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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 -하노이 [베트남]이 세상 구석구석/베트남 2010. 1. 27. 10:12첫 째날 2010, 1, 21
늦은 밤 시엠립에서 비내리는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약 2 시간 정도 이동하여 하롱베이에 도착한다.
베트남 항공인데 이륙이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예약 되었던 인원이 전부 탔는지 20분 먼저 이륙한다.
하노이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밟고 나가니 우리 시간으로 벌써 12 시 20분을 넘고 있다.
이곳에서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하롱베이로 이동한다.
시엠립에서도 , 이곳 베트남에서도 버스는 현대자동차 제품인데 한국에서 중고차를 들여 온 모양이다.
겉은 다시 색칠을 하였지만 버스 문을 오를 때, 문 유리에는 아직도 " 자동문" 이라는 글씨가 한글로 쓰여 있다.
어느 나라든지 어느 버스든지 마찬가지다.
이 나라 사람들이 그 글씨의 의미를 알까.
하롱베이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노보텔 호텔인데 이 호텔은 너무 비싼 호텔이라 자기 방을 주지 않는다고 가이드가 투덜거리며 자신은 저 아래 보이는 호텔에서 자고 있을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고는 가 버린다.
베트남은
*.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
오랜 미국과의 전쟁으로 미국에 질린 탓인지 베트남에서는 "hotel" 이라는 글자 빼 놓고는 영어가 보이지 않는다.
관공서 건물도, 시내 가게 간판도 .. 어디에서도 영어는 보이지 않는다.
* . 낮잠을 즐기는 나라
시내를 다니던가, 아니면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다니는 중에 보면 학생들이 오전 10 시 30 분인데 전부 집으로 간다.
이유는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란다.
학생들은 집에 가서 자고, 점심 먹고 오후 2 시에 다시 학교에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들은 도시락이 없단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전부 다 10 시 30분 부터 오후 2 시까지 잠을 잔다고 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월남전 당시에도 이 시간에는 전부 잤다고 한다.
*. 건물의 형태
베트남의 건물은 앞면은 좁고 뒤로 길게 지어 놓았다.
시골이야 관계없겠지만 도시의 길가에 집을 지으려면 전부 이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평분배를 위해서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에서 땅을 임대 받아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어느 한 사람에게 전면을 많이 주면 다른 사람이 불평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똑같은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라 한다.
*. 농업
베트남에서는 3 모작, 4 모작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모작까지만 허용한다고 한다.
농사를 계속 지어야 쌀값 떨어지고, 수출도 안되기 때문에 수급 조절을 위해서란다.
*. 커피
베트남에서는 전 세계에서 2 위하는 것이 몇 개 있는데 커피와 쌀 생산량이라 한다.
그 중 다람쥐 커피는 유명하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 들어 보았다.
아마 베트남이 후진국인 탓도 있으리라.
*. 장례문화
베트남의 묘는 대부분 들판에 있다.
비석이 크고 화려하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였다가 2 년 뒤에 파 보아서 시신이 그대로 있으면 그냥 묻어 준 후 다시는 파지 않으며, 시신이 전부 부패 되어 있으면 꺼내어 화장을 한다고 한다.
장례를 지낼 때 남자가 죽으면 상주가 시신을 앞 세우고, 여자가 죽으면 상주 뒤에 시신이 따라 온단다.
남자가 죽었을 때 상주 앞에 가는 이유는 보기 싫으니 빨리 가라는 의미이고, 여자가 죽으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천천히 가라는 의미라 한다.
베트남은 모계 사회에 가깝다 보니 여자가 농사 일, 집안 일 외에도 모든 것을 다하고 남자는 평생을 뺀들거리며 노는 것을 빈댄 말일 것이다.
둘째 날 2010. 1. 22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나갔더니 비가 온다.
그것도 무척 많이 온다.
저 아래 멀지 않은 곳에 배를 타는 나루터가 보이고 바다 쪽에는 어디에서 보건 우리가 TV 에서 보던 그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한후 8 시 30분
하롱베이 구경에 나선다.
하롱베이
비가 많이 내린다. 베트남 모자 " 논" 을 얻어 쓰고 배를 탄다.
이 모자는 비가 오면 우산으로, 햇빛이 나면 햇빛 가리개로 쓸 수 있으니 참 편리한 것 같다.
겨울철 건기에는 비가 내린 적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린다.
그것도 부슬부슬 약간의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냥 퍼붓는다
오늘 하롱베이 구경하기는 글렀다 고 보아야겠다.
그런다고 또 안갈 수도 없고,, 자연의 조화인것을 ..
하롱베이는 베트남 북부에 있는 만의 이름이다.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넓이 1,500㎢에 이르는 만이다.
베트남 제1의 경승지로, 바다의 계림[桂林]이라고 불린다.
1962년 베트남의 역사· 문화· 과학의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그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목록 가운데 자연공원으로 등록되었다.
석회암의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이나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3,000여 개나 되는 섬과 기암이 에메랄드 그린의 바다 위로 솟아 있다.
마지막 날 버스를 타고 하노이로 오는 도중에 바다 방향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제 보았던 하롱베이의 그 많은 섬들이 계속하여 줄지어 있는 것을 보면 그 크기와 넓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날카롭게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는 작은 섬들, 환상적인 동굴이 있는 섬들이 기후나 태양 빛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과 빛깔을 미묘하게 바꾸는 광경 등이 절경을 이룬다.
'하(Ha)'는 '내려온다', '롱(Long)'은 '용'이라는 뜻으로, '하롱'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의미이다.
'하롱'이라는 지명은,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용이 이곳으로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자, 그 보석과 구슬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의 기암(奇岩)이 되어 침략자를 물리쳤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긴 세월에 걸쳐 자연이 조각해 낸 기묘한 이 조각의 세계에는 개· 귀부인· 물개· 사람머리· 엄지손가락 등 이름이 붙어 있는 기암만도 1,000여 개나 된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사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무인도이지만, 많은 종류의 포유동물과 파충류, 조류가 서식하고 다양한 식물상이 존재한다.
주로 바문섬과 캣바섬에서 열대림이 발견되며, 바다에는 1,000종 이상의 어류가 있다.
몇 개의 섬에서는 4500년 전의 잘 다듬어진 돌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베트남 본토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돌도끼였으며, 혼가이섬에서는 호아빈 문화로 알려진 1만 년 전 인류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한다.
이 만 안에는 20∼30가구가 모여 사는 해상 마을이 5개 있다.
작은 바위에 밧줄로 묶어놓은 해상 가옥들이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의 바위 사이에 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외국인을 포함하여 100여 만 명에 이른다. 고 한다.
배를 타고 가면서 느낀 점은 배의 속도도 느리지만 바다가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다.
바다가 아니라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출발하여 30 분 정도 진행하니 천궁동굴이 있는 섬에 내린다.
* 천궁동굴
천궁동굴은 하늘의 궁전이란 뚯뜻이며 보석만큼 아름다운 자연의 작품이라 할만하다.
수억년의 세월에 걸쳐 석회를 머금은 물은 천정으로부터 종유석을 흘려 내려보내고 바닥에서는 석순을 쌓아올렸다.
섬 자체가 크지 않으니 동굴 자체가 클리도 없겠지만 작은 굴 치고는 무척 아름답다.
천정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커다란 구멍도 많이 보여 공기가 순환이 잘 되는 가운데 어떻게 종유석이 저토록 크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중국에 가 본 사람이라면 장가계나, 계림의 황룡동굴에 비하면 너무 작지만 그런대로 묘미가 있다.
동굴 구경을 마치고 다시 배는 이동하고 병아리 섬과 비슷하게 생긴 곳에 배가 서더니 회를 사 먹으란다.
그런데 이곳에 회가 무척 비싸다.
다금바리가 제주도에서는 손바닥만한 것이 10 만원 주고 먹은 적이 있으니 거기에 비하면 무척 싼편이지만 다금바리라 하지 않고 일반 회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진짜 비싸다.
술 값 빼놓고 1 인당 3 만원은 잡아야 한다 면 우리 한국의 물가와 별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갖가지 요리와 식사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나온다.
한국에서 먹는다고 생각하고 , 비싸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그냥 즐겁게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바람에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사진 찍는다고 해 보아야 안개와 구름, 빗속에서 무슨 사진이 잘 나오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겠는가.
할 일이라고는 먹기 싫어도 배 안에서 다금바리 회를 안주로 술을 배가 터지도록 마시며, 구름 속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롱베이의 수많은 섬들을 보며 유람을 하니 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겠는가.
회를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내리란다.
티톱섬이라 한다.
대한항공 선전할 때 나오는 장면을 이 섬 정상에 오르면 볼 수 있다.
*. 티톱섬
티톱이라는 사람은 스탈린의 수제자로서 호치민이 소련에서 공부할 때 절친한 사이었고,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에게 첫우주비행을 양보하고 2차비행에 성공한 우주인이기도 하다.
호치민이 대통령이 되어서 친구인 티톱을 초청하여 여기 하롱베이이를 구경시켜준다.
티톱은 경치에 감탄하여 제일 아름다운 이 섬을 자기에게 줄 수 없느냐고 요구를 하니 호치민은 이 섬들은 인민의 것이니 자기 마음대로 줄 수 있지는 못하고 준다고 해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신에 이 섬의 이름을 '티톱'이라고 붙여서 오래도록 여러사람들에게 '티톱'의 존재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않겠느냐는 제의에 흔쾌히 승낙을 하여 '티톱섬'이 되었다고 한다.이후 이 섬은 전망대를 설치하였는데 하롱베이에서 가장 위치가 좋고, 아름답고, 전망이 좋은 섬이라 한다. 섬
의 선착장도 설치하고 백사장도 있는데 이 백사장은 육지에서 모래를 날라다 조성한 것이라 한다.
셋째날 2010, 1, 23 [하노이]
아침 늦게까지 빈둥거리다 8 시 30 분 하노이로 이동 한다. 약 3 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노이
하노이는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호치민 시에서 1800km 떨어져 있다.
300 여개의 호수로 싸인 450만 인구가 살고 있다.
버스가 힐튼 호텔 앞에 선다.
시클로를 타기 위해서다.
도심은 오토바이 소리에 귀가 멍해질 정도이다.
신호 대기를 하다가 파란 불이 들어 오면 한꺼번에 몰려 나가는 오토바이들의 모습이 장관이고 그 소리는 귀가 멍해질 정도이다.
힐튼 호텔 앞에서 출발한 시클로가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 호암키엠호수를 지나 문묘를 돌아 원위치 하는데 30 분 정도 소요된다.
물론 내려서 이것 저것 살피면서 가면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호암키엠 호수도 크기가 무척 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시클로 타고 지나면서 충분히 구경할 정도 되고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싶겠지만 그러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부근은 도시가 아주 깨끗하고, 공원도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공원 내 화장실 등등 어느 선진국의 도시에 와 있는 기분이다.
시내는 프랑스의 지배를 장기간 받은 탓인지 유럽풍의 집들이 많다.
1858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설립하면서 독립을 선언한다.
1955년 남베트남에 고딘디엠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공산당의 테러 공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다.
20년간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1975년 월맹군이 사이공을 점령하면서 막을 내렸다.
문묘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며 1070년 라이탄통 황제의 통치기간 중 설립되어 공자에게 바쳐졌다.
하노이 학생들의 견학 명소 1 순위이며 1015년 처음 과거 시험을 치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82번의 과거 시험이 치러졌다.
82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에는 1307명의 박사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위인과 박사들이 많이 배출되어 베트남인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돌거북에 이름을 새겼는데 돌거북의 크기와 높이를 보고 그 사람의 신분과 업적을 가름할 수가 있다.
1778년 이 시험이 폐지 되었으며 160여회의 시험이 치러졌으나 현재는 82개의 현판만 남아 있다.
향을 피우며 공자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호암키엠호수
하노이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도시의 청량제처럼 존재한다.
15c 중엽 하늘에서 레 러이에게 비검을 내려 베트남에서 중국인들을 몰아내려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레 러이가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었는데 거북이가 나타나 검을 물고 호수로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후 거북이가 하늘의 주인에게 검을 되돌려 주었다 하여 호암키엠 호수라 불린다.
호수 중앙에 거북탑이 있는데 하노이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
점심 식사
바딘광장
베트남의 독립이 선언 되었던 곳이며 지금은 국회의사당과 공산당 본부 건물 등 정부 행정부 건물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맞은 편에는 호치민 묘가 있으며 묘 주변에 호치민 생가와 박물관. 한기둥 사원이 있다.
위대한 호치민 주석이여 !
우리의 삶 속에 영원하라 !
[호치민 광장에 크게 쓰여 있는 글이라고 하는데 읽을 줄 몰라서 가이드가 번역해 준 글]
이른 아침 6 시에 국기 게양식이 있고 8시에 호치민 묘역을 개방한다.
오전에만 개방을 하며 월요일과 금요일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
방문시에는 어떤 소지품도 들고 들어 갈 수가 없다.
개방시에는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며 지나면서 호치민을 볼 수 있는 시간은 2 _ 3 초면 끝난다고 한다. 그
래서 이 나라 국민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관광을 와서 호치민을 보고 나서는 " 애개 이것 볼려고 이렇게 기다렸어 " 하고 항의 한단다.
베트남 국기는 붉은 색 바탕에 별이 하나 있다. 별이 금성인가... 입구 검문 검색은 공항 수준의 검색을 하며, 호치민 시신이 유리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1 년 중 3 개월은 호치민 시신 방부 처리 때문에 문을 닫는다.
묘소 안은 촬영 금지이다.
호치민 박물관
묘소 바로 옆에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이다.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호치민은 빛을 가져 온 사람이란 뜻이다.
1 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이유 회의에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 항목 요구' 의 제출로 유명해 졌다.
1911 년 프랑스 배의 견습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 갔다가 식민 해방운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20년 프랑스 공산당 창립과 함께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혁명운동을 계속하며 베트남 청년동맹을 결성하여 베트남의 독립을 주도 하였다.
1945년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점령하자 호치민은 8년간 게릴라 전투를 한다.
호치민은 1969년 사망한다.
"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과 아프고 억압받는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국가는 독립하여 국민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며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강구해야 한다 [1950, 호치민]
" 나의 소망은 지주적이고 통일되고 민주적이며 번영된 조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
한 변호사[한승원]의 고백과 증언의 기록에 의하면 한 변호사가 감사원장으로 있을 때 베트남을 방문하여 공무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 "호치민 대통령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하였더니 공무원들이 전부 자세를 고쳐 앉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럴 정도로 베트남 국민들에게 호치민은 절대적이다.
호치민 생가를 둘러 보러 들어 갈때도 소지품 검사를 한다.
크게 볼 것은 없고 잘 가꾸어진 정원 정도만 볼 수가 있는데 어느 나라던지 왕이 있는 곳이라면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기둥사원
호치민 생가를 둘러 보고 나오면 한기둥 사원이 있는데 "대체 뭐 이런 걸 관광코스에 넣었나 " 싶을 정도다.
큰 절이 아니고 둘이 들어가서 앞에 서 있을 자리는 있어도 들어 갈 자리는 없다.
일주사라고도 불리며 1049년 연꽃을 본떠 1 개의 기둥위에 불당을 지어서 일주사라 하는 모양이다.
이 나라에서는 불당은 작지만 대표적인 고찰이라니 할말은 없다만 ... 이런 곳도 관광코스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수상인형극
우리나라 TV 에서 베트남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보여 주는 인형극이다.
10C 홍강[red river] 에서 수확을 끝낸 뒤 농부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인형을 만들어 연못과 논둑에서 열었던 즉흥쇼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허리 높이의 물을 담은 사각 수조를 무대로 하여 베트남 전통 오케스트라와 우리나라의 창을 닮은 체오, 꼭두각시 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바뀌었다.
북부 베트남 만의 유일한 장르이며 무대 뒤에서 긴 대나무 막대와 숨겨진 끈으로 조정한다.
주로 시골생활을 표현하고 있으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 주는 베트남 전설, 농산물을 수확하는 모습, 물고기 잡는 모습, 축제에 대한 이야기 등을 표현하고 있다.
36 거리
구 시가지를 대표하는 거리로 13c 하노이에 36 개 상인이 각각 한 거리씩 맡아 정착함으로써 " 36 거리" 가 되었다.
각종 식료품, 공예품, 생활잡화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작은 음식점과 호텔들로 혼잡하다.
밤 11 시 50분 [한국시간 24일 1 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아침 6 시 10분이다.
며칠 사이에 대한 추위도 지나갔는지 날씨가 푸근하다.
그러나 제천에 가까이 오자 날씨가 춥다.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고 집에 왔더니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아 그것 녹이느라고 하루 종일 고생해야 하였으니 겨울 여행은 항상 어떤 댓가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