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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는 최후의 모습은 볼 수 없어]이 세상 구석구석/이탈리아 2015. 6. 3. 10:50
우산 들고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아가씨가 우리들의 길잡이 아가씨
우리의 길잡이 아가씨는 첫날부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어찌 생각해보면 웃기는 여행이다.
7시에 아침 식사를 시작하여 식사를 마치고 이를 닦고 짐을 챙겨 버스에 타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30분
하지만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20분이면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예정 시간보다 훨씬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라 정말 말을 잘 듣는다.
떼어 놓고 갈까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한국인의 시간 문화가 많이 성숙된 탓일까.
이런 행동은 한국 사람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아침 일찍 로마 변두리에서 출발하여 2 시간 50분을 달려 폼페이에 도착한다.
아침 식사 후 버스에 탄 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
어젯 밤에는 늦게 도착해서 몰랐는데 나무를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는 따뜻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
약 2 시간 후에 폼페이 톨게이트에 도착.
이 곳에서 폼페이 유적지까지 가는데 50여분.
차창 밖로 보이는 베수비오 산
산을 가운대 두고 한 바퀴 돌아서 보이는 베수비오 산
드디어 폼페이 유적지 입구에 도착
나폴리 부근이나 로마 부근을 여행할때는 항상 현지인을 고용해야 하는 모양이다.
말도 안 통하는 이탈리아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작은 깃발 하나 들고 따라 다니는 것 뿐.. 그런데 그 비용을 우리가 지불해야 하고..
이 나라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도시마다 입장료도 따로 내야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현지 안내인도 고용해야 하고..
폼페이에서는 우리가 TV 에서 보았던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자다가 졸지에 운명을 달리한 모습이라던가 하는 아주 비참한 모습 등등..
이러한 것은 이 곳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런 모습은 나폴리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다니 보고 싶으면 나폴리 미술관을 따로 가야 할 듯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분출물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폼페이는 이 화산 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한 도시 중 하나다.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엄청난 양의 흙과 돌은 순식간에 폼페이를 뒤덮어버렸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은 지상을 뒤덮은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 죽었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퍼센트인 약 2,000명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당시 폼페이는 B.C. 89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철저하게 로마화가 진행된 도시였으며, 로마의 상류계급이 별장을 건설했던 휴양지이기도 했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인 63년 2월에 대지진이 일어났지만 도시는 착실하게 재건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6년 뒤 도시 전체는 화산재 밑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로마의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던 광장과 대규모의 호화스러운 건물과 극장, 상가,그리고 당시의 최고의 설비를 자랑하던 스타비안 목욕탕이 화산재에 묻히고 말았다.
역사에 퇴장했던 폼페이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92년이었다.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연한 계기로 폼페이의 소재가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748년에는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독점 사업으로 폼페이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굴은 약탈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름다운 출토품만이 중요하게 취급될 뿐 나머지 유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또 모자이크나 벽화 같은 미술품들도 충분한 조사도 없이 모조리 프랑스 왕궁으로 실려가버렸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를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유적에 대한 구획 정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리와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단은 유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후에도 폼페이 발굴은 계속되어 현재는 도시의 약 4/5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이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출토품들은 현재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위키백과]
폼페이 유적지를 보려면 이 언덕을 올라야 하며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하도 닳고 닳아서 길이 무척 미끄럽다.
이 언덕을 오르고 나면 언덕은 없으니 걷는 것이 불편한 사람도 다리 아플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구멍 2 개는 말의 고삐를 메어 놓기 위한 구멍이라네요.
길 중간중간에 이런 구멍이 많아요.
그 당시에도 차도와 인도가 구분 되어 있는데, 아래는 차도, 위로는 인도, 그리고 인도 중간 중간에는 위에 보았던 고삐를 묶어 놓는 구멍들이
많이 보이구요.
전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초만원...
저 뒤에 반원 모양 4개가 보이는 곳은 환전소라 하네요.
환전소가 저 정도면 그 당시 외국인이 무척 많았던 모양,
아니면 지역마다 화폐가 전부 틀렸던가.
이 아가씨는 자로 하나하나 재면서 기록 중..
고고학자인가 봐요..
옆에서 구경하면서 줄 자를 건드렸더니 " 저리 가라" 고 손짓
괜히 미안해서..
뭐 처럼 생겼나요.
그림자 때문에 구분이 안되겠지만 남자 고추를 실물처럼 그려 놓았네요.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깃발은 대부분 중국인 단체 관광팀
예전 사창가 구경 가는 사람들..
그 안에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 망가진다고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동네 공동 우물터..
수도 꼭지 부근에 있는 수조는 사람들이 너무 비벼대서 닳고 닳았다.
이 벽에도 고추가 그려져 있네..
고추 끝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사창가 가는 길
그 유명한 스타비안 목욕탕 가는 길
스타비안 목욕탕 옷 벗어 놓는 곳이라는데..
왕의 욕조이던가. 부자의 독탕인가 봐
독탕 반대편에는 이렇게 큰 욕조도 있어요.
욕탕 내에는 이러한 그림이 돌아 가면서 진열 되어 있는데 사진을 찍는 순간..
관리인이 와서 제지를 하고..
간신히 사진 한장 건졌네.
욕탕 밖에는 예전의 식당 자리라는데 멧돌도 보이고 커다란 항아리도 보이고, 부침 굽는 장소도 보이는 것을 보면 장사가 무척 잘 되지 않았을까.
학생들이 이 곳으로 소풍 왔나 봐요.
베수비오 산 보다도 맞은 편 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더 멋있네..
베수비오산과 폼페이
이러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이 유적지마다 있어서 같이 사진 찍어 주고 돈 받고...
폼페이 유적지 앞의 상점들..
이탈리아는 지중해의 따뜻한 기후인데도 불구하고 과일이 풍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네 시장처럼 엄청난 과일을 쌓아 놓고 파는 가게들을 볼수가 없다.
폼페이 유적지를 둘러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2 시간 남짓
아쉬운 점은 화산 폭발 당시 희생 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들은 전부 나폴리 미술관으로 갔다고 하여 전햐 보지 못하고 단지 본 것은
폐허가 되어 있는 건물 뿐
내가 미리 조사를 했더라면 가 볼 수도 있었을텐데...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소렌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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