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모스타르 :: 제천 감초당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모스타르
    이 세상 구석구석/보스니아 2017. 11. 1. 11:54

     

     

     

     

     

     

    모스타르는 " 오래 된 다리" 라는  뜻입니다.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네르트바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터키 식민시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1933 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시내의 많은 부분이 파괴 되었지만 2004 년 다시 재건 되었습니다.

    현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습니다.

     

    메주고리예에서 모스타르까지는 버스로 40 분 정도 소요됩니다.

    가는 길에 높고 험한 산을 넘어 가면 푹 빠진 곳에 도시 하나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골짜기 먹을 것도 나올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어떻게 옛 사람들은 터전을 잡고 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아래로 보이는 모스타르입니다.

     

     

     

     

    이슬람 건축물인 줄 알았더니 성당입니다.

    늦은 시간이라 성당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건축물 벽에 고스란이 남아 있습니다.

    벽에 보이는 탄환의 흔적은 부유한 사람들은 집을 수리 했지만 수리를 할 여력이 안 되는 집들은 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에도 총알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구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1 차 세계대전이 시작 되었지요.

     

    1914 년 6 월 28 일 오스트리아 황태자는 사라예보에서 프린치프라는 세르비아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죽습니다.

    세르비아는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습니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발칸 반도에 흩어진 같은 민족들을 합쳐 하나의 큰 나라를 세우고 싶어 했는데 오스트리아는 이를 막으려 했습니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겨우 독립했는데,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계속 침략해 왔기 때문입니다.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죽인 사건을 우리는 사라예보 사건이라 합니다.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세르비아의 편을 드는 나라와 오스트리아의 편을 드는 나라로 나누어졌고, 모두 이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사라예보에서 총소리가 울린 지 꼭 한 달만인 728,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서로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입니다..

     생각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서로 손을 잡아 일을 함께 벌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러시아가 뜻을 함께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손을 잡았는데, 이 두 세력은 대립이 1 차세계 대전이 된 것입니다.

     

    발칸 땅을 지나면서 보면 " 참으로 척박한 땅이다 "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땅은 끝 없는 평야가 이어지는데 비해서 발칸의 땅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랄 수 없는 바위로만 되어 있는 땅입니다.

    평지라 해보아야 눈꼽만큼 보일 정도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기댈 곳은 당연히 신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정교, 카톨릭, 이슬람의 종교가 각기 전파력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다 보면 마음이 맞고 , 각자가 이득이 되는 되는 손을 잡고 전쟁을 할 밖에 더 있겠습니까.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지 얼마 됩니까.

     

    지금 우리는 모스타르의 심볼인 " 스타리 모스트 " 다리와 그 풍경을 보러 왔습니다.

    이 나라의 내전이 어찌 되었건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전이 끝나고 이 나라가 안정이 되었기에 이 곳에 왔지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면 이 곳에 오겠습니까.

     

    스타리 모스트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네레트바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로 1557년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공사를 시작한지 9년만인  1566년 완공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구간의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였다고 합니다.

    다리의 폭은 4m, 길이는 30m이며, 네레트바 강에서 다리의 높이는 약 24m입니다.

    유럽을 휩쓴 여러 번의 전쟁 속에서도 건재했던 스타리 모스트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리를 부근에는 이슬람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인데 터키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돌로 장식된 바닥과 기념품 가게들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작은 바자르 같습니다.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에 온 탓인지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가게 문을 열지 않아서 이것조차 구경하기 힘들다고 저녁에 한번 둘러 보기를 강권합니다.

    오히려 저녁 불이 켜져 있는 가게들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어두워서 바닥 미끄러운 것만 조심하면 말입니다. 

     

     

     

     

     

    바닥이 무척 미끄럽습니다.

    발목 다치거나 넘어지기 꼭 알맞습니다.

    400년 동안 닳고 닳은 탓이겠지요.

    이것도 하나의 역사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점들이 많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리 양쪽으로 우리네 조그만 시골장터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건이 현지 주민들 생활용품 위주라기 보다는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물건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스타리 모스트 다리 보도를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으면 훨씬 편할텐데 경사를 두고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돌로 막이를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발 뒤꿈치를 미끄리지지 않도록 막이에 대고 걸어야 하는데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막이 위를 밟고 걷다보니 더 미끄럽습니다.

    아마 이것은 막이 사이의 거리가 너무 먼 탓도 있겠는 같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미끄러지는 것에 아주 익숙한지 모르겠지만 이 길을 자주 다니려면 미끄러지 않는 신발을 개발해야겠습니다.

    이 지역을 걸어 다니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신발을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 세상 구석구석 > 보스니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주고리예  (0) 2017.11.01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