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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베티고개 - 위례산 - 성거산- 각원사]우리의 아름다운 강산/금북정맥[완료] 2009. 6. 15. 11:47
2009. 06. 14 03 : 50 제천 출발
05 : 50 베티고개[이티재] 313 번 지방도 출발
시작부터 카메라 작동이 안 되어 오늘은 사진 촬영은 포기
06 : 03 무명순교자의 묘 갈림길
베티고개 0,6km, 서운산 정상, 무명순교자의 묘
06 : 06 베티성지 충정묘 갈림길
베티고개 0 8km, 서운산 정상 1,2km 서운산 방향으로
06 : 22 석남사 갈림길
베티고개 1,3km, 석남사 1,5km, 서운산 0,6km
06 : 25 석남사 갈림길
베티고개 1,4km, 석남사 1,3km, 서운산 정상 0,5km
06 : 27 석남사 갈림길
베티고개 1,5km, 석남사 1,3km, 서운산 정상 0,4km
06 : 32 방송시설 탑
삼각점 [ 안성 21, 1984 재설]
06 : 35 서운산 갈림길
서운산 정상은 왕복해야 함 [왕복 1 분 정도 소요]. 이곳에서 직진하여 계속 가면 안됨
06 : 36 서운산
산불조심 산지정화 표지석, 서운산성 설명 표지판
*** 서운산성 ****
경기도 기념물 제 81호로 지정된 산성으로 북리산성으로도 불리며, 금북정맥의 주봉 서운산에서 뻗은 서쪽능선에서
서남방향으로 골짜기처럼 비탈진 경사면을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싼 반면식 토축산성이다.
06 : 43 서운산 갈림길 로 원위치
이곳은 넓은 평지이며 휴식처로 알맞음. 많은 의자와 벌거벗은 다 무너진 묘지가 있음
06 : 49 휴식후 청룡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헬기장이 나오기 직전에 좌측으로, 헬기장까지 갔으면 계속 직진하지 말고 직각
좌측으로 내려서야 함[길 주의 ]
** 이티재에서 이곳까지는 표지기를 전부 제거하여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단독 종주 산행시 주의를 요함
06 : 56 청룡사 갈림길
청룡사 2,0km, 정상 0,8km
이곳에서 청룡사 방향으로 가면 안되고 직진할 것
07 : 16 의자 3개가 있는 휴식처
07 : 41 옛고개길
08 : 13 엽돈재 [34번 국도, 4차선 아스팔트]
베티성지 8,1km, 서운산 5,4km, 중앙골프클럽도로[이티재] 6,8 km ,청룡사 6,7km,
08 : 23 만뢰지맥 분기점 - 오른쪽으로
08 : 34 삼거리 갈림길 - 우측으로
08 ; 40 삼각점[ 7810 건설부, 91 재설]
08 : 53 삼거리 갈림길 - 좌측으로
09 : 07 전주최위재묘
09 : 08 삼거리 갈림길 - 좌측 내리막으로 [길주의]
09 : 09 부수문이고개 [57번 지방도]
이정표[ 성거산 성지 - 베티성지] 위례산 방향으로
이후 임도따라 계속
09 : 22 임도 끝
09 : 30 큰 소나무 밑, 의자 2 개
09 : 43 이정표
위례산 0,3km, 부수문이고개 2,1km, 입장 2,1km
위례산 방향으로
09 : 51 삼각점 [447 재설, 78,10 건설부], 돌탑
아래 그늘에서 점심
10 : 19 식후 출발
10 : 20 위례산
정상표지석 2 개. 위례산성 표지석, 위례산성 설명 표지판
*** 위례산성 ****
위례산성은 천안시 북면 운용리에 소재하고 기념물 148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해발 525,9 m 인 위례산 정상을 둘러
싸고 있는 테외식산성으로 둘레는 약 950m 이다.
성벽은 토, 석 혼축공법과 석축공법의 2 중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이 산성은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백재의 도읍지 였던 위례성으로 보기도 하나 조사결과 도읍성이라기 보다는 국방을 위한
산성으로 보이며 쌓은 시기도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10 : 29 이정표
우물목고개 2,2km, 위례산성 230m, 군단이 2,1km
10 : 39 유성농장입구 갈림길
유성농장입구 2,9km, 위례산 0,9km, 우물목고개 1,5km,
10 : 48 임도
10 ; 50 옛고개길[예전에 성황당이 있었는듯, 커다란 나무에 굿을 한 듯]
임도는 끝나고
10 : 57 송전탑
10 : 58 무명봉
이곳에서 뒤돌아 보면 위례산이 보이고 앞을 보면 성거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11 : 03 우물목고개 [포장도]
이곳에서 공군부대 정문까지는 정맥길을 무시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간다.
11 : 20 성거산 순교 성지
11 : 50 공군부대 정문
우물목고개에서 공군부대 정문까지 여름에는 상당히 고생도 해야 할 듯
정문에서 왼쪽으로 우회
12 : 00 군부대 끝 지점
이곳에서 숲으로
12 : 05 성거산[579m]
성거산 정상은 공군부대 내에 있고, 이곳은 가짜 정상임
정상표지석, 삼각점
이곳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갈 것[길주의]
좌측으로 가면 송전리 방향
12 ; 24 만일고개
송전리 1,3km, 성거산 0,7km, 만일사 1,1km, 태조산 3,4km
태조산 방향으로
12 : 33 이정표
국민은행연수원, 만일사. 좌불상
12 : 40 걸미고개
이정표 : 계성군의 묘, 숙의의하씨 묘, 삼뱅이, 만일사
12 : 45 삼거리 갈림길
우측으로
12 : 54 이정표
성거산, 태조산, 상명대학교
태조산 방향으로
13 : 00 유왕골고개
정자, 의자가 있음
이곳에서 각원사 방향으로 가면 각원사로 바로 내려가지 못한다.
이곳에서 3분 정도 더 진행하면 정자 나오며 1분 정도 더 가면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동굴, 마애불, 그리고 내려가면서 수많은 돌탑 사이로 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내려 갈 수 있고 시간도 10분 정도 짧게 내려 갈 수 있다.
13 : 20 각원사 버스 주차장
오늘의 종주 끝
카메라는 작동이 되지 않고
이티재의 옹벽에 올라 카메라를 들고 이티재를 담으려고 셔터를 눌렀는데 작동이 안된다.
세상에 어쩌면 이럴수가 있을까.
지금까지 정맥 종주를 하면서 두번째로 카메라 없이 가는 종주 산행이 되었다.
호남정맥 종주 시 한번은 버스에 카메라를 두고 내리는 바람에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고, 이번에는 카메라 작동이 되지 않는 바람에 그냥 산행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카메라 없이 가면 사진 찍을 시간을 절약하니 더 빨리 진행 할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일일이 기록하다보니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소요된다.
카메라가 있으면 지나면서 그냥 꾸울 눌러 저장하고 나중에 다시 찾아 기록하면 되지만 카메라가 없으면 일일히 기록해야만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날은 더워서 땀은 비오듯 기록 종이 위에 떨어지고, 앞에 가는 사람은 어디까지 갔는지도 모르게 가버리고.... 집에 와서 카메라를 점검해 보니 충전이 하나도 안되어 있다.
그 전날 충전을 확실하게 하고 짐을 챙겼는데 어인일인지 궁금하다.
서운산은 표지기가 없어
이티재의 옹벽을 오르면 이정표에 산이름도 없이 "정상" 이라고만 표시되어 있는데 이 정상은 서운산을 말한다.
이 서운산은 이 부근 안성 사람들이 많이 찾는 탓인지 길 정리는 무척 잘 되어 있다.
그런데 길 주변에 있는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표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없앴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 같은 것이 단 한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누군가 담당자가 있어서 매일 표지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비 되어 있다.
혼자서 산행을 하는 사람한테는 길 잃기가 꼭 알맞다.
왜냐하면 산행시 매달려 있는 표지기가 길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표 표시가 워낙 자주 있어서 서운산을 향해서 가기만 하면 된다.
이티재에서 서운산 정상을 올라 헬기장을 갈 때까지 어떤 표지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당황하지 말기를.....
위례성이 백제의 첫 도읍지인줄 알았더니
위례산 정상에 선다.
정상은 평탄하고 수십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터가 있다.
위례산은 입장면 호당리와 북면 운용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위례성지가 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직산 위례성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정상의 위례산성 설명 표지판의 내용을 읽어보니 역사가 바뀌었나보다.
내가 배우기로는 백제의 첫 도읍지 위례성으로 배운 것 같은데 이 표지판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하긴 역사는 증거물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까...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보면 1,690척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전해지고 있고 또 온조왕 13년(BC 5)에 이곳으로부터 경기도 광주지방으로 천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고 한다.산 정상 부근에는 용샘이라는 샘터가 있었다고 한다.
백제의 온조왕이 위례산에 산성을 쌓을때 팠다는 이 샘이 용샘으로 불린 이유는 온조가 밤이면 이 샘에 들어가 용으로 변해 적진의 동태를 살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샘은 맑지 못하다 한다.
온조가 밤마다 용으로 변하여 금강과 한강을 오가며 적진의 동태를 살폈다는 것도 어찌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성거산 오르는 길은 너무 뜨거워
위례산을 내려 와 우물목 고개에 이르면 아스팔트 포장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성거산 정상까지는 40여분여를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그야말로 땡볕이다.
아침에 서운산 정상에서 남자들이 썬크림을 바르길래 "저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인가 " 했더니 지금 이 도로를 걸으면서 이해가 된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걷는 우리처럼 힘겹게 오른다.
바짝 달라 붙는 옷에 가운데는 불뚝 튀어 나온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폼으로 가는데 글쎄 나는 남 부끄러워 저런 옷을 못 입겠다.
성거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으며 그 옆 작은 봉우리에 성거산을 대신하여 정상 표지석이 있다.
성거산은 여지승람(與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거처 남정할 때 직산 수헐원(시름세)을 지나다 동쪽을 바라보니 산 위에 오색의 구름이 떠있어 신이 계시는 산이라 하고 신제를 지냈기 때문에 산이름을 성거산(聖居山)이라 하게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太祖), 세종(世宗)이 온양온천(溫陽溫泉)에 갈 때 지체하였으며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성거산성은 천안시 성거읍 해발 579m의 성거산 정상에 쌓은 산성이다.
백제는 산성이나 읍성을 만들 때 반드시 익성(翼城)을 지었는데, 익성은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성을 만든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거산성과 서운산성은 위례산성의 익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렇게 볼 때 성을 쌓은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고 한다.
지금은 공군부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군사 통신기지 설치 당시에 성곽이 많이 파괴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걸마고개
성거산의 급경사를 내려오면 만일고개에 내려와 태조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걸마고개에 달하는데 이 걸마고개에 있는 이정표가 일반적인 이정표와 다른 것이 보인다.
계성군의묘, 숙의하씨묘 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대체 저것이 무엇일까 하고 찾아 보았다.
걸마고개는 삼벵이(메일골)에서 화전민들이 숯이나 화목을 성거, 직산으로 내다 팔러 갈 때 넘나들던 고갯마루라 하며 이름도 희얀한 삼벵이는 송전리보다 더 산 속으로 들어온 성거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한다.
王子 계성군 묘
계성군(桂城君) [1478(성종 9)∼1504(연산군 10)] 은 성종대왕의 2남이며 어머니는 숙의 하씨로 계성군은 슬하에 자녀가 없이 26세로 요절하였고, 성품이 거만하고 포악했으며, 시중잡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을 일삼았지만, 연산군이 그를 총애하여 벌을주지 않았다 고 한다.
묘소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 을좌에 있었는데 1971년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하며 왕족의 무덤이지만 평민의 무덤과 다른 것 없이 작다고 한다.
다만 비석에 새겨진 글자에 王子라는 글씨가 들어 왕족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고 한다.
숙의 하씨 묘.
숙의(淑儀)라면 조선 시대에, 임금의 후궁에게 내리던 종2품 내명부의 품계로 소용(昭容)의 위, 소의(昭儀)의 아래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淑儀라면 무술이를 거느릴 수 있을 정도로 재정권을 가진 후궁이라고 한다.
각원사
고려 태조 왕건의 전설이 깃든 태조산은 '삼국의 중심이요 일방 요충지지'라고 하여 오룡쟁주의 세로서 이 땅에 만약 삼천호읍을 설치하여 군사를 훈련하면 백제가 장차 항복하리라 하여 태조가 친히 산에 올라 두루 살피고 비로소 천안부를 설치하였다 하여 태조산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태조 왕건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하고 훈련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천안이라는 이름은 하늘 아래 가장 편한 동네란 뜻이라 한다.
태조산 서쪽에는 동양최대의 좌불상인 청동대좌불과 각원사가 건축되어 있다.
각원사(覺願寺)는 이 절의 주지스님께서 직접 지은 이름이며, 그 뜻은 깨닫고 원하는 바를 이루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원사 주지 신법인 스님은 국제포교사로서 일본에 주재해 있으면서 한국 땅에 동양최대의 대좌불을 세우고 온 겨레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사찰을 창건하고자 방방곡곡을 헤매던 중 명산인 이곳을 발견하고 대불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 태조산은 고려 태조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성취했던 호국의 혼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곳이며 지형을 잘 살려서 큰 광장을 만들고 불상의 배치도 조화 있게 마련하였다. 천안의 새 명소로 각광을 받게 된 청동대좌불은 1975년 3월부터 2년 2개월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1977년 5월 9일에 태조산 서북쪽 산기슭에 봉안되었다.
그 왼쪽으로 각원사가 건립되었다.
1977년부터 창건 중인 태조산 각원사의 불사는 많은 불자들의 정성이 모아져 계속 진행중이다.
가운데 200평 규모의 대웅보전은 10년 여의 대불사 끝에 1996년 10월 15일 낙성되었으며, 대웅전은 국내 최대 규모로서 한국 불교문화에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웅보전 앞뜰에 있는 성종루는 1990년 4월에 낙성을 보았는데 329평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보신각보다 크다.
관광객들은 주로 산악회 같은 단체에서 다른 곳을 여행하다 좌불상을 보기 위하여 잠시 들른다.
그리고 천안시민이나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여름철에 휴식을 위해 이곳에 들린다.
천일 기도나 49제와 같은 불교적인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오는 불자들도 있다.
각원사의 좌불상은 처음 봉안되던 시기에는 동양최대의 불상이었으나 20년이 흐른 지금은 강원도 신흥사에 있는 불상보다 작다.
그리고 일본에도 이만한 불상이 2개 정도가 있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감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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