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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설산 차마고도 호도협이 세상 구석구석/중국 운남성 2011. 3. 2. 12:29
시간 기록은 한국시간 기록임
카메라의 시간설정을 고치지 않아 한국시간으로 기록하며 시차는 한국과 1 시간 차이이지만 해가 뜨고 지고하는 자연의 순리를 보면 약 2 시간 30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음
한국시간으로 7시에 해가 뜬다고 보면 이 곳을 한국 시계로 본다면 9시 30분 정도로 추정 됨
고도는 공식적인 고도가 아니라 내 고도계를 기준으로 한 것임
2011, 2, 24 20 : 00 인천공항 출발
24 : 10 성도공항 도착
성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2. 25 08 : 00 성도공항 출발
09 ; 30 여강공항 도착[ 해발 2200m]
시내로 이동. 시내로 이동하는 길은 완전히 비포장길.
공항만 지어놓고 시내까지 접근로는 이제야 공사 중
11 : 00 여강 시내 심미호텔 도착
짐을 맡기고 1 박 2 일동안 트레킹 할 짐만 챙겨 호도협으로 이동
13 ; 36 로우패스 [점심 식사]
뒷편 지저분한 화장실 사용료 1 위안
14 : 12 호도협 매표소 [ 1 인당 입장료 50위안]
빵차로 납시객잔까지 이동
14: 24 납시객잔 [2010m]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음
이곳에서 호도협 트래킹 시작
14 : 48 전망대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돈을 받는다고 함
15 : 45 마을
16 : 28 외딴집
이후 28 밴드를 오름[ 왔다 갔다 하며 오르는 것이 28번이라 함]
17 : 22 2629m [ 호도협 트래킹 구간 중 가장 높은 곳임]
18 : 43 차마객잔
쉬면서 차 한잔[20분 간 휴식]
20 : 27 하프웨이객잔[중도객잔] 2368m
이 곳에서 잠을 청하고
2, 26 08 : 47 중도객잔 출발
09 : 38 관음폭포
09 : 44 관음협
10 : 40 티나하우스 [20분 휴식]
이곳에서 짐을 풀고 호도협까지는 왕복해야 함
호도협까지는 급경사를 내려가야 함
11: 40 호도협[1726m]
12 : 32 티나하우스로 원위치[1934m]
티나하우스에서 점심식사
13 : 16 식후 신춘주차장으로 이동
13 : 53 신춘 주차장
주차장이라기 보다는 조그만 빵차도 더 이상 갈 수 없어 사람을 내려 놓은 곳임
이곳에서 선착장까지는 걸어 내려 가야 함
14 : 15 신춘부두 도착
부두라기 보다는 강가 모래 사장에 배 한척 간신히 대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곳임
배 접안 시설이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것은 찾을 수 없음
뱃사공이 건너 올 생각을 하지 않아 장시간 기다림
14 : 36 따쥐부두[1602m]
배를 내려 급경사를 오름
14 : 50 따쥐주차장
이곳에서 여강시내까지 3000m 넘는 고개를 넘어가야 함
15 : 00 여강시내로 출발
16 : 40 옥룡설산 케이블카 타는 곳
16 : 39 동파교 사원
17 : 46 여강시내 도착
저녁 식사 후
여강고성 관람
부자가 여행을 가다
아들이 제대를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 !
많은 가족들 중에서 이 둘은 정다운 것 같으면서도 정답지 못한 사이가 아닐까.
많은 아버지들이 죽을 때 " 아들과 단 10분이라도 정답게 이야기 해 볼걸" 하면서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한다. 또 아들도 아버지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나도 아버지와 그런 사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달전 조그만 공책을 한권 건네 주시면서 하는 말
" 내가 정이 없어서 너랑 짧은 시간이라도 이야기 할 기회가 없어서 .... "
그 공책에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전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받았을 때는 그 내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그때까지도 모든 것을 다 하셨으니까.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공책을 펴보면 날짜와 내용이 적혀 있어 그것을 보고 1 년동안 할일을 미리 달력에다 표시를 해 놓았다.
그렇게 해 놓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에 그 공책 펴 볼 시간도 없이 휘익 시간이 지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들이 제대를 하면 바로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였다.
해외여행을 한다면 그 이곳 저곳 관광을 하는 것보다 트래킹 코스를 같이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번에 차마고도를 가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갈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가 않다.
아들은 아들대로 시간이 지나면 더 바쁠테니까.
이번 여행 중에 걸으면서 서로 이해를 하기 보다는 충돌이 더 많았다.
나는 이번이 아들과 여행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것이다 라는 생각에 많은 부분을 참으면서 4 박 6일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여행은 전부 아내랑 다녔다. 그때는 불편하다던가,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한다던가 한 것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과 같이 여행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사건건 화를 내는 아들을 보면서 아직은 아들과 대화를 하고, 많은 부분을 참고 기다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시간 접촉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세월이 흘러 아들이 나이가 더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이고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이번 여행처럼 아들과 같이 할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조금 나아질까.
더 시간이 지나면 아들과 같이 할 여행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것 같아 이번 여행을 갔다 왔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기회는 없을 것 같다. 내 스스로 만들기 힘들 것 같고. 아들이 설령 기회가 되어서 만든다해도 그때는 " 두 분이 다녀 오세 요" 하고 미루지 않을까.
아내와 이런 약속을 했다.
아들이 제대하면 아들하고 내가 여행을 갔다 오고, 둘째 딸이 취직이 되면 큰 딸, 둘째 딸 그리고 당신이 같이 여행을 다녀 오라구... 그러면 결혼 하기 전에 자식들과 같이 할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구.
애들은 애들대로 추억을 만들 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추억을 만들지 않겠냐구... 그러다보면 남자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여자는 여자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6개월 전에 갔을 때와 비행기와 호텔이 똑같아
며칠전부터 여행 준비물을 챙겼지만 막상 가서 보니 많이 빠져 있었다.
인천공항에 갈 택시를 알아보니 20만원을 달라면서 그것도 싸게 해 준다고 하기에 버스 시간표를 알아본다.
공항 도착 예정 시간보다 1 시간 정도 빨리 도착해서 기다려야 하지만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 버스로 출발한다.
버스비는 1 인당 25300원. 중간에 용인휴게소에서 한번 쉬었다가 가는데도 2 시간 50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제천에서 공항까지 버스로 가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하였는데 13 명이나 같이 타고 갔다.
일찍 가서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그것도 못 기다려 지친다고 한숨을 짓는다. 젊
었을 때 이것 저것 구경하느라고 정신이없을 나이인데 한 자리에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다.
공항을 처음 가 보는 아들이라 모든 수속을 내가 앞에 서서 시범을 보여준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까지 갔다.
작년 8월 구채구를 가기 위해서 성도를 갔는데 그 비행기와 출발시간과 비행기 크기가 똑 같다.
작년에는 여름이라 비행기에 빈 자리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빈 자리가 많다.
밤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나는 잠 자는 시간을 놓쳐 많이 피곤하다.
성도 공항에 도착하여 핸드폰을 켜자 영사관 전화번호,쇼핑 관련 사항, 환율 등등 해서 메시지를 누가 보냈는지 수없이 뜬다.
공항을 나가면서도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야 될 생각에 그냥 멍해진다.
그런데 이럴수가. 작년에 성도에 도착하여 잠시 머물렀던 호텔과 똑같은 호텔이다.
그 당시 방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방도 똑같은 방이 아닐지 모르겠다.
성도에서 여강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흰산들은 히말라야 산맥일거야
3 시간도 누워 있지 못하고 일어나 여강으로 향하기 위해서 성도공항으로 나간다.
작년에는 공항의 국내선을 수리하느라고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수리를 마치고 무척 깨끗해졌다.
똑같은 것은 작년에도 국내선은 수많은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는데 지금도 또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고 수속 받는 시간도 오래걸려 자칫하면 비행기 놓칠뻔 하였다.
비행기가 여강으로 향하는 도중에 멀리 보이는 수많은 설산들이 히말라야가 맞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비행기 고도도 무척 높을 것 같은데 산 높이도 만만찮다.
여강은 지금 공사 중
한반도 44배의 면적과 우리나라 인구의 30배를 자랑하는 13억여 명의 인구가 사는 중국은 하나의 나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중국의 서남부에 자리 잡은 구름의 남쪽이란 이름의 운남성은 남한 면적의 2.2배 남짓한 면적에 중국 55개 소수민족중 26개 민족이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문화와 최저해발 70m, 최고해발 6740m의 차로 인한 입체기후대가 만들어내는 자연풍경을 보여 준다.여강 공항에 내리자 무척 춥다. 여강공항의 고도가 2,200m 를 나타낸다.
옷을 두껍게 입고 있는데도 추위를 이기지 못할 정도다.
공항을 지은지 오래되지 않은듯하며 무척 깨끗하다.
국내선만 이용하는 공항이라 그런지 한가하다.
짐을 챙겨들고 공항을 나가서도 사람 보기 힘들정도다.
1년에 500만명 이상이 찾는 여행지 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공항도 더 확장하여 국제공항으로 만든다고 한다.
90년대에는 일년에 관광객이 5,000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그야말로 일취월장한 셈이다.
그런데 공항에서 여강으로 들어가는 길은 포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시골길을 달려 간다.
공항을 저렇게 크게 지어 놓았으면서 길을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여강 입구까지 덜컹거리는 비포장길을 1 시간 정도 달려가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다.
내가 어릴적에 이런 길을 수없이 다녀 보았으면서도 언제적부터 이렇게 마음이 간사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개를 오르면서 아래 보이는 마을은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다.
여강 시내 입구에는 톨게이트 같은 것이 있는데 두 녀석이 버스를 세운다.
가이드가 내려서 사무실로 들어 갔다가 나오더니 " 이곳은 관광지라서 외지인이 이곳에 들어올때는 이곳에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이곳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에 대해서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가이드 설명해준 것을 정리하면
여강은 약 1400년 동안 나시족(納西族, Nakhi)들이 주로 살고 있다.
나시족은 인종적으로 시짱족(西藏族;티베트족)의 후예이다.
감숙성과 칭하이 성 일대에 거주했던 창족의 일족인 나시족이 사천성을 거쳐 운남 북부지역으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바오싼지역에 거주를 하다가 위룽쉐싼 남쪽 바이사 지역으로 옮겨 왔다.
남송 말 원초에 이르러 아종아랑이 지금의 고성 서쪽에 위치한 스쯔산 기슭에 터를 닦고 대협장이라 칭하였다.
서기 1253년 원(元) 세조 쿠빌라이가 다리를 정벌하기 위해 남하를 하는 과정에서 아종아랑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였다.
원은 나시의 수장을 선위사로 삼아 1271년 비로서 여강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나시족은 일처다부제의 모계사회를 아직도 형성하고 있다.
만약 남녀가 사귀게 되면 밤에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린다.
남자가 마음에 들면 여자가 문을 열어 주는데 남자는 여자 방에 들어가기 전에 모자를 벗어서 문앞에 걸어 두고 들어가면 이 방에 남자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신호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여자 집에서 자고 해가 뜨기 전에 남자는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간다.
만약 여기서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는 여자에게 속하게 되며 여자는 자식을 양육해야 할 책임을 진다.
남자는 생활비를지원해 주지만 관계가 끝나면 지원을 안해도 되고,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모든 재산도 여자가 상속을 받는다.
만약 분쟁이 생기면 그 판결도 여자 연장자가 결정 한다.
그러면 남자는 뭐를 하냐 하면 술 먹어야지, 마작해야지 등등 ....
나시족의 언어에는 강한 모계 사회의 영향이 배어 있다.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첨가되면 명사는 그 뜻이 확대되고, 반대
로 '남성'을 뜻하는 단어가 첨가되면 그 뜻이 축소된다.
예을 들어서 '돌'과 '여성'이 결합되면 '둥근 바위'라는 뜻이 되고,'돌'과 '남성'이 결합되면 '자갈'이라는 뜻이 된다.
나시족 여자들은 블라우스와 바지 위에 청색이나 검정 앞치마를 두르는데, 그 중에서도 'T'자 모양의 어깨 망토는 등에 늘 메고 다니는 광주리가 쏠려서 벗겨지지 않도록 붙잡아 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망토는 하늘을 상징한다.
망토를 2등 분하고 있는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은 낮과 밤을 나타내고, 일곱 개의 수놓은 원은 별들을 상징한다.
15세기까지 개구리가 나시족에게는 중요한 신이었다.
그 후 점차 동물숭배 사상이 쇠퇴하면서 개구리눈이 옷에서 빠졌는데, 지금도 그들은 이 망토를 '개구리 눈 양가죽 외투'라고 부른다.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여강은 중국인들도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이국적인 문화와 느리게 살아가는 여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을 이루고 있는 여강은 여행자들에게 "살고 싶다!"는 강한 느낌을 주는 상상 이상의 세계이다.라 가이드는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살기에는 무척 힘들 것 같다.
이곳에서는 "느림의 문화" 가 있어 뛰어 가면 저 사람 무척 바쁜가보다 하고 전부 쳐다 본단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있으며 산업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해가 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목욕을 하지 않는가 봐
이 지역 사람들은 지나면서 보아도 남자나 여자나 머리를 감지 않았다.
전부 부스스 하다.
가이드 말로는 목욕을 자주하면 고산증을 이겨낼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거야 이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높은 곳에서 태어났으니 잘 적응할 것 아닐까.
주변을 보면 물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은데 목욕을 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TV를 보면 티벳이나 운남성 등 고지대 사람들이 대부분 목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많은데 목욕을 자주하면 체온을 뺏겨서 고산증에 걸림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짐은 호텔에 맡기고
버스가 호텔 앞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30분 이내로 짐을 정리하란다.
1 박 2 일 동안 산행에 필요한 짐만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호텔에 맡기고 가란다.
호텔에는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호텔 카운터 안쪽에는 짐을 정리 할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아이젠, 스패치, 헤드 랜턴 등등 해서 전부 챙겨 넣었는데 이것은 호도협 트래킹 할 동안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고 보채는 바람에 대충 짐을 챙겨 나선다.
버스는 또 다시 포장이 되지 않은 시골길을 간다.
포장이 되어 있다 해도 지나가는 차는 먼지를 하늘 높이 날리며 지나간다.
얼마가지 않아서 버스가 멈추더니 차에 물을 붓는다.
경사가 많고, 길이 안좋아 브레이크 밟은 일이 많아서 물이 부족하면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단다.
작년에 아미산 오를 때도 차들이 중간에 물을 보충하더니 이 곳도 마찬가지인것을 보면 차들의 성능이 아직은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만만디의 나라
버스가 서서 아예 가지 않는다.
장시간 차가 움직이지 않자 기사도 손님도 모두 내려 할일없는 시간을 보낸다.
우리야 처음 와 보는 동네에 신기한 것도 많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루할 것 같은데 정말 만만디다.
나중에 버스가 정차한 이유를 보니까. 포크레인이 길을 정비하느라고 양쪽 차선을 전부 막아 놓고 30분을 그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들었는데도. 길 고치는 사람이나 운전하고 가는 사람이나 불평 불만이 없다. 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화장실 입장료는 1 위안
로우패스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기 전에 화징실에 가려고 하였더니 할머니가 바구니를 들고서 돈을 1 위안씩 받고있다.
10여년 전에 태산을 갔을 때 아주 지저분한 화장실을 사용 사용하는데 1 위안씩 받더니 이곳도 받는데 분위기는 똑같다.
중국 시골의 화장실이 다 그렇지만 이 곳의 화장실도 뻥 뚫려 있다.
위, 아래, 옆, 남들 볼일 보는 것 다 볼 수 있게 되어 있
고 화장실은 청소를 하지 않아 누런 것이 사방에 덮혀 있다.
대변 보는 곳을 살펴 보니까 분명 수세식은 아닌데 변이 보이지 않는다.
경사가 약간 있어 변이 저절로 앞으로 흘러 흘러 화장실 앞에 있는 강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호도협
식사를 마치고 빵차를 타고 트래킹 출발지로 향한다.
아주 좁은 길을 어떻게 오르나 했더니 잘도 오른다.
호도협 매표소에는 입장료로1 인당 50 위안씩 받고 있다.
매표소 직원은 빵차 안까지 고개를 밀고 들어 와 인원 수를 세고 있다.
이 매표소를 지나면 세계인들에게 트래킹 코스로 가장 사랑받는 운남성의 보물인 호도협의 깊고 깊은 협곡길을 걸어 갈 것이다.
호도협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시작된 히말라야의 조산운동에 의해 융기 된 옥룡설산(5596m)과 하바설산(合巴雪山:5396m)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양자강의 원류인 금사강이 흐르는 17Km 길이에 표고차 3800m의 길고 깊은 협곡이다.
협곡의 가장 좁은 폭이 5m에 불과해 사냥꾼에 쫓기던 호랑이가 단번에 뛰어 넘었다고 해서 호도협(虎跳峽)이라 부른다.
트레킹은 하바설산 자락의 허릿길을 따라 깊은 협곡 건너편의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걸으며 총 길이 17Km의 운남성을 대표하는 트래킹코스이다.
가이드 말로는 14 km 라 하는데 우리가 걷을 시간과 속도를 비교하면 17km 가 맞지 않을까.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가 길이 35Km, 폭 20Km에 걸쳐있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용이 구슬을 물고 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산은 용의 모양을 닮고, 그 산이 품고 있는 협곡은 호랑이가 뛰어 넘으니 용과 호랑이가 인간의 세상사에서 볼 때는 무척 신비스런 곳이 아닐까.
마방소리와 방울소리
그 깊은 협곡 사이로 토번국(티베트)과 남조국(7세기부터 윈난 일대를 지배하던 불교국가), 중국 연결하는 차마고도가 아슬아슬 이어지며 험난한 협곡을 지나던 마방들의 워낭소리가 아련히 울리던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
호도협에서는 마방 소리를 이곳에서 듣지는 못했지만 옥룡설산을 오를 때 마방들의 워낭소리를 들었다.
마방소리와 말들의 방울소리는 길이 워낙 좁은 탓에 길이 구부러진 곳에서 양쪽에서 오는 말들이 미처 보지 못해 서로 부딪치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마방은 소리를 내며, 말들에게는 방울을 달아 주었다고 한다.
빵차는 우리를 내려주고는 언제 갔는지 이야기도 없이 가버리고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드니 눈 앞에는 어머어마한 옥룡설산이 펼쳐지고, 아래를 내려다 보면 금사강의 물줄기가 아득히 보이고 물의 흐름이 빠르지 않는지 강 한 가운데는 섬처럼 모래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옥룡설산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용의 등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곳 지형이 워낙 높은 탓인지 5000m 가 넘는 봉우리들이 그리 높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주변 풍경이 삭막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반대로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한국 사람은 말을 타고 트래킹하는 사람이 많아
한국사람이 많이 보이는데 한 팀이 10 명이상 되는 많은 인원이 몰려 다녀서 그렇지 팀으로 따지면 서너팀 밖에 안되지만...
서양 사람은 부부가 아기를 안고 가는 사람들, 또 서넛이서 여유를 가지며 트래킹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 사람은 이곳에 트래킹을 많이 왔지만 친목회에서 왔는지, 산악회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트래킹을 하는 사람보다는 말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70%는 된다.
그러다 보니 마방들은 걸어다니는 한국 사람만 보면 말을 타고 가라고 뒤에 졸졸 끝까지 따라 붙는다.
에전에는 차를 말에 실어 운남성에서 티벳까지 나르기 위해 사용 되었다는 차마고도 길이 지금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트래킹 코스로 변해 있는데 90 % 이상이 한국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트래킹 내내 서양 사람은 두 팀밖에 보지 못했다.
트래킹 내내 먼지에 시달려
앞서 가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먼지도 심하지만 말들이 지날 적마다 일으키는 먼지는 정말 심하다.
사람이 빨리 걷는다해도 말들의 걸음을 따를 수는 없다.
뒤에 말을 타고 오는 사람도 계속 걷는 사람들을 앞질러 간다.
앞질러 갈적마다 말이 일으키는 먼지를 전부 들이키는 것이 트래킹 내내 무척 힘들다.
먼지가 많이 나는 원인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토질이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바위를 만지면 힘없이 부스러져 먼지를 휘날린다.
그러니 그 많은 암석이 부서져 먼지처럼 되어 있는데다가 수많은 말들이 지나면서 내놓는 배설물이 치워지지 않은채 바닥에서 전부 말라 부서져 먼지로 변해 버리니 그곳을 밟으면 먼지가 휘날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이드가 필요 해
우리가 트래킹을 할 때 현지인이 앞장을 선다. 가이드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이드가 왜 필요할까.
길이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런데 트래킹을 하면서 보니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수많은 말과 양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그 짐 승이 다니는 길, 이곳 주민들이 다니는 수많은 길이 있어 앞에 이 지역의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따라 가지 않으면 수없이 길을 되돌아 와야 할 것 같다.
또 한가지 이렇게 주민들과 밀접한 길이 많은 곳에서는 지도가 있어도 사실 무용지물인 곳이 많으니 반드시 가이드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길을 가다보면 바위에 붉은 페인트로 화살표로 방향 표시가 되어 있고 주요 객잔의거리표시가 되어 있어 길 찾기가 편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또 2 ~ 3 시간 마다 마을과 객잔이 있으니 길을 잘못 들어도 바로 정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사가 급한 길을 잘못들어 다시 오르내리며 길을 찾아 간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큰 길만 따라 간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계단식 밭이 그림같아
이곳 주민들은 계단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있다.
경사가 아주 급한 지역에서 밭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밭에 밀이 심어져 있고 유채꽃이 피어 잇는 것을 보면 유채는 조리용으로 쓰기 위해서 재배를 하는 모양이다.
중국 음식 자체가 전부 기름에 볶는 것이니까 ...
1700m 에서 2700m 사이를 오르내려
나시객잔을 지나 28 굽이길을 오르면 호도협 트래킹 구간 중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
28 굽이길 은 28번 구부러진다고 해서 28 굽이길이라 한다고 하며 급경사를 오르는데 전신주가 있으니 그 전신주를 보며 오르면 길의 방향과 높이를 알 수 있다.
28굽이길의 정상에 서면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가장 보기좋게 찍을 장소가 되는데 아쉬운 것은 현지 주민이 한국사람 사진 찍는데 5 위안씩 받는다고 표지판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 길을 자기 아들이 만들었다나 뭐 어쩌구 하면서....
내가 볼때는 저절로 만들어진 길 같은데....
이곳은 바닥 저 끝 계곡에서 부터 직벽에 가까운 날카로운 경사의 옥룡설산 봉우리까지 이어지는 표고차 3800m의 모든 경치가 한꺼번에 조망되는 곳이다.
이 28 계단의 정상을 지나면 계속 내리막 길이다. 길도 험한 곳도 없다.
아주 편하고 넓은 길을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며 중도객잔까지 도달할 수 있다.
중도객잔에 도착하기 500m 정도 남겨 두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다행인 것은 차가 다니는 시멘트 길이라 날이 어두져도 걷기에 불편함은 없다.
오늘의 마지막 지점에 가까이 이르자 아들이 기진맥진하여 자주 걸음을 멈춘다.
제놈이 군대에서 제아무리 걸어 다녔다 해도 전문적으로 산에 다니는 사람들하고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억지로 붙들려 가서 군대생활하는 놈하고, 하는 일이 즐거워 산에 다니는 사람들하고는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중도객잔에 도착해서 간단히 씻고 저녁 식사를 한다.
처음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미리 주문하였던 토종닭[1 마리 30,000원] 과 시골밥상 같은 식사와 맥주 한잔을 겯들이니 오늘의 피로가 싹 가신다.
중도객잔은 너무 추워
중도객잔의 시설은 산 속에 있는 것치고는 생각보다 좋다.
씻을 샤워 시설도 없는 줄 알았더니 샤워 시설도 좋고, 화장실도 수세식이며 이런 시설이 방마다 다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생각에는 방은 잠만 자는 시설만 되어 있고 화장실이나 세면 장은 따로 한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였는데 방마다 시설이 다 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천장에 붙어 있는 공기통이 뻥뻥 뚫려 있고, 세면장의 환풍구도 그냥 모기장으로만 되어 있어 바람이 무척 심하게 들어 온다.
위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세면장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밤에 잘 때 무척 춥다.
덮으라고 준 이불은 얼마나 무거운지 자다가 잘못하여 바닥에라고 떨어지면 우리 힘으로도 이불을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이불에 깔려 죽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이불이 무겁다.
중도객잔은 고도가 2400 m 정도 된 탓인지, 아니면 추위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깊은 산골짜기에 불어오는 시베리아 벌판에서나 들릴법한 바람소리에 그냥 눈만 멀뚱멀뚱 밤을 세운다.
아침에 알고 보니 침대에 전기장판이 있는데 스위치를 켜야 띠뜻해진다고 하는데 내가 이를 어찌 알았으라.
전기코드에 꽂혀 있는 줄만 보고 저절로 따뜻하게 되는 줄 알았지.
나처럼 생각하고 춥게 잔 사람이 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아침 식사는 볶음밥
잠을 자는 둥마는 둥 하고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는데 복음밥 하나만 달랑 주는데 밥맛이 별로다.
어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아들이 오늘도 전혀 식사를 하지 못한다.
이 현상은 저녁 먹을 때까지 지속된다.
저녁 때 여강고성 가서 한국식으로 식사가 나오자 그때서야 식사를 하는 것을 보니 고산증도 고산증이지만 식사가 입맛에 맞지 않아 식사를 하지 못 한 것 같다.
햇살에 비친 금빛 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
8 시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건너편 산 정상은 금빛으로 물들 생각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바로 위에 보이는 산 뒷쪽에 숨어 있는 산을 아침에 찍었는데 금빛으로 물들어 참 아름답다 라고 생각 해서 나도 그 사진 좀 찍 어 볼까 하였더니 시간이 이른 탓인지 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한채 출발한다.
이곳의 아침은 무척 춥다.
이곳의 날씨는 햇빛이 나기 전에는 우리의 겨울 날씨 같다.
트래킹은 티나하우스에서 끝나고
중도객잔에서 40분 정도 가면 관음폭포와 호도협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전망대라고 해서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잘 보이는 장소를 말한다.그곳에서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폭포의 길이가 수백미터는 될 정도로 길지만 웅장하지는 않다.길기만 하지 힘이 없다.폭포 바로 아래를 지나가도 옷이 젖지는 않으니까.폭포를 지나면서 계속 내리막길을 1 시간 정도 내려가면 티나하우스에 도착한다.
사실 트래킹 구간은 이곳에서 끝이 난다.
호도협 계곡을 보려면 급한 계곡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와야
단 호도협을 보기 위해서 200m를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와야 한다.
이곳에서 호도협 금사강까지 내려 가는데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내려 갔다가 다른 길로 나가는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차를 타고 계곡을 나가면서 보니까 다른 곳으로 바로 나올만한 길도 없을 것 같다.
물론 호도협을 내려가면 나가는 길이 또 있는데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다.
호도협을 구경하고 난 후 1 시간 정도 다시 올라 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이고 위험한 곳이 무척 많은데도 길에 안전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무척 위험하다.
사람이 무척 많이 찾는 관광지에 이렇게 안전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는 곳은 처음 보겠다.
티나하우스에서 호도협 계곡을 보려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와야 한다니까 힘들어서 안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힘이 들어도 내려 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계곡이다.
호랑이가 뛰어 넘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
하긴 누구든 급하면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만...
그냥 건너 뛰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불가능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저 수천길 절벽에 호랑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호도협 계곡에서 장사하는 분의 아들
호도협 계곡 차도는 무척 위험해
호도협에서 올라 와 식후에 빵차로 주차장까지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길이 공포스럽다.
길 절개지에서는 계속 돌이 흘러 내리고 오른쪽을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이고 길은 좁고, 아직 공사 중인 곳은 많고 조금만 방심하면 오른쪽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고 절개지에서 떨어지는 돌에 버스가 맞아 사고날까 걱정스럽다.
말이 포장 된 길이지 곳곳에 굴러 내린 돌이 쌓여 있고 지금도 계속 돌은 흘러 내리고 있다.
한가지 더 걱정스러운 것은이 길은 영원히 돌이 흘러 내리는 위험한 길이 될 것이다 는 예감이다.
강가의 퇴적암은 무너질 것 같은데 사공은 오지 않고
1 시간 정도 내려가 신춘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안심을 한다.
주차장이라 해 보아야 주차시설이 되어 있는 곳은 아니고 강가의 모래 벌판이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빵차에 내려서야 오늘 산행이 끝나는 모양이다 .
이 곳에서 또 20분 정도 가파른 절벽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강가에 도착하니 배는 있는데 사공은 없고 머리를 들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퇴적암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힘센 사람이 한번 걷어 차면 바로 무너질 것 같다.
강가의 무너질 것 같은 퇴적암 아래에서 사공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너질까 공포스럽다.
사공이 건너 오는데 배에는 1 인당 20위안으로 적혀 있다.
배삯이 생각보다 비싸다.
강을 건넌 후 땡볕 속을 걸어 올라 가야 주차장이 있다.
그곳을 오르는 것도 무척 힘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주변을 바라 보아도 이곳에 선착장을 만들 장소가 아닌 것 같은데 선착장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조금 더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부근 차도는 보통 3000m 가 넘어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여강까지 넘어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강가에서 동네까지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이고 워낙 좁아서 이곳까지 차를 끌고 오도록 만든 것이 미안한 정도다.
따쥐 마을을 지나면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끝이 없이 오르고 오르면서 본 따쥐마을 밀 밭이 잔디를 깔아 놓은 듯하다.
전원풍경은 평화로워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가이드 이야기로는 이곳 주민들은 법도 없고 상식도 없단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주지 않으면 차에 돌을 던지고, 세워 주면 차에 양, 돼지, 닭을 같이 싣고 심지어 말까지 태워 주어야 한단다.
또 지나는 차가 닭이라도 한 마리 치이면 닭 값은 물론 앞으로 그 닭이 낳을 달걀 숫자까지 세어 물어 주어야 한다
니 참으로 기가 막힌 사람들이다.
이 고개는 3,000 m 이상을 2 시간 이상 지나가는데 보이는 모든 것이 발 아래 있는 듯하다.
이 높은 곳에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멀리 눈이 쌓인 높은 산들이 보이는데 그 높이가 이곳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차도 옆을 보니까 이곳에도 눈이 쌓여 있다.
이 고개에는 동파교 절이 있고, 케이블카 타고 옥룡설상으로 가는 출발점이 있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는 골프장이 있다. 이 곳에서 골프를 치려면 최소한 산소통 10개는 소비해야 한다고 한다.
여강쇼는 낮에만 공연하고
그리고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여강쇼가 공연되는 공연장이 골프장 앞에 있다.
여강쇼는 낮 11 시에만 공연을 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낮에 산에 가 있는 사람은 구경하기 힘들다.
저녁때 하면 한번 볼까 하였더니 아쉽다.
낮에 하는 이유는 설산인 옥룡설산이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밤에는 설산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곳을 지나면서 넓은 길이 나오고 여강시내로 진입한다.
시내에 들어가서 발맛사지로 이틀간의 피로를 푼다.
백주대낮에 발맛사지 받는다고 앉아 있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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