게다가 나를 경악 시킨 것은 험난한 밤 폭풍을 뚫고 여기까지 몸을 의탁해 온 옷은 얄팍한 봄 옷이었다.
그리고 끼고 있는 장갑은 얼어 붙은 면장갑이었다.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산행을 해 왔으며 모두가 이런 식으로 해 왔으니까 .
이는 짐을 최대한 줄여서 속도를 올려 정상을 밟고 단시간에 하산하려는 우리는 이날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 날 평소에 하지 않았던 세가지 행동을 했다.
첫째 등산화의 방수처리. 둘째 여분의 장갑 두켤레 준비, 셋째 등산자켓의 착용이다.
말하자면 재수가 좋았던 것이다.
내가 산이 무섭다고 하는 것은 산이 두려움을 주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산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산은 거기에 존재하는 생명체이다.
그곳에 바람이, 구름이. 비가 모여들고 , 새가. 곤충이, 짐승이 스며들며 사람이 오르고 살기도 한다.
산신령도 산다고 한다.
결국 산은 가만히 있고 객체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위를 하게 되며 그럴 때 당연히 산은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로서 집주인한테 대들수는 없지 않겠는가.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집주인의 환심을 사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대대로 내려 왔고 앞으로 자자손손 이어갈 사람의
집일 경우 말이다.
이번 조난 사고로 충격을 받고 많은 대원들은 당시의 악몽에 의기소침한 나머지 한달 동안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
“고인의 죽음은 개인으로서는 행복한 죽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을 좋아 했던 분이 그 백설의 산야에서 더구나
백두대간의 능선에서 산우들이 늘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안식하고 있으니 ‘’‘’‘’‘’
[조방래의 백두대간 5계절 중에서 늘재-문장대휴게소구간]
오늘의 구간 종주는 몇일 전부터 잔뜩 긴장해 있었다.
속리산 구간이 내려올 때 장난이 아니라는 둥, 고생이 심할거라는 둥해서 여러 가지로 힘들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이다.
버스가 갈령에 도착하면서 차안에 불이 켜진다.
버스 앞 쪽의 시계를 보니 5시가 채 안되어 있다.
“어디를 돌아 왔길래 5시간이나 걸렸지” 중얼거리자 앞에 있던 서대장이
“ 몇시에 출발했는데 2시에 출발했잖아 ” 한다
그렇다 두시에 출발했다.
자다가 착각을 했다.
너무 긴장한 탓인가.
대원 들 모두 다 짐 꾸리기에 바쁘다.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나서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
이것 꺼냈다, 저것 꺼냈다 하는 사이에 대원들은 모두 다 내리고 혼자 덩그렇게 남아 있다.
그냥 신발 끈만 매고 배낭을 들고 내려 섰다.
배낭을 어깨에 매는 순간 배낭끈에 달려 있던 컵이 뚝 떨어져 요란스럽게 소리를 낸다.
시작하기 전에 항상 나도 모르는 새 컵이 먼저 떨어져 산신령에게 왔음을 고해준다.
덕유산에서 주운 이후 계속하여 배낭에 매달고 다녔더니 컵이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 출발하기전에 산신령을 깨우는 일이 전부다.
배낭을 매면 그 순간 자기가 알아서 떨어진다.
갈령 표지석을 한번 만지고 오늘의 구간을 시작한다.
새해를 맞아 처음 시작하는 산행이다.
오르는 것이 처음부터 상당히 부드럽다.
먼저 번에 내려오면서 다음에 다시 이 구간을 올라갈 때 고생 좀 하겠구나 했더니 의외로 숨도 안차고 땀도 나지 않는다.
의외로 속도가 빠르지 않다. 앞에 누가 가나 보았더니 자그만 문여사가 간다.
빠른 속도도 아니고 쉬지도 않으면서 아작아작 걷는 것이 귀엽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무척 편했다.
저 속도로 가니까 두터운 옷을 입고도 땀을 흘리지 않을 것이고 쉽게 가겠지
05 : 40 갈령삼거리
갈령 삼거리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대원들이 빠른 속도 탓에 땀을 많이 흘린 모양이다.
등에는 땀이 흐르고 바람은 차고 기온은 떨어지고 추운 모양이다.
천천히 제 속도로만 가면 종착점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건만 왜들 그렇게 빠른 속도로 가려고 난리인지‘’‘’‘’
06 : 10 형제봉의 눈보라
갈령삼거리에서 형제봉 오르는 길에 눈이 쌓여 있고 바람 소리가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처럼 우렁차게 귓전을 때리고 앞서 가는 사람
이 디딘 발밑에서 눈이 바람에 휘날린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점인 형제봉 정산에 선다.
형제봉 정상에서 피앗재 내려서는 길이 경사도가 조금 심하다.
똑 같은 봉우리가 두개여서 형제봉이라 한 모양인데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밤티재에서 눌재로 넘어 가면서 형제봉을 바라보면 똑 같은 봉우리가 두개가 나란히 있다.
김재철 “오늘 떠오르는 해를 잘 볼 수 있겠네. 태양신한테 기도하세요. 가장 위대한 신입니다요”
김영길 : 그럼요, 우리가 태양과 물과 공기가 없다면 살 수가 없죠.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태양은 그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입니다.
여기부터는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르며 문장대까지 진행한다.
06 : 45 속리산국립공원의 시작 피앗재
피앗재에 도착하다.
차가 지나가는 고개인줄 알았는데 사람이 지나가는 아주 오랜 옛날길이다.
만수동계곡, 천왕봉, 형제봉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앞에 있고 여기부터가 속리산 국립공원인지 국림공원 표지판도 보인다.
여기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아직도 어두운 밤이니 조금 더 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피앗재에서 667봉을 오르는데 배가 고프다.
낙엽이 아삭거리는 소리를 발밑에서 오랫만에 들어 본다.
봉우리에 올랐으나 어둠은 사라졌으나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
건너편에 지나 온 형제봉이 보인다. 그 사이 많이도 걸어 왔다.
바로 앞에는 천왕봉과 속리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천왕봉을 오르는 도중 전망바위 부근에서 해가 떠오른다.
아주 붉은 태양이다.
잠시 멈추어서 2004년 첫 일출을 바라보고 앞으로 남은 구간의 무사 산행을 빌어 본다.
9 : 30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한 눈에 보이고
천왕봉 정상에 올라서니 부근의 모든 것들이 내 발아래 있구나.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 정상에 오르고 나면 산을 정복했노라고 떠드는구나.
실제는 10분도 채 못 올라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정상에 있는 안내지도에는 문장대 쪽으로 향하는 길, 한남금북정맥으로 가는 길 등등이 표시되어 있다.
속리산 천왕봉을 오르며
속리산 천왕봉을 내려서면 길 주변에는 산죽이 많아
저 멀리 보이는 안테나가 있는 철탑이 문장대라고 되어 있고 2.7km 구간이다.
문장대까지의 능선은 기기묘묘한 바위들로 꽉 차 있다.
눈 짐작으로는 30분이면 갈 수 있을 거리 같은데 암릉이라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이 천왕봉이 금강, 낙동강, 한강 소위 삼파수의 발원지라 한다.
또 소백산맥의 주봉이기도 하다.
아직도 알 수 없는 것은 내가 지나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주위에 더 높은 산도 많고 줄기도 많은데 왜 백두대간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하긴 우리 조상 김정호가 신경표를 만들었으니 할말은 없다마는 아직 모르겠다.
문장대까지 가서 늘재로 내려간단다.
내리막에는 눈이 쌓이고 음지라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탓에 미끄럽다.
넘어지면 길 옆의 산죽잎에 손을 베기 꼭 알맞다.
천왕봉 정상에서 시작한 산죽은 줄곧 계속 문장대까지 따라 온다.
헬기장에서 바라 본 천왕봉
10 : 00 천왕문
이 구멍을 통과해야 하늘에 이를 수 있단다.
문 치고는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 것이 요상스럽다.
10 : 30 임경업 장군이 가지고 놀던 돌 입석대
임경업 장군이 바위를 가지고 놀다가 수년에 걸쳐 세웠다는데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임경업 장군이 기운이 아주 장사였던 모양이야.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임경업 장군이 세웠다는 돌이 곳곳에서 본 것 같으니 말이야
입석대 뒤로 돌아가면 천길 낭떨어지기가 있고 그 밑 바닥에는 눈이 아직 녹지 않았기에 거기서 소변을 보니 조그만 방울이 밑에
가서 눈을 내려치면 큰 구멍이 뚫리는지라 안 해본 사람은 눈이 녹기 전에 다시 한번 가서 해 보시라
바위 뒤로 돌아가면 지나가는 길에서 전혀 보이지 않지만 소변이 절벽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 같으니 소변 줄기 약한
사람만 하시고, 소변 줄기 강한 사람은 아마 바위에 구멍이 뚫릴지니 알아서 하시라
그게 민망스러우면 뒤에 숨어서 뽀뽀하기 아주 좋은 장소인데 너무 과격하면 밑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으니 젊은 사람들 알아서 조심하
세요
신선대 휴게소
11 : 00 신선대휴게소의 당귀신선주
산꼭대기 정상에 이런 휴게소가 있을 줄이야.
문장대쪽으로 보이는 바위의 경치는 절정에 이르고 휴게소에 먹는 당귀신선주는 비록 맛은 없지만 한 모금에 완전히 신선이 된 기분인
것을
거기에 감자 부치기는 다른 것은 하나도 없이 순전히 감자로만 만든 진짜 감자 부치기라...
지금까지 오면서 아주 조심조심 오느라고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었는데 이 당귀 신선주 한 모금 덕에 온 몸에 땀이 저절로 흐르니 이것
참 실수 했구나,
신선주를 먹었으면 신선처럼 누워 있어야 하거늘, 정신 나간 놈처럼 펄펄 날았으니 신선이 되기는 다 글렀어라.
아랫목에 앉아 아주머니가 챙겨준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주인아저씨 밥 숫갈이 너무너무 부럽다. .
저 양반 대한민국에서 최고 높은 아랫목에 앉아 매일 같이 밥 먹는 구나 생각이 드니 피식 웃음이 난다.
휴게소를 지나면 계단을 돌을 깍아서 만들었는데 엄청 고생 했을 것 같다.
비록 반듯반듯하게 모양새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운치는 있다.
가까이 보이는 문장대에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다.
11 : 40 문장대에서 시조를
문장대에는 어디서 올라 왔는지 사람이 무척 많다.
앞에 매점도 크고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 있다
조선 세조가 문신들과 여기서 시조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라 한다고 한다.
커피 마시는 사람, 신선주 먹는 사람, 라면 끓여 먹는 사람 등 등 완전히 시장판이다.
문장대 정상은 바람이 너무 세서 올라가서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내려섰다.
“입산통제구역 벌금 50만원” 적힌 팻말을 젖히고 울타리를 넘어 (일부는 밑으로 빠지고) 하여 넘어서니 헬기장이 나오고 걸리면 50
만원 벌금 물까봐 살짝 도망쳐 밑으로 줄행랑을 놓다.
그런데 빌어먹을 문장대를 바로 코 앞도 못 벗어나서 개구멍이 나타나니 한 사람씩 탈출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어디에서 나타난 스님이 번쩍 번쩍 들어 올리니 과연 신선의 산이로고.
여기서 청화산까지는 다시 경상도 상주 땅만 밟고 가야 한다.
12 : 20 개구멍바위
한마디로 지랄 같은 바위가 하나 나타났다.
그 주위가 온통 기분이 나쁘다.
뭔가 살기가 돌고 음침한 기운이 도는 지역이다.
바위 틈새로 빠져 내려가면 구멍이 하나 보이고 이 밑을 기어서 빠져 나가야 하는데 순간 스틱을 놓쳤는데 다행이 재호가 발로 밟아 밑
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는데 재호가 자기 스틱을 밑으로 던지고 내려가려다 그만 스틱하나가 저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 갔으니 저걸 어쩐
다. 주으러 가자니 추락하여 죽을 것 같고 그만 두자니 아깝고 오호 통재라.
나중에 김대장이 자일을 늘어뜨려 주워 왔다.
아주 위험한 구간이다.
내가 죽지 않을려니까 그렇지 죽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죽을 수 있는 곳이다.
이후 몇 군데 개구멍이 나오는데 반드시 이 개구멍을 빠져야 한다.
배낭 벗어 던지기를 몇 번을 해야 한다.
위로는 갈 곳이 없다.
누가 표시를 했는지는 모르나 빨간 페인트로 화살표를 해 놓았는데 무조건 화살표를 찾아서 기어야 한다..
다 빠져 나올 때까지 고개를 들지 말라 고개를 자주 들려면 철모를 써라
이관우 : 군대서 침투작전할 때 위에서 총은 쏘지 왜 못 빠지냐. 그 식으로 빠져 봐!
재호가 다리가 아프다고 뻐덕다리를 만들어서 간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밥도 먹지 않는단다.
그래도 먹으라 해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저래다가 기운 빠지면 추운데 얼어 죽을 라고.
점심 식사 후 재호의 아픈 다리는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 같고,, 길은 멀고 약은 먹여 보지만 이미 기울어진 다리를 어찌할꼬
밤티재 내려가기 전에 같이 가던 일행이 먼저 도망가 버린다.
특히 장권수 이 써그랄놈아 니 친구 걷지도 못하는데 니 혼자 내빼냐
나도 앞에 사람 따라서 속도를 높이다가 그냥 서 버렸다.
홍부장 혼자서 재호와 같이 오다가 만약 힘이 없는 다리 또 다시 잘못 디디면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그만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앞으로 누구든지 다치거나, 기운이 빠지거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앞뒤로 두사람씩 총 네사람은 붙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밤티재를 내려오다 보니 왼쪽으로 넙쩍한 아주 큰 집이 보이길래 자세히 보았더니 바위였다.
그 위에 눈은 수북이 쌓이고 집채 만한 바위가 세 개나 있는데 두부처럼 네모난 게 누가 잘라 놓은 것 같다.
14 : 40 696봉에서 본 저녁노을 속리산은 환상적
밤티재
밤티재는 지금 공사 중
아래 동네에 밤티마을이 있는 모양이다.
절개지를 잘라 도로 확장공사를 하느라고 측량하고 깍아내리고 난리다.
건너편에 올라가 있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재호를 여기서 탈출시킨다.
지나가는 차를 타든, 걸어서 가든, 길 따라서 움직이라고 해 놓고는 696봉을 향해 오르다.
절개지를 오르는 것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산을 급경사로깍아 놓아 자꾸 미끄러져서 절개지를 오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에 간 사람은 따라 잡아야하기에 속도를 높이니 오늘 처음으로 등과 얼굴에 땀이 흐른다.
산 정상에 가까이 가니 건너편에 보이는 속리산이 오후 해를 뒤로 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지라 그런지 흰눈 위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시커먼 바위만이 크게 한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저 있다.
항상 마지막은 지루한 법.
정상에서 늘재가 보이건만 내려가는 길은 항상 멀고 지루하다.
15 : 50 늘재
오늘 무사히 종주를 끝나게 해준 모든 것들에게 감사드린다.
하늘과 땅과 이 세상 모든 만물에 감사드리며 오늘 같이 험한 산을 동행한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구간 엄청나게 걱정을 많이 했고, 기도도 했었다.
눈이 제발 많이 오지 말고, 바람도 많이 불지 말고, 제발 춥지도 말아 달라고 기도했는데 뜻대로 아무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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