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1구간 [큰재 - 백학산 - 신의터재]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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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구간 [큰재 - 백학산 - 신의터재]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백두대간 [완료] 2008. 1. 11. 10:19

     

    백두대간 제 11 구간 종주기  [큰재 - 백학산 - 신의터재]

     

     

    2003.11.24

                  06 : 20 큰재 도착

                               아침식사

                  06 : 50 출발

                  08 : 00 회룡재

                  08 : 25 개터재

                  09 : 40 윗왕실재

                  10 : 40 백학산

                  12 : 40 개머리재

                  13 : 20 지기재

                  14 : 20 신의터재

     

    벌써 문명과는 거리가 먼 나이인가

    새벽 3시 출발한 버스가 04 30분 죽암휴게소에 도착하다.

    주차장 도색 관계인지 몰라도 전부 막아 놓아서 버스가 한쪽 귀퉁이에 섰다.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가는 도중에 뒤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간들어진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카드를 넣으세요” 한다.

    아마 공중전화박스 인가보다 하면서 볼일을 보러 갔다.

    볼일을 보고 그 앞을 다시 가 보았다. “안녕하세요. 카드를 옆으로 그어 주세요” 한다.

    안을 들여다보니 현금자동지급기가 3대 놓여 있었다.

    안에 들어오는 사람한테나 인사를 할일이지 지나가는 사람한테까지 정성스럽게 인사를 해야 하나 싶다. 

     

    버스가 황간 교차로를 빠져서 물한계곡 쪽이 아니라 월류봉 쪽으로 직진한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더니 차창에 비친 불빛이 휘황찬란한게 우리집 안방에서 잤나 생각했다.

    우리 방에서 눈을 뜨면 모텔 지붕의 찬란한 빛이 번쩍인다.

    그러니 눈을 뜨는 순간 똑 같은 상황이 재연 되었으니 착각할 수밖에‘’‘’‘’

     

     

    06 : 20 그리 큰재는 아닌 것 같은데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대간마루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종주의 마지막 지점이었던 자리에 다시 서다. 분교 정문 앞에 학교 내력이 적힌 비석을 바람막이로 삼아 찌개를 끓여 아침 식사를

    한다.

    그렇게 못 견딜 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닌 것 같다.

    장갑을 끼지 않은 상태에서 식사를 해도 손이 시린 줄 모를 정도니까 오늘은 조금 포근할 것 같은 느낌이다.

    고갯마루에 있는 민가의 주인은 벌써 깨어서 부엌에서 불을 지피고 있다. 

    부엌에서 나온 재가 뒷간 뒤쪽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이 거름 준비는 많이 하여 놓았다.

     

    학교 담장 옆 농로를 따라 가면 폐허가 된 학교 관사가 나오고 그 뒤 능선을 타고 20여분 정도 가다 보면 시멘트 포장길이 보이고 목장이

    보인다.

    지도에는 이영도목장이라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목장 주인이 목장에 대단한 자부심을 기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 해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불쑥 올라 왔다.

    지금 시간이 7시 10분이다.

    다음 구간을 마치고 그 다음 구간을 아마 해 뜨는 시간이 30분은 빨라지겠지.

     

     

     

    뒤돌아 본 마루금

     

     

    윗왕실재

     

     

     

    08 : 00 늦게 찾은 조상 묘

     

    움푹 파인 길을 내려서니 리본만 무성하게 오르막 내리막에 매달려 있다.

    예전의 길인 모양인데 경운기 정도는 다녔는지 흔적은 남아 있고 봉산리와 회룡마을을 연결하는 도로인 모양이다.

     

    대간 옆에 묘지가 많이 있지만 아주 특이한 묘가 있다.

    아주 오래 된 묵묘인데 후손이 아마 50년 넘게 지난 뒤 조상묘를 찾은 모양이다.

    잘라진 소나무가 50년을 넘었을 것 같은데 10여 그루를 잘라내니 그래도 묘지의 형태를 갖춘 산소가 보이는데 산소 위에 보이는 소나무

    밑동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 밑에 뭍히신 분 소나무 뿌리에 고생하겠다 싶으면서도 후손 잘 만나서 또 다시 후손 찾아 가는구나 싶은게 어디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지

    햇갈린다.

     

     

     

    08 : 20 개터재

     

    별로 뚜렷한 특징이 없는 밋밋한 길을 계속 간다.

    오르내림도 별로 없고 힘이 들지도 않는다.

    지나왔던 국수봉 만이 큼지막하게 뒤쪽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며 별 재미없는 길이다.

     

     

     

    09 : 40 깊은 산 속에 왠 다리가

     

    깊은 산속에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게 이상하다.

    무슨 중요한 다리라고 이 능성에서 저 능선 넘어 가는데 다리까지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그리 넓지도 않은 임도에다 설치를 할 필요가 있을 정도이다.

    다리 밑의 길은 비포장이고 다리 길이도 3m 정도 될 것 같다. 

    다리 위에는 잔디까지 심어 놓은 것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야 백두대간 팀 밖에 없을 것 같은 데 다니는 사람은 일단 편하니 좋기는 하다.

    다리 밑에는 “국토가 숨 쉬는 곳, 여기는 백두대간‘ 이라는 글씨가 붉고 크게 새겨져 있다.

     

     

     

    10 : 40 백학산[612m]은 이번 구간에 가장 높은 산

     

    이번 구간에서 가장 높다는 산인데 전망도 완전하지도 않다.

    여기서 내려서면 임도를 만들었는지, 길을 새로 닦느라고 그런지 엄청나게 큰 비포장길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계곡물이 졸졸 흐른다.

    물이 조금만 더 흐르면 이 물로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이 적어서인지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백학산을 오르기 직전까지 국수봉이 보이는데 완전히 한바퀴 돌아 원위치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 임도를 지나고 나면 평지를 걷는 느낌이다.

    자연히 속도도 빨라진다.

    이번 구간의 특징적인 것은 갈잎은 별로 없고 낙엽송과 소나무 잎이 떨어져 길을 메우고 있는데 갈잎보다는 걷기도 편하고 촉감도 훨씬

    좋다.

    이번 구간은 200-300m 의 저지대이고 코스도 완만하여 자연적으로 속도도 빨라져서 예상보다 한  시간여 일찍 백학산에 도착하였다.

     

     

    백학산 정상에서 좌측방향

     

     

    백학산 정상에서 우측 방향

     

     

     

    12 : 30 개머리재

     

    여기에서 지기재까지는 과수원도 있고, 논도 있고 밭도 있다.

    밤에 얼었다가 낮에 녹아서 그런지 흙이 신에 달라붙어 걷기가 상당히 힘이 든다.

    지금은 밭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밭 가운데로 지나쳤지만 농사를 짓는 기간이면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밭 한가운데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밭 정중앙으로 뚜렷하게 보인다.

     

     

    개머리재에서 본 마루금

     

     

    개머리재

    개머리재를 지나며

     

    13 : 20

    10살 꼬마는 아빠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

    포장된 도로에 차가 많이 다닌다. 

    먼저 온 대전팀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개머리재에서 본 초등학교 3학년, 6학년과 같이 온 아빠가 있었는데 아마 대전팀과 같이 온 것 같다.

    3학년 짜리가 쪼르륵 먼저 가서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아빠는 아들을 잃어버릴까 뒤에서 큰소리로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애처롭다.

    지기재에서 신의터재까지는 뛰어 가도 힘이 들지 않을 정도로 길이 평탄하다.

     

     지기재

     

    지기재

     

     

    지기재에서 포장도로가 끝나고 언덕으로 올라서자마자 큰 묘지를 만나는데 함안성씨지묘라고 씌어 있다.

    이 구간에서 느낀 점은  묘지가 대부분 엄청 크다는 것이다.

    중간에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이 봉우리에서 보이는 동네까지 가야 한다.

    봉우리도 무슨 흙인지 바위가 너덜너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바위다. 완전히 푸석바위이다.

    이 푸석바위를 지나면 내리막길이 잘못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틀어야 하는 길이 있다.

    잘 보이는 길은 왼쪽길인데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철탑 밑에 가면 신의터재 포장길이 보인다.

     

     

     

    14 : 20 신의터재에는 우리의 조상이

     

    고개를 내려서면 낙동강, 금강 분기점 의 푯말이 보이고 팔음산포도 광고판이 아주 멋있게 만들어져 있고 신의터재 표지석도 사람 키 두

    배는 됨직하다.

     

     

     

     

     

     

     

     

     

     

     

    그 옆에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은현이라 불리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청도 김씨 김준신이 이 고개에서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4월 25일 순절한 후 신의터재로 불리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각인되어 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만이 유일하게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조상인줄 알았더니 여기에 가문을 빛낸 청도김씨가 또 있을 줄이야

    그리고 이 지역에 포도가 많이 생산이 되는지 포도 광고판이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길에 저렇게 크게 만들어 놓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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