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에로스와 프쉬케 :: 제천 감초당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에로스와 프쉬케
    글/생활 속의 신앙 2011. 5. 31. 17:08



    " 나의 음식은 밤이나 낮이나 눈물 뿐이었다 "  고 시편의 작가도 인간의 고독한 영혼을 노래하고 있다.

    무한대한 생명의 고독을 한정된 명예와 부귀,권세나 영화 따위로 채울수는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더 큰 영예, 더 큰 부귀를 위해 목숨을 저미며 질타하는 채찍이 될 뿐 고독한 영혼의 평안도 기쁨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상처 투성이의 얼어 붙은 생명의 내실은 자양하고 뜨거운 햇빛, 사랑의 유약으로 밖에는 아물 길이 없다.

    무한대한 생명의 고독은 무한대한 사랑으로 밖에는 채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어머님의 품에 안겼을 때, 고향처럼 평안한 벗들의 우정에 잠길 때 초원처럼 기쁘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을 안을 때 천국처럼 가슴 설레는 환희에 충만한다.

    참으로 사랑은 인생의 비밀이다.

    모든 것을 수학공식처럼 풀어 낼 수 있는 현대, 달나라의 비밀까지 벗겨내고, 화성까지 달려가는 현대지만 사랑의 신비만은 아직 누구도 풀 수 없는 성역이 되고 있다.

    어떠한 교과서도 철학서도 사랑의 비결을 가르친 글이 없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가르침을 받아서 깨닫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참으로 우연하고도 신비스런 만남에 의해 순간적으로 점화되는 불꽃이다.

    그것은 또 서로가 자기를 적라나하게 들어냄으로서 지극히 순열한 신앙과도 같다.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의 신이 되는 것이다.

    그 없이는 살 수 없고, 그 없이는 의미를 상실하는 절대적인 신앙,

    사랑은 신선한 것도 추악한 것도 아니다.

    고귀한 것도 비천한 것도 아니다.

    그대로 한 인간이 잃어버린 자신의 짝을 만나는 운명이며 생의 모습이다.

    어려서 들은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의 신화, 지금도 신성한 감동을 자아내는 그 동화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기실 사랑이 갖는 현실적인 속성을 얼마큼은 말해 주는 것 같다.

    너무 아름다웠기에 미의 여신 아프르디테의 미움과 질투를 샀던 프쉬케, 그러나 공교롭게도 여신의 아들 에로스는 프쉬케를 한번 보자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뜻을 어기고 그 아름다움 인간의 처녀를 사랑하게 된다.

    머나먼 곳, 아무도 모르는 궁궐 속에서 어머니의 눈을 피해 엮은 사랑의 보금자리, 에로스와 프쉬케는 인간과 신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승리자들이었다.

    다만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누군인지를 알려 하지 말고, 내 얼굴을 보아서도 안된다,

    만약 내말을 어기고,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마지막이 되리라 " 고 굳게 사랑의 다짐을 약속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언니들의 꼬임에 빠진 프쉬케는 마침내 에로스를 의심하게 되고, 기어이 어느 날 밤 에로스와의 맹세를 스스로 깨뜨려 등불을 밝혀 들고 잠든 에로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 순간 너무도 황홀한 에로스의 모습에 놀라는 프쉬케. 하지만 그때 한 방울의 뜨거운 기름이 에로스의 맨살 위에 떨어지고 소스러쳐 놀라 깨어나 에로스는 분연히 일어나 배신한 프쉬케의 곁을 떠난다.

    " 믿음이 없는 곳에 에로스는 머물 수 없다" 는 슬픈 한마디를 남긴채

    " 믿음이 없는 곳에 사랑이 머물 수 없다 "

    진실로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심없이 믿는 마음의 만남 속에 비로서 이루어지는 너와 나의 관계인 것이다.

    에로스가 어머니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말을 어기면서까지 지불한 희생에 대하여 프쉬케가 에로스와의 맹세를 파기하는 불신으로 대답하였다면 이는 분명히 사랑의 배신이며 종말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에로스가 제시한 사랑의 조건

    " 결코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고도 하지 말고 내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말라" 던 그 무조건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신뢰 위에서만 사랑은 성립되는 것이다.

    스스로 에로스를 배신하여 사랑을 잃어버린 프쉬케는 다시 그 잃어버린 사랑의 회복을 위해 말할 수 없이 신산한 악전고투를 치러 내는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보리, 조, 양귀비 씨앗을 밤이 되기 전에 보리는 보리대로, 조는 조대로, 따로따로 가려 놓아야 했고, 맨땅 위에서 잠을 자고, 마른빵 부스러기로 요기를 하며 또 다시 강둑 숲속에 있는 황금털이 난 사나운 양털을 깍으러 떠나야했다.

    산 꼭대기에서 떨어져 내리는 무서운 폭포수의 물을 길러 가고, 죽음의 망령세계로 천신만고 끝에 내려가서 아프로디테에게 바칠 미의 상자를 얻어 와야 했다.

    실로 말할 수 없는 고초와 시련을 겪은 프쉬케

    그리하여 마침내 에로스를 다시 만난 그들의 사랑과 마음

    즉 에로스와 프쉬케는 비로서 뜨겁고 이별없는 결합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쉬케가 치러내는 가지가지 곤욕과 시련은 무조건적인 희생이며 사랑의 절대성을 말해 주고 있다.

    절대적인 사랑, 그것은 신의 마음을 닮은 사랑이다.

    어떠한 고난, 어떠한 시련 아래에서도 굽히지 않고, 변절하지 않는 사랑이다.

    성으로 거무죽죽하게 더렵혀지지 않은 사랑, 버터나 잼으로 물려 버리지 않는 사랑, 이기심이나 계산으로 흥정되지 않는 사랑, 그것이 고통이면서도 기쁨이 되고, 암흑이면서도 밤하늘의 별이 되고, 희생이면서도 보람이 되는 그런 사랑의 성은 어디 있을까.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 고린도전서 13   4 - 7]

    이 얼마나 잘 아는 말들이며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말이냐.

    그러나 이처럼 실행하기 어렵고, 지키기 어려운 말들도 다시 없을 것이다.

    시실 사랑의 높은 성곽은 바로 이 쉽고도 어려운 산봉우리에 세워지는 순금의 탑일 것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멀리 바라만 볼 뿐 감히 그 높은 성문을 열지 못하는 빛나는 성

    진실로 그 견고한 성문의 문을 여는 열쇠는 인고와 믿음과 헌신과 겸손으로 무쇠처럼 굳어진 손 일 것이다.

    그리고 그 높은 절벽에 거는 다리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무욕한 빈 마음이고,

    항상 빼앗는 사랑의 손에는 무거운 쇠저울이 들려 있지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손에는 하늘같이 빈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무한히 빈 마음이야말로 바로 어떠한 절벽이라도 오를 수 있는 견고한 사다리가 되며, 날개가 되는 것임을 나는 또 숙지하고 있다.

    거듭 말하여 그 높은 사랑의 성문은 무욕한 희생으로 사다리 놓고, 인고와 믿음의 길고 긴 세월만으로 비로소 열리는 문이다.

    그를 위한 끊임 없는 기도와 축원으로 열리는 문이다.

    기실 피 흘리는 십자가의 아픔 없이는 사랑을 여는 열쇠는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 사랑의 성은 말과 웃음으로 열리고, 그 성은 침묵과 아픔으로 열린다 "

    달나라를 정복하고 우주 비행장에서 밀회를 하게 될지언정 이 사랑의 고전만은 불변의 진리임을 나는 믿고 있다.

     

          [1976년 9 월 4 일 일기 중에서]

     

     

    ' > 생활 속의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  (0) 2011.06.28
    1976년 12 월 5 일 맑음. 일요일  (0) 2011.06.07
    아름답고 착한 사람을 가슴에 묻고  (0) 2011.05.12
    세례를 받다  (0) 2011.04.23
    세상구원의 방주[김수환추기경]  (0) 2011.04.21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