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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화북매표소 -문장대 - 신선대 - 천왕봉 - 법주사]우리의 아름다운 강산/전국의 유명 산 2016. 5. 16. 20:25
6시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10분이 지나 움직인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면 상주를 지나 속리산 화북관리소까지 3 시간이 훨씬 더 걸려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은 괴산을 지나 화북 입구까지
2 시간이 채 안 걸렸다.
기사가 똑똑한 것인지, 길이 좋아진 것인지 ...
속리산
천왕봉에서 묘봉 구간까지 산행을 한것을 치면 이번이 6 번째 산행이다.
지금까지 산행을 올 적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거나, 아니면 비가 많이 와서, 안개가 끼여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은 거의 없다.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는 1 월 첫째 주에 이 곳을 지났는데 얼마나 추웠는지 지금 생각을 해도 끔찍하기만 했던 기억 밖에 없다.
하얗게 쌓인 눈과 세찬 바람, 엄청난 추위 앞에 옆을 볼 겨를이 없이 그저 앞만 보고 걸어 갔을 뿐이다.
추위 속에서 문장대를 지나 밤티재 사이에 있는 개구멍 바위 부근을 지날 때는 한 마디로 공포 그 자체였다.
1 월 세째 주에는 속리산 국립공원인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구간을 지나갔는데 그때는 정말 체감온도가 영하 40도가 되는 엄청난 추위에 얼어버린
밥과 국 그리고 대야산을 내려 갈 때의 공포, 추위에 지쳐 산행이고 뭐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잠이나 자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던 그 순간.
만약 그 자리에 그냥 잠들었으면 ... 뒤따라 오던 동료가 깨우지 않았으면 ...
지금 이 시간에 또 다시 이 산을 오를리는 없으리라.
날씨가 풀리고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에 가면 별 것이 아닌 곳도 기상이 안 좋으면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리는 그러한 속리산이다.
오늘 같은 날은 산행하기에 얼마나 좋은가.
아주 이무로운 산행 친구들과 함께라서 더 즐겁지 아니한가.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한남금북 종주를 하기에 위해 천왕봉에 섰을 때 심하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눈도 차마 뜨지 못해 서둘러 쭟겨 내려갔던 순간들이
뇌리처럼 지나간다.
나에게는 산에 대한 공포를 아주 심하게 안겨 주었던 산이 속리산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은 다행이도 밤 늦게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바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산행을 마칠때까지 비가 오지 않아서 하루 종일 멋진 산행을 했다.
산행 중에 아내가 이야기한다.
" 앞으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산에 다시 한번 올 수 있을까 ? "
글쎄 ! 사람 사는 일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속리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산은 일년에 한번씩은 어디를 오르더라도 온 것 같으니까.
또 다시 못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속리산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반면 바위들이 많아서 산행시 체력 소모가 많이 된다.
거리에 비해서 산행시간도 많이 걸린다.
또 속리산을 내려가서 세심정에서 주차장까지 1 시간 30분에서 2 시간 가까이 걷는 아스팔트 길이 너무 힘들다.
속리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산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커다란 암릉보다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바위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산행을하면서 주변을 보면 조금만 힘을 주면 옮길 수 있을건만 같은 크지 않은 돌들이 바위 위에 또 바위가 쌓여 예쁜 조각품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생김생김이 우리가 많이 보던 동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어 동물 이름 맞추기를하건만 각자가 보는 관점에 따라 이름이 틀려진다.
이 세상을 창조할 때 그 앙증맞은 돌들은 신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던져 놓았을것이라 생각해 본다.
2016 .05. 15 06 : 10 제천 출발
08 : 00 속리산 화북관리사무소 도착
버스는 이곳까지이고 소형차만 조금 더 올라 갈 수 있음
이 곳에서 소형차는 주차비를 받고 올려 보내고 대형버스는 되돌려 내보낸다.
시내버스 종착점
관리사무소 앞에 있는 문장대, 화장실 방향으로 진행하면 되고, 아스팔트 길로 가도 됨
진행하면 소형차 주차장이 나오고, 관리 사무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음
08 : 10 산행시작
08 : 20 소형주차장 , 화장실
소형 주차장에서 본 속리산 능선
08 : 32 인원체크 입구
09 : 24 쉼터
절구통에 몇 사람이 앉았다.
그 안에 물이 있었으면...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그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할 수 있으면.
초록의 싱그러움에 둘러 싸여 고즈넉한 곳
마음이 울적할 때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을 잊을 것 같다.
세속에서 다른 사람과 살아가려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분노와 의심 그에 따르는 피로를 항상 느낀다.
그럴 때 이 곳에 앉아 풀향기에 취하고, 바람 소리, 새소리에 취하고 싶다.
경사진 바위 위에 의자처럼 앉았다.
아래에는 갈길 잃은 나무 뿌리가 길을 찾아 헤매고
지나는 길손은 아직 갈길 먼 비탈진 산길을 바라보며 한숨만 짓고 있다.
뉘신가요 ?
그 자리에서 사진 찍으면 멋지고, 예쁘게 나오나요 ?
차라리 그대들이 서 있는 바위가 훨씬 더 예쁘고 멋져 보이는데...
인간이 만든 어떤 위대한 작품도 신이 만든 하찮은 돌만도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곳이 바로 속리산입니다.
이 곳에 있는 바위들은 큰 바위가 꼭 작은 바위를 하나씩 껴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0 : 11 옛 문장대 휴게소 터
예전에 휴게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식탁이 달린 의자 몇개만..
이 공터에 예전에는 휴게소가 있어서 라면, 음료, 막걸리 등을 팔았었는데 ..
왜 없앴을까
산악인들의 소원이었을까
그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었는데..
추운 겨울 지나며 들르는 주막집처럼 ..
추운 겨울 따스하게 손을 녹이는 오두막처럼..
질긴 삶을 사는 철쭉은 편한 삶을 사는 철쭉보다 꽃의 색깔이 진하다.
10 : 20 문장대
지금 이 자리는 바람이 별로 세지 않지만 철 사다리를 올라 정상에 서면 바람이 무척 세게 분다.
조금만 더 세게 불면 날아갈 것처럼..
문장대 아래 헬기장에서 밤티재로 가는 산줄기
문장대에서 묘봉으로 향하는 능선
10 : 30 문장대 쉼터 원위치하여 점심 식사 40 분
문장대를 올라 갔다가 내려 와서 나무 그늘 아래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니 너무 춥다.
올라 갔다가 내려 오면 이 자리조차 차지하지 못할까 두려워 배낭을 전부 의자에 벗어 놓고 문장대를 올라 갔다가 내려 왔건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산 위의 추위가 나를 햇볕으로 내쫓는다.
산에서 이기심을 버려야하건만 인간세상의 생각과 행동을 버리지 못했음을 산신령이 보기에 얼마나 미웠을까.
따스한 봄!
햇볕에 쪼그리고 앉는다.
이 순간 나는 고양이가 된다.
산행시 들고 다니는 조그만 의자를 땅 바닥에 놓고 야전상 위에 점심 식사를 차려 놓으니 편안한 일상이 된다.
11 : 10 점심 식후 출발
조금 전 문장대 정상에서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서 있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바라보면 어찌 저토록 태평스러워 보일까.
바람 한 점도 없는것처럼..
바위 틈사이에 핀 철쭉이 예쁘다.
그 삶의 질김이 경외스럽다.
나는 철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철쭉은 마음씨 여린 덩치만 큰, 별 볼일이 없는 그런 남자같다.
진달래처럼 조그맣고 당차 보이지 않는 그런 흐리멍텅한 인간같다.
그래서 나는 철쭉은 별로다.
그런데 왜 이 철쭉은 나무 사이를 뚫고 그 바위 사이에 자리를 잡아 힘겨운 투쟁을 할까.
그것도 모자라 수많은 인간들이 너를 보고 만지고 당기고 뭉개고할텐데..
몹쓸 인간 만나지 말고 악착같이 살아 남기를 빌어본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비행기일까.
점심 식사하는 사이에도 5 ~ 10 분마다 남으로 내려가는 비행기는 없고, 북으로 올라가는 비행기만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용인 방향으로 해서 인천이나 김포로 가는 비행기가 아닐까.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만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고 ,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것을 보면 나에게는 방랑기가 있는가보다.
강아지가 소나무를 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범이 소나무를 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정스런 바위 한쌍.. 이빨 내놓고 싸우나요 ?
으라차차... 소나무가 드디어 바위를 갈라 놓다.
11 : 54 신선대
이 신선대 휴게소는 아직 있네...
이 곳에 올적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깊은 산 속에, 높은 곳에 어찌 살까.
장을 보러 가려면 이틀은 걸려야 하고.
몸이라도 아프면 어찌할바를 모를 것 같은데 ...
감자전, 도토리묵을 사 먹으라고 외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린다.
혼자 외로이 살면서 느긋하고 이 세상을 달관한 그럼 삶이 더 아름다워보일텐데..
하루에 몇명이나 지나며 그것을 사 먹을까.
한달 생활비나 벌 수 있을까.
이 오지에서 쓸일도 별로 없겠다마는 그래도 기본 경비는 있어야 할까.
식자재는 어떤 방식으로 운반을 하는지..
다른 것은 몰라도 " 쓰레기만큼은 자기 것 되가져 오기" 해야 합니다.
이 팔랑개비의 용도가 뭘까요.
신선대 휴게소는 예나 지금이나 집은 그대로이네
그냥 막 던져서 쌓은것처럼
성종씨 부인이 놀라서 소리소리 지른다.
저 앞에 아저씨가 "뱀이다" 그래서 놀랐다고..
그 난리를 치느라고 길을 막고 사람들이 가지도 않고 서 있어서, 성종씨 부인이 서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 바위 사이로 들어가서 한 바퀴 휘둘러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바위를 돌아가면 한 줄로 두세명이 서 있기에 딱 좋은 장소가 있다.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간 종주할 때 이 자리에 서서 소변을 보았는데 소변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스러운지 그 소리에 놀라 아래로 내려다 보았다.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었다.
소변 줄기가 약한 사람도 천둥치는 소리로 변해 들리리라.
절벽에 서서 뒤돌아 보면 여자들이 볼일 보기에 아주 딱 알맞은 바위 틈 장소도 있다.
사람들의 심리는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이 자리에 더 서 있지도 못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볼일을 보았는지... 지린내가 진동을 해서 더 이상 서 있지 못해서 바로 나왔다.
올해처럼 비가 많이 왔는데도 냄새가 이 정도라면 비가 안 올때는 냄새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12 : 27 입석대
나무가 우거진 여름에는 입석대를 볼 수가 없다.
주변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가도 입석대는 잘 보이지 않으니 주변 나무 두 그루만 베어냈으면 좋겠다.
오늘도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지나갔으리라.
그냥 커다란 돌이 하나 삐죽이 서 있는 것이니. 뭐 볼 것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사람들이 입석대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으니까.
임경업 장군이 돌을 가지고 놀다가 꽂아 놓았다는데...
12 : 46 고릴라바위
새끼만 고릴라처럼 보여
상고석문은 정말 바위 굴 속을 지나가는 것이고, 이 고릴라 바위가 있는 곳은 상고석문 바깥에 있다하여 상고외석문이라 한다.
아직 피지 않은 철쭉이 더 예뻐 보여
12 : 54 두껍바위
거북이가 바위를 올라가네
13 : 00 자연동굴 바위터널[상고석문]
13 : 15 천왕봉 , 법주사 갈림길
천왕봉 포기하고 법주사로
천왕봉은 몇번 올라 보았지만 크게 볼 것도 없고, 내려 가는 길을 나의 옆지기는 한없이 헤매니 먼저 내려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일행과 같이
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선다.
13 : 30 상고암 갈림길
13 : 36 배석대 [단석대]
벌어진 틈 사이로 자라는 소나무가 앙증맞다.
그런데 왜 배석대라 했을까.
아무리 보아도 천왕봉을 바라보고 절하는 모양은 아닌데..
배석대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은 무척 아름답다.
누군가 배석대 앞 바위 바닥에 단석대라 새겨 놓았는데 정말 누군가 바위를 톱으로 베다가만 바위로 보인다.
배석대에서 바라 본 천왕봉
13 : 57 상환석문
이 석굴 참 멋지네...
14 : 09 상환암
현수막은 이 곳에서 공부한 서생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모양이라..
축하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이름까지 공개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머리를 감는다.
손이 시리다.
손을 세번 이상 물에 넣지 못할 정도로 차갑다.
얼굴에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물로 아무리 문질러도 미끄러운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얼굴이 흘러 덕지가 된 기름을 기어이 없애려고 물에 손을 계속 담드었더니 손이 아려온다.
14 : 34 세심정
이곳부터 주자장까지는 포장도로
여행을 온 아빠가 어린 딸에게 절구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설명을 한다.
아이에게 무언가 설명을 한다는 것
그 당시는 그 말을 아이는 이해를 못할지라도 나중에 그와같은 것을 또 다시 본다면 아이는 " 아 ! 예전에 아빠가 나에게 설명하던 것, "
어디에서 그것을 내가 보았는데 하고 아주 쉽게 이해할 것이다.
절구가 무척 크다.
두개나 된다.
지금은 비록 물받이로 사용되고 있지만 800 년 전에는 이것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곡식을 빻고 먹거리를 만들었을까.
속리산 산행은 지금부터 고행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 2 시간 가까이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하는지 모른다.
힘들기도하지만 짜증스럽다.
땀이라도 많이 흘리면 사타구니 다 헤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빨리 걷기보다는 천천히 주변 구경하면서 즐기면서 걸어라.
빌어먹을 인간들.
왜 여기까지 차를 끌고 와서 걸어가는 사람들보고 비키라고 난리들인지 ?
15 : 00 저수지
저수지에 물고기 무척 많다.
수달이 산다고하는데 수달은 양식 걱정 안해도 되겠다.
먹거리가 많아서..
15 : 13 법주사[사적 50호]
법주사 주변은 명승 503호로 지정되어 있다.[2009년]
팔상전[국보 55호]
학교 다닐 때 목조건축물로 가장 크다고 배웠는데 중국 가니까 목조건축이 팔상전보다 10배는더 큰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역시 대국은 대국이구나
금동미륵대불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
의신조사가 인도에 갔다가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길에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었다고 한다.
의신조사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에 비범한 기운도 느껴져서 그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뛰어난 고승대덕들이 차례로 법주사에 주석하며 수차례에 걸쳐 중창이 이루어졌다.
문종의 다섯째 아들인 도생승통은 법주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원종 때 미수대사는 왕명으로 각종 경전 92권을 찬술하기도 했다.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공민왕이 직접 법주사에 와서 양산 통도사에 모셔진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했다.
이때 사리를 모셨던 사리탑이 아직도 법주사 능인전 뒤쪽에 남아있다.
법주사는 31본산의 하나로 고려 숙종이 그 아우 의천을 위하여 인왕경회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가 3만 명이나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도 법주사에 들러 복천암에 머물던 신미대사를 도와 절을 크게 중창했다.
조선 중기에는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지닌 대찰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대사와 벽암각성 스님이 팔상전 등 전각을 중건했다.
1939년에 당시 주지였던 장석상 스님이 의뢰해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김복진이 법주사 미륵불상을 조성했으나 한때 중단되었다가 1964년 완공했다
[위키백과]
인생의 가장 큰 동력은 한번도 쓰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가능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가능할까.
어제 부처님 오신 날 스님이 TV 에 나와서 오뚜기는 중심이 있기 때문에 넘어져도 똑바로 설 수 있다고 설명을하던데..
어제 TV 에서 스님한테 들었던 소리를 여기서는 글씨로 보다니..
올해 나의 좌우명으로 삼아야겠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일어나라
쌍사자석등 국보 55 호
오는 인연 막지 말고 가는 인연 잡지말자 [정통찻집 다향]
다방 [찻집]다운 문구다.
다방에서 절에다 왜 이런 내용을...
좋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우리네 마음을 편하게하는 문구냐 ?
이 생에서 인연은 항상 존재한는 것을
이 생에서 옷깃 한번 스치는 것이 전생에서 3 천 겁을 스쳐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
우리 산악회 회원들 한달에 두 번 씩 그 것도 장시간 같이 떠들고, 웃고, 같이 식사도하고 이 얼마나 큰 인연인가.
우리는 전생에서 좋은 인연이든 악한 인연이든 한 가족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 모두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만날적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기쁜 웃음을 주는 그런 회원들이 되도록 서로 노력합시다.
엄청나제 질긴 인연으로 생각하고 서로를 위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하는 그런 산악회를 만들어 갑시다.
석조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는데 아마 욕조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김치를 담그어 먹는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일 것이고 하니 목간밖에 더 했을까
15 : 28 법주사 일주문
일주문을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아스팔트길을 정처없이 걷는다.
그래도 매표소까지는 숲속 산책길을 만들어 놓아서 덜 피곤하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 사람만이 이 길을 가니 차 때문에 성가실 일은 없다.
15 : 34 매표소 입장료 4,000 원
생각보다 무척 비싼 편이다.
소방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누군가 산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다.
헬기가 세번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 세명이상 다친 모양이다.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조심하시지 !
우리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항상 산은 그 곳에 존재한다.
산이 우리보고 오라고 한 것은 아니다.
산은 항상 그 곳에 있기에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다.
산의 주인은 우리 인간이 아니다.
산의 주인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온갖 새들, 짐승들 그리고 수많은 식물들이 그 산의 주인이다.
우리는 아주 잠깐동안 그 산을 지나치며 구경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의 집에 들어 갔을 때 그들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항상 조용하게 지나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온갖 벌레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수많은 꽃들과 이름없는 풀들의 향기를 맡으며 이 대자연에
감사하며 산을 즐겨야 한다.
산에서 소리를 질러 그 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되고, 풀과 꽃들을 꺾어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15 : 40 조각공원
조각공원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 안에 만들어 놓아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지나가다가 한번 쯤 볼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제천, 만남의 광장에 있는 조각공원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 위 만들어 놓아 일부러 찾아 가지 않는 이상 보기가 힘들다.
이런 것은 제천에도 빨리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15 : 50 상가지역
상가 지역에 들어섰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부침의 냄새가 코를 무참히 자극한다.
대체 버스는 어디에 있는거야.
아무리 걸어도 버스는 보이지 않고,
음식점의 냄새는 나의 양눈을 음식점 안을 주시하도록 만들고.
음식점 안을 아무리 흘겨 보아도 먼저 내려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먼저 간 대장한테 전화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양
멀리 버스 주차장 표지판이 보인다.
할수 없다. 가자
내 생각같아서는 아직 내려 오지 않은 사람들. 내려오면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붙들어 놓고 다 모이면 버스를 끌고 올라가서 한꺼번에 출발하면 좋을 것
같은데 ...
버스 터미널에와서야 버스도 보이고, 먼저 간 대원들도 보이고...
산행 끝
장장 8 시간의 생각지도 않은 긴 여정이었다.
16 : 10 버스 주차장
버스에 배낭을 내려 놓고 식당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멀리 가기가 귀찮다.
주차장에서 가깝고 지나가는 우리 회원들 잡기 좋은 길가에 자리를 잡는다.
일부 사람들은 왜 유원지에서 먹느냐
유원지에서는 맛도 없고, 바가지만 쓰고 ...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요즈음 세상에서는 모르는 소리다.
맛이 있으면 있다고
맛이 없으면 없다고
그 집 개떡같은 집이라고 인터넷에 바로 올라간다.
요즈음 핸드폰 뒤져서 식당 찾는 세상인데 유원지라고 해서 맛이 없다고 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재료 회전이 더 빨라서 더 맛있는 집이 많다.
손님이 비록 한번만 왔다가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손님이 어떤 내용으로 인터넷에 올리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을 그 식당에 오게도 할 수
있고, 못 오게도 할 수 있다.
인터넷에 댓글이 많이 달리는 집이 반드시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집 특유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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