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산사에서의 하루 :: 제천 감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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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에서의 하루
    카테고리 없음 2007. 12. 7. 10:37
     

    산사에서 하루

                 ----청도 운문사에서---

     

           고요하게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마음이 어우러진다. 어디를 가더라도 마음 하나 편히 앉아

           쉴곳 없는 도시생활과는 달리 온갖 벌레들이 여기저기 윙윙거리며 날고 매미 우는 소리,

           새들의 노래 소리가 서로간의 마음이 맞아 합창이라도 하는 양 교향곡이라도 연주하는 듯

           하다.

            가만히 숲 속 길섶에 핀 꽃들을 바라 본다. 벌이 날아 와 윙윙거리고 있다. 한 마리가

           먼저 가장 큰 꽃에 앉았다. 그 다음 놈이 와서 또 그 자리에 앉으려 하자 먼저 앉았던 놈

           이 윙--- 하고 들려든다.  아! 저런 저 벌레도 우리 인간과 별로 다를 게 없나 보다.

            절간 앞 연못에서 흘러 나오는 산골짝 도랑물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시원하다기보다는 차갑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예불 드리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온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언제부터 나반존자를 외치던 것이 아직도 나반존자를 외치고 있다. 계속하여 30여분을

           그렇게 하고 있다. 무심코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었다.

           나반존자가 존자나반, 존자나반으로 바뀌어 들리는 것 같고 나도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없다. 또 자존나반으로 바뀌어 갔다.  헷갈리는 세상이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계속 외쳐댈 때 그 말은 이미 그 존재성의 상실을 나타내는

           모양이다.

            여기에 온지 6개월이 됐다는 처사라는 양반의 장작 패는 소리는 산을 뒤흔들고, 흐물거

           리는 뱀 한 마리가 나무밑에 어물쩡거리다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신기한 놈이다.

           나무꼭대기에 먹을 것도 없고 제 집도 없는데 무엇하러 전신운동을 하며 올라가는지

           모르겠으나 저 놈도 나처럼 할 일이 예숙하게 없는 모양이다.

            어젯밤에 밤이 이슥하도록 예불을 드렸던 아주머니가

             “ 아저씨도 한 번 공양하이소예”

            이 말에 갑자기 머슥해진다. 생전 절에는 처음 와 보는 탓이라 눈치만 살금살금 살피고

           있는 판에 그 말은 나에게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 지는예, 어젯밤 늦게 한참 고양을 하는데 내 어깨에 ”딱“ 하고 돌이 떨어지는 거 아닙

           니껴 부처님 은 혜, 기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한테는 돌을 던져 준다 안합니까“

             아무 할말이 없었다. 식사때만 되면 들어 와 밥만 살짝 먹고는 나와 잠시 후 벌어질

           예불드리는 장소로 쳐다 보면서 하루를 지냈으니 이것도 눈치밥인지라 거북하기 짝이

           없는 판인데 그 아주머니의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따라서 예불을

           드리자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모르고 또 뭐라고 간구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한시간여

           동안 앉아 있자니 그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 뭐라고 기도해야 하죠. 저는 절에 처음 와 보는데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 그냥 따라 하면 됩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속으로 원하는 것 있으면 조용히

             생각하면 되는 기라예“

            “ 아주머니는 뭐라고 기도 하셨어요”

            “ 지는요, 우리 영감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또 시집안간 딸애가 시집 잘 가라고

             기도했는데 어젯밤에 부처님이 나한테 돌을 던져 주었으니 올해 남은 기간도 무사태평

             지나갈낍니더“

             한참동안 공양하라고 재촉하던 아주머니는 오늘이 끝나는 날이라며 점심을 먹고는 산을

             내려갔다. 그 아주머니의 불공이 얼마나 정성스러웠길래 부처님은 그 아주머니에게

             돌을 던져 주었을까.

              그 돌이라는 것이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사리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머니가 돌을

             어깨에 맞고 그 다음날 아침 돌을 찾으려고 사방을 돌아 다녔지만 그 돌은 찾지 못했다

             한다.

              그 돌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하고 혹시나 싶어 나도 그 돌을 보고 싶어 예불 장소 밑

             을 뒤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고 오직 보이는 것은 우리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돌밖에 없었다.

              불타의 경지란 얼마나 높은 것일까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이 절간에서

             나에게 유심스러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몇시간을 두고 보았지만 이 절에는 불을 때

             고 있는 사람외에는 전부 여승들 뿐 이었다.

              이 절에 오기 전에는 부처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장작 패는 아저씨도 이곳

             에 와서 얼마동안 있다보니 이제 부처님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 새벽 아직 별들은 총총한데 여승들은 벌써 일어나 새벽 예불 준비에 바쁘다.

             늦게까지 자고 있는 신도들을 깨우고 불을 켜고 이때 벌써 산 속의 절간은 이미 환해져

             있었다.

              새벽 서늘한 공기 속에 한바탕 �지껄한 예불시간이 지나가면 아침 이슬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멍석을 펴 놓고 그 위에 아침식사가 시작된다.

              여승과 여신도가 한 곳에 모여 식사를 한다. 여승들 뿐이어서 그런지 이 절을 찾고

             있는 신도들은 전부 여신도들 뿐인 것 같다. 간혹 남자가 있다 해도 아내와 같이 온

             남편이거나 같이 따라 온 아들이거나 한 것이다.

              바쁜 아침식사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 사람들이 어젯밤에 부족한 잠을 채우려는 듯

             오전 취침을 한다. 그 사이 여승들은 절간 정리하게에 바쁘다.

              저 여승들은 속세가 얼마나 미워서 이 세계에 들어 왔을까 아니면 부처님의 부름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고 또 해탈의 경지에 이르려고 이 세계를 찾은 것일까

              그러는 가운데 한 신도는 말한다. 이 지구는 지금 피로 물들고 있다고, 왜냐하면

             교통사고, 재해, 재난, 모든 크고 작은 피로 물들이고 있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또 옛날에는 산이 호랑이를 비롯한 산짐승 때문에 위험 했지만 지금은 바뀌어서 산은

             안전한 곳으로 변했다고  허나 산은 무서운 곳이다. 정적이 깃들고 그 고요 속에 온갖

             만물이 생존한다.  앙상하게 죽어 가고 있는 나무들,  나무들이라고 해서 몇천년을 사는

             것은 아니다. 나무도 때가 되면 썩어 없어지는 모든 만물의 생활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썩은 나무 위에는 다람쥐가 넘나드는 여유가 있다.

              이 혼적함 속에 스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 정적 속에 죽어 가면서 무엇을 남겼

             을까. 나무 밑 바위 위에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것이 있다. 빤히 쳐다 본다.

             커다란 두꺼비가 징그럽게 기어 가고 있다. 엄청나게 크다. 두꺼비가 기어가고 있는

             앞을 막아 섰다. 두꺼비가 걸음을 멈추고 입을 벌름벌름 하더니 옆으로 빠져 나갔다.

              장작을 패다가 이를 본 처사 아저씨가

              아!  여보쇼! 그런 산 짐승을 못살게 굴면 안되는거요. 그 두꺼비 최소한 이백년은

             살았음직한데 그런 요물을 잘못 건드리면 큰일나요

              이 소리에 그만 물러나고 말았다. 등에 오돌오돌 솟아난 것이 그렇게 추하게 보일 수

             없었다. 누가 저런 징그런 것을 약으로 먹을 생각을 했을까.

              한나절이 지나서 어머니 손에 붙들려 손에는 토마도, 딸기를 잔뜩 든채 무거운 듯이

             낑낑대면서 학생인듯한 젊은이가 올라 왔다. 젊은이의 눈에는 초조한 불안의 기색이

             감돌았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그 젊은이는 이번 대학입시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고

             있는데 바람도 쐴겸, 예불도 드릴겸, 같이 가자고 하도 부탁을 하길래 대학시험에

             떨어져 가뜩이나 미안한 판인데 이것까지 말을 안들으면 어머님이 얼마나 서운해 할까

             두려워서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왔단다. 점심 식사후에 예불을 또 시작했다.

              “공양하세요”

              멍청하게 서 있는 나에게 가장 어리다는 여승이 말을 걸었다.

              공양인지 고양인지는 모르나 아직 순박한 산사람들의 인정에 이끌려 팬 장작을 쌓기도

              했다.

              그것도 일이라고 수고했다고 막내둥이라는 여승은 신도들이 가져온 듯한 사과, 오렌지,

              주스를 접시에 조심스럽게 담아 주고는 휑하니 가 버렸다.

               모든 자질구레한 일은 거기에도 계열이 있는 듯 막내둥이 여승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깊은 산 속의 산사라 하더라도 이곳까지 문명의 이기는 밀려오고 있었다.

               접시를 다 비우자 막내 여승은 조심스럽게 접시를 물에 헹구고는 가져가 버린다.

              사과 껍질을 잔뜩 깍아 놓은 것에 무안을 느끼게 한다.

               여승 하나가

               “ 휴양하러 왔어요”

               빈둥빈둥 하는 것이 보기 싫었든지 비꼬는 양 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로서는 휴양은커녕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단지 외롭고 괴롭기

               만 할 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이었을 뿐이다.

                어제 저녁 늦게 이곳에 와서 지금 이 시간까지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어 있었

               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산 속의 절을 떠났다. 나뭇잎 사이로 밝은 햇빛이

               스며 나와 조그만 동그라미를 땅에 그린다.

                한가롭게 고양이가 새끼들의 젖을 먹이며 내가 떠나는 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우리 인간은 무의식세계 속에서 늘 움직이고 있고 마치 잠을 자도 우리가 늘 꿈꾸고

               있는 것처럼 잠재의식은 늘 생각하고 변하고 갈등으로 서로 싸우고 움직이게 마련이

               다.

                나는 하룻동안 이방인 되었다는 기분을 느꼈으나 지금은 그 기분에서 완전히 해방

               되었다는 느낌이 이렇게 발걸음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또 무슨 심사일까.


              충북약보 2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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