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 뜰로 옮겨진 소나무글/주변의 일상이야기 2011. 8. 26. 16:06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네 생각에 한숨 짓곤 한다.
요란스럽지 않게 오는 이런 보슬비를 네가 먹으면 아주 맛있고 달콤하게 먹을텐데 말이다.
너는 아주 도도하고 멋이 있고 지나가는 모든 행인들에게 감탄사를 불러 내는 존재였는데 인간들의 편리함을 찾는데 너는 희생되고 말았다.
논 두렁에 홀로 서 있는 너는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었다.
넉넉한 밑동과 그리 크지도 않은 너는 이미 생명이 다하는 양 머리에만 솔잎을 얹어 놓고 있었잖느냐.
생명은 머리 끝에만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도로가 넓어지면서 사람들은 너를 뽑아다 시청 마다에 옮겨 놓았지.
그 이후 나는 틈만 나면 너를 보러 달려 가고는 했단다.
아침 저녁으로 직원들이 너를 살리려고 물을 주고 네 몸에는 붉은 흙이 덮혀지고 나뭇 가지에는 새끼 줄이 감겨져 있어 숨이 막혀 곧 죽을 것처럼 보이더구나.
올라 가 누우면 베개가 되고, 몸뚱이가 조금만 더 굵어지면 누워 자기에도 알맞은 그런 몸매였지.
밤에 보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었고 낮에는 누워 자기 꼭 알맞은 침대 모습이었기에 훨신 더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꼈는데 네가 가버린 지금 이 허전함은 어디에서 메울까.
그 이후 나는 너를 닮은 소나무를 찾아 헤맸다.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있으면 이 산, 저 산 이 들판, 저 들판으로 찾아 헤매다보니 네 친구들은 참 희얀한 존재도 많더구나.
영월 단종대왕 장릉을 갔더니 네 친구들은 충신 중에 충신이더구나.
모두들 고개를 숙인 것이 단종대왕 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더구나.
북쪽에 있는 친구들도 , 남쪽에 있는 친구들도, 동쪽에 있는 친구들도 , 서쪽에 있는 친구들도 모두 임금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더구나.
임금에 대한 충성과 존경심의 발로라면 나의 억측일까.
또 영월 하동에서 너와 비슷한 존재를 찾아 내었다.
생김새는 똑같은데 바위 꼭대기에 있는 것이 다르더구나.
흙은 별반 보이지 않는데 바위 위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는지 궁금하더구나.
산 정상에 바람막이가 하나도 없어서인지 한쪽의 반은 전부 없어졌더구나.
세상 풍파가 견디기 힘들어 달아난 네 친구의 팔과 비교할 때 너는 그래도 행복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너는 날때부터 삐딱하게 자라서 선천적인 기형이기 때문에 아무 고통 없이 한쪽이 상처가 난 것이 아니겠느냐.
네 친구를 보라.
세상 풍파에 못이겨 한쪽 팔에 달린 잎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반씩 부러져 도망가 버리고 가지는 반쯤 부러지고 부러진 모양이 흉칙스럽지 않더냐.
그래도 너는 자리 좋은 곳에서 태어나 오래도록 사람드르이 사랑을 받지 않았느냐.
네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으련만 너는 자리 이동을 못 견디고 결국 죽고 말았으니 내가 의지할 곳은 더 없어라.
1993 년 봄
'글 > 주변의 일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제천라이온스 클럽 회장 이임사 (0) 2011.09.01 영화 " 철도원" 을 보고 (0) 2011.08.31 영월 운학계곡에서 (0) 2011.08.26 청계천 유감 (0) 2011.08.10 인간의 4 가지 구분 (0) 201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