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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인도의 수도이자 영원한 불멸의 도시 델리에서 이틀]이 세상 구석구석/인도 2014. 8. 20. 17:05
인천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다른 비행기의 출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네..
델리 공항에서 ...... 여행객을 기다리는 가이드들..
엄청난 귀족인 것 같아.. 인도는 옷차림이 없는 사람과 부자들의 옷 차림이 확연이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도 사람들은 어린아이나 아가씨들은 무척 예쁘게 생겼고 사람들이 이목구비가 아주 뚜렷하다.
조그만 녀석들이 잠도 안 자고 게임에 빠져 있네..
이 시간에도 다니는 공항버스
나의 옆지기
인도는 어디를 가나 길거리를 다니는 경찰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떤 경찰은 우리의 60 ~ 70년대 M1 총을 들고 있고,
어떤 경찰은 K 2 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경들은 권총을 허리에 차고 있다.
공항 곳곳에 이렇게 누워 자는 사람들이 무척 많이 보여
무지하게 긴 카트를 끌고 가는데 혼자가 아니라 5 ~ 6 명이 매달려서 조정을 해 가며 끌고 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무척 힘들다. 한국과 시차가 3 시간 30분 차이가 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천공항에서 저녁 8 시 4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델리공항에 새벽 0 시 40분경에 내려 준다. 꼭 7 시간 30분 이상을 비행기 내에 좁은 의자에 갇혀 고생을 했다.
도착 비자를 받느라고 3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시작부터 짜증이 확 밀려 온다. 컴퓨터 시대에 노인네 둘이 앉아서 꾸물럭, 꾸물럭 .. 일일이 손으로 장부에 적는다.
다 마친 후 60 달러를 주면 여권에 비자를 꾹 누르고는 건네준다.
자는 둥, 마는 둥 했어도 비행기 안에서 그래도 졸았으니 날이 훤해지자 일어났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누워서 헤매지 않았을까.
또 내 성격상 날이 훤하면 잠을 자지 못하는 성격이라...
* 자미 마스지드[인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델리에 있는 자미 마스지드는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으로 알려져있다. 이슬람사원을 뜻하는 자미 마스지드는 이곳
뿐만아니라 여러곳에 있다. 델리에 있는 자미 마스지드는 유명한 술탄 샤 자한(Shah Jahan)에 의해 1644년부터 165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당시 엄청난 돈인 10만 루피가 사용되었다고 하며 그 크기와 화려함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곳을 돌아 다니면서 보면 이 사원의 크기도 사실 별 것 아닌 것 같다.
이슬람 사원의 특징은 불교의 부처상이나, 기독교의 십자가처럼 상징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슬람 사원에서는
그런 형상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신자들이 정면에 보이는 벽에 대고 기도할 뿐이다.
이 사원에는 한번에 2만여명에 달하는 이슬람교인들이 예배를 드릴수있는 규모라고 한다.
관광객들에게는 카메라 피 6 달러을[생각보다 무지 비싸다] 따로 받고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에서 몸을 수색을 하니 카메라, 휴대폰을 몰래 가지고 들어 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이 나라는 몸 수색 등등에서 철저하게 남녀가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은 반바지나 나시 등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곳을 관광하고 싶은 관광객들이라면 미리 반소매나 긴팔 긴바지
등을 준비해야 하며 만약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입구에서 대여해주는 천을 두르고 입장해야 된다.
예배시간에는 관광객 입장이 불가하다. 한가지 더 이슬람사원에 들어갈때는 신발을 벗고 맨발이나 양발을 신고 들어가야한다.그래서 미얀마나 인도를 여행할 때는 비싼 신발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저 슬리퍼 비슷한 것 신고 다니면 훨씬 더 편하지 않을까.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가면 나올 때 신발 지켜 주는 사람이 팁을 요구한다.
입구에서 본 옆 모습
이슬람 사원 자미 마스지드의 모습
입구 문 천정이 아름답고 화려해서...
기도하는 남자들
두른 천이 폼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 투덜
사원에서 보이는 바깥 시장 풍경
사원 안에서 무슨 사정을 저렇게 할까. 어젯 밤에 싸웠나.
인도는 30 세 이전에 대부분 결혼 한다고 한다.
사원 정문에 있는 조그만 문에 맞추려 했는데 잘 안맞았네..
이 분수대 물도 손을 씻기 위해서라는데 수도 꼭지는 무척 많은 것은 또 뭐람.
무슨 수도 꼭지가 저렇게 많을까.
새 모이도 엄청나게 퍼 부어 놓았다.
이 곳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도 보면 새 모이는 무척 많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인들도 여지없이 천을 두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아줌마들도 기가 세게 설치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여기 이 서양 아줌마들도 남자는 없이 여자들만 득시글...
보이는 남자 둘은 가이드이고..
*, 수 많은 시신이 안치 된 후마윤 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인도의 건축물들은 주로 무굴제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무굴제국의 탄생과 몰락
징기스칸의 후예인 바부르(babur)는 아프칸의 카불에서 흥기하여 1525년 인도의 펀잡지방으로 진출한다.
그는 당시 델리에 자리하고 있던 이슬람 왕국을 점령하고 무굴제국을 세우게 되는데 무굴이라는 이름 또한 몽고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는 작은 봉건국가들의 몰락인 동시에 거대한 통일제국의 시작이었다.
이후 16세기로부터 18세기 초에 이르는 인도의 중세는 무굴제국의 문화를 꽃 피우게 된다.
무굴제국은 단지 인도만이 아니라 중동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으로서, 페르시아 문명과 인도의 고대문명을 융합함으로써 예술과 문학, 건축을 포괄하는 문명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현존하는 인도건축문명의 유산들은 대부분 이 시기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부르로부터 시작하는 무굴제국의 역대황제는 다음과 같다.
초대 바브르(Babur)대제는 1527년에서 1530년까지 통치했고,
2대 후마윤(Humayun)대제는 1530년에서 1556년까지,
3대 악바르(Akbar)대제는 1556년에서 1605년까지,
4대 자항기르(Jehanggir)대제는 1605년에서 1627년까지,
5대 샤 자한(Shah Jahan)은 1627년에서 1658년까지,
마지막 황제인 아우랑제브(Aurangzev)는 1658년에서 1707년까지,
그리고 그의 아들 바하두류사 황제에서 제국의 운명이 다하게 된다.
무굴의 첫번째 황제였던 바브르 대제는 아버지 페르시아 왕과 어머니 몽골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에 까지 와서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라호르로 정하였다.
그리고 델리 근처까지 진출하며 3번의 정복전쟁을 치루다가 죽었다. 그는 일생을 전쟁 속에서 보냈다고 봐야한다.
바부르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후마윤은 아버지와는 달리 술과 여자만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토착세력의 저항에 밀리게 되고, 동생과도 갈등하여 분란이 생겼으며 1540년 인도 동부의 지배자였던 수르왕조와의 전투에서 패전한 후마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동생 캄란에게 공격을 받고 유랑하다가 이란으로 피신한다.
그는 15년이라는 세월을 방랑하게 되고 페르시아 여자와 결혼하였는데 1555년 인도 동부의 지도자였던 Sher Shah가 죽자 인도로 돌아 와 델리를 정복하였다.
인도로 돌아 온 1년 후 후마윤은 죽게 되고 그의 아들 악바르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데 후마윤의 죽은 이유가 델리의 도서관 계단에서 넘어진 후유증으로 죽었다니 참으로 불운한 황제였던가 보다.
후마윤이 죽자 그의 첫번째 아내였던 Haji Begum은 남편을 위한 묘궁 건설에 나서게 된다.
그녀는 본래 페르시아 출신으로서 무굴제국의 2대 황제였던 후마윤이 방랑시절 만나 첫번째 아내가 되었고 영화와 고통을 같이 했던 기억 때문에 남편을 끔찍히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했던 남편을 위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거대한 무덤을 지어 주려했던 그녀의 계획은 1565년에 실현 되었고 그녀 또한 자신이 계획한 아름다운 무덤 속에 남편과 함께 묻혔다.
이때까지는 묘궁이라는 건축적 유형 조차도 인도에는 없었던 것이다.
죽은 자가 49일째에 다시 태어 난다는 윤회사상 때문에 인도인들은 묘를 건설하지 않았다.
묘궁 건축이 도입 된 것은 이슬람 세력이 인도를 침입한 후부터라고 한다.
델리의 슐탄(Sultan) 왕조는 300년간 페르시아의 묘 건축을 이입시켰고 이 후 보편적인 건축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묘 건축의 극성기는 무굴제국 시대에 완성되는데 바로 이 후마윤 묘가 정형화 된 묘 건축의 시조격으로 자리잡게 된다.
묘역은 제왕의 묘역 답게 거대한 대지 위에 계획 되었다.
중앙 묘역 앞에 전정을 둔 것은 묘역을 감추어 주는 신성함의 방법이라고 한다.
정문을 지나 긴 참도를 따라서 소실점처럼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묘역으로 들어가는 중문을 만날 수 있다.
그 중문은 앞으로 나타 날 중심건물의 암시처럼 중심건물의 형상으로 만들어 진다.
다만 그 스케일이 작을 뿐이다.
후마윤의 묘는 페르시아인 건축가 구미르자기의 지휘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것은 페르시아 건축 형식이 인도의 문화와 접목 된 최초의 건물이 된다.
그 전까지 인도에서 유행하던 묘궁의 건축은 기둥과 대들보, 공포 등이 있는 모목구조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후마윤의 묘에서는 페르시아 건축의 첨두형 아치를 사용하여 새로운 조형을 시도했다.
후마윤 묘는 델리 시내 동쪽의 니자무딘 역 부근에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페르시아 양식을 가미한 '정원 속의 묘'라는 양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 형태는 타지마할 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규모는 조금 작고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또 타지마할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중앙의 돔을 정점으로 하여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는 건물로 유명하다. 건물 내부로 들어 가면 방마다 관이 한 두개씩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묘에 있는 관만 1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건물은 길이가 99m에 이르며 장대하고도 웅장하며 잘 정돈된 정원과 잔디밭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나무 그늘아래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사원에서는 신발을 벗지는 않지만 건물에 올라서는 순간 뜨거운 기운에 땀을 비 오듯 쏟아야 했다. 건물 내부나 나무 그늘은 시원하지만 건물 바닥은 불에 달구어 놓은 듯하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관람객들
헐어진 건물도 그대로 방치하고...
그늘에만 들어가면 45 도 더위도 그렇게 덥지는 않아.
손녀인지 딸인지 대체 구분이 안된다.
예전에는 벽이 있었는데 아마 허물고 통로를 만든 것 같다.
이 구역에는 헐어진 건물이 꽤 많아.
건물 벽에 있는 그림은 이렇게 그리고 조각한다고 설명해 놓은 그림
사원 입구
후마윤 묘
후마윤 묘 내부에 있는 후마윤 관
건물 내부 방마다 이러한 관들이 많이 있다.
건물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바닥에는 관이 두개 있다.
*, 뉴델리 박물관
외국 여행을 가서 박물관을 들어 가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만 국립박물관, 미얀마 바간에서 박물관을 들어 가 본적은 있다. 중국 지난 박물관도 들어 가 본 적은 있는데 기억 나는 것은 커다란 공룡 화석 뿐이다. 오늘 뉴델리 박물관을 들어 가서 느낀 점은 다른 나라의 박물관에 비해서 크게 화려하거나 거대하거나 아름다운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인도의 조상들에게서는 큰 유적이나 유물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미얀마 바간 박물관을 가면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입구에서 카메라는 아예 압수해 버려서 사진을 전혀 찍지 못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 곳에서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박물관은 인도에서는 그래도 가장 큰 박물관이라 하는데도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몇 안되는 박물관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4,000년 전의 인도 역사 유물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등 각지의 유물을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다. 인더스 발상지인 하라파의 출토품과 간다라 불상 , 미우라 왕조와 굽타 왕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무굴제국과 세빌화오라 수사본, 등 각동 민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간다라 미술의 조각품을 보고 있으면 미얀마에서 수없이 보아 왔던 불상과 아주 똑같은 모습인 것을 보면 이 부근 지역 전체가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작품은 이해를 하지는 못하겠고 다른 나라에서는 카메라 휴대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 곳에서는 마음대로 찍을 수 있기에 사진 만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모습의 불상은 미얀마에 가면 너무 많아..
코끼리 상아로 만든 작품
코끼리 수백마리 없어졌겠군
코끼리 뿔이 이렇게 큰가.
예수 , 성모상까지 있네...
*. 라지가트[ 마하트마 간디의 추모공원]
라지가트의 입구에서는 들고 있는 가방을 열어 보여야 하고 몸 수색을 한다.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거의 검사를 하지만 이 곳은 특히 더 삼엄한 것 같다. 입구를 지나면 공원처럼 잘 꾸며져 진 길을 따라 5분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가 보인다.
1948년 1월30일에 극우파 힌두 청년에게 암살당한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으로 중앙에는 검은색 대리석에 그 중앙에는 간디가 남긴 마지막말이라는 '헤이 람(오 신이여!)'가 새겨져 있다.
그 앞에는 향을 놓을수있는 단을 마련해 놓고있다. 관광객은 이 안으로 들어 갈 수 없게 막아 놓았다.이 장소만 한 바퀴 둘러 보고 나오는데 20분 정도면 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네루 집안의 3대(네루, 산자이 간디, 인드라 간디)의 화장터인 샨티바나가 있으며 더 북쪽으로는 제2대 수상의 화장터인 비자이가트가 있다고 한다.입구 시작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는데도 대부분 우산도 없이 제단을 한 바퀴 둘러 보는 현지인들을 볼 수 있는데 외국인들은 멀리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입구에서 5 분 정도 걸어 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입구,
비가 오는데 나무 밑에 있으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나무가 무척 울창한 것 같다.
*. 바하이 사원
사원의 모습이 연꽃을 닮았다 하여 로스터 템풀이라 불리며, 바하이교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로 시작된 신흥 종교이다.
전 인류의 형제화, 종교의 통일, 모든 국가의 통합을 주장하여 부처, 예수, 공자 등 모든 세상의 성인들을 하느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헌신한 동등한 존재로 보고 다 같이 믿는다는 것이다. 사원 내에 들어가서 각자 알아서 기도하면 된다고 하는데 어쩌면 나한테 딱인 것 같다.
바하이교의 창시자는 " 바하올라 " 인데 한국에도 신자가 꽤 많다고 한다.
바하이 사원은 침묵이라는 한 가지 규율만 따르면 된다고 한다.9 라는 숫자를 신성시하여 사원은 9 각형을 띄고 있다.
사원 앞에서 무언가를 팔고 있는 아이들
우리는 기도할 것도 없어서 밖에서 눈요기만..
신발 벗기도 귀찮고, 안에서는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는데 굳이 안으로 들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럼 엉터리 관광이 되나.
사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맨발로 들러가야 하는데 이 포대 자루는 신발을 담기 위한 자루.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이 많아서 커다란 포대가 필요한 모양
잘 가꾸어진 정원의 나무들
사원을 들어 가기 위해서 줄을 선 사람들,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기 때문....
이 곳에서도 새치기가 난무하는데.... 은근 슬쩍 앞으로 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 꾸뜹미나르[ 무굴제국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승전탑]
꾸뜹미나르는 술탄이었던 꾸뜹이 세운 미나르 즉 탑이라는 의미이다. 꾸뜹이 델리를 정복했다는 승전의 기념으로 지은 승전탑으로 예전에는 내부까지 구경이 가능했으나, 오래 전에 관람을 온 고등학생들이 올라 가다가 한 학생이 추락사한 불미스러운 사고로 현재 내부는 공개되어 있지 않고 있다
72미터의 높이에 5층탑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높이 솟은 승전탑이 탄성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거대한 탑이다. 사암과 대리석으로 각 층의 색깔이 구별되어 있다. 또한 1층은 흰두의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2,3층은 이슬람의 양식으로 지어져 그 독특함과 매력적인 조각이 인상적인 탑이다.
1199년에 지어졌으며, 각층마다 발코니가 있고, 좁은 380여개의 개단으로 이뤄져있다. 승전탑인 꾸뜹미나르 이외에도 꾸뜹미나르 유적군으로 다양한 유적지가 있으며, 그 중에 이슬람 모스크가 유명하다공항이 부근에 있어 탑과 날으는 비행기가 대비되어 멋진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 곳 사람들은 비행기 진동이 아주 심한데도 오랜 세월 끄떡없이 견디어낸다고 자랑을 한다.
천년 전에 저런 탑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무너진 건물들은 어떤 연유로...
그리스 신전에 와 있는 듯
탑 중간에는 베란다도 있어서 구경하기 좋게 설계를 하고..
무늬 자체가 무척 화려하다.
여기서 보면 받침대도 있는 것 같고..
탑 위를 날으는 비행기
사진 찍는 것이 너무 진지해서...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짓다가 그만 둔 미나르도 있고...
손과 손 사이에 탑을 넣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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