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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예수의 전기[예수평전, 김영사 간, 조철수저]글/생활 속의 신앙 2011. 2. 23. 18:33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예수의 전기[840p]
1 세기 초반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사회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져 서로의 반목과 질서 속에 혼란한 상황이었다.
성전 중심의 사두개들은 로마정권과 결탁한 부유층으로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 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하는 샴마이파와 인본주의를 주창하며 법규해석에 어느정도 자유로운 힐렐파로 크게 나누어졌고 그들 사이의 논쟁과 반목 또한 사회적 분란의 큰 요소였다.
한편 격리된 공동체를 형성해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고 있던 엣세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지막 시대에 사는 의로운 사람들이라 자임하며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다.
그 외에도 로마 왕권에 무력적으로 도발을 일삼던 무리도 있었으며 가난하고 무식하거나 불구자여서 성전의 혜택을 받지 못해 사회계층에 속하지 못하는 부류도 있었다.
이처럼 예수가 성장하고 활동하던 시기의 유대인 사회는 불안했다.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예수의 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가 살았던 시기의 문화적 배경은 중요하다.
- 요셉과 청혼한 마리아의 꿈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그녀가 거룩하신 분의 영으로 잉태할 것이며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임마누엘이 된다고 예고했다.
이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날 임마누엘이 이스라엘에서 길을 내는 별이며 메시아의 도래를 예고하는 장면이다.
- 아기 예수를 축복한 "경건한 자" 는 엣세네 지도자로 예수가 장차 엣세네 공동체에서 큰 장애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는 훗날 엣세네에서 "진리" 라고 불렸던 사악한 사제로 해석 되었던 바로 그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다.
- 나이 열두살에 예수는 "하느님의 집" 에 있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말하며 그의 소망에따라 엣세네 지도자 양성소에서 성장했고 나이 스무살 즈음에 사제와 교사가 되었다.
- 예수는 고향인 나자렛으로 돌아가 엣세네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예수는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하는 바리사이들 가운데 요하난 벤 자카이 랍비와 같은 힐렐파의 랍비들과 교제했으며 그들과 논쟁에서 힐렐의
가르침에 동조하고 비유의 해석 방법과 비유들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교분으로 예수는 바리사이 회당에서 가르쳤고 새로운 성경해석을 피력할 수 있었다.
이 시기가 예수에게는 가장 전격적이었다고 보인다.
엣세네는 바리사이들을 '어둠의 자식들" 이라고 여겨 그들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는 분명히 바리사이의 힐렐파와 토론을 즐겼으며 그들에게서 많은 성경해석의 지식을 습득했다고 보인다.
예수는 자기 공동체의 기본 강령에 문제가 있으면 즉각 반박하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엣세네 사제로서 병을 치유하는 특별한 은사가 있었으며 엣세네 공동체 사람들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유대인들은 물론 심지어 이방인들도 고쳐주는 개방적인 인도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교사로서 이웃 사랑을 가르쳤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선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세우고 반드시 실행하여 서로가 경제적으로 돕고 사는 이로운 공동체를 이룩하자고 이야기했다.
- 예수가 서른 살 즈음 되었을 때 세레자 요한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이라고 선포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은 엣세네 공동체에서 기다리는 메시아의 칭호다.
나사렛 출신의 "요셉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말이다.
그런데 엣세네 지도층 중에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에수와 사촌지간인 요한 세례자가 그를 메시아로 천명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예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제자들을 모았으며 그 표징으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예수는 많은 제자들을 만들었으며 그들에게도 치유능력을 주어 타 지역 전도 사업을 하게 했다.
이로 인해 예수의 새로운 복음은 외국의 유대인 공동체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점차 예수의 성경해석이나 교육 내용이 엣세네의 교리와 상치되는 부분들이 생기자 엣세네 지도부에서는 의혹을 갖게 되었고 또한 샴마이파 바리사이들은 그의 가르침과 의도에 의아심을 품었다.
복음서에 전해진 광야에서의 유혹 사건에서 상상해 볼 수 있듯이 엣세네 지도부는 예수를 회유하려고도 해 보았지만 예수가 이를 거부하자 "의로운 교사" 가
선택한 "하느님의 길"을 방해하는 사악한 사제로 규정하고 그를 엣세네에서 완전히 추방했을 것이다.
-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환전상을 뒤엎어 버리는 등 사제장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그들은 그를 산헤드린에 고발할 계획을 도모했다.
성전 사제장들은 예수의 제자 유다를 포섭해서 그가 예수에게 입맞춤을 하게 했다.
그 당시 언어로 어느 특정한 맥락에서의 입맞춤은 선동자로 지목하는 행위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산헤드린에 넘겨졌고 심문을 받았다.
- 산헤드린 재판관들은 예수에 대해 유죄를 결정하지 못했고 찬반이 반반으로 갈라지자 사제장들은 이 문제들 로마 총독에게 넘겨 주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에게 죄가 없다고 군중들에게 말하자 재판장에 모인 샴마이파 바리사이들과 예수에 반대하는 엣세네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치게 되어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 마침 이날이 안식일 전날[금요일]이어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확인한 다음 예수의 한 제자는 총독의 허락을 받고 시신을 끌어내려 무덤굴에 안치할 수 있었다.
십자가형으로 죽었다는 예수는 우연히도 발목에 못이 박히지 않았으며 죽음의 천사가 방문하지 않는 안식일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안식일 다음 날 예수는 무덤 밖으로 나와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가 "살과 피" 로 일어선 [부활한] 것으로 보여 주었고 이 소문으로 엣세네 사람들에게 많은 동요가 일어났다.
엣세네의 성경 해석자는 예수가 사악한 사제라고 지목하고 그가 오만해져서 변절하게 되었다고 그 당시 상황에 맞게 상세히 해석했다.
- 부활한 예수가 올리브산 꼭대기에서 구름에 싸여 위로 올라가는 것을 제자들이 보았다고 말했다.
승천한 메시아 예수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갔으며 하느님의 오른편에 있는 영광의 보좌에 앉아 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계시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예수의 현존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장면들은 사도행전이나 사도들의 편지에서 잘 읽어 볼 수 있다.
요한묵시록에서 보면 천상에서의 예수의 현존이 "살과 피" 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초대 교회 전도자들은 승천한 예수가 천국에 계신다고 굳게 믿었다.
물론 이러한 신앙심은 유대교 공동체와 심한 갈등을 일으키게 된 동력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그리스도교로 전향한 미드라쉬 학교 학생들의 수효가 많았다고 전한다.
한편 초기 비잔틴 시대 수도사들은 천국의 예수 모습을 가장 거룩하게 표현하기 위해 성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