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이 세상 구석구석/타이완 2007. 12. 6. 18:51
일시 : 2006, 12, 29 22: 20 분 인천공항 출발
2007 01. 01 20: 30 분 인천공항 도착
29일 오후 4 시 30분 약국 문을 닫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 차가 밀리는 바람에 오후 8시 30분이 되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치고 저녁을 먹고 나니 9 시 30분이다.
부리나케 출발 장소로 가서 비행기 출발시간을 보니 9시 50분 대만 행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된단다.
내가 타고가야 할 비행기가 늦어진 줄 알았더니 다른 비행기여서 다행이다 싶다.
2시간 20분 동안 여행하여 대만 공항에 도착하고 수속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2시 30분이다.
아침 6시 30분 기상하여 호텔 뷔페 식사를 하는데 먹을 것이 별로 없다.
먹을 것이라고는 흰 죽밖에 없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아침 식사를 이렇게 부실하게 주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다.
여기서 3일을 아침식사를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였더니 걱정대로 3 일내내 아침 식사가 그 모양이다.
겉에서 보기에는 호텔이 크고 보기도 좋은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낡아빠진 오래 된 건물이다.
대만은 한족과 원주민이 공존하고 있으며 크기는 우리나라의 경상도 크기만 하며 2천 2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현재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22개국이란다. 그
것도 아프리카나 남미가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데 돈 필요하다고 하면 돈 가져다주고 맺는 돈 외교라고 가이드가 꼬집는다.
대만 총통이 미국을 경유하고 싶어도 중국이 반대하면 가지 못하니 약소국의 비애가 아닐까.
대만과 한국의 많은 점에서 비슷
대만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식사문제도 우리의 입맛과 거의 비슷하여 이곳에서 식사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고추장 만 있으면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고춧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붉은 색의 음식은 볼 수가 없으나 나처럼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좋은 음식이다.
중국 본토처럼 향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며 차에서도 중국 특유의 향냄새가 나지 않는다.
교통문제도 우리나라의 서울과 비슷하게 지하철도 있고 버스 중앙차로제가 있으며 건물에 있는 간판의 모습이 우리네 동네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곳에서도 비어 있는 건물이 많은지 건물 임대 한다는 현수막이 많이 보인다.
이곳은 시내에 고가도로가 너무 많다.
모든 도로를 고가도로로 만드는 느낌이다.
시내 뿐 아니라 시골로 가는 길에 길을 보아도 전부 고가도로로 되어 있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토목 기술이 부족하여 길을 닦는 기술도 부족하다는데 어떻게 고가도로만 만드는지 의심스럽다.
바닥은 습지가 많아서인지는 모르나 교차로만 고가도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 도로를 전부 고가도로로 되어 있고 지금 건설 중인 것도 전부 고가도로이다.
중정기념관에 갔더니 박정희 대통령과 장개석이 회담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또 장개석 부인이 시행하였다는 신지식운동을 하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대만에서 시행하는 이 운동을 모방하여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새마을운동본부장으로 있을 때 대만의 신지식운동 본부와 상당히 많은 교류를 하였다고 한다.새마을운동은 한국에서 모방하여 갔지만 전투경찰 제도는 대만에서 한국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데모 군중이 많다 보니까 대모를 막기 위해서 필요 하였다고 한다.
훼미리마트가 타이페이 시내에 많이 보이는데 90 % 정도는 세븐일레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생활 모습이 한국과 너무 흡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편의점이 많다보니 물건 사는데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다.
중국어를 말하지 못해도 필요한 물건 집어 와서 카운터에 놓으면 금액 계산하여 계산서를 주니, 보고 돈만 내면 되니까 말이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다.
편의점이 이런 식으로 편해서 편의점인가 보다.
대만의 날씨
대만의 날씨는 상당히 춥다.
대만은 열대, 난대, 온대성 기후가 공존하고 있다.
대만도 지금이 겨울이라는데 온도는 15도에서 20도 정도의 온도라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는 약 10도 정도 되는 기온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바깥에 지나가는 여자들 중에 밍크코트를 입고 다니는 여자도 보인다.
그 밍크코트를 자랑하기 위해서 입고 다니는지는 모르나 이 정도면 여기가 얼마나 추운지 알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곳에는 차도 그렇고 호텔도 그렇고 히타 장치가 없다. 모두 에어컨만 돌아간다.
차에 에어컨을 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기사는 틀지 말라고 해도 죽으라고 틀어 놓는다.
감기 걸리기 꼭 알맞다.
외국에서 수입한 차에만 에어컨이 있고 대만 자체 조립품[버스는 자체 조립품이 있으며 관광버스는 전부 2층 구조임]에는 에어컨이 전혀 없단다.
요즈음 같은 시기에 대만 여행을 하고 싶으면 겨울옷을 가져 와야 한다.
똑같은 온도라도 한국의 온도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지역은 해양성기후라서 습기가 많아서 더 춥다.
필리핀의 이멜다 여사가 외국 여행을 하면서 여자들이 밍크코트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너무 입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필리핀의 날씨가 더우니 밍크코트를 입고 다녔다가는 땀띠 나기 꼭 알맞을 것이고 하여 생각해 낸 것이 회의실에 에어컨을 전부 틀어 놓아서 온도를 내려놓고 밍크코트를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필리핀은 대만 바로 아래 있는데도 대만과 필리핀과는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대만의 지형
대만은 담배 잎 모양을 하고 있으며 워낙 산악지대가 많아서 한 바퀴 빙 도는 해안선을 제외하면 가운데는 전부 산악지형을 이루고 있다.
가장 높은 산이 옥산이며 약 3952m 이며 3000m 가 넘는 봉우리가 220개나 되니 해안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은 언덕이라고 놀린다.
그것도 산이냐구..
대만은 총 면적의 75% 가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000m 이상은 여름 날씨가 10 ~ 15 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2000m 높이를 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알맞은 온도라고 한다.
옥산은 2200m 고도의 아리산공원까지 기차가 올라가며 산장 시설은 호텔 급이다. 옥
산은 열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산은 비와 바람, 그리고 암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암벽 등반은 힘들다.
또 산 전체가 날카로운 계곡이기 때문에 물이 걸러지지 않고 바로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사람이 계곡물을 마실 수가 없다. 대만은 토지 전체가 국가 소유이며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는 없다.
옥산은 인위적으로 만든 길을 따라 빙빙 돌면서 올라가도록 만들어 놓아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므로 산행하기에는 편하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등산로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 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거의 모든 식수는 사서 마셔야 한다.
옥산은 대만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앙산맥의 중간 정도인 320km 에 위치하고 있으며 12월부터 눈이 내려 3월까지 눈이 쌓여 있다.
옥산 입산 시에는 대만 산악협회에서 인정하는 고산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사람과 동행하여야 만 입산허가가 난다.
입산 신고는 1 주일 전 여권사본을 보내야 입산이 가능하다.
11명 당 한명의 가이드가 필요하다.
야류해상공원
야류해상공원은 일천백만 년 전 침식과 풍화의 잇단 작용으로 생긴 지형이다.
이곳은 선상암, 촉대석, 생강석, 바둑판석, 해식동굴 등의 지질학상 장관을 이루어 1700m 에 달하는 이 해안은 대만 북부의 가장 유명한 지질공원이 되었다.
주위는 풍부한 해양 생태계와 다양한 어촌 풍경 등으로 인하여 야류라는 이 지역이 교육장소가 되어 관광과 볼거리 휴식을 제공하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공원에 입장하기 전에 입구에 15분 정도 야류 공원에 대해서 설명하여 주는 영화를 보여 주는데 한국 관광객이 많은 탓인지 한국말로 설명을 하여 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로 설명을 한다.
공원 입구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어디에서 많이 듣던 음악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부르는 “준비 없는 이별” 노래이다.
가사 없이 반주만 나오는데 그 음악이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다.,
여기도 한류 바람이 많이 부는 모양이다.
이곳 젊은이들도 한국 노래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 부른단다.
공원에 서 있는 돌은 사람 손이 닿기만 해도 부서지기 때문에 손길을 가능한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 같으면 들어가지도 못하게 할 것 같은데 이곳은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만지고 난리를 치는데 사람 손을 타면 시간이 오래지 않아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버섯 모양의 돌이 서 있는데 윗 부분은 딱딱하지만 아래 허리 부분이 약하여 마모되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지금 버섯처럼 서 있는 돌이 전부 마모되어 없어지면 밑에서 또 다시 같은 모양이 올라와서 마모되는 현상이 반복된단다.
관광을 마치고 나오면 우리나라 관광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먹을거리도 있고 관광 기념품도 살 수 있는데 먹는 것은 우리가 시장에서 먹는 것과 똑같다.
쥐포도 구워 주고, 한치, 오징어 펴서 말린 것 그 밖의 해물 등등해서 파는데 우리 동네 시장에 와 있는 것 같다.
한치 말린 것 하고, 쥐포 5마리 구운 것 3,000원 사서 자랑을 하였더니 전부 그것 사러 가서 버스 출발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아서 1시간이나 늦게 출발하였다.
공원 관광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주변 식당이 자리도 없이 손님들로 꽉 차 있어 식당 참 잘된다 하였더니 어제 이장 선거가 끝나서 당선 된 사람이 한 턱 쓰는 것이란다.
대만은 아직 돈을 쓰지 않으면 이장도 못한다고 피식거린다. 대만은 아직도 선거는 후진국임에 틀림이 없다.
양명산국립공원 온천
대만은 지진지대라서 온천이 많다. 양명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우리가 간 온천은 유황온천이다.
우리는 노천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아래에는 큰 탕이 있고 숲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탕이 몇 곳이 더 있다.
큰 탕에서 앉아서 벌거벗고 숲 속을 왔다 갔다 하는 군상들을 보고 있자니 비디오에서 많이 본 장면 같아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노천탕에는 한국인들만 있지 중국인들은 하나도 없다. 관리하는 직원만 있을 뿐이다.
중국인들은 공중탕에서 벌거벗고 목욕을 하지 않고 개인탕에서 만 목욕을 하기 때문에 노천탕과 같은 공중탕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목욕 후 나와서 보니까 중국인들이 들어가는 목욕탕이 따로 있다.
노천탕에는 남녀 구분하여 벌거벗고 하는 욕탕이 있고 수영복을 입고 남녀 혼탕으로 하는 목욕탕이 있으며 중간에 자리를 바꿀 수는 없다.
목욕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온천의 연기가 나오는 곳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서 일찍 마치고 버스 타고 올라 올 때 보았던 연기 나는 산으로 올라갔다.
흰 연기를 내뿜는 곳에 누런 유황이 바위 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연기 나는 곳을 잘 정리하면 노천탕이 될 것 같은데 여기에 파이프를 박아서 목욕탕까지 끌고 갔다.
가는 도중에 물이 다 식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목욕탕 물은 뜨거워서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다.
탕의 물이 뿌연 것은 원천수 이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태로각 협곡에 흐르는 물도 뿌옇게 흐르고 있다.
대만은 전체의 물이 전부 뿌옇게 흐르고 있다.
호텔 부족
대만에서는 호텔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중국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그 인원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 관광객도 2005년에 40만에서 2006년에 50만으로 늘어났을 것이라 하고, 중국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이 하루 1000명에서 2000명 정도라 한다.
본토 출신들이 대만을 방문 할 때는 직접 대만으로 오지 못하고 타국을 거쳐 대만으로 들어 와야 한다는데 그 불편을 감수하고 중국 본토 사람들에게는 신비의 땅인 대만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우리가 북한을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땅이라고 생각하듯 말이다.
용산사
용산사 절은 타이페이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타이페이 시에서 가장 오래 된 절이며 가장 유명한 절이다.
1740년에 건립 되었으나 자연재해 등등으로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1957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돌기둥에는 용들이 트림을 하며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대만에 있는 절은 대부분 지붕이 화려하다.
장난감을 붙여 놓은 듯, 아이들이 색종이를 붙여 놓은 듯하다.
절 안에 들어가면 엄청난 인파가 피워대는 향에 진저리가 날 정도이며 밤 8시가 넘어서 갔는데도 불공을 드리는 신도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절 내의 모든 물품들이 화려하기만하다.
또 입구에는 점을 치는 대나무도 있어 급한 성격의 신도들은 불공을 드리고 바로 그 불공을 드린 내용을 석가께서 들어 주나 , 안 들어 주나 바로 알아본단다.
절은 별로 크지 않다.
대만의 절은 대부분 시내에 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불교신자라 한다.
야시장
야시장은 용산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에서부터 인파로 넘쳐난다.
우리가 TV에서 많이 보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고 가면 실망이 크다.
TV에서 보면 전갈을 튀겨 구어 먹고, 별 희얀한 것을 다 먹는 것을 보는데 그런 것을 보기가 힘들다.
단 뱀을 무척 많이 걸어 놓고 뱀 장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뱀도 작은 것이 아니다.
사람 키의 두 배 정도 되고 굵기도 어른이 손으로 움켜쥐지도 못할 정도로 큰 것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다른 곳보다 유독 뱀 장사 하는 곳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나라나 사람 심리는 다 똑 같은 모양이다.
뱀탕을 먹겠다고 몇몇이 별렀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모두다 황망히 도망 가 버린다.
이곳이 그 유명한 뱀 골목이라고 하는데 시장 끝까지 가면서 뱀 장사 하는 집은 두 곳 밖에 없는 것을 보면 시대가 변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동물 보호법에 걸려 서각, 뱀,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먹는 것을 볼 수가 없단다.
예전에는 원숭이 골, 제비, 등등해서 이상야릇한 것을 다 시장에서 구경 할 수 있었다는 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볼 수 가 없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중국의 시장은 한 마디로 시장 바닥이다.
대만 시내에 다니면서 보면 외국 명품 거리가 따로 있는지 루이뷔똥, 입센로랑 등등 전부 명품만 있는 거리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서울에는 이런 거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화련 가는 길
대만에서는 기차가 향하는 방향이 북상, 남하로 표시 된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서울 중심으로 하여 서울로 향하면 상행선, 지방으로 내려가면 하행선으로 표시하는데 대만에서는 북쪽으로 가면 복상, 남쪽으로 가면 남하로 표시된다.
만약 타이페이에서 화련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북상 열차를 탄다.
우리가 보기에는 화련이 남쪽에 있으니까 남하 방향을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타이페이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하하기 때문에 북상열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타이페이에서 화련까지는 기차로 이동하면 2시간 30분 이 소요 되지만 버스로 이동하면 7~ 8 시간 고불고불 산길을 가야 한단다.
기차 길도 해안을 따라 달리고 있으며 버스나 국도 길도 마찬가지로 해안을 따라 달린다.
산 속으로 가려면 산이 워낙 크고 깊어서 전부 굴로 통과해야 하기에 너무 힘들다고 한다.
화련으로 가는 기차를 타니 차가 현대중공업에서 만든 기차다,
차 2대 마다 화장실이 하나 씩 있으며 기차가 한국 기차여서인지 차가 낯설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화련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서울 강동 농협 박성직 조합장 내외 와 우리 내외가 마주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가는데 상당히 많은 것을 배웠다.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조용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까 싶을 정도이고 그 부인은 너무 밝고 상냥한 모습을 보여 지루하지 않은 2시간을 보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대만의 시골 풍경은 우리네 시골과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101층 신년쇼
태로각 협곡을 구경하고 타이페이로 돌아 온 시간 이 10시 20분, 바로 호텔로 들어가서 취침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같이 다니던 박성직 강동 조합장이 101층 구경하러 가자고 꼬신다.
그런데 무지 피곤하다.
그리고 나는 사람 많은 곳에만 가면 그만 병이 나 버리는 바람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는다.
오늘 마지막 가는 해를 보려고 50만 이 모인다는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견딘다 말인가.
나는 서울에 가서 4시간 만 돌아 다녀도 이틀을 앓아누워야 하는데 말이다.
그것도 낮이 아니고 한참 자야 할 시간에 간다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에라 호텔에서 TV나 보자. 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에서 TV를 보는데 개막 식전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가 늘어지는데 재미가 없다.
가수들의 노래가 저 모양이니 한류 바람이 이곳에도 밀어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젊은 애들이 부르는 노래를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상당히 흥겨운데 이곳의 젊은 애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쇼가 시작되자 101 층 건물의 불이 꺼지고 레이저로 이루어진 사람모양이 춤을 추고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곳의 TV 가 엉망이라 잘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YTN 이 나오는데 위성중계 방송처럼 시간도 한국시간이 적힌 방송이 그대로 나온다.
그 방송에 적힌 시간보고 한국은 지금 몇 시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다.
빈랑아가씨
대만 시내를 지나가면서 보면 길가 조그만 유리로 만든 박스 안에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하나씩 앉아 있다.
무슨 일을 하는가 하였더니 빈랑을 팔고 있단다.
야자 나무 비슷한 나무인데 약간 작고 쪽 곧고, 조금은 가는 나무인데 그 나무에 달린 열매를 석회로 가공처리하여 팔고 있다. 그 열매를 씹으면 잠이 달아난단다.
처음에 씹은 것은 뱉어내고 계속 씹으면 잠이 확 달아나서 장거리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씹고 다닌다고 한다.
그 박스 안에는 빈랑을 팔고 그 이외의 것은 물 밖에 없다.
장사가 워낙 잘 되니까 파는 것에 따라 아가씨들의 수입이 늘어난다고 하며 그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아가씨의 치마 길이는 더욱 짧아지고 매점 주인들은 옆 가게와 경쟁이 심해지니 몸은 달고..... 그 장사 우리나라에 와서 해 보면 어떨까 하고 하나 사서 입에 물어보니 별 맛도 없는데.... 좌우간 우리나라에 각성제 파는 곳이 없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팔면 장사는 잘 될 것 같다.
화련
화련은 대만의 3대 국제항의 하나이며 태로각 협곡 관광의 거점이기도 하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이며 군사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비행장이 있는데 앞으로 관광객들을 위해서 일반 국제공항으로 바뀐다고 한다.
또 화련은 거대한 대리석을 다양한 용도로 쓰기 위한 채석지이기도 하다.
대리석 공장 견학을 하는데 동양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대리석 가공품을 팔고 있는 건물 앞에는 12지 동물을 조각하여 놓았는데 호랑이가 호리병을 들고, 양은 새끼와 같이 금덩어리와 책을 들고 있는 등 각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것을 조각하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건물 안에 옥과 대리석으로 만든 물건을 팔고 있는데 가격은 조금 비싸다는 느낌이다.
엄청난 공을 들여서 조각하였다는 물건들도 많이 있다.
심지어 3년을 걸려 만들었다는 조각품도 있는데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었다..
화련에 살고 있는 원주민 수는 약 8000명에 이르는데 대부분 아메이족이다.
아메이족의 춤과 노래는 유명하다고 하여 기대를 가지고 관람 하였으나 별 재미는 없고 대나무 춤은 태국의 춤과 똑 같으며 특징 없는 춤을 추고 있으며 입장료는 없는 것 같고 공연 후 사진을 찍어 그 사진 값을 받아서 벌이에 보탬을 주는 모양인데 공연이 끝 난 후 관객은 도망가기에 바쁘고 공연 배우들은 사진 찍힌 사람을 찾아 사진 팔기에 정신이 없다.
춤은 포크댄스 비슷하며 빨간색과 황색의 의상을 입고 있으며 아메이족의 생활을 묘사한 춤과 아메이족의 결혼 풍속을 보여 주는데 추장이 채찍으로 엉덩이를 때리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태로각협곡
대만에서 4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며 대만의 100대 준봉 중 27위에 해당되며 절벽은 대부분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천 년 전 화산 폭발 시 생긴 화련의 태로각 협곡은 전 세계 몇 개 안 되는 협곡 중의 하나이다.
길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깊은 산과 협곡만 있었는데 장개석 총통이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국보를 옮기기 위해 1957년부터 6년 간 죄수들과 화련의 원주민들을 동원하여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도로를 낼 수 있는 장비가 없어서 많은 죄수들과 원주민들이 곡괭이와 삽을 가지고 험한 산 속에서 바위를 깨어 내 겨우 차가 다닐 정도의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놀라운 사실은 바위가 전부 대리석이라는 것이다.
대리석의 매장량은 측정 불가능 할 정도로 많으며 절은 이 도로를 건설할 때 죽은 영혼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태로각 협곡은 침식작용에 의해 대리석과 화강암의 산이며 강의 흐름에 따라 깎여져 생긴 좁은 협곡이다.
하늘을 찌를 듯 깎아지른 산 사이로 좁은 길이 있으며 수 백 미터 아래로 흐르는 계곡 위로 수 십 미터 높이의 대리석 기둥이 있다.
산 속에 뚫린 작은 터널의 모습이 이 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을까 짐작이 된다.
우리가 구경한 곳은 중부횡단도로의 동쪽 끝까지 19km 에 이르는데 마지막 휴게소에서 차를 한 잔 마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이 휴게소가 해발 400m 라고 한다.
초입에서 시작한 장춘사지구, 연자구지구,구곡동의 풍광을 지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거의 많은 구간을 차로만 이동하며 풍광을 감상하는데 장춘사 지구는 버스를 세워 놓고 내려서 절과 강과 주변 풍광을 구경할 수 있으며, 연자구 지구는 사람 한 사람 지나 갈 정도의 길이 있으나 상당히 위험하고, 구곡동 지구는 길을 새로 뚫은 덕분에 옛길을 따라 넓은 도로를 따라 주변 풍광을 구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계곡이지만 설악산 천불동 계곡보다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이 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 박물관은 장개석 총통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4년 자금성 외곽에 설립한 고물진열소에서 시작되었으며 1931년 일본군의 침입으로 모든 문물이 흩어지게 되었으나 1945년 전쟁이 끝 난 후 모두 남경으로 옮기게 되며 1949 년 홍위병에게 패한 장개석은 이 문물 3000여 상자를 대만으로 운반하게 되는데 그 문물로 만든 것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65만 점의 문물이 있으며, 문물 전부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3개월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전시한다고 한다.
문물은 청조[1644 ~ 1911] 궁전의 수장물이며, 송[960 ~ 1279}, 원[1279~ 1368], 명[1368 ~ 1644] 등 4대 궁정으로부터 받아 내려 온 수장품이며 대만에 온 후 수집한 문물을 합한 문물이다.
붓글씨, 회화, 선본구서적, 청대당안, 옥기, 도자기, 진귀노리개 등 품목이 많으며 신석기 시대부터 근래 중화민국 시대까지 수장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전시된 작품을 보면 우리나라 선조들의 모습이 갑자기 왜소해진다.
중정기념당
중정 기념당은 장개석총통의 기념관이다.
장개석 총통과 중국의 국부인 손문과는 동서지간이라 하며 또 한명의 동서는 중국에 살고 있는데 중국에서 재벌이라고 한다.
즉 3명의 여자가 모두 아주 덕망 있고 능력 있는 남자들과 결혼 하였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중정기념당은 장개석이 죽고 난 후 국내외 동포들의 헌금으로 건설 되었으며 타이페이 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많은 관공서 건물과 대만대학의 국립병원도 가까이 있다. 장개석 총통이 89세의 일기로 사망한 것을 기리기 위해 건물의 계단은 89개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 양 측에는 국립극장과 국립오페라 극장이 있으며 기념본당의 건물과 3동은 3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극장에서는 조수미가 공연할 때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건물의 특징은 외관은 전부 대리석을 붙여 놓았으며, 2층 기념관의 문은 높이가 16m , 75 톤의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아침 9시에 열고 오후 6시 30분에 닫힌다.
총통 동상 앞에는 윤리, 민주, 과학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것이 삼민주의의 근본이라 한다.
윤리로 민족주의를 실천하고, 민주로 민권주의를 실천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민생 주의를 실천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