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앙코르와트[캄보디아]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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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코르와트[캄보디아]
    이 세상 구석구석/캄보디아 2010. 1. 25. 12:58

     

    첫째날 2010, 1,19  01 : 00 제천 출발

     

     

     

    인천공항 가는 시간은 빨라지고

     

     

     

     인천공항까지 이제 3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이전에 영종대교를 거칠 때는 3 시간 40분 정도 소요 되었는데 인천대교가 개통되면서 시간이 많이 단축 되어 남쪽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생겼다.  

    인천대교는 "전 세계가 놀라는 다리" 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토목 기술이 워낙 발달한 탓인지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영종대교를 처음 건널 때는 차창 밖으로 내다보고 우와 ! 소리가 나왔는데 인천대교는 그런 감흥을 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나중에 다시 한번 가 볼 때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다.

     

     

     

    오후 6 시 50분 이륙한 비행기가 시엠립 공항에는 12 시 10분[한국시간] 에 착륙한다.

    캄보디아는 한국보다 2 시간이 늦다.

    우리나라로 볼 때는 한 밤 중 이지만 이 지역의 시간으로 보면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다. 

    공항에는 비행기의 트랩을 내려 입국 수속 받는 곳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비를 맞으며 입국 수속장까지 갔는데  입국 수속도 받지 않고 바로 공항을 나간다.

    어쩐 일이지 하였더니 다 이유가 있다.

    캄보디아 입국 수속에는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급행비자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호텔을 나와 10 분 거리도 안되는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캄보디아는 어떤 나라인가.

     

     

    부패의 나라

     

    캄보디아는 전 지역이 부패의 온상이다.

    공항 입국 수속을 하는데 우리가 소속된 여행사의 피켓을 든 경찰이 왔다 갔다 한다.

    세상에 가이드가 입국장 안에까지 들어 와서 설치는 나라도 있구나 하였더니 그것은 공항경찰이었다.

    그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대로 여권을 전부 모아서 건네 주고 아무런 제지없이 공항을 빠져 나갔다.

    앞으로 계속 가면 수속 받는 곳이 있을 줄 알았더니 나와보니 공항 밖이었다.

    황당했다.

    어쩐일이지 하고 가이드 한테 물어보니 우리가 22 명이 왔는데  급행료로 25 달러를 건네 주었단다.

    여권과 비자는 호텔로 가져다 주기로 했단다. 

     

    참으로 어이 없는 경찰이다. 

     

    또 우리가 출국할 때 출국수속을 하는데 기록이 덜 되었으니 기록하라고 출국 서류를 다시 주면서 자꾸만 안을 보란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발 뒤꿈치 들고 보니 1 달러 짜리 지폐를 툭툭 치고 있었다.

    결국 1 달러 내고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안 준다고 우겨 보아야 시간 끌면 나만 고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타프롬 사원을 관람하러 들어가는 길에 입장권을 검사 하는 녀석이 연인끼리 온 서양인의 남자를 붙들고 팁을 달라고 요구한다.

    어처구니 없는지 주저주저 하고 ....  이일을 어찌할까.

     

     

     

    빈곤의 나라

     

    캄보디아는 어디를 가던지 손을 벌리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아기 둘을 안고 있는 젊은 여자들도 볼 수 있는데. 이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곤욕을 치러야 한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 물을 마시지 않는다.

    중국 여행할 때 물을 사서 마셨다가 초 죽음이 되도록 고생한 적이 있어 그 이후는 물 대신에 맥주를 사서 마신다.

    이번에도 가게에 들어 가서 맥주 2 캔과 과자 한 봉지를 사서 나오는데 애들이 그 과자 때문에 나를 빙 둘러 싼다.

     

    하는 수없이 가장 작은 녀석한테 그 과자를 건네 주었다.

    들고 있는 과자가 한 봉지 밖에 없었고 , 그 한 봉지를 주었으면 그것 나눠 먹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과자를 얻은 녀석은 도망가 버리고 남아 있는 녀석들이 게속하여 더 내놓으라고 매달린다.

    " 저 꼬마 녀석 따라가서 나누어 먹으라" 고 소리를 지른 후에야 그 녀석들은 도망간 꼬마를 찾아 떠난다.

    그 애들이 우리말을 알아 듣는지  모르나 소리를 지르자 가버렸다.

     

    바라이 호수에 가면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애들이 차창에 매달린다.

    내리면 "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아이들은 빈손으로 뭐 달라고 하지 않고 팔아 달라고 손을 내민다.

    " 목걸이 하나  원 달러" 를 외치면서...   

    그런데 이 아이들은 뜻 있는 한국 사람이 애들이 구걸만 하면 평생 그렇게 살겠구나 싶어 장사하는 법을 40명 정도 모아 놓고 교육을 시켰단다.

    그래서인지 하나도 안 팔아 주어도 떠날 때 " 안녕히 가세요 " 하고 인사를 하는데 무척 고맙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캄보디아의 종교

    캄보디아는 90 % 정도가 소승불교다.

    사원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발을 보이지 않게 해야 하며, 머리를 건드리는 것은 실례다.

    남자는 여자나 승려의 몸을 건드려서는 안되며 , 여자는 승려의 몸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사원에 갈 때는 노출이 심한 옷은 삼가하고 인사는 태국처럼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이 인사법은 우리가 배워야 할 인사법이 아닐까

     

     

     

    캄보디아인의 성격

     

    겉으로는 친절하다지만 타 민족에 대한 배타심이 강하다 한다.

    특히 우리가 인접한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듯이 캄보디아인도 인접한 태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성격 자체가 급변하기 때문에 현지인을 비하하거나 구박하는 행동을 한다면 폭행을 당할 수가 있으니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캄보디아내 여행이 가능한 지역

     

    캄보디아 여행은 프놈펜과 앙코르와트 유적지대로 한정하는 좋다고 한다.

    전국 곳곳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 다니는 데도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잘 보이는 길만 밟고 가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적지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근래에 지뢰를 많이 제거하여 길을 따라 숲으로는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이곳에는 화장실이 없다.

    중국의 백두산 갔을 때 그 수준과 비슷한 것 같다.

    북한 백두산 부근의 연길, 용정 부근의 삶이 우리네 60년대 수준이었는데 이 나라도 그와 비슷하다.

     

    숲으로 들어가서 해결할 수 밖에 없는데 다른 사람이 밟지 않은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유적지내 화장실

     

    너무 열악하다. 찾기가 힘들다. 가게에 들러 아무거나 하나 사 먹고 가게에 딸린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힘들다. 2 시간 정도 다니다 보면 새로 지은 무료 화장실이 있는데 그래도 이곳은 깨끗한 편이다. 그러나 낮이라 그런지 전기가 들어 오지 않는다. 남자들 소변대나 세면대 정도에는 바깥에서 불이 들어 오니까 그래도 일을 볼 수 있는데 큰일을 보는 곳은 아주 깜깜하다.

     

     

     

    캄보디아의 교통수단

     

    베트남의 시클로, 필리핀의 지프니가 있다면 이곳에는 시클로 오토바이가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툭툭이라 부른다.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는 툭툭이는 외국인과 의사 소통이 조금이라도 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일반 툭툭이 운전사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고 강도로 돌변하는 수가 있으니 개인적으로 타고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시엠립의 건물

     

    시엠립에서는 앙코르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지는 못한다.

    중국의 곡부에 가면 공자 사당보다 더 높이 건물을 짓지 못하듯이 이곳도 앙코르 보다 더 높이 건물을 짓지 못하여 호텔도 건물의 높이가 4 ~ 5 층에 불과하다.

     

     

     

     

    캄보디아 여행 적기

     

     캄보디아의 여행 적기는 12월과 1 월이란다.

    여름에는 더워서 오전에 벌써 지친다고 한다.

    겨울에는 습도도 낮고 비가 올 확률이 낮다고 한다.

    2 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하며 4 월이 지나면 견디기 힘들 정도라 한다.

     

     

     

    시엠립

     

    시엠립의 인구는 주 전체가 약 70만, 시엠립 시가 약 7만이다.

    시엠립 시내는 좁기 때문에 외각 지역을 제외하고 주요 시가지는 걸어서 20∼30분이면 이디든 갈 수 있다.

     

    세기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캄보디아 앙코르지역의 유적을 더듬어 보고는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이곳에서 이 경이로운 유적과 더불어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고 한다. 

     

    지금부터 거의 천년 전[1100년대] 앙코르왕국은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엄청난 건축물을 조성하였다.

     

    현재는 앙코르 유적지가 세계 7 대 불가사의에서 빠졌다.

    빠진 이유가 캄보디아에 컴퓨터가 공급되지 못한 것이 이유라 한다.

     

     

     

    앙코르의 전성기에는 인구 1백만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의 대도시였지만 13세기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자야바르만 7세의 과중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였고 틈을 노리고 있던 태국의 야유타야족은 1431년 마침내 앙코르를 함락시켰다.

    이에 앙코르왕국은 앙코르지역을 포기하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겼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캄보디아인들은 태국을 무척 싫어 한다고 한다.

    우리가 인접국인 일본을 싫어하는것 처럼...

     

    이후 태국의 영향을 받은 불교 스님들이 힌두교사원의 일부를 파괴하거나 불교사원화 하기도 하면서 밀림 속에 묻혀버린 전설 속의 왕국이 되고 만다. 

     

     이 묻혀진 왕국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벗어나다가 1860년 프랑스의 여행가 앙리 무오에 의해 탐험되고 보고된 이후 급격히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08년부터 정글을 제거하고 부서진 건축물을 복구하기 시작하였다. 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유물들이 파괴된 채로 남아 있다.

     

      

    만약 선진국이나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앙코르의 유적 관람을 중지 시켰을 것이다.

    멀리 전망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치에서만 관람을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캄보디아는 경제력이 없다보니 앙코르 유적 보수도 프랑스나, 일본과 같은 나라의 자본을 빌려 보수를 하고 있으며 보수가 끝난 후 그 앞에 어느 나라와 보수를 하였다는 표지판을 만들어 놓고 있다.

    건물은 기울고 많은 유물들을 사람들이 만지고 하니 온전히 살아 남겠는가.

     

    아마 멀지 않아 캄보디아도 이 유적의 보호 하기 위한 조처를 하리라 본다.

     

     

     

    앙코르 유적지 관람은 툭툭이를 타고 하던가,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단 자전거를 빌리고 난 후 잃어 버리는 일만 없다면...  

    시엠립은 별로 크지 않다.

    시엠립의 길거리에 "대한민국 - 캄보디아 우정의 도로" 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에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이 도로를 지나간다.

    이 길 밖에 없으니까 하겠지만 도시가 크지 않은 탓도 있다.

     

     

     

     서양인들이  책을 들고 와서 하나하나 대조해 가면서 관람을 하는 것을 보고 아무런 준비 없이 온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둘째 날 [2010, 01, 20]

     

    아침 8 시 30분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서울보다 2 시간이 늦으니까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셈이 된다. 매일 해오던 습관이 하루 사이에 생활패턴이 2 시간이 늦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호텔 앞을 돌아 다니는데 호텔 앞 조각 모형이 머리가 7개 달린 뱀의 모습이 있고 그 뒤에 툭툭이 기사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7개의 머리가 달린 뱀은 " 나가" 라고 부른다 한다. " 나가" 는 힌두교와 불교 신화에 나오는 뱀신을 말한다.   

     

      *. 나가

    반은 인간, 반은 뱀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건장하고 수려하게 생겼으며, 완전한 인간 또는 뱀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잠재적으로 위험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간주된다.
    그들은 나가로카 또는 파탈라로카라 불리는 지하왕국에 살고 있으며, 이 왕국은 값비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번쩍이는 궁전들로 가득 차 있다.
    지구상에 나가들이 너무 많아지자 브라마는 그들을 지하로 추방하여 진짜 악인과 일찍 죽을 운명인 자들만 물도록 명령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물(강, 호수, 바다와 우물)과도 연관되고 대체로 보물을 수호하는 자로 여겨진다.
    3대 나가들이 가장 유명한데,
     첫째, 세샤는 힌두교의 창조신화에 의하면, 우주대양에 누워 있고, 그 위에 창조된 세계가 얹혀 있음으로써 비슈누 나라야나를 지지하고 있다.
     둘째는 바수키로 우주 유해를 휘젓는 줄로 사용되었다.
     셋째, 탁샤카는 뱀들의 우두머리였다.
    현대의 힌두교에서는 스라바나월(月)에 있는 나가판차미날에 뱀들의 탄생을 축하한다.
     
    전설에 따르면 여자 나가들은 매우 아름다운 뱀 왕녀이며, 인도 북동부의 마니푸르 왕조, 남부의 팔라바와 푸난(고대의 인도차이나) 왕조의 지배층은 인간과 나가가 결합해 자신들의 선조가 생겨났다고 여긴다.
     
    불교에서는 수문장으로 표현되었으며, 티베트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신적 존재로 표현되었다.
    석가모니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7일간 비를 맞지 않도록 해준 뱀의 왕 무찰린다는 타이와 캄보디아의 몬크메르 불교유적(9~13세기)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예술작품에서는 두건 모양의 코브라가 1~7개 또는 그 이상의 머리를 지닌 모습이나 머리 위로 여러 개의 뱀 모양의 두건을 쓴 인간의 모습, 또는 배꼽 아래 부분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머리 위는 두건을 쓴 반(半) 인간의 모습 등, 동물로서의 뱀의 모습이 잘 반영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들은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들이나 영웅들처럼 숭배의 대상으로 등장한다.[다음 문화원형백과 사전에서]

     

     

     

    호텔 로비에는 부처처럼 생긴 불상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유방이 크다. 부처가 아니라 "압살라" 라 한단다.

     

     

       * 압살라압살라는 힌두교신 들 중에서 지위가 가장 낮은 신이며, 남신들이 출현할 때 같이 출현하여 신을 즐겁게 하고 유혹하는 역할을 하는 신이다. 압살라는 인도의 탄생전설 "바가바타 푸라나" 에 기원을 둔 "젖의 바다 휘젓기" 에서 유래 되었다. 제한된 수명을 가진 신과 악마들이 비슈누 신의 충고대로 합심하여 불사의 몸이 되기 위해 감로수를 만드는 과정에 " 젖의 바다" 를 휘저을 때 생기는 바다 거품에서 탄생하였다 한다. 탄생 신화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 여신{바다 거품에서 태어 남] 과 같다. 압살라 라는 어원은 물 위에서 태어났다 의미가 있으며 " 바다에서 태어 낫다" 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압살라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중간에 해당하는 정령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비교하면 요정에 해당된다. 이 압살라는 신의 영역인 신계에 살고 있으며 특징적인 것은 신정의 벽이나 창문에 항상 서 있거나 춤을 추고 있는 형태로 묘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녀들을 표현할 때 날개와 같은 흰옷을 입고 동그란 형태의 머리 모양을 하고있고, 서양에서는 천사들이 모두 날개를 달고 있듯이 인도나 태국 등 동남아에서는 선녀들이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형태를 표현 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오전에는 오전내내 앙코르와트만 관람하였다.

    그 웅장한 건물을 한나절에 모두 관람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어차피 우리가 학자가 아닌 이상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을 것이고 약 1000년 가까이 되는 오래 전에 과연 이 건물을 어떻게 지었을까.

    이 안에 벽화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조각하였을까.

    무슨 뜻으로, 어떤 연유로 이런 큰 건물을 그 당시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만 가지고 보면 되지 않을까.

     

     

     

    앙코르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매표소 입구에 가면 사진을 찍으면 잠시 후에 본인 사진이 귀퉁이에 들어간 입장권을 준다.

    입장권은 종이로 되어 있어 잃어버리기 쉬우니 목에 매달 수 있는 명찰을 사서 그안에 끼어 넣고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

    어느 곳이던지 가는 곳마다 입장권을 확인한다.

    입장권은 1일, 2일, 3일용 등등 원하는 대로 가능한 모양인데 입장료는 생각하지도 않아도 살펴 보지 못했다.

    하루에 20 달러, 3 일에 40 달러라고 누군가 이야기 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는 시엠립에서 북쪽으로 약 6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는 곳이라 한다.

    버스가 앙코르 부근에 오자, 커다란 호수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앙코르를 감고 있는 해자다. 

     

     

     

     

    앙코르 입구에 서자 건물 뒤로 멀리 둥그렇게 보이는 탑이 보이는데  그곳까지가 앙코르와트이고 그곳까지 갔다가 돌아 오면 된다고 한다.  

    잘 보존 되어 있는 앙코르와트라 하지만 들어가는 입구부터 7개의 머리가 달린 "나가" 는 머리가 없고 들어가는 입구는 바닥을 보지 않고 걷다가는 다리 부러지기 꼭 알맞다.

     

     

     

    앙코르와트는 균형, 조화, 섬세함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 사원은 소야바르 2세 (1112∼1152)에 의해 12세기 전반에 약 30년에 걸쳐 건축되어 힌두교 3 대 신 중의 하나인  비슈누에게 봉헌되었다. 하며  매일 25,000명이 동원 되어 37년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앙코르의 대부분의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나 이 사원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아마도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보고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인 듯하며 초기에는 "죽음의 사원" 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하여 천문대 역할을 하였음이 밝혀졌고, 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60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무오에 의해 발견 된 이 사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km 의 면적에 사암으로 건설된 앙코르와트는 그 주변을 길이 7km 가 넘는  인공호수로 둘러쳐져 있다.

    또 입구 에서 사원내까지 355m 의 긴 보도와 우주를 상징하는 5 개의 탑까지 세겹으로 둘러싸인 회랑은 해자와 더불어 앙코르와트가 사원이라기보다는 동양의 왕성을 연상케 한다.

    세계적인 석조건물인 앙코르와트는 그 웅장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 않게 세부적인 조각의 아름다움이 전체를 엮어 나아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뒷쪽으로 가면 지금은 보구 공사 중이라 벽화를 사진으로 찍어 외부에 따로 전시 하여 놓았는데 이렇게 하여 놓으니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사진 전시관이 끝나는 지점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가면 앙코르와트 입구에서 보이던 탑이 있는 건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가운데 큰 탑이 있고 네 모퉁이 탑이 있는데 이 탑은 '하늘의 궁전'이라는 뜻이라 하며  피미아나카라는 삼각뿔 형태의 첨탑이며 라젠드라바르만(944∼968)에 의해 조성되었다. 고 한다.

     

      

     

     

     

    앙코르와트는

     

     

     

    1 층은 앙코르와트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슈르바이만 2 세가 전쟁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이 보이며, 실제 천문학을 근거로 참파와의 전쟁을 위한 적절한 시기를 결정 하였다고 한다. 

     

    벽에 구멍이 많이 보이는데 이 구멍안 에 어떤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석이 있었는데 이 보석을 프랑스 사람들이 가져 갔다고 한다. 

     

    벽 그림은 천국과 지옥을 나타내는 그림은 직설적이고 끔찍하다.

    거짓말 하는 사람의 혀를 뽑는 그림, 전쟁 중에 적군을 발로 차는 그림, 호랑이에 등을 물린 사람, 악어에 물린 사람등등이 그려져 있고, 전쟁에 동원된  코끼리, 말, 장수들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건축물을 전부 완성하고 난 후 벽에 그림을 조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쌓은 돌의 이음새가 그대로 보여 준다.

     

     

     

     

     

    2 층은 화려한 무늬를 볼 수 있다. 

     

     

     

    3층은 신의 세계를 표현하였으며 앙토르와트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얼마전까지는 위험하여 올라 가지 못하게 하였으나 지금은 올라 가는 계단 위에다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네 발로 기지 않고도 3 층까지 오를 수 있다. 

    네 발로 기어서 신들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신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아주 가파른 계단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두 발로 올라 가니 신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나무게다능로 한번에 100명씩 올려 보내며 3 층에 100명 이상 더 오르지 못하게 입구에서 명찰을 나누어 준다.

     

     

     

     

     

    하룻밤만에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 앙코르와트는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많은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   

     

    다시 시내로 되돌아 와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들어 갔다.

    충주대학교 학생들이 봉사활동 왔다면서 40명 정도가 와서 식사를 하는데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봉사활동 왔으면 그네들의 삶과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 삶을 보내야 보람이 있을 것 같은데 한끼 해결하기도 힘든 그네들을 제껴 두고 삼겹살 파티를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는 모양이다.

     

     

     

    식당 카운터에는 "에세" 담배 한보루가 10 달러에 팔고 있다.

    공항 면세점보다 싸다고 너도 나도 볓 보루씩 산다.

     

     

     

    점심 식사후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톰 관광에 나선다.

    툭툭이는 오토바이에 뒤에 두 사람 정도 앉을 정도로 의자가 있는 이동 수단이라고 보면 된다.

     

    앙코르를 들르기 전에 피메니카 사원을 갔는데 그 내용은 잘 모르겠고, 앙코르의 초대 건축물이라 한다.

    이후 반데스레이 사원으로 향한다.

     

     

     

    반데스레이 사원

     

     

     

    사원 입구에 서자 거의 무너질 것 같은 작은 문이 기다리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길은 넓으나, 길 가운데 서 있는 괴상하게 생긴 나무와 그 뿌리가 가는 길을 조심 스럽게 하고, 움푹움푹 패인 길은 유적지라기보다는 어느 시골 마을에 괴기스러운 집을 방문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을씨년스러운 속에 "나의 살던 고향" 은 음악이 들여 온다.

    리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가서 보니 지뢰로 피해를 입은 군인들이 어떻게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한국 노래를 연주 해 준다.

    기쁘기도 하지만 슬픈 사연이기도 하다.

     

     

     

    이 사원은 앙코르톰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944년 즉위한 라젠드라바르만 2 세가 통일을 한 후  제사 의식을 담당하던 브라만 고승이 세운 힌두교 사원이다.  

    쉬바신을 위해 세워진 사원이며, 반데스레이는 성스런 여자란 뜻이며 아내에게 바친 사원이라 한다.

     

     

     

    이 사원은 1914년 프랑스 사람이 발견하였으며 1924 년까지는 밀림 속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을 허용치 않았다.

    이 사원은 다른 앙코르 사원들보다 건축술과 장식이 인도 문화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붉은 색의 단단한 사암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였는데 이는 앙코르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고 복잡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사원이며, 건축가들은 이 사원을 보석에 비유하거나,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 한다.

     

     

     

    이 건축물에 대한 기록은 1936년 외부 담벽에 있는 입구 탑에서 발견 되었다. 

    중앙 탑에 조각된 여신상은 동양의 비너스라 불릴만큼 완벽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으며 1923 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말로가 이 작품을 밀반출하려다 발각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이 일로 인해 프랑스 정부는 이 사원을 복구 하기로 하였다지만 여신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낡은 건물만 있을 뿐이다.

     

    동서축을 중심으로 남북 대칭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사원 내부의 기둥은 화려한 나뭇잎 장식으로 되어 있다.

     

     

     

    반데스레이 사원 정문으로 다시 되돌아 와 타프롬 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계속되는 반데스레이 담이 무척 크다는데 놀랐다.

    정문에서 들어 갔다 되돌아 나오는 그것이 전부 인줄 알았더니 그 담은 타프롬 사원에 갈 때까지 계속된다.

     

     

    타프롬사원

     

     

     

    우리가 TV  를 볼 때 앙코르 하면 가장 많이 보는 사진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은 이엥나무, 오래된 건축물을 문어처럼 집어 삼킬 듯이 싸고 있는 스펑나무가 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만든다.

     

     

     스펑나무

     

     

     

    자야바르만 7 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립한 사원이며 다른 앙코르 사원과는 달리 이 곳은  보수를 하지 않아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곧게 솟은 이엥 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고 뒤엉킨 뿌리가 사원을 들어 올리는 스펑나무가 울창한 이곳은 지옥의 사원을 연상케 한다.  유네스코에서 나무를 전부 자르려고 하였지만 그럴 경우 건물의 붕괴 위험이 있어 그냥 방치하기로 하였단다.

    사원은 사암으로 된 단층의 건물로 되어 있고 , 부분적으로 황토가 섞인 5 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울창한 수목과 이끼가 덮힌 벽, 뿌리가 파헤치며 들어 올려진 사원의 모습은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문명의 흔적을 탐험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곳은 나무 속에 숨어 겁에 질린듯 밖을 내다보고 있는 압사라를 보면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출입금지 표지판이 자주 보이는데 몇몇 곳은 붕괴의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관람을 마치고 왼쪽으로 돌아 1,5km 뒤 길로 가면 앙코르톰 남문으로 가는 길이 있어 자전거나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길을 이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점심 식사 후 다시 들어 왔기 때문에 타프롬 사원을 본 후 동문[사자의 문] 으로 들어 갔다가 꺼꾸로 남문으로 나왔다.

     

     

     

     

               ______________ 북문____________________

     

               |                                                            |

     

               |             바푸온       코끼리 테라스              |

     

               |                                                            |

     

               서문                  바이욘                          사자의 문

     

               |                                                            |

     

               |                                                            |

     

               |-------------- 남문--------------------

     

     

    앙코르와트와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앙코르와트에서 1,5km 북쪽으로 떨어져 있다.

    한변이 3km  인 정사각형 모양으로 높이 8m  의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 성벽과 너비 약 10m 의 수로로 둘러 싸여 있으며, 이 수로에는 악어가 서식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앙코르톰은 사원의 이름이 아니라 성곽도시의 이름이다.

    그래서 그 안에는 수많은 사원이 존재한다. 

     "앙코르" 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의 " 나가라" 에서 변형된 것이고, "톰" 은 " 큰 도시" 를 의미한다.

    앙코르톰은 사원아니고 해자로 둘러싸인 지역 전체를 의미한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무어가 이 밀림속의 유적지를 발견하고 난후 그의 일기에는 "밀림을 헤치고 나가니 커다란 거인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이 것을 세상에 알린 죄로 저주를 받아 발견한 이듬해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부근에는 약 100만 명까지 거주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는데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에 해당된다.

    높이 약 8m,길이 약 12㎞의 성벽을 쌓고 그 밖에 폭 100m의 해자를 둘렀는데 커다란 악어들이 살았다고 한다.

     

    즉 기존의 사원과 왕궁 주위에 자야바르만 7 세가 성벽을 세워 왕궁을 요새화 한 것이다.

     

     

     

    이 안에는 바이욘사원, 레퍼왕 테라스, 피멘아카스 ,바푸온 사원, 코끼리테라스등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 코끼리테라스

     

    동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앞에 보이는 담처럼 생긴 곳을 말한다.

     

     

     

     

     

    왕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를 하는 장소인 모양이다.

    테라스의 벽에는 코끼리가 줄지어 조각되어 있고 높이는 3m, 길이는 300m  크기이며 5 개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간다.

     

     

     

    테라스 앞면에는 꼬끼리 3 마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다섯개의 말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코끼리 머리 조각상 위로는 연꽃 모양의 좌대가 있는데 왕이 죽으면 화장하는 곳이라 한다.

     

     

     

    테라스의 정 중앙에는 왕이 지휘를 하는 장소로 가루다와 사자상이 받치고 있으며 승리의 문, 왕의 출입문과 일직선 상에 있다.

     

     

     

     

     

    광장 건너편에는 12 개의 탑이 있다.

     

     

    나무 아래 탑들이 보인다. 

     

     

     

    왕의 출입문 위에는 칼라신이 그려져 있는데 육식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살을 뜯어 먹는 그런 신이라 한다.

     

     

     

    출입문을 나가면 피미나카스 신전이 나온다. 

     

     * 피미나카스 신전

     유적지마다 한글로 된 설명판이 있다.   

     

    공중 사원이라도 하며 " 하늘의 왕궁" 이라는 뜻이다.

    왕실을 위한 사원이며 라젠드라바르만 2 세 때 건축을 시작하여 그 다음 대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에는 9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정령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뱀의 정령은 밤마다 여자로 변신하여 왕이 왕후나 후궁들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침을 하였는데 만일 하루라도 동침을 안하면 왕이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여자하고 살면 한 달도 못 살겠다.

     

    비가 오기 시작하여 신전 옆에 가게의 천막 안에 들어가서 야자 하나 사먹는데 아이들이 와서 "부채 사라" 고 너무 졸라서 앉아 있지 못할 정도다. 하는 수 없이 빗속을 뜷고 바로 옆에 있는바푸온 사원으로 향한다.

     

     

     

     

    *.

    바푸온 사원  

    바푸온 사원은 지금 보수 공사 중인데 크레인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대적인 공사인 모양이다.

    프랑스 정부에서 보수 공사를 한다 고 한다.

    11 세기 중반 무다야닷야 바르만 2 세가 시바신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교의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는 돔 형태로 지어진 사원이다.

    바푸온은 " 숨긴아이" 란 뜻의 사원이라고 하는데 전쟁이나 환란이 있을 때 아이와 아내를 숨겨 주었던 곳이 아닐까 한단다.

     

    바푸온을 가는 길은 다른 힌두교 사원과는 달리 "나가난간" 이 없다.

     

     

     

    비가 너무 퍼붓는 바람에 바이욘 사원까지 뛰어간다.

     

     

     

    *.

    바이욘사원  

    바이욘 사원에서 동서와 남북으로 뚫린 두개의 도로에 의해 앙코르는  4 등분된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톰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원 중의 하나라 한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큰 돌무더기같은 산처럼 보인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우물이 있는 사원이다.

     

    바이욘 사원은 불교의 주임인 수미산을 의미한다.

    200 여개의 얼굴로 구성된 54 개의 탑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이 잘린 수호신은 악마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유적들은 사암에 조각한 것인데 현재는 기후의 영향으로 회색빛으로 바랬다. 

    앙코르톰의 건립자인 자아바르만 7 세가 12 C  말에 건립한 앙코르톰의 중심사원이다.

     

    바이욘 사원 탑에는 관세음보살 모습을 한 자야바르만 7 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초기에는 이 얼굴이 힌두교의 창조의 신인 브라만의 얼굴이라 믿었으나, 불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의  보살의 얼굴로 간주 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프레이 사원과 타프롬 사원의 의미와 연관지어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는 부처와 동일시된 왕의 위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을것이라 추측한다.

     

    부조의 그림을 보면 호수에 빠져 악어에 물린 사람, 술 마시는 사람, 밥 짓는 사람, 아기를 낳는 여자. 닭 싸움 하는 모습 등등 을 그려 넣고 있다.

     

    2층은 216 개의 얼굴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감은 눈, 뜬 눈, 행복한 표정, 슬픈 표정의 네가지 얼굴이 있다.

     

    슬픈 표정은 1177년부터 참파가 4 년동안 지배한 것을 나타내고 행복한 표정은 1181년 참파한테 승리한 것을 의미하며, 감은 눈은 명상을, 뜬 눈은 사람들과 도시를 지켜보는 의미라 한다. 두툼한 입술, 뭉툭한 코의 모습을 보인다.

     

    바이욘은 캄보디아인의 얼굴을 닮은 신이며 불교 사원이다.

     

    영화 " 톰레이더" 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비가 폭우로 쏟아지는 바람에 더 이상의 관람을 포기하고 툭툭이를 타고 남문을 지나 시내로 나간다.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 해야 하겠다. 

     

    남문에서  악마의 얼굴, 천사의 얼굴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폭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다음에 또 다시 올 수도 없고 오늘은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려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저녁 때 프놈바켕에서 석양의 일몰을 보아야 하는데 비가 오는 속에서 석양을 볼 수도 없으니 그것조차도 당연히 포기하게 된다.

     

     

     

    남문

     

    앙코르와트를 본 후 길을 따라 걸어 오면 만나게 되는 것이 남문이다.

    툭툭이를 타고 나가면서 잠깐 서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려 하였으나 엄청난게 퍼붓는 비 때문에 포기한다.

     

    남문에는 해자 위의 다리 위에 "나가" 상 뒤로 양쪽 난간에 각각 54 개 씩 전부 108 개의 석상들이 줄지어 있다.

    한쪽은 신들의 모습이고, 한쪽은 악마의 석상인데 신들의 석상은 표정이 온화하고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악마의 석상은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다.

     

    중간중간 잘려진 석상들이 있는데 태국과의 전쟁에서 태국군이 가져 갔다고 한다.

     

    이 다리를 지나 앙코르톰으로 들어감으로서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 간다고 믿었다 한다.

    남문의 성문 위에는 네개의 얼굴이 조각된 얼굴이 각각의 방향을 보고 있다.

     

     

    프놈바켕의 일몰

     

    앙코르의 석양을 보기 위한 곳이며 유일하게 산에 있는 사원이다.

    계단이 무척 가파라서 네발로 기어야 한다.  

    석양을 보기 위해서는 40분 정도 걸야 한단다.

    오늘은 비가 오니 석양이 있을리 없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석양을 보지 못한 채 앙코르 유적 관람을 종료한다.

     

     

     

    압살라쇼 디너쇼[저녁식사]

     

    압살라쇼를 본다기보다는 맛있는 저녁 식사 하러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압살라쇼는 크메르인들의 농경생활, 젊은이들의 연애, 크메르인들의 역사 즉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 등을 보여 주는데 흥미를 끌만한 내용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의 부채춤이 우리에게 재미 있는가.

    우리의 춤이니 한번 정도 보는 것이 아닐까.

    이 나라의 민속적인 이야기라 생각하고, 공연 내내 이 나라의 문화구나 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재미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공연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15 ~ 20 세 정도된 애들이 공연을 한다.

    성우, 노래, 배우 모두 어린애들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보는 쇼인데 식탁 위에는 도마뱀이 기어다녀 여자들이 기겁을 하고 천정에는 새들이 날아 다닌다.

    저녁 식사는 아주 맛이 있다.

     

     

     


    셋째날 [2010. 01. 21]

     

     

     

    톤레샵호수

     

    아침 늦게까지 빈둥거리다 톤레샵 호수로 간다.

    시골길로 30분 정도 가면 톤레샵 호수에 도달하는데 모든 것이 정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세계에서 3 번째로 큰 호수라 하는데 그것은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고......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배 안에 조그만 녀석이 왔다갔다 한다.

    뒤에 와서 어깨도 주무른다.

    아마 팁을 바라는 것 같다. " 너는 왜 학교 안가냐 "

     

     

    " 저 앞에 배 모는 사람이 네 아빠냐 " 물으니 아빠가 아니란다.

    학교도 안가고 돈을 벌기위해서 심부름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60 % 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하니 이해는 된다마는 많이 애처롭다.

    이 아이에게 배에서 내리면서 1 달러를 쥐어 준다.

     

    호수는 맑은 물이 아니고 흙탕물이며 호숫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지붕이 있는 배는 베트남인들이 살고 있다 하며, 이 배 위에서 살고 이 호수의 물을 이용하여 취사도 하고, 목욕도 하고, 볼일도 그곳에다 보는데 보자마자 고기가 청소를 하여 물이 깨끗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니올씨다.

     

     

     

    큰 파도가 이는 정류장 있는 곳까지 가자  큰 양동이에 앉은 한 쪽 팔이 없는 아이가 구걸을 하다가 양동이가 뒤집어진다.

    어떻게 올라오나 했더니 가벼운 양동이를 잡고 한손으로 잘도 올라온다.

    맨 땅에서도 올라 오기가 힘들텐데 물 위에서 양동이는 흔들리는데 올라 오는 것을 보면서 생에 대한 집착이 놀라울 뿐이다.

     

     

     

    정류장의 큰 배 안에는 잡아 놓은 고기 가득하고. 한쪽에는 악어가 가득하다.

    이 호수에 악어가 사는 모양이다.

    발 잘못 디디면 여기 온 손님들 잘못하면 악어밥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국인들의 선교활동은 참으로 무섭다.

    이 동네까지 교회를 세워 놓고 한글로 교회 간판을 달아 놓은 것을 보니 혀가 내둘린다.

     

     

     

     

     

    평양식당[점심 식사]

     

    평양냉면 집이라 하여 한국인들이 차린 식당인줄 알았더니 북한 정부에서 차린 식당이란다.

    냉면집이라 냉면만 한 그릇 주는 줄 알았더니 한국식으로 백반을 먹고 난 후 냉면은 한 젓가락 정도 준다.

     

     

     

     

    30분 정도 식사를 하고 나면 북한 아가씨들이 공연을 한다.

    우리가 TV에서 많이 보던 북한의 모습과 똑같다.

    우리의 TV  에서 화려한 모습만 보다가 경직된 모습의 공연을 보니 별로다.

     

    그 아가씨들이 소녀시대의 공연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같은 나이를 살아가는 아이들인데 그 아가씨라고 소녀시대처럼 발랄하게 놀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아가씨들은 북한의 최고위급의 딸들이라 한다. 3

     년동안 와서 근무를 하며 외출 외박이 없이 갇혀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단다.

    북한은 이렇게라도 해서 큰 돈은 아니지만 작은 돈이라도 벌 수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북한은 기댈 곳은 남한 밖에 없지 않을까.

     

     

     

     

    왓트마이 사원

     

     

     

    영화 "킬링필드" 를 두 번 보았다.

    첫번째는 우와 ! 재미있다.

    두번째 볼 때는 킬링필드에 대한 내용을 알고 나서인지 무척 우울해졌다.

    그 킬링필드 현장에 왔다.

    프놈펜에 있는 것이 가장 큰 킬링필드이고 이곳은 작은 곳이라 한다.

    프놈펜에 있는 것은 10 층 높이로 아주 크단다.

     

    킬링필드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원으로 당시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죽은 사람들의 유골을 담아 놓은 탑을 볼 수 있다.

     

    다시는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13 _ 18 세의 어린아이들을 이용하여 크메르 국민의 300만을 죽인 사건이다.

    사람을 죽이는 총알도 없어 야자나무 비슷한 슈가팜이라 불리는 트나우 나무의 날카로운 줄기를 잘라 무기로 사용한 아주 잔인한 살인사건이건만 그 범법자들은 아직도 캄보디아를 통치하고 있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잘못된 위정자들 때문에 캄보디아 국민들은 아직도 큰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바라이호수

     바라이 호수는 인공호수라 한다.

    동쪽과 서쪽 두 곳을 팠는데 현재는 서쪽 호수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중국 항주에 있는 서호보다 2 배 이상 크기이며, 북경의 이화원보다는 5 배 이상 큰 것 같다.

    이화원은 흙을 파서 산을 만들었는데 이곳은 그 많은 흙이 전부 어디로 갔을까.

    이 큰 호수를 사람 손으로 팠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앙코르의 왕의 딸이 악어에게 먹혔는데 그 악어가 남쪽 둑을 부수었다고 하며. 부서진 남쪽 둑은 아직 그대로 있다고 한다.

    악어는 나중에 잡혀서 죽고 뱃속에서 공주가 살아 나왔다고 한다.

    호수 가운데 있는 사원도 11 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동쪽 둑은 프놈바켕 방향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이 호수에는 왕이 탄 배가 정박할 수 있게 정박시설이 되어 있었고, 물고기를 양식했던 장소도 있다. 

    이 호수는 50 ~ 60 년대 시아누크 국왕이 왕자였을 때 외국 귀빈을 위한 수상스키장으로도 사용되었고. 수상 비행기의 착륙장소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이 호수는 크기로만 보면 동양 최대의 호수라 할만하다.

     

     

     

    이로서 캄보디아 여행을 마친다.

    천년 전 건축되었던 불가사의 한 건축물, 사람의 힘으로 팠다는 거대한 바라이 호수 를 보면서 예전의 번영과 영화를 누렸던 크메르인들의 과거를 보면서 존경스러움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킬링필드의 잔혹한 역사를 동시에 보면서 슬픔에 젖기도 한다.

    빠른 시일내에 옛 조상들의 번영을 크메르인들이 빠른 시일내에 되찾기를 빌어 보면서 놀라움과 슬픔을 같이 한 크메르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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