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제천 의림지 [제 1 경]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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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천 의림지 [제 1 경]
    제천이야기/제천 10 경 2009. 9. 12. 18:07

     

    제천시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3.3km 지점인 용두산(871m) 남쪽 기슭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의 하나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방죽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여 년 뒤인 고려시대에 고을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다시 견고하게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후 1457년(세조 3)에 체찰사(體察使)로 부임한 정인지(鄭麟趾)가 크게 보수공사를 했다.

    최근에는 1910, 1948년에 보수공사를 했으며, 1970년에 보조 저수지로 상류 쪽 1.2km 지점에 제2의림지를 축조했다.

    1972년의 대홍수로 무너진 의림지 둑을 1973년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른다.

    1992년 현재 의림지의 규모는 저수지 둘레 약 1.8km, 만수면적 15만 1,470㎡, 저수량 661만 1,891㎥, 수심 8~13m, 몽리면적 약 2.87㎢이다.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크게 이용했으며, 지금도 제천시 북부 청전동 일대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저수지 주위에는 몇 백 년 된 소나무숲과 수양버들이 있고, 그 기슭에 영호정·경호루 등의 정자가 있어 제천시에서 유일한 경승지이자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저수지 안에는 예로부터 서식해온 빙어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충북 제천의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황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 서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도 하며,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의를 3층으로 석축을 해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 박의림"현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호반둘레 약 2km, 호수면 158,677m2, 저수량 6,611,891m3,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몽리면적은 289.4정보이며, 보수 당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어 삼한시대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이 남아 있다.

    의림지 주변 길을 정리하기 전에는 용바위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집이고 문에 처진 발 사이로 보이는 의림지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술맛이 일품이었는데 지금은 그 집이 사라져 아쉽다.

     

    예전에 용바위 술집이 있었던 터

     

    72년도에는 홍수가 나서 물이 넘쳐 둑이 터져 그 물이 시내로 흘러 내렸는데 제천 시내 중심부는 높은 위치에 있어 그 물은 시내 주위로 빠져 나갔으며 시내는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제천 사람들은 그 이후로 비가 아무리 와도 제천은 떠 내려 가지 않는다고 한다.

    제천이라는 이름이 언덕 제에 내천이니까... 

     


     

     

    의림지를 한 바퀴 도는데는 약 30분 정도 소요되며 수백년 된 소나무와 의림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면 한나절 정도 시간을 보낼 장소는 된다.

    어린아이가 있으면 옆에 놀이동산이 있어 즐거운 하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을 좋아한다면 의림지 위에 용두산이 있는데 2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오르면 치악산, 소백산, 백덕산이 보이고 산 아래 제천 시내와 평야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페디멘트가 가장 발달한 지역을 제천과 구례를 꼽는데 그 모습을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 의림지 전설

    아주 오랜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는 부자집이 있었다.

    하루는 아침에 스님이 찾아 와서 시주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은 성질도 고약하고 욕심만 그득한 사람이었다. 

    주인은 스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 조용하여 스님이 갔으려니 하였는데 가지 않고 목탁을 계속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 난 주인은 거름을 한 삽 퍼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이 모습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가 얼른 쌀독에서 쌀을 한 바가지 퍼다가 스님에게 주고는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그것을 받아 든 스님은 며느리에게 "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치는데 산속을로 피하되 절대로 뒤를 돌아다 보면 안된다" 고 단단히 일렀다.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오니 집주인은 하인들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동이 났으니 누구의 짓인지 밝히라고 소동을 피우고 있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스님이 하도 딱해서 자기가 퍼다 주었다고 고백하였다.

    시아버지는 성질이 나서 며느리를 뒷광에 가두고 문을 밖으로 채워 며느리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왔다.

    며느리는 광 속에 갇혀 안절부절하는데 갑자기 더 큰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였다. 

    며느리는 스님의 말이 생각이 나 광을 빠져 나와 산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얼마쯤 달려 가다가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려 집을 바라 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 굉음이 울리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 속으로 가라 앉아 큰 호수가 되었고 며느리는 그 자리에 돌로 변했다 한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 바위 근천 어디엔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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