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약국의 퇴근시간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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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국의 퇴근시간
    글/약국정담 2007. 12. 27. 15:40
     

    내가 어릴 때 매일같이 바라던 소원이 있었다. 

    그 소원은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가 집에 계시다가 나를 맞아 주는 것이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항상 나는 혼자였다.

    식사도 부엌에 가서 뒤져서 혼자 찾아 먹고는 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광주리를 이고 여기저기 떡이나 엿, 두부와 같은 것을 팔러 다니시다가 나중에는 리어카로 바뀌었지만......

    항상 9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셨다.

     그리고 새벽이면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장사를 하러 나가셨다.

    나가시기 전에 밥상에 아침을 차려 놓으면 그 차려진 밥을 먹고 학교에 가면 다른 어머니들을 그제서야 아침 준비하느라 물을 길르러 나오곤 �었다.

    그러면 묻는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너 아침 먹고 가니”

    아침이나 저녁이나 어머니를 구경하는 것은 바쁜 농사철 뿐이었다.

    농사철에는 장사를 안 하시고 농사를 짓고 농사철이 지나면 장사를 하러 다니셨으니까.

    그 어릴 적 생각은  나중에 내가 크면 아내는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고 애들이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반갑게 맞이 해주는 아내를 상상하고는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은 못하고 오로지 처자식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그것 뿐 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세상에 먹는 것만 걱정하지 않아도 행복한 집안이었으니까.

    지금 약국을 20년 이상 하면서 또 애들이 다 커서 대학을 다니느라고 우리들 곁을 다 떠나 있어도 약국 문 일찍 닫고 애들하고 같이 놀아 본 기억은 휴가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 같다.

    처자식을 위해고 또 나 자신의 성취감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산 것도 좋지만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보다 더 높고 넓게 생각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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