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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유감글/주변의 일상이야기 2011. 8. 10. 13:54
서울에 올라 온지 며칠 안 었을 때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어 청계천 아파트 단지를 찾아 나섰다.
그간 서울에 자주 올라 온 것은 아니지만 올라 온다 해도 차를 타고 이동한 것이 주였고 지금처럼 땅을 오래도록 밟으며 걸어 다닌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퇴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신설동에 내려 어둑어둑한 시가지를 그리고 청계천 고가도롤 아래를 걸어가고 있는데 도저히 걸어 가지를 못하겠다.
한발짝, 한발짝 움직일 적마다 숨이 막혀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걸으면서 왜 이렇게 숨이 막히지, 내가 어디 잘못 되었나 하고 걷는데 헤드라이트에 비친 공기는 뿌연 먼지가 뒤편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결국 내가 마시고 있는 것은 공기를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먼지를 들이키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사람들이 서울 매연 매연 하면서 떠들어도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전혀 신경쓰지 않다가 저것을 보니 서울은 살 곳이 못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고가도로 아래 10분 만 더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입김으로 훅훅 불어서 시커멓게 찌든 공기를, 그리고 바닥에 깔여 잇는 먼지를 전부 날려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숨통은 조여오고 가슴은 꽉꽉 오므라드는 것 같고 ... 건너편으로 가야 하는데 큰일났다.
그렇다고 밤늦게 미친놈마냥 서울이란 바닥은 뛰기만하면 도둑놈인양 착각하는 동네지만 어쩔 수 없이 건널목을 찾아 길길이 뛰었다.
한참을 뛰어도 건널목은 나타나지 읺았고 숨은 더 막혀 왔다.
그냥 걸어도 숨이 막히는 판에 뛰기까지 했으니 오죽 했으랴.
입에서는 거품까지 나오려하고 코에서는 콧물이 주룩룩 흐르는데 나의 이 모습을 서울 사람들이 보았다면 미친 놈 취급할 것 같다.
건널목을 찾으려고 10 분 정도를 헤매고 다녔다.
10분 가지고 뭘 그러냐 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쪽마을에서 저쪽 마을로, 산모퉁이에서 다른 모퉁이까지 가는 거리이니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건널목을 찾고 나니 길을 건너야 하는데 그 거리가 어찌 넓은지 파란불이 켜져 있는 동안에 건너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걸어가고 있는데 옆에 가던 사람들은 뛰어 간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뛰어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중간 정도 왔는데 건너편 신호등은 빨간 불로 바뀌어 있었다.
젊은 사람의 발걸음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호등 시간이 괘씸했다.
중간에 서서 다시 파란 불이 들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지나가는 불빛에 비치는 수많은 먼지가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수많은 차들이 눈 앞에 왔다갔다 하니 눈이 어지럽다.,
갑작스럽게 나의 폐부가 시커먼 먼지로 가득 쌓여 폐부가 금방이라도 썪어 없어질 것 같다.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시내 버스 행선지를 보면 종로, 을지로, 청계천...
이 방향으로 안 가는 버스는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그래도 서울 시내 복판이
좋긴 좋은 모양인데 나는 단 1 분도 못 서 있겠으니 나는 역시 서울 체질은 아닌 모양이다.
1983년 4 월 1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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